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군분투: 남의 도움을 받지 아니하고 힘에 벅찬 일을 잘해 나가는 것
고군분투의 앞에 ‘우리 동네 치킨 가게 ‘골목 카페’, 혹은 ‘동네 슈퍼’ 등의 말이 붙으면 그 의미는 확연히 피부에 닿는다. 정부는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소상공인법)을 제정,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소상공인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있기는 하다. 법률상으로는,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골목카페 등을 위시한 자영업자의 생존권은 시장논리나 자본주의 경쟁 등의 그럴싸한 경제용어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8곳의 크고 작은 골목 카페의 이야기를 전한다. 우리의 대화는 유쾌했으며 살벌했고, 짭조름했다.
‘카페 하기 어렵다’고 아우성을 친다. 자고 일어나면 새 카페가 들어선다. 그만큼 문도 닫는다. 경쟁은 치열하다. 혹자는 ‘정리’의 필요성을 꺼낸다. 카페 창업 문턱의 낮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깜냥이 안 되는’ 이들이 업계를 흐린다는 주장도 고개를 든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시장논리에 의해 이러한 쭉정이들이 정리되기 마련이라 자신하는가. 카페를 하는 당신은 다음번 도산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는다고 자신하나. 커피 맛이 월등하거나, 서비스가 좋아서? 아니면 걸출한 실력과 특유의 전략으로 당신만은 나가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정말로 확신하는가. 아쉽게도 그런 노력과 자신감은 현존하는 5만여 개의 카페 모두 갖고 있다는 사실. 지금 ‘좀 나간다고’ 강 건너 불구경할 때가 아니란 얘기다.
본 기사를 통해 어떤 대단한 대안이나 솔루션이 도출되진 않는다. 잘되는 카페와 그렇지 않은 곳 모두의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누블롱라베리테 독립저널리즘랩은 골목카페로 대표되는 자영업자 사장님들의 소중한 ‘두 시간 반’을 숭덩 잘라 기사에 담았다. 완벽한 해결방안은 요원하다.
다만 건설적인 논의의 단초가 되었음을 바라는바,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자들에게 작은 위로를 건네고자 한다. 한편으로 대기업에 치이고 차이는 자영업자들을 정부는 왜 수수방관하고 있는지에 대한 비판도 함의돼 있다. 자, 가보자.
대로변과 역세권 멀리 그 어디쯤
위치와 지역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오갔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자영업자 1호는 노량진과 용산에 △2호는 영등포와 부천 △3호는 양재동과 잠실, 신촌 △4호는 서울 낙성대 △5호는 강서구 △6호는 동대문구 △7호는 분당 △8호는 송파구 등지에서 크고 작은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분위기는 서서히 달궈지더니 누가 더 어려운지 성토를 떠나, 경쟁하기에 이른다. 사전에 ‘일이 좋아서 힘든 줄 몰랐다’라든지 ‘돈은 중요치 않다’는 상투적인 답변을 제외하고 ‘지극히’ 현실적인 대화만 나누기로 사전에 논의가 이뤄진 터였다.
삼류기자(이하 3U) 사전 조사를 했더니 카페의 규모와 평수 정도에 따른 보증금과 임대료가 어느 정도인지 관심이 높더군요.
1호 두 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어요. 노량진 가게는 대로변에 17평 내외의 규모이고요. 용산 매장은 6평가량 됩니다.
2호 부천에 10평 정도? 정말로 동네 주민들을 상대로 하는 카페죠.
3호 처음에는 18평이었어요. 근처에 32평이 또 있고요. 최근 공장까지 25평을 더 냈고요. 아르바이트생을 포함해 총 18명이 일해요.
4호 6평에서 주전자 하나만 갖고 시작했어요. 8평으로 옮겨간 후 로스팅을 1년여… 처음 6평은 인근 12평 가게로 옮겼어요. 1호점은 저 혼자 일해요. 2호점은 누님이 봐주세요. 1호점에서 2호점 매출까지 책임을 져요. 적자를 다 메꾸기 때문에. 2호점이 정리되면 여유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 아직 참고 견딜 수밖에요.
5호 우리 가게는 7평 정도. 지하철역·버스정류장과 멀고요. 인적도 드물어요. 차가 다니는 이면도로에, ‘말도 안 되는 자리’에서 일해요. (전원 웃음)
6호 외대 쪽 방향 이면도로에 30여 평이죠. 일 년 넘었어요. 돈은 많이 못 벌어요. 학생들이 주 고객이라 돈도 없고, 저가 커피 매장이 더 많아졌어요. 매출이 영향을 받더라고요. 차라리 가격을 올려버렸어요. 좋은 커피를 판다는 인식을 심어주니까 (매출이) 괜찮아지더라고요.
7호 전형적인 오피스 상권이에요. 한 달에 20일만 일해요. 주말에 밥값도 못 벌어가서 일단은 주 5일 영업을 고수하고요. 오전 7시~오후 10시까지 열려있고요. 6.3평이에요. 이면도로를 끼고 있는데, 차가 들어올 수 없는 골목이라 도로에서 가게가 안 보여요. 6개월 이상 비어있던 점포에 들어갔죠. 저가 커피와 경쟁하며, 저희도 저가를 하면서(웃음) 생존하고 있어요.
8호 5평에서 일해요. 절반은 테이블, 나머지는 테이크아웃. 저희도 주5일인데, 오전 8시~오후 6시까지 해요. 쉬는 날에는 손님이 없어서 ‘깔끔하게’ 쉬어요.
“얼마나 벌어야 매장을 유지할 수 있을까”
7호 대략의 범주에서 임대료 수준을 공개해보죠. 제 카페가 들어선 건물이 주변에서 제일 낡았고, 문제도 제일 많아요. 사각지대이고. 그래서 싸죠. 7년 넘게 운영하면서 분점은 엄두도 내지 못해요. 임대료가 매우 높기 때문이죠. 어떻게 임대료를 감당하세요? 저희는 임대료가 낮아서 매출이 좋지 않아도 버틸 수 있거든요.
4호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 인근 길가 이면도로에 가게가 있어요. 출퇴근길에서도 직장인들이 제 가게를 지나치지 않아요.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 길에 카페가 있었어요. 낙성대 공원까지 지름길을 가려는 사람들에게만 노출되는 곳에 있었던 거죠. 거기서 5년을 버텼어요. 임대료는 30만 원에서 시작을 했어요. 임대료를 내기 위해서 하루에 (커피를) 2~3만 원을 팔았어요. 공치던 날도 많았어요. 그래도 임대료가 싸서 괜찮았어요. 덕분에 커피 여행도 많이 다니고 자유로웠죠. 제 커피에 집중할 수 있었고요.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임대료는 계속 올랐어요. 지금도 오르고 있고요.
3호 ‘임대인의 성향’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건물 이력 조사도. 저희는 건물 주인을 잘 만난 편이었어요. 임대료 인상률이 높지 않았어요. 그전에 (주인에게) 선물도 주곤 했죠. 매장 위치에 따라 150~250만 원 사이였어요. 뒷골목에 매장이 있으면 매출이 낮지만, 안정감은 있죠. 임대료가 싸니까요. 만약 3일 동안 일을 해서 임대료를 ‘뽑으면’ 성공적인 사례죠. 결국, 이런 매출이 나올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해요.
1호 8년 전 노량진 매장의 임대료는 270만 원이었어요. 지금 550만 원 정도인데, 그냥 버텨요. 모르겠어요. 분석적으로 해서 버틸 수 있다고 보질 않아요. 매년 월세가 올라가죠. 복리로 계산되기 때문에 상승률도 커지는 거예요. 도망가고 싶은데, 권리금도 있고 여러 가지 요소가 섞여 있기 때문에 그냥 주저앉은 거예요. 계속해야 되나 고민이 커요. 도망가고 싶죠. 용산 매장은 월세가 100만 원이에요. 로스터리 공장은 월세가 50만 원이고요. 외진 곳에 있거든요. 돈이 없다 보니까 구석으로 들어가더라고요.
2호 소사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매장에 와요. 1년가량 됐어요. 지인의 매장에 친척 동생이 ‘꽂힌’ 거예요. 여기가 다소 낙후돼 있고요. 임대료는 95만 원. 길 건너는 반값이고 빈 점포도 많아요. 버스정류장 앞이고 원래 매장이 들어서 있는 곳이라, 메리트가 있을 줄 알았는데… 없어요. 사람들이 정직하게 집으로만 가요(웃음). 제가 매장 앞에 나와서 보면 거의 그래요. 한 달 만에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웃음) 이렇게 주저앉은 거죠.
5호 월세 인상이 되고, 세입자가 쫓겨나다시피 나갔는데, 그것도 모르고 들어갔어요. 방배동에서 계약 직전까지 갔죠. 그런데 업자로 ‘추측되는’ 사람이 권리금과 보증금, 임대료를 두세 배 올려버렸어요. ‘돈 없으면 들어오지 마라’니까 도리가 없었죠. 월세 100만 원이 넘는 건 제게 무리였어요.
8호 현재 월세가 50만 원이에요. 무조건 싼 곳만 찾았어요. 그러다 보니 상권 조사를 제대로 못 했죠. 주변에 카페가 무려 7~8개나 있었어요. 그래도 월세가 싸니까 1년은 버텼죠.
난 왜 ‘헬 게이트’를 열었을까
카페에 ‘로망’을 가진 이가 많다. 창업교육을 받고 부동산을 통하면 카페 주인이 되는 것은 일사천리다. 최근 카페 창업의 현실이다. 기쁨도 잠시, 손님이 없거나 손에 쥐는 돈은 100만 원 미만인 카페가 전체 자영업자의 52%에 이르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왜 굳이 카페를 선택한 것인지 ‘매우’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야 했다.
1호 전에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방황하던 때인데, 결혼을 앞두고 집에서 할 일을 찾으라고 하더라고요. 익숙한 PC방이나 노래방 (매물을) 찾았어요. 그러다 점포 자리를 봤는데, 카페 하면 잘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으로 카페를 하게 된 거예요(웃음). 취업에 대한 울분도 있었고, 제가 할 수 있는 조사는 다 했어요. 처음에는 아이스크림을 팔았죠.
2호 노래를 했었어요.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바리스타가 ‘있어’보였어요(웃음). 돈도 많이 벌 것 같더라고요. 정작 커피에 대해 잘 모르는 친구들이 카페를 금방 열더라고요. 허탈함과 한편으론 카페를 차리면 어떻게든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뭐라도 해야겠다고… 저도 그랬어요.
4호 2010년에 그냥 차렸어요. ‘이 자리 괜찮네! ’이러면서요(웃음). 개인 일과 병행할 수 있는 일로 카페를 선택한 것이죠. 그런데 로스팅과 배달도 해야 하니까 같이하기가 어렵더라고요.
5호 여행에서 맛본 커피 때문에 카페를 즐겨 찾게 됐고 자연스레 커피 공부도 하게 된 거예요.
6호 솔직히 떼돈을 벌 줄 알았어요. 벌고 싶었고요. (웃음) 전공과 실제 일이 맞지 않더군요. 가진 것도, 할 것도 없어서 고민만 하고 있었죠. 친구가 커피를 배워보라고 해서 얼결에 하게 됐어요. (바리스타) 자격증 공부하고요. 2~3년 정도 일하다가 학원에서 강사도 하고요. 사장이 되면 자리를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7호 유학을 가려고 학비를 마련하려고 카페에 취직해서 홀 서빙을 했죠. 바리스타가 자꾸 커피를 배우라고 해서 배웠죠. 일을 빨리 배웠고, 많이 했어요. 창업 컨설팅도 했죠. 카페를 하면 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어요. 그래도 ‘망할 바에야 빨리 벌고 빨리 망하자’ 했던 거죠.
8호 결혼 생활과 병행하기에 적절한 게 카페라고 생각해서 뛰어들었던 것이죠.
3호 당시에 재테크니 투잡이니 난리였어요. 동업으로 주말 창업을 한 셈인데, 외식업 쪽 일을 하다가 커피로 넘어왔습니다. 처음 3년은 회사 일과 병행을 했는데, 내심 기대를 했어요. 투잡이니까 적자는 안 날 것 아녜요? 정작 뚜껑을 열자 마이너스는 없었어요, 수입도 없었죠. 그때 만약에 적자가 났다면? 커피와 멀어졌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웃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찌질함’
7호 대부분은 조직 생활을 못 견디는 사람이 많더군요. 통상 잘 아끼지 않는 분이 많고요(웃음). 셈에 밝지 않은 분이 많으시더라고요. 주변의 카페 사장님들을 봐도 그렇더라고요.
8호 저도 셈이 무척이나 밝지 못한 건 맞아요(웃음).
6호 오히려 더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아끼니까 (장사가) 안 되더라고요. 원두 팩에 밸브를 달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부터 차라리 느슨하게 가요. 이런 건 있어요. 쓰레기 비닐은 꾹꾹 눌러 담죠(웃음). 그거 말고는 자유롭게 해요.
3호 예전에는 ‘커피를 한다’는 소릴 제법 들었는데요. 지금은 카페 살림을 도맡고 있어요. 수익구조를 계산하고, 회의하고요.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요. 다 같이 살려면 시간 줄여서 가자고 하고요. 수돗물 잠그고 수압 줄이고요. LED로 전구 바꾸고요. 다 줄입니다.
4호 전기세는 한 달에 24만 원 정도. 혼자라 갈아 끼우기가 만만치 않아서 그렇죠. 문 열어놓고 오픈할 수 있는 날에 가장 전기세 절약이 가능할 수 있어요. 14원대로 뚝 떨어지죠.
5호 온수기 떼버리고 설거지는 찬물로 해요. 작년 겨울은 온풍기 없이 보냈고요. 전기 코드는 다 뽑아요. 손님들 충전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콘센트를) 막아버렸어요. 이렇게 해도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을 메꾸지 못할 때는 자괴감이 들어요. 감당이 안 돼서 과외나 파출부 알바를 할 때도 있어요.
2호 굳이 뭘 아끼지 않아도 드는 마음이 있어요. 처음에는 저도 아는 사람 오면 서비스 팍팍 주고 그랬죠. 내심 지인들이 더 자주 왔으면 하는 거 있잖아요. 또 직원들을 데리고 와서 많이 사 먹었으면 하고 바라는 거요. 그런 마음? 굉장히 찌질 하게 느끼죠. 이럴 때, 저 스스로요.
이 지점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맞장구를 쳤다. 자신의 카페가 ‘돈 잡아먹는 하마’나 ‘애물단지’로 여겨지기까지 걸린 시간을 확인해봤다. 6개월이 세 명으로 가장 많았고, 1, 3개월이 각각 2명이었다. 자영업자 1호는 7년째에 이르러서야 고민이 되더라고 말했다. 아끼는 단계도 이미 지나갔다고 그는 토로했다.
1호 처음에는 저도 앞의 방법대로 다 아껴봤어요. ‘저도 돈을 내고 사 마시는’ 모습을 보여줬죠. 지금은 그 단계를 넘어서서 ‘자율적으로’ 돌아가죠. 돈을 많이 벌면 비싼 밥을 사 먹고, 조금 벌면 굶기도 해요. 여유로움에서 창의력이 생긴다고 생각해서 ‘최대한’ 많이 쓰려고 하죠(웃음).
죽어라 일해도 어려워지는
비교적 안정적인 사업을 하고 있는 3호의 속내부터 들어보기로 했다. 권리금을 포함해 얽힌 게 많아서인지, 아니면 버텨나가면 ‘그 무엇’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인지가 궁금했다.
3호 나이가 있어서 새롭게 뭘 하기가 어렵죠. 해오던 가게를 잘 유지하고 궤도에 올려놓는 것은 앞선 선배들의 매출 규모를 쫓아가기도 하고요. 내 사업을 하고 싶어서 좋은 기업을 만들고 싶었어요. 직원 복지나 대우도 잘 해주고 싶은데, 그게 못 미쳐요. 사실 작은 회사 연봉이 2천~3천만 원 남짓 되잖아요. 시급 6천~7천 원을 받는 제 카페 직원들도 그들에 비해 일 잘한단 말예요. 그만큼 직원들이 받질 못하는 게 속상한 거예요. 저렇게 대우를 해주고 싶다는 목표가 있어서 포기를 못 해서 가죠.
7호 7년 동안 버틴 이유는 동업 관계가 있어서 계속했죠. 가게 한 곳을 더 내서 확장하기가 겁이 나죠. 7년 동안 해서 ‘이 지경’인데 말이죠. 바리스타가 연차가 올라갈수록 근무 시간에 비해 대우는 낮아져요. 제가 15년 전에 받던 월급과 지금 주는 월급이 같아요. 제 인건비도 같고요. 15년 동안 월급 받던 만큼도 못 가져갈 때도 있어요. 과연 지속 가능한 직업인지 자괴감이 드는 거예요. 제 직원에게 제일 미안해요. 과연 선배로서 이 직업의 미래에 어떤 비전을 보여주고 있는지 말이죠.
4호 매출은 상승하고 있죠. 전체 매출구조는 계단식으로 올라가더라고요. 좀 더 일하기 좋은 가게, 내 건물을 사는 것에 대한 꿈을 꾸죠.
3U 1호 님은 ‘탈바꿈을 위한 발버둥’ 중인 것 같아요.
1호 자영업자들은 절대로 돈을 못 버는 구조에요. 포기했어요(웃음). 임금 문제도 해결이 요원하죠. 많이 받아봤자, 50만 원 더 받을까요? 바리스타 대회 우승자가 갈 수 있는 최대의 연봉은 3천~4천만 원 정도. 그것도 카페가 아니라 빵집이죠.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같아요. 간이 사업자로 개업을 했다가 빨리 폐업하는 방법이요. 구조적인 문제로 해결이 안 되면 아예 이 구조를 벗어나야 합니다. 지금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어요. 각종 실험을 하면서 우리만의 문화를 만들고 있는 거예요. 생두 수입부터 판매까지 전 과정이 우리 내부에서 이뤄지도록 하자는 겁니다.
3U 외연 확장을 위한 건가요?
1호 그것도 자본력이 있을 때의 얘기이고요. 예를 들어 1~2달러의 생두 체리가 30~40달러의 커피로 뛰는 거죠. A부터 Z까지 전 과정을 우리가 처리하면 그 부가가치는 우리의 몫이 됩니다. 외부 시장과 상관없이 우리는 잘살 수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구조를 뛰어넘는다는 겁니다.
6호 카페를 마련해준 게 아버지예요. 관두면 알몸으로 쫓겨나요(웃음).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려고요. 갈 길이 너무 멀어요. 현실 안주와 극복 방법 고민 중에 전 우선은 찾아보자는 생각을 해요.
지속 가능한 자영업을 위한 발버둥
경기불황과 대기업의 물량공세와 마케팅과 같은 ‘파도’에 대응하기 위해 골목카페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좋은 커피는 인정받는다’는 낙관적이고 피상적인 접근은 사실상 대응할 의사가 없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지금 당장 ‘매출이 늘었다’며 의기양양할 필요도 없다. 업계에서의 당신의 규모는 매우 정확히 자영업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엄혹한 시장논리와 자본주의 경쟁은 언제까지 당신에게 승리의 열매만을 선사하리라고 보는가. 대화에 참여한 이들 모두 절박한 생존에의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지속 가능한 카페는 과연 가능할까.
7호 손기술 하나로 연명하는 영세한 자영업자로 살면서 제일 견디기 힘든 것은 장사꾼 취급을 받는 것입니다. 이른바 ‘물장사를 해서 돈을 쉽게 번다.’고 볼 때, 견디기가 어려워요. 저희는 저가 커피를 판매합니다. 1천400원의 저가 커피가 제 생계에 도움이 많이 됩니다. 권리금 때문에 안 할 수가 없는 거예요.
15년 넘게 해왔고 앞으로도 이 일로 먹고 살아야 하는데, 다른 일을 할 자신도 없어요. 감가상각이 너무 커서 가게를 팔지 않으면 돈을 벌 수가 없어요. 샵들은 정말 돈을 벌기 어렵기 때문에 서로 경쟁을 하죠. 권리금만 불리면 되니까, 수시로 ‘치고 빠지는’ 사람들과 경쟁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결국, 커피의 질과 마진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버텨내느냐의 싸움이에요. 상대는 계속 바뀌는 토너먼트 싸움에서 말이죠.
8호 세금 낼 때 제일 어렵더군요. 매출은 뻔한데, 생각지도 못한 세금 항목은 매달 너무 많은 거예요. ‘나라를 위해 장사하나’란 푸념이 나오죠. 제가 가져가는 것보다 세금이 더 많을 때 허탈해요.
2호 당연히 커피는 싸야 한다는 인식이 머리에 박혀있는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제 매장의 상황이 어렵다는 건 ‘매력이 없다’는 얘기이기도 해요.
3호 수년 동안 오해했던 게 있어요. 좋은 커피를 만들고 인심 좋게 사람들을 대하면 카페에 많은 손님들이 올 거라는 아주 ‘어리석은’ 생각을 했었죠. 요즘은 커피 하는 사람으로서 괜찮은 장사꾼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손님들이 알아서 온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고, 우리 매장을 알리기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죠. 카페를 알릴 수 있는 적절한 마케팅 방법을 찾는 건, 정말 어렵지만 또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발로 뛰는 마케팅 없이는 손님을 불러오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어요.
4호 아르바이트생이 만든 것과 전문가의 손길이 담긴 음료는 다르죠. 저는 진짜 최선을 다해요. 드립 커피가 많이 나가죠. 고객층과 시간에 따른 공략이 필요한 것 같아요. 기억에 남을 만한 커피를 만드는 것도 필요해요.
3호 활발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마케팅도 중요합니다. 꾸준한 바이럴 마케팅. 지속적인 활동은 브랜드를 만들어내는데, 핵심이니까요.
5호 노력을 하지 않는 사장은 못 봤어요. 우후죽순 만들어지는 카페에서 나눠지는 파이의 크기는 점점 줄어드는 거예요. 개수의 제한이라든가, 매출 수수료에 대한 카드수수료의 차등 적용 등 정부 차원의 그러한 소상공인생존권 보장 방법도 필요한 것 같아요.
6호 사실 커피 맛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이 없잖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맛있어서 다시 오는 사람은 있다고 봐요. 학생들이 카페에 공부를 하러 와요. 그렇지만 긴 시간을 카페에서 보내지만, 그에 대한 지불은 잘 하지 않으려고 하죠.
오후가 되면 조도를 낮추고 음악 소리를 크게 하고(웃음) 테이블을 낮게 만든다든가. 카페가 많으니까, 조금만 불편하면 가죠. 학생이 6~7시간 동안 테이블을 어지럽히고 중간에 식사까지 하고 와요. ‘30분 이상 자리를 비울 시 분실물로 취급’이라는 구절을 붙여놓으려고요. 참 어려운 부분이에요.
서로 사는 길
1호 많은 부분이 경쟁 때문인 것 같아요. 가격 및 메뉴 경쟁이 힘들게 하는 것이죠. 경쟁에서 탈출하려면 연대하거나 경쟁하지 않는 구조를 고안해야 합니다. 고객을 서로 뺏는 시스템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인데요.
예를 들면 제 매장 근처에 다른 가게가 들어서죠. 먹고 살려고 그들도 온 거예요. 아니나 다를까 제 매장보다 싸거나, 다른 메뉴를 한, 두 개 넣어서 오죠. 저는 3~4개월 그냥 지켜봐요. 경쟁하지 않아요. 가만히 있는 거예요. 그렇다고 망하게끔 몰고 가지도 않죠. 서로 적당히 살아가도록 그냥 보는 거예요.
5호 상대도 과연 이러한 상생에의 의지? 연대 등을 이해할까요?
1호 도태되는 곳은 어쩔 수가 없지만, 적당히 다 같이 생존은 하자는 거예요. 승자독식이 위험한 것이고요.
7호 수건 돌리기처럼 ‘물린다’고 하잖아요. 수익은 나지 않고 권리금만 오를 대로 오른 매장에 오는 사람은 도산하게 됩니다. 또 퇴직금을 전부 걸었거나 무리하게 빚을 내서 가게를 차린 벼랑 끝의 사람들이 ‘독박’을 쓰게 됩니다. 커피 산업 전반에서 볼 때 매우 소모적이죠. 여러 언론보도로 자영업의 현실에 대해 사람들이 점차 알아가면서 한탕 ‘땡겨가는’ 일들이 줄긴 했어요. 서로의 생계에 칼을 겨누는 일이 많이 없어지는 거예요.
2호 작은 배려, 밀착한 스킨십이 사실 대수롭지 않은데도, 고마워하더라고요.
3U 연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상대와의 연대, 상생을 하자는 거죠?
1호 그러한 사람들끼리 뭉쳐서 서로 경쟁하지 않는 문화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6호 커피의 생활화는 저가 커피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러다 보니 더 맛있는 커피를 원하게 된 게 아닐까 싶어요. 정당한 값을 지불하고 적합한 맛을 즐기는 분위기요. 저는 3천 원에서 3천800원으로 인상했어요. 대신 최고등급의 원두를 쓰죠. 그게 먹혀 들여가고 있어요. 요즘은 ‘잘 마시고 간다’는 인사를 하더라고요. 고객을 위하지만, 저도 위하는(웃음).
8호 제 카페보다 싼 카페로 손님들이 몰리죠. 그러니까 대화할 시간이 없는 거예요. 저희는 손님과 별의별 이야기를 다 해요. 집안 이야기까지 다 알 정도로요.
3U 감정노동의 영역이기도 한데요.
8호 힘들죠. 쉬고 싶은데, 혼자 오셔서 몇 시간을 이야기하는 손님과의 대화는 힘들죠. 대화하는 카페는 처음 봤다는 고객이 많아요. 비용적인 부분을 대체할 수 없으니까,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죠. 목이 쉴 때도 있어요. 충성 고객이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경쟁과 연대는 현실과 가치의 영역이다. 현실적으로 옆집 카페와 앞집의 치킨 가게와의 연대가 가능하냐는 힐난. 이에 대한 변명 혹은 핑계를 늘어놓고 싶지는 않다. 다만, 각자도생, 승자독식, 을들의 지난한 경쟁이 무언가 잘못되었음은 어렴풋이 누구가 느끼고 있으리라. 정부가 수수방관하는 사이, 그러나 연대라는 유의미한 움직임도 새로운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겠다는 낙관을 끝내 내려놓고 싶지는 않다. 연대는 상생의 다른 말이므로.
원문: 누블롱 매거진 / 글: 김양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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