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정의와 복수는 낯선 단어가 되었다. 정의와 복수가 사라진 곳에서 거대한 권력의 카르텔은 더욱 공고한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있다.
이 영화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열광하는 것은 정의와 복수가 여전히 유효할 수도 있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직전에 다니던 회사는 유난히 소통을 강조했다. 소통은 쌍방향이다. 그런데 그 회사의 소통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일방통행이었다. 소통 강조하는 회사치고 제대로 소통이 이루어지는 회사 별로 없다. ‘직원을 가족처럼 생각한다’고 입버릇처럼 떠드는 사주일수록 직원들을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는 법이다(가족들이 좌지우지하는 회사이거나).
회사 직원들은 당연히 퍼포먼스에만 치중했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니까. 별로 친하지도 않으면서 친한 척 어울려야 했다. 다른 것은 참을 수 있었어도 같이 있기조차 싫은 사람과 영화까지 봐야 하는 일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것은 영화, 혹은 영화 보기에 대한 모독이었다. 생각해보라. 아주 감동적인 영화가 있었는데 먼 훗날 그 영화를 그 사람과 봤다고 추억하게 된다면? 정말 끔찍할 것 같다.
우리는 왜 본 영화를 또 보러 가는가
역설적으로 재개봉한 영화가 인기를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가 정말 재미있게, 감동적으로 본 영화가 있는데 다시 개봉했다, 그 영화를 꼭 같이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러면 다시 가는 거다. 그렇다면 왜 꼭 영화관이어야 하는가. VOD로 볼 수도 있고, 어둠의 경로가 아니더라도 다운로드를 해 볼 방법도 있다. 그 영화를 반드시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이유, 그것은 ‘그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와는 분명히 다른 지점이 존재한다.
또 하나는 그 영화에 대한 존경의 표시다. 영화를 봤는데 너무 재미있으면 또 보러 가는 사람이 있다. 또 개봉했을 때는 ‘이 영화 뭐지?’ 지나쳤다가 나중에 우연히 그 영화를 접하고는 ‘이렇게 좋은 영화를 내가 왜 개봉관에서 보지 못했지?’ 후회하는 사람이 있다. 그 영화가 다시 재개봉하면 누구보다 먼저 상영관으로 달려갈 사람들이다.
<내부자들:디 오리지널>이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도 비슷한 것 같다. 볼까 말까 고민하다 놓쳤던 사람들도 많지만, 이 영화가 좋아서 다시 보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내 경우도 그렇다. 권력의 어두운 그림자를 이토록 직접 적나라하게 보여준 영화는 흔치 않았던 것 같다. 특히 최근에는. 그래서 나는 존경의 표시로 이 영화를 다시 봤다.
너무 진지하고 근엄하지 않아서 좋았다. 이런 부류의 영화들이 흔히 범하기 쉬운 실수 중에 하나가 ‘내용이 좋고 메시지가 좋으니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가자’라고 생각한다. 그냥 고발 영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영화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심지어 흥행에 실패해도 상관없다는 비장한 결기마저 느껴질 때도 있다. 당연히 사람들로부터 외면받고 흥행에도 실패한다. 그러면 안 된다. 이런 영화일수록 더 잘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영화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너무 진지하고 근엄하지 않아서 좋았던 영화 <내부자들>
<내부자들>이 좋았던 지점이기도 하다. 메시지도 좋았지만 일단 잘 만든 영화다.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나다. 조승우의 연기가 오히려 떨어져 보일 정도로 다른 배우들의 연기가 압권이었다. <내부자들:디 오리지널>은 배우들의 연기를 더욱 만끽할 수 있다.
특히 디렉터스 컷에서는 이병헌과 백윤식의 장면이 늘었다. 백윤식의 장면이 늘다 보니 정치인, 기업가, 언론인, 검찰 등 권력의 핵심축에서 언론의 추악한 면이 더 집중적으로 주목받는다. 통째로 잘려나갔던 언론사 편집국 회의 장면이 디렉터스 컷에서는 수시로 등장한다. 언론이 왜 ‘밤의 대통령’으로 불리는지 단적으로 목격할 수 있다.
우민호 감독은 당초 이 영화를 3시간 40분 분량으로 편집했다고 한다. 하고 싶은 말이 그만큼 많았던 거다. 영화관 개봉 버전은 2시간 10분으로 줄였다. 그러다가 3시간 분량의 감독판을 이번에 다시 개봉한 것이다. 개봉 당시 영화보다 무려 50분이 늘어난 것인데 이는 국내 디렉터스 컷 영화 사상 최장이다.
<내부자들>은 <미생>의 웹툰 작가 윤태호의 미완성 작품이 원작이다. 그가 이 작품을 미완성으로 남겨놓은 이유는 거대한 권력의 카르텔을 마무리 지을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재벌-정치인-언론-권력-조폭으로 이어진 보이지 않는 카르텔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추악하고 거대하며 독버섯처럼 한국 사회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원작과 달리 영화는 통쾌하게 마무리된다. 주인공 안상구(이병헌)가 습관처럼 내뱉은 대사처럼, 그것은 정의네 복수네 하는 숭고한 차원이 아닐지도 모른다. 도리어 살아남기 위한 본능에 가깝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정의와 복수는 낯선 단어가 되었다. 정의와 복수가 사라진 곳에서 거대한 권력의 카르텔은 더욱 공고한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있다. 이 영화는 그 카르텔에 대한 아주 작은 칼집내기이자 시비 걸기에 불과할 것이다. 그래도 이 영화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열광하는 것은 여전히 정의와 복수가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내부자들:디 오리지널>에서 가장 관심이 갔던 대목은 ‘조상무’의 최후다.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안상구의 손목을 자르던 조상무의 최후가 디렉터스 컷에서는 등장한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를 다시 봐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몇 해 전부터 디렉터스 컷, 혹은 재개봉 영화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아마데우스>와 <레옹>이 그랬고, 지난해 <이터널 션사인>이 그랬다. 이미 영화를 본 사람들이 또 보러 가면서 흥행을 이끌었다.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물론 재미있거나 좋은 영화라는 것이다. 또 누군가와 함께 보고 싶은 영화들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내부자들>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디렉터스 컷이나 재개봉한 영화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직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한 팀원이 언젠가 나한테 물었다. “팀장님, 우리는 왜 옆 팀처럼 같이 영화 보러도 안 가요?” 폼 잡고 근엄하게 이렇게 답했던 기억이 난다. “다른 사람과 불 꺼진 곳에서 2시간 동안 같은 일을 하는 것은 세상에 두 가지밖에 없어. 하나는 뭔지 알 거고, 다른 하나는 영화 보기. 그러니 좋아하는 사람하고 가.” 물론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영화까지 같이 보러 가야 하나 하는 생각에서 급조한 말이었지만, 전혀 근거 없는 말도 아니다.
영화는 영화 자체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보았느냐도 중요하다.
출처:책방아저씨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