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밤에 할 일이 없으니까 동물 이야기나 좀 해보죠.
1. 왕실의 고양이 이야기
사실 조선은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나라였어요. 뭐 싫어한다기 보다는 ‘사람한테 도움되는 것도 없는 그거 키워서 뭐해?’ 하는 입장이었는데, 사실 동물의 노동력까지 필요로 하지는 않는 왕실에서는 가끔 냥덕이 출몰하고는 했습니다.
실록에는 희대의 막장세자 양녕대군이 금빛 고양이를 열심히 구하려는 장면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이 때 양녕대군은 무려 재상의 집에 있는 고양이를 내놓으라고 떼를 쓰는데요.
이때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는고 하니,
‘아니 고양이가 거 뭐 귀엽다 하면 걍 개처럼 선비다! 성리학자다! 우와! 하고 사람이랑 놀아주냐? 애초에 귀염성 있는 동물이 아님! 게다가 재상의 고양이를 어떻게 내놓으라고 하냐… 세자 개념 좀;;’
옛사람들도 고양이의 시크함은 잘 알고 있었던 거죠.
이에 양녕이는 ‘아니, 그냥 금빛 고양이는 수컷이 별로 없다매…? 궁금해서 그러니까 보고 돌려줄게 헤헤’ 라고 아무도 믿지 않는 구라를 칩니다. 이후에도 고양이는 민간에서 여전히 배척 받았지만, 수백년이 지난 후 왕실에는 진성 냥덕이 한 명 탄생하게 됩니다. 바로 숙종이었어요.
숙종은 어린 시절부터 계속 고양이를 키웠던 진성 냥덕후였는데, 키우던 고양이가 어느 날 죽자 슬퍼하면서 무려 장례까지 치러줍니다. 신하들이 아니 무슨 고양이 장례를 치러주냐 아오 전하 설마 냥덕인가 설마 하면서 수군대자 숙종이
‘야 내가 고양이를 사람처럼 대하는게 아니라 주인을 잘 따르니까 귀여워서 그래 귀여워서! 아오 물론 고양이가 개나 말처럼 뭐 열심히 일하지는 않는 건 인정하는데 ㅇㅇ 아 그래도 얼마나 귀엽냐 어? 겁나 귀엽거든! 지금 장례 치르고 남은 거 나중에 개 묻어 줄 때 또 쓰면 되잖아! 재활용하고 얼마나 좋음?!’
하고 냥덕 인증을 때립니다. 그 이름 모를 고양이를 잃은 후, 외로움을 이기지 못한 숙종은 후원을 거닐다가 발견한 고양이 한 마리를 다시 입양하게 되는데, 이 친구는 역사에 이름까지 남긴 그 유명한 금손(金孫)이 되겠습니다.
숙종의 금손이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각별했는고 하니, 정무를 보거나 경연 때도 무릎에 올리는 것은 물론이요, 식사 때마다 곁에 앉히고 사람들도 못 먹는 수라간 고기반찬을 손수 떠먹이는데다, 심지어는 후궁들과 해피타임을 보낼 때도 동석을 시켰다고 하는데… 왜 굳이 그래야 했는지 모르겠네 아 진짜 모르겠네…
암튼 십수년간을 숙종의 사랑을 받던 금손이는 숙종이 죽을 때까지 곁을 떠나지 않다가 숙종이 사망하자 어디론가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립니다. 인원왕후가 온 궁궐을 다 뒤져서 결국 금손이를 찾아내지만 그때부터 금손이는 먹이를 줘도 먹지를 않고 울기만 하다가 13일만에 집사의 뒤를 따라가고 맙니다. 이를 갸륵히 여긴 왕후는 금손이를 비단에 싸서 숙종의 능에 함께 묻어줍니다. 슬프지만 훈훈…
그 아들내미인 영조 역시 그 핏줄 아니랄까봐 역시 고양이를 좋아했는데요, 아버지처럼 고양이를 입양해서 키우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다만 관절이 영 안 좋은 영조에게 내의원이 한 번은 고양이탕을 처방하는데요. 영조는 ‘헐 내가 여태까지 궁 안에서 본 고양이가 몇인데 걔들을 어떻게 먹냐? 걍 내가 아프고 말지…’ 라고 대답해요.
하지만 내의원은 굴복하지 않고 몇 년 뒤 삭신이 쑤신다는 영조에게 다시 ‘고칼슘함유 고양이탕 고아드삼!’ 이라고 청을 올리고 이번에 영조는 ‘와나 예전에 고양이탕 먹으라길래 안 먹는다 했자나? 조선에 남은 거라곤 고양이뿐인데 내가 그걸 먹으면 어떡해? 그런 소리 하지마셈ㅇㅇ’ 하고 다시 튕겨요.
하지만 지치지 않는 의지의 내의원은 이후 죽기 직전 치매로 오락가락한 영조에게 다시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하는 듯한) 고양이탕을 권하고, 이번에야말로 받아들일 것 같던 영조는 ‘야 이제 좀 포기해라 좀 내가 고아먹기 시작하면 온 조선에 고양이가 씨가 마른다니까! 하면서 단호하게 거부하면서 고양이는 먹는 거 아님ㅇㅋ?’ 하고 신하들을 열심히 설득하기까지 합니다.
2. 독일 땅 멍덕후
조선 왕 이야기는 아닌데, 그냥 냥덕 이야기 했으니까 개 이야기도 해야 될 것 같아서 합니다.
독일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어릴 때 아버지한테 엄청 맞고 자라서 인간 불신이 굉장히 심했는데, 그래서인지 사람을 잘 따르는 개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어요. 툭하면 사람보다 개가 낫다는 둥, 자기가 죽으면 꼭 개들과 같이 묻어달라고 하는 등 주변에 사람을 두지 않고 개만 두고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여자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걸 매우 싫어했는데, 그에겐 안된 일이지만 프리드리히 대왕이 악바리처럼 나라를 키우고 전쟁에 나서던 시절의 유럽은 여자들이 통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어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러시아의 엘리자베타 여제, 프랑스의 마담 드 퐁파두르… 삼국지도 아니고 이런 화려한 면면들이 사사건건 프리드리히의 앞을 가로막았던 시절이죠.
뭘 해보려고 해도 늘 세 사람에게 가로막히자 울분에 찬 프리드리히 대왕이 한 복수가 무엇인가 하면, 자기가 키우던 암캐 세 마리의 이름을 각각 마리아 테레지아, 퐁파두르, 엘리자베타로 짓는 것이었으니…
손가락을 까딱하면 마리아 테레지아가 달려오고, 원반을 날리면 퐁파두르가 물어오고, 가끔 빡치게 하는 엘리자베타를 발로 차는… 뭐 그런 식으로 화풀이를 했다고 합니다. 흠 뭔가 귀여우면서도 쪼잔한 복수군요.
여담이지만 그 세 마리가 낳은 강아지들 이름은 각각 패티코트 1, 2, 3.
3. 내가 조선의 코끼리다
때는 1411년, 한창 태종이 양녕대군의 막장짓에 머리가 아파하던 시절입니다. 갑자기 일본에서 뜬금없이 ‘님들 코끼리 뿌우라고 아셈?ㅋㅋㅋ 이거 한 번 키워보셈 귀여움’ 하면서 코끼리를 한 마리 바칩니다.
뭐 이왕 준 거 되돌려 보내기도 뭣하고 뭣보다 신기하게 생겼으니 조선 왕실에선 키우기로 결정합니다. 이때는 아직 조그만했는지 하루에 콩을 다섯 두 정도 먹었군요.
그런데 1년 반이 지난 뒤, 이 코끼리가 대사건을 하나 치게 됩니다. 궁궐 안에 코끼리를 둘 자리가 딱히 없었던지라 조정에서는 삼군부에 맡겨서 연병장에서 코끼리를 키우게 하는데요. 어느 날 이우라는 하급 관리 한 명이 코끼리 구경을 갑니다.
근데 이 작자가 워낙에 배려심 없는 사람이라, 코끼리 앞에 가서
‘와 진짜 대박 못생김ㅋㅋㅋㅋㅋ 와나ㅋㅋㅋㅋ 미친ㅋㅋㅋㅋ 저따구로 생겼냐 무슨ㅋㅋㅋㅋ’
하면서 선량한 코끼리 일병을 계속 손가락질하며 침을 뱉으며 놀립니다.
여러분, 코끼리 똑똑합니다. 에버랜드에 있는 코끼리는 사람 말도 따라해요. 완전 사람 목소리랑 똑같아요. 암튼 이우의 행동에 빡친 짬 먹은 코끼리는 아오 시발 꺼져 하면서 앞발을 들어 그대로 이우를…
암튼 그렇게 졸지에 살인을 저질러 버린 코끼리. 조선 왕실은 경악합니다. 그런데 조선왕실이 참 관대한 것이 사람을 죽였으면 당연히 현대사회에서도 사형이나 무기징역이잖아요? 그런데 조정에서는 ‘야 이우 그 새끼가 얼마나 빡치게 했으면 동물이 사람을 죽이겠냐…’라는 의견이 대세였어요. 고려 때는 잘못도 없는 낙타 사십마리 그대로 굶겨 죽였으면서… 동물 권익의 놀라운 발전이네요.
이때 병조판서가
‘법을 따지자면 죽여야 되긴 하고, 그러자니 애가 불쌍하기도 하고 일본에서 바친 거기도 하고… 거참 쉽지 않네요. 생각해보니 일년에 얘가 콩을 많이 먹으니까 우리 애들 짬밥이 줄겠는데요 전하… 그냥 섬에 하나 갖다 놓고 지가 알아서 먹게 합시다.’
라고 의견을 내고, 거기에 빵 터진 태종은 ‘엌ㅋㅋㅋ 그러자ㅋㅋㅋㅋㅋ 걍 귀양이나 보내ㅋㅋㅋㅋ'(실제로 ‘왕이 웃으며’라는 표현 있음) 하면서 방생 판정을 때려버립니다.
아무리 봐도 벌이 아닌 것 같지만 아무튼 이 코끼리는 전라도의 섬에 방생됩니다. 그리고 육개월 뒤 전라도 관찰사가
‘전하 얘가 육지 동물이라 그런가 해초를 도통 안먹는데요. 그래서 지금 애가 살 빠져가지고 뼈가 보일 지경… 애가 외로움도 타는 거 같아요 사람 보면 막 눈물 흘리고 그래염ㅠㅠ’
이라는 장계를 올립니다. 태종은 ‘허… 불쌍돋네 그럼 육지에 데려와서 잘 먹여 키워 걔가 뭔 죄냐…’ (사실 어딜 봐도 죄는 있음 살인은 안 됩니다) 하고 다시 육지로 불러옵니다.
그리고 6년 뒤, 충녕대군이 갓 왕위에 올랐을 무렵, 전라도에서 다시 장계가 올라옵니다.
‘하… 전하 통촉 좀… 코끼리가요… 하는 것도 없으면서 진짜 밥을 많이 처먹네요 전하… 감당이 안 되서 전라도 고을 네 군데를 뺑뺑이 돌려가며 키우는데 이거 완전 말도 안 됨… 이 고통을 충청도랑 경상도도 겪어봐야 됩니다. 우리는 한 나라니까요^^ 연대책임^^’
그러자 세종은 ‘그래 뭐… 나 사는 경기도 안 껴있으니까…’하면서 쿨하게 승인을 때립니다.
그리고 8년 뒤, 이번에는 충청도 관찰사가 총대를 맵니다.
‘전하전하전하 이번에 얘가 또 사람 죽였는데요? 거기다가 엄청 처먹는데요? 옛날에 하루에 콩 다섯두만 먹었다길래 별거 아니네ㅋ 했더니 개뿔 하루에 쌀 두 말에 콩 한 말씩 먹는데요? 이걸 어떻게 먹여살려요? 섬에 데려다 놓죠 제발?ㅠㅠ’
이에 세종은 ‘거 불쌍한데 좀… 그럼 물 깨끗하고 풀 많고 공기 좋은데 데려다 놓고 병 안 생기게 관리 잘해줘라.’ 하고 교지를 내립니다. 이후 실록에서의 등장은 없네요. 조선에 있어본 역사가 없다보니 백성들이 신기해서 엄청 구경하러 다니고 같이 놀고 했다고 합니다. 15년 만에 전 국토의 양식을 초토화시킨 코끼리의 위엄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