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도 아마추어 사진사분들이 빠지기 쉬운 여러가지 함정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장비의 함정, 후보정의 함정, 프로 흉내내기의 함정…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함정이 바로 피사체 지상주의입니다.
제가 말하는 피사체 지상주의라는건 이런 겁니다. 예쁘고 멋있는 모델을 찍으면 사진이 평소에 찍던 것보다 괜시리 더 예쁘고 잘 나온 것처럼 보입니다. 좀 자기 눈에 아름답지 않은 모델을 찍으면 사진이 잘 안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이때 자기도 모르게 모델 탓을 하게 됩니다. 게다가 다른 분이 찍은 훨씬 멋있는 모델 사진을 보면 당연히 이런 생각을 하게 되기 쉽습니다.
“모델이 구려서 내 사진이 이모양이다!”
자신의 형편없는 내공, 모델 각자의 개성을 집어낼 능력이 없는 탓은 은근슬쩍 넘어가고요.
그래서 어떻게 되느냐? 사진의 완성도가 모델의 외모로 결정된다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더 예쁘고 잘생긴 모델, 키 크고 밸런스 좋은 몸매의 모델을 찾아다니게 됩니다. 사진이 맘에 들게 나오면 “그래 이거야!” 하고, 사진이 맘에 안들면 “아 모델이 별로라 사진이 영…”
이러한 피사체 지상주의라는게 당연히 인물에만 국한되는게 아니죠. 일상의 보통사진 찍어도 전혀 특출나보이지 않는데 비해 전쟁터에서 시체들이 굴러다니는 사진, 교통사고 나서 화재가 나고 피범벅이 된 피해자의 사진, 제 3국에서 헐벗고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 아이들의 사진은 당연히 더 임팩트 있게 다가옵니다. 실제로 이런거에 중독되면 이런거만 찍으러 다니는 분들도 생깁니다.
풍경은 또 어떤가요. 집앞 산책길의 풍경이나 뒷산의 풍경따위 밋밋해보이기만 하고 남들의 멋진 풍경사진과 비교하면 초라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보니 다대포? 경포대? 이런데 찾아다니기 시작해서 결국엔 핀란드의 오로라라던가, 중앙 아메리카의 블루홀이라던가.. 최소한 그랜드캐년이나 엘로우스톤 국립공원정도는 가서 찍어와야 사진이 남달라보입니다. 보통의 풍경을 자기만의 시선으로 잡아낼 내공이 없다보니, 그런 내공은 키울 생각 자체가 없다보니 더 멋진 풍경이 더 멋진 사진을 만들어준다는 함정에 빠져버리는 겁니다.
동식물이나 곤충사진은 더하죠. 참새? 오리? 이런걸로는 도저히 남에게 자랑 못하죠. 최소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팔색조라던가, 검은목 두루미라던가.. 장수하늘소나 비단벌레쯤은 되어야 사진이 잘나왔다고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사진의 특별함이 오로지 피사체의 특별함으로서 결정된다는 함정에 제대로 빠지기 쉽죠. 내셔널지오그래피 사진전이 특히 이런 대자연 사진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치명타입니다.
사진의 거의 모든 장르에 있어, 이러한 피사체 지상주의, 즉 사진 소재 지상주의는 아마추어는 물론이고 때로는 프로들조차도 빠지고 마는 커다란 함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중간에 사진을 그만두게 하는 가장 큰 원인중의 하나가 바로 이 피사체 지상주의이기도 합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아마추어 사진사로서 찍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모델을 찍은 다음엔 누구를 찍을 수 있을까요. 이제와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찍어봤자 눈에나 차겠습니까? 그렇다고 무슨 재주로 전국구, 월드스타 급 모델을 데려다 찍겠어요? 그랜드캐년의 일출이나 노르웨이 오두막과 함께 담긴 오로라정도까지 찍어본 사람이 집 뒷산 노을이나 볼품없는 절간 찍으며 만족할 수 있을까요? 보호조류나 독수리 찍으면서 “아 나는 새 사진 진짜 너무 좋아” 하며 자랑하던 사람이 전선에 앉아 있는 참새나 까치를 찍으면서 이전보다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요?
피사체 지상주의에는 결국 “끝”이 있습니다. 더이상 올라갈 수 없는, 더이상 뭔가를 해볼 수 없는 끝이 존재해요. 지구에 있는 풍경 맘에 안든다고 우주로 뛰쳐나갈 수 없잖아요. 일반 모델로는 성에 안찬다고 김태희같은 전국구급, 미란다 커같은 세계구급 모델 데려다 찍을 수 있을까요? 천연기념물들을 쫓아다니면서 다 찍고 난 다음엔? 쥬라기공원 차려 멸종생물 되살려 찍을건가요? 아마추어 사진사가 자기가 찾을 수 있는 극한의 피사체를 찍어버리고 나면 대번에 사진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근본적인 문제로서, “더 나은 피사체”를 찍음으로써 자기 사진실력도 높아졌다고 착각을 해온 이들에게 있어 더이상의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겁니다. 솔직하게 말해본다면, 사진에 진득하게 달라붙어 보지 않은 채로 시작하는 피사체 지상주의라는건 자기가 보기에도 사진 실력이 늘지는 않는데, 늘었다는 느낌이 설핏 들면 자기만족으로 끝내고 싶은 분들에게 딱 안성맞춤인 함정을 향해 가는 거예요.
사진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재, 피사체의 질을 높임으로서 사진이 늘고 있다고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겁니다. 이 함정에 빠져 보지 않으신 분은 아주 드물겁니다. 그만큼 이 함정은 발을 디디기 쉬워요. 다만 여기서 빠져나오는 분이 있고 그렇지 못한 분이 있을 뿐이라고 봅니다.
진짜 사진의 고수는, 이 함정에서 빠져나온 사람은 다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서 아무나 데려다가 놔도 멋진 사진 잘만 찍어내는게 이런 분들입니다. 그냥 예쁜 얼굴 예쁘게, 키가 더 커 보이고 몸매가 강조되게 찍는 데 급급하지 않고, “그날 그 카페엔 슬픔에 젖어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던 한 소녀가 있었다”같은 일상속에서 보이는 슬픔이나 외로움이라는 주제를 소녀라는 피사체를 사용해 효과적으로 연출해내는게 이런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의 사진에 끝이 있을까요? 당연히 끝이 없습니다. 사진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가 한이 없고, 이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소재 또한 무궁무진하기 때문입니다. 피사체의, 소재의 “미”만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사진을 찍는거랑은 달리 한계가 없어요.
풍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예전에 사진 처음 시작할 무렵 한 사진 선배가 해주신 이야기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자기가 살면서 맨날 보는 동네 사진도 제대로 못 찍는 사람이 스위스간다고 거기 사는 사람보다 잘 찍을 수 있을거 같냐? 니가 사는 동네 사진을 그 누구보다 잘 찍게 된다면 그땐 넌 어디를 가도 최고의 풍경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될거다”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데 5년이 좀 넘게 걸렸던거같아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피사체나 장비를 더 특별하고 더 비싼 걸로 바꿈으로써 사진을 더 나아 보이게 하는 건 솔직히 쉽습니다. 그렇기에 실은 다른 사람도 다 하는 흔한 노력이죠. 오히려 사진을 금방 접고 중고나라에 매물 올리게 되는 지름길입니다. 우선시해야 하는 건 나만의 주제, 나만의 테마, 나만의 시선, 나만의 관점, 나만의 개성…
어렵고 힘들고 오래 걸리더라도 도망치지 말고 꾸준하게 쭈욱 사진생활 하기 위해서는 피사체 지상주의라는 최대의 함정을 경계하시는게 어떨까 싶어 또 긴 글 적어봅니다.
원문: 마루토스의 사진과 행복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