일본은 세계에서 4번째로 커피 생두를 많이 수입하고 또 소비하는 나라다. 일본인은 1년 동안 하루 평균 한 잔의 커피를 마신다. 일본의 소프트 음료 시장에서 부동의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 역시 커피다. 고령화 사회가 진행되면서 가격보다는 품질과 건강을 따지는 분위기가 퍼졌다. 녹차와 생수 시장은 커피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커피 산업은 놀라우리만큼 닮아있다. 현재 한국의 저가 커피 시장이 커피 업계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것도 과거 일본의 100엔 커피 열풍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일본의 인구성장률은 멎어있다는 사실, 그리고 일본인들은 하루에 소비하는 커피에 ‘더 높은 품질’을 원한다는 점, 그것이다.
‘평균적인 커피’의 함정
‘악마의 음료.’
커피가 처음 유럽에 처음 들어왔을 때, 유럽인들은 이슬람교도들이 애용했던 이 검고 쓴 이 음료를 이렇게 불렀다.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기독교도들은 이교도의 음료인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해달라고 교황 클레멘트 8세를 달달 볶아댔다. 기독교도가 커피를 마시게 되면 사탄에게 영혼을 빼앗길지 모른다고 말이다.
그러나 교황은 커피를 금하기는커녕, 세례를 주고 ‘기독교의 음료’라고 부르게끔 했다. 교황은 이미 이 악마의 음료에 깊이 매료된 터. 우여곡절 끝에 커피는 유럽에 뿌리내리게 됐고, 이후 전 세계로 퍼졌다.
천 년의 역사를 가진 커피의 영향력은 현재진행형이다. 다양한 커피의 맛과 향을 추구하는 커피 소비자가 늘고 있고, 이에 발맞춘 커피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대 커피 소비국인 미국의 커피 산업은 그러나 지난 1950년대부터 상당기간 동안 ‘평균적인 커피의 보급’에 목표를 뒀다.
치명적인 결점은 없지만, 특색도 없는 ‘무난한 커피’는 커피 수요를 늘리는데 성공적인 전략이긴 했다. 커피가 이렇듯 미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자, 이 ‘평균의 커피’는 전 세계 커피시장의 기준이자, 목표로 굳어졌다. 십여 년이 지나는 동안 여러 커피 상품이 출시됐지만, 기본 틀은 바뀌지 않았다. 이 보통의 커피는 이후 2000년대까지 대중이 커피를 멀리하게 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커피 맛과 향에 대한 소비자의 니즈는 커졌지만, 커피 업계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를 반영하듯 커피 소비량은 1960년대부터 2010년까지 큰 폭으로 감소하며, 커피 산업은 극심한 침체기를 겪는다.
미국의 경우, 대중의 다양한 커피 기호를 반영하지 못한 결과는 처참했다. 소비자들이 커피를 외면하면서 1954년 전체 음료 시장 중 77.8%에 달했던 커피 점유율은 2003년에는 51.1%로 곤두박질쳤던 것이다. 여기에 지구온난화와 급격한 기후변화에 따른 커피 생산량 감소, 그리고 환율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는 커피콩 시세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안정적인 커피 생두 수급에 어려움을 겪자 도산하는 커피 기업이 속출하며, 커피 업계는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 같은 현상은 일본도 예외가 아니었다. 커피 소비가 줄자, 대형 커피 업체들은 커피 가격을 떨어뜨려, 부진을 만회하고자 했다. 가격 경쟁은 커피 질의 하락을 초래했고, 소비자들은 커피를 더욱 외면하게 되면서 커피 소비가 다시금 감소하는 악순환이 시작됐다. 또 젊은 층을 중심으로 다른 음료를 선택하기 시작하면서 일본의 커피 산업은 악화일로의 상황을 맞는다.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커피를 수입에 의존한다. 2014년 기준 일본의 커피콩 수입량은 765만 9891백에 달하는 등 커피 시장 전체의 부피는 커졌지만, 원재료인 생두와 원두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일본 커피 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일본 커피 산업 종사자들은 1960년대부터 시작된 이른바 ‘커피 쇼크’ 타개에 골몰하게 된다.
일본의 커피 시장
일본은 수입 커피 중 인스턴트 커피 소비가 가장 높은 31%를 기록하고 있다. 나머지는 로스팅 된 커피인데, 이중 캔 커피가 26%를, 21%는 일반 가정과 일선 커피전문점에서 소비된다.
20년 전 일본의 커피전문점은 16만여 개에 육박했다. 커피전문점에서의 커피 소비 비중이 높았지만, 최근에는 점차 가정에서의 커피 소비가 늘고 있다. 현재 일본 내 커피 전문점의 수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한국은 4만 개의 커피전문점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일본과 유사하게 가정에서의 커피 소비가 늘어나는 추세다.
커피는 블랙, 우유와 설탕을 첨가, 우유, 커피, 다른 물질을 함유하는 것으로 나뉘는데, 1983년부터 작년까지 41.4%가 블랙커피를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설탕을 함유한 커피는 커피 향이 좋지 않은 것을 숨기고자 고안된 만큼, 이후 커피 향의 발전이 이뤄지자 점차 감소 추이에 있다. 카페오레와 카푸치노 등 우유만을 첨가한 커피의 소비는 늘고 있다. 작년에는 21.3%로 조사됐다.
커피는 소프트 음료로 분류된다. 일본의 소프트드링크 시장은 점차 규모가 팽창하고 있는데, 그중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품목은 현재까지는 커피다. 그러나 지난 1997년 이후 커피 판매율은 늘지 않고 있는 데 비해 그린티(녹차)와 생수 수요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녹차와 생수시장의 부피가 커지는 이유는 일본의 고령화 사회에 돌입 이후 도드라지는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노년층은 커피보다는 생수와 녹차를 선호한다. 이 같은 현상은 한편으로 일본 커피 시장에 간접적인 위협(내지는 불안) 요소로 분석된다. 개인이 소프트 음료에 들이는 금액은 일정하다. 결국, 타 음료의 지분율 증가는 커피 산업의 하락과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현재 일본의 인구는 1억2천8백만 명으로 지난 5년 동안 인구 성장률은 -0.08%대를 기록했다. 더는 인구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소비량 역시 일정 수준으로 유지됨을 의미한다. 같은 기간 동안 한국의 경우 0.48%대를 기록해 향후 2030년까지 인구 증가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지만 경제규모 등을 고려하면, 결국 일본의 소비 형태와 유사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으로 캔 커피가 강세인 일본 커피 시장에서 고품질의 커피를 찾는 소비자들의 니즈는 꾸준히 늘고 있다. 스페셜티커피를 필두로 소비자의 다양한 기호를 반영한 높은 품질의 커피가 시장에 풀리자, 2003년대에 이르러서야 커피 소비율이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최대 커피 소비국인 미국(2천300만 백)과 비교해 일본은 비록 네 번째의 커피 수입국이지만 스페셜티커피 분야에선 단연 1위다. 이는 개인의 연간 커피 소비량을 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ICO(국제커피기구)의 조사결과를 기준으로, 2785잔으로 가장 많은 커피를 소비하는 룩셈부르크를 비롯해 북유럽은 일 년 동안 평균 900잔의 커피를 소비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의 경우 2000년대 이후 일 년 동안 하루 평균 351잔의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하루 평균 한 잔을 마신다는 의미다. 다시 말하면 ‘오늘의 커피’를 선택하는 기준이 한층 까다로워졌음을 의미한다. 장기간의 불황 여파로 한때 100엔 커피가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기호는 ‘더 맛있는 고품질의 커피’로 집중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일본의 스페셜티커피
이렇듯 일본인들의 커피 수준이 높아진 데는 소비자들의 니즈 충족과 더불어 시장 내부의 자성도 일정 수준 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커피 시장의 극심한 침체와 이를 극복하려는 방법으로 커피 평가 기준이 까다로워졌고, ‘커피 품질은 고객의 평가와 커피만의 풍미에 좌우된다’는 것이 명실공히 좋은 커피의 조건으로 점차 확립된 것이다.
스페셜티커피만의 특성인 풍미·산미·여운·단맛은 커피 품질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이는 스페셜티커피의 질에 대한 기준으로 굳어지게 됐다. 이때부터 앞의 네 가지 기준을 바탕으로 커피 맛이 수치화되기 시작했다.
일본의 스페셜티커피 시장규모는 어떨까. 현재 스페셜티커피는 전체 수입되는 커피의 6~7%로 추정된다. 이는 8백만 포대를 수입한다고 가정할 때, 50만 포대가 스페셜티커피라는 의미다. 10년 전에 1~2%였던 것이 불과 10년의 세월을 두고 5배 이상 성장한 것이다. 스페셜티커피 점유율은 2008년 17.9% 2015년은 40.2%.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현재까지는 코머셜 커피가 50%를, 같은 기간 내에 70%에 육박하던 코머셜 커피는 올해 기준 50%대로 감소했다.
원문: 누블롱 라베리테 / 작성: 김양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