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정이라는 단어 하나에도 참 여러 의미가 들어간다고 생각하는데요. 개중 목적 부분을 중점으로 놓고 생각해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후보정”이라는 것은 크게 다음의 6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고 봅니다.
- 망친 사진을 최대한 살려내는 후보정과 그에 관련된 테크닉
- 사진을 흑백/모노톤으로 변환하는 후보정과 그에 관련된 지식
- 다수의 사진을 최단시간 대비 최대급 퀄리티로 대충 다듬는 후보정과 그에 관련된 내공
- 사진을 매개체로 ‘심상’ ‘상상 속 이미지’를 실제 구현하는 후보정과 그에 관련된 스킬
- 아주 약간 부족하거나 충분히 잘 찍힌 한 장의 사진을 잘 다듬어 나름 최고의 한 장으로 만들어내는 후보정과 인화에 관한 테크닉
- 불특정 다수에게 가장 어필하기 쉬운, 그리고 그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필살기 보정과 이를 쉽게 해주는 필살기
이 중에서 일단 4번과 5번은 이야기의 급 자체가 전혀 별개인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될 것이므로 일단 젖혀두고, 쉽고 빠른 이야기의 진행을 위해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해 봅시다.
1. 망친 사진을 살리는 후보정
망친 사진을 최대한 살려내는 후보정은 필연적으로 RAW를 알고 이해한 후 비로소 시작할 수 있는 면이 큽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일단 망친 사진은 망친 사진인데 무엇 때문에 망친 사진인지 파악할 냉정한 눈이 필요하죠. 노출, 구도, 흔들림, 노이즈, 화밸, 채도, 콘트라스트 등 망친 사진에도 여러 요인이 있는 법입니다.
그중 어느 요인을 어떻게 바로잡음으로써 어디까지 살릴 수 있는지 경험에서 비롯된 직관으로 파악 가능해야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막말로 뭘 망쳤는지 모르는데 뭘 바로잡겠어요. 많은 추종자를 둔 브레송은 일찍이 이런 글을 적은 적이 있습니다.
“약점투성이의 구성을 지닌 사진이 암실의 확대기 아래에서 재구성되어 구제되는 경우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여기서 암실을 현대에 맞게 포토샵이나 라이트룸으로 치환해보면 애초에 망한 사진이 보정으로 작품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이 위대한 선배는 우리에게 설파하는 겁니다.
다만 우리는 아마추어고, 주로 가족사진을 찍는 입장이므로 잘못 찍었으나 아이의 미소가 어떻게든 좀 잘 보이게 해서 그럭저럭 봐줄 만한 사진으로 탈바꿈시키고자 하는 것인 거죠. 그 이상의 욕심은 일단 버리세요. 물론 이걸 가능케 하는 놀라운 고수들도 없지 않습니다만 오히려 그게 극히 예외죠.
이 과정에서 필요한 테크닉과 스킬은 일단 거의 RAW 파일을 어떻게 주물럭거리느냐가 관건이 됩니다. 노출, 화밸, 컨트, 채도, 블랙, 암부, 명부… RAW 파일이기에 가능한 넓은 관용도를 최대로 살리는 한편 살릴 수 없다 판단되는 것이 있다면 과감히 포기하고 땜빵질한 다음 다른 것에 집중하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흑백이라든가, 흑백이라든가, 흑백이라든가 말이죠. (…)
예외적으로 흔들린 사진이라든가 지나친 노이즈의 처리 등은 RAW 레벨이 아닌 포토샵 본 작업 화면 영역에서 그에 맞는 보정법이나 필터, 플러그인 등을 사용해 행할 수 있습니다. 아주 오래된 흑백사진의 복원 작업 또한 이 영역에 속한다 할 수 있죠.
따라서 이런 경우가 많으신 분들이라면 RAW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RAW파일 다루는 툴을 다용하면 망쳤다고 생각했던 사진의 거의 전부를 어지간하면 다 살려낼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툴에서 이것도 시도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하며 직접 경험해야 여러분의 재산이 되는 겁니다. 이 부분은 두 번째 항목으로 넘어가 보죠.
2. 흑백/모노톤 보정
사진을 흑백/모노톤으로 변환하는 것 또한 보정에서는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이 영역만 따로 떼어내어 별도로 분류할 정도예요. 제가 좀 지나치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본래 흑백필름이 많이 쓰이던 시절에 흑백필름이 칭송받던 진정한 이유가 그 넓은 관용도에 있었음을 되짚어본다면, 현재의 겨우 256단계에 불과한 흑백 톤의 한계는 창작가들을 고통에 몸부림치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 영역에 그만큼의 중요도를 부여하고, ‘어떻게 이 한계를 극복해 아날로그 시절의 반의반만큼이라도 자유도를 획득할까’라는 질문에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이 두 번째 항목은 디지털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 주를 이루며 디지털, 다시 말해 비트맵에 대한 거의 완전한 이해 없이는 과거의 눈부신 흑백/모노톤의 아우라를 지금 시대에 구현해내기가 극도로 어렵습니다.
오히려 흑백/모노톤이야말로 16bit나 32bit 같은 정보량과의 싸움입니다. RGB라는 색이 BW라는 단색 톤으로 어떻게 변화하는가 하는 방정식을 경험적으로라도 이해하지 못하면 마음속에 그려둔 자기가 원하는 바로 그 흑백사진은 여러분의 디스플레이에 절대 나타나지 않습니다. 막말로 256과의 전쟁, DR과 계조의 한계 극복 등이 이 영역에서는 너무나 중요하니까요.
모름지기 흑백에 진정으로 도전하고 싶다면 잠깐 예술적인 감성을 접어두고 필요 최소한의 공학지식을 쌓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부분은 그나마 전에 블로그에 포스팅하며 가볍게라도 다룬 바가 있으니 역시나 여기서 끊고… 다만 여담으로 이거 하나는 좀 적어보고 싶어요.
얼마 전 점심시간에 들어갔던 커피 가게에서 옆자리의 두 노신사분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한 분이 다른 한 분에게 사진에 대한 온갖 이야기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계셨고 다른 한 분은 주로 듣는 쪽이었는데, 이야기하시는 분은 브레송을 예로 들며 흑백사진을 미화하는 데 여념이 없으셨어요.
쓴웃음을 지으며 커피 가게를 나오는 제 뇌리 한편에서 브레송이 적은 글의 한 토막이 저절로 떠오르더군요.
“우리는 아직 컬러사진의 초창기에 있다. 컬러사진 분야에서 진정으로 창조 활동을 하려면 색채를 변화시키고 조절할 수 있어야만 하며, 또 그렇게 함으로써 인상파 화가들이 규범화시켰고, 사진작가들도 피할 수 없는 법칙들의 테두리 내에서 표현의 자유를 성취해야만 한다. “
즉 브레송이 흑백을 고집한 건 흑백이어야만 해서가 아니라 그때 당시 컬러필름의 관용도와 색채에 대한 지배력이 별로였기에 할 수 없이 계속 흑백을 썼다는 소리입니다. 그는 지금처럼 포토샵으로 색채를 마음대로 변화시키고 조절할 수 있는 세상을 바랐으나 그 세상이 오기 전에 떠났을 뿐인 거죠.
저 짧은 문장에서 그가 컬러사진에서의 색채변화, 조절을 얼마나 바랐는지 저절로 묻어나오건만 이제 그가 원하던 것이 현실화된 세상에 살면서 어찌 그를 핑계로 삼아 흑백사진만을 찬양하는 것일까요. ‘브레송의 이름으로!’ 하며 필름만을 고집하는 이분들은 과연 그가 직접 쓴 글들을 제대로 읽은 적은 있는 걸까요?
흑백은 따로 떼어놓고 별도로 쳐줘야 할 만큼 가치 있고 중요한 사진의 한 분야입니다. 다만 필요 이상으로 흑백을 미화하기 위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선구자의 이름을 함부로 팔지는 말아야죠.
“저 위대한 사진사가 흑백으로 찍었으니 나도 흑백ㅋ”
이러면 안 된다는 겁니다. 자기 스스로가 흑백이라는 수단을 사용해 ‘사진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기 위해’라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흑백을 선택해야지, 잘난 사람들이 흑백 했으니 우리 모두 흑백 하자! 이건 좀 아니죠.
좀 길어졌네요. 여튼 결론은 흑백/모노톤에 뚝심 없이는, 그리고 현대 디지털 베이스 기반의 포토그래피에서 흑백은 공학적 기본 이해 없이는 도전이 참 어려운 장르 중의 하나라는 말이 하고 싶었습니다.
3. 다수의 이미지를 빠른 시간 안에 보정하는 스킬
다수의 사진을 대충 후보정하는 부분은 일단 사진을 찍을 때 애초에 실패하지 않고 어느 정도 잘 찍어야 쉬워집니다. 뭐 모든 영역의 후보정이 다 그렇긴 하지만요. 이것도 예전에 따로 쓴 글이 있으니 참고하시고… 이 부분에서 중요한 것은 기본적인 ‘나만의 기초 설정’ ‘나만의 프로세스’ 확립입니다.
사진 전체를 프리셋 내지는 그에 상응하는 기본 옵션과 설정 등을 최대한 활용하고 전체적으로 통일감이 있는, 자신감이 있는 톤으로 덧칠해 나만의 색감, 나만의 느낌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죠. 한마디로 말해 여태까지 카메라나 소프트웨어가 대신해주던 기초보정을 내가 내 스스로 내 느낌으로 하는 게 주가 됩니다.
거꾸로 말하면 내 느낌이 없다면, 내 톤이 없다면, 내 프로세스가 따로 없다면 의미가 없는 게 바로 이 다수의 사진을 대충 보정하는 스킬이라 봅니다. 물론 이게 귀찮으신 분들은 그냥 카메라가 자동보정해서 꺼내주는 jpg 파일을 원본으로 생각하고 맘 편히 사셔도 됩니다. 저는 도저히 그걸 못 참겠는 유별난 케이스고, 최소한의 기본보정조차도 제 느낌으로 하길 원해서 굳이 이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겁니다. 후보정을 안 하면 화장실 갔다 뒤 안 닦고 나온 딱 그 느낌이 들 정도예요 요즘엔…-_-;
제가 아는 어떤 분은 특히 피부색(노란색에서 황색 사이)를 기가 막히게 표현해내는 자기 세팅이 있으신데, 색감만 봐도 그분 사진인 걸 알 정도로 특색 있습니다. 카메라에서 자동으로 뽑아주는 jpg에만 연연하다간 결코 얻을 수 없는 게 바로 이런 부분이에요.
4-5. 상상속의 사진을 구현하는 법 & 최고의 사진 한 장 뽑아내기
네 번째 항목과 다섯 번째 항목은 그런데 여태까지 다룬 것과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테크닉과 스킬이 아니라 심상과 안목이라는 점이죠.
자기 마음속에 어떤 완성된 ‘이미지’를 먼저 그려내고, 이를 위해 필요한 퍼즐 조각을 셔터 눌러가며 모아서 한 장의 PSD 파일 위에 하나하나 차곡차곡 올바른 순서대로 놓고, 필요한 위치에 배열하고, 최적의 효과를 각각 적용해본 끝에, 마침내 생각하던 그것이 실제 디스플레이 화면에 구현되는 쾌감. 이를 맛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속에 그림을 그려내는 구상력, 그리고 이를 실제로 구현해낼 연출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냥 후보정 스킬, 테크닉 뭐 이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거든요.
마찬가지로 어떤 정말 잘 찍은 최고의 사진 한 장에서 아주 조금 모자라는 그 무엇을 매의 눈으로 찾아내고, 그것이 정말 부족한 부분이라고 스스로 확정할 수 있는 주관을 가져야 합니다.
어느 부분의 색이 R221, G252, B53보다는 R220, G241, B60이 더 좋겠다 같은, 그 누구도 정답이다 아니다 쉬이 결론 내기 어려운 부분을 과감히 다른 값으로 치환하거나 지우거나 더하려면 그 사람만의 확고한 안목, 자신감 등이 필요하죠. 그걸 어떤 방법으로 바꾸는가는 여기서는 완전히 저차원의 부차적 문제에 불과해요.
다수의 사람이 ‘와 아무 보정도 안 한 상태인 사진 원본도 정말 좋네요!’ 할 때, 혼자서 ‘그래도 이 부분을 바꾸는 게 좋겠다, 이 부분이 문제다’ 라고 생각하고 실행할 수 있는 건 사실 그리 쉽고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사진을 정말 많이 보고 사진을 보는 혜안, 통찰력이 없다면 시도 자체가 불가능해요.
무엇보다도 전체 6개 과정 중 오직 이 부분에서만 ‘사진의 화질을 좋게’ 하는 방법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다른 과정은 모두 사진의 화질 면에서 보면 화질을 저하하는 보정으로 분류될 수 있어요. 심지어 1번조차도요. 보기 쨍하고 선명한 것과 진정으로 화질 좋은 것은 전혀 별개입니다. 화질 좋아 ‘보이게’ 하는 보정 따로 있고 화질을 진짜로 좋게 만드는 보정 따로 있습니다. 전혀 별개예요. 애초에 극한을 바라보는 도전입니다.
뭐 많은 분은 화질 좋아 보이게 하는 눈속임 보정에 더 관심을 가지시겠지만 인화를 최종목적으로 하는 예술사진의 영역에서는 그런 눈속임은 통용되지 않거든요. 그래서 이 두 부분은 그냥 건너뛰겠습니다. 저는 아직 이걸 언급할 레벨에 한참 못 미치기도 하고 제가 추구하는 영역과도 거리가 꽤 멀기 때문에… 라고 변명해봅니다.
6. 대중에게 강하게 어필하는 보정 필살기
마지막이 바로 위 말하는 필살기죠. 찍을 때는 별거 없던 사진에 노이즈를 넣고 흑백처리를 한다든가, HDR 풍으로 보정해 본다든가, 강렬한 하이패스식 입자감을 부여한다든가, 토파즈라든가, NCE 같은 초강력 플러그인의 힘을 빌려본다든가, 한때 엄청나게 유행하다 시들어버린 콘트라스트마스킹 기법을 도입해본다든가, 뽀사시한 파스텔톤으로 만들어 준다든가…
일단 불특정다수로부터 “우와 이거 신기해요” “강렬해요” “있어 보여요”소리를 비교적 쉽게 듣는 다양한 필살기들이 존재합니다. 이런 건 뭐 실제로 필살기 같은 역할을 하니 필살기라고 부를게요. 그런데 여기서 다시 한번 위대했던 선배 브레송의 격언을 다시 생각해봅시다.
“약점투성이의 구성을 지닌 사진이 암실의 확대기 아래에서 재구성되어 구제되는 경우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잠깐의 화려함과 신기함으로써 다수의 눈길을 잠깐 끌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냥 그게 전부인 것이 또 필살기들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일반 대중은 “와 그거 보정 어떻게 해요?”하고 보정법을 궁금해 하지 그 사진 자체에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에요.
뭐 아마추어 레벨에서는 사실 그래도 나쁠 거 없습니다. 오래전 단종된 필름 느낌 내서 나쁠 것 없고 심지어 찢어지고 헐어버린 느낌으로 합성해도 자기가 좋다면 누구도 거기에 대해 뭐라 할 수는 없는 거예요. 저도 그런 걸 즐깁니다. 다만 그 한계를 알고, 지나친 의존은 결국 자기 자신의 창작의 날개를 옭아매는 쇠사슬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는 겁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진짜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무슨 ‘어린 사슴의 다리 힘줄을 곁들인 캐비어 요리’ 같은 걸 내놓는 사람이 아니에요. 우리가 매일 먹지만 탄성이 나올 만큼 기가 막히게 맛있는 김치를 만드는 사람, 평범한 콩나물국에 평범한 쌀밥인데 씹는 맛이 살아 있고 고소하기까지 하며 무르지도 않고 질지도 않은 그런 밥을 항시 해내는 사람이 진짜 요리 잘하는 사람이지 않겠습니까. 기왕이면 그런 사람을 한번 지향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하는 게 제 생각인 거고요.
원문: 마루토스의 사진과 행복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