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ios와 안드로이드 모두 각자 애플리케이션의 성격에 맞는 서체를 사용할 수 있다. 해외 사진 편집 앱이나 간단한 기능의 To-do 앱, 캘린더 앱 등에서는 이미 영어 서체가 커스텀되어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쓰이는 서체도 가지각색이다. Futura, Georgia, Gill sans, Trebuchet 등등… 개발과정에서 서체 커스텀을 포함하지 않으면 ios는 기본 서체(영문은 Helvetica Neue, 한글은 Apple 산돌 네오 고딕), 안드로이드는 시스템 서체(디바이스 사용자가 지정한 서체. 하드웨어 제조사에서 넣어놓은 것 이외에 사용자가 다운로드 한 것 등등 수백 수천 가지의 종류가 있다.)로 보이게 된다.
안드로이드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때 디자이너, 혹은 개발자는 서체와 관련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모바일 디바이스에서 보이는 서체는 종이에 인쇄되는 서체의 질감과는 많이 다르고 심지어 컴퓨터 모니터에 출력되는 것과도 다르다. 특히나 ‘한글’에 대해서는 이에 대한 매뉴얼도 이론도 논의되지 않은 상태다. 편집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에 어느 정도 숙련된 디자이너라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안드로이드 GUI 디자인과 개발 경험을 겪고 나니, 아래 세 가지 이유로 한글 서체 커스텀이 비효율적이라고 느꼈다.
1. 한글 타입페이스 선택의 어려움
영문 타입페이스에 비해 한글 타입페이스는 종류나 가짓수에서 그 규모가 훨씬 작다. 디자이너들이 작업의 성격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웰메이드 서체의 종류는 더더욱 적다. 브랜드 이미지, 서비스의 성격, 앱 인터페이스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고려하여 적절한 서체를 고르기에는 선택지 자체가 없는 격이다. 적은 만큼 서체의 사용권도 복잡하고 예민한 문제이다. 사용권 문제에서 자유로운 나눔 서체가 있긴 하지만, 모든 서체를 나눔글꼴로 설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현재 나오고 있는 많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들이 스타트업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상황을 생각한다면… 설령 대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선뜻 서체 커스텀을 마음먹기엔 장애물이 많다.
2.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개발상의 문제
나눔고딕을 apk에 포함시켜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한 적이 있었다. 음식점에 대한 리뷰를 스크롤 뷰 방식으로 보여주는 화면이 있었는데, 다닥다닥 행간이 붙어있는 나눔고딕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개발자분과 얘기해보니 나눔고딕 서체의 디폴트 행간이 좁게 세팅되어 있다는 것이다. 개발과정에서 조정할 수 있느냐고 여쭤봤더니 현재로써는 불가능하다는 답변이었다. 행간은 물론 자간도 조정할 수 없다고 한다(현재는 조정할 수 있는 개발 방법이 있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서체를 apk에 포함하니 오류도 잦아졌고 앱이 무거워졌다. 나눔고딕이 앱 인터페이스 디자인과 어울리고 모바일 디스플레이에서 가독성이 좋다고 판단하여 포함한 것인데, 결국, 아무런 토끼도 잡을 수 없는 결과를 낳았다.
3. 사용자 경험을 해칠 수 있다
안드로이드 시스템 서체는 락스크린, 상태바, 위젯, 홈, 푸시알림 모든 문자에 쓰인다. 디폴트 시스템 서체이든 사용자가 지정한 서체이든 한가지 서체로만 나타난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SNS나 카카오톡, 마이피플, 라인 등의 메시징 위주 애플리케이션은 대부분 시스템 서체를 사용한다. 글씨 크기나 색 이외에는 별도의 서체 커스텀이 없다는 뜻이다.
스마트폰 사용시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SNS, 메시징 앱, 심지어 락스크린, 홈, 알림에서 통일된 서체들로 정보를 읽다가 다른 서체로 표시되는 애플리케이션에 진입하면 호감일까 비호감일까? 서비스의 성격, 인터페이스 디자인 분위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은 이질감을 가져올 수 있다. 디스플레이에 표시되는 텍스트가 완벽한 크기, 자간, 행간으로 세팅되어 있더라도 호감을 갖게 하기 어려운 과제인데, 개발상의 문제로 이를 조정할 수 없다면 서체 커스텀은 아무런 목적도 달성하지 못한다.
서체는 텍스트의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둔한 사용자라도 모바일 환경에서 꾸준히 텍스트로 된 정보를 읽는 사용자라면 서체가 바뀌는 미묘한 장벽은 무의식적으로라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간편하게 쓸 수 있는 로컬 기반 메모/일정/날씨 앱이나 프로모션용 앱, 게임, 사진 수정, 카메라 앱 등등 컨셉이 뚜렷하고 매니악한 애플리케이션은 서체 커스텀이 꼭 필요한 경우도 있다. 기능이나 분위기, 컨셉에 맞는 서체를 사용하여 서비스의 아이덴티티를 강화하는 것이다. ios의 Mailbox, Lister, Evernote, VSCOcam, 대림미술관 등등 잘 만들어진 앱들에서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는 서체 커스텀들이 그 예이다.
이들은 다양한 선택지에서 차선이 아닌 최선의 서체를 선택해서 사용했을 것이고 디자이너가 자간, 행간 세팅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SNS나 메시징 서비스처럼 처음 접하는 다양한 텍스트들이 쏟아져나오는 형식도 아니다. 이러한 조건들 덕분에 서체 커스텀이 서비스를 더 빛나게 할 수 있었다.
한글이 주를 이루는 우리나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서 서체 커스텀을 고려할 때는 위와 같은 복합적인 이유로 조금 더 신중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개발이 발전하고 디스플레이가 발전하고 한글 타입페이스가 발전해서 종이 위 타이포그래피처럼 정교하고 아름다운 퍼포먼스가 가능해지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원문: 강수영님의 미디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