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대기업에 입사했을 때 3개월까지는 왜 월급을 받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일이 정신없이 몰리기 시작했다. 되는대로 일을 빠르게 처리했지만 더 많은 일이 쌓여갔다. 뭔가 전략적으로 일을 구분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일의 성격에 맞게 처리해 보기로 했다. 당시 회사에서 내가 하는 일은 3가지로 나눠볼 수 있었다.
1. 허드렛일
월급을 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이다. 단순한 엑셀 파일 정리에서부터 영수증 정리까지. 노가다성이 짙은 작업들이다.
2. 곧 해야 할 일
어느 정도 짬이 쌓이고 회사 업무를 지켜보다 보면 뻔히 다음에는 어떤 일이 진행될지 보이기 시작한다. 이런 게 바로 ‘곧 해야 할 일’이다. 상사의 업무 스타일 , 조직문화 등에 익숙해지면 더 잘 보이기 시작한다.
3. 업무를 획기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는 창의적인 아이디어
이런 아이디어가 제대로 나와주면 본인을 빛나게 해준다. 그리고 윗사람의 총애를 받게 된다. 업무에 대한 인사이트가 충분히 쌓여있을 때 번쩍번쩍 생각이 난다.
1번 업무는 빨리 끝내면 안 된다. 1번 일은 노가다성 업무가 대부분이어서 빨리 끝내기만 한다면 일을 빨리한다는 평가는 받겠지만,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기 힘들다. 빨리 끝냈더라도 데드라인까지 최대한 미뤄야 한다. 1번 업무를 빨리 끝내고 2번이나 3번 업무에 남는 시간을 투자해 두어야 한다.
2번 업무 같은 경우는 갑작스럽게 발생한다. 팀장이 임원들하고 회의하고 나서 내일까지 자료 만들어서 본부장님에게 드려야 한다. 미리 해둔 2번 업무가 있다면 그 자리에서 지난번에 만든 자료가 있는데 그거 그냥 쓰면 될 거 같다고 말하면 된다. 팀장이나 다른 팀원들로부터 존경의 눈길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만들어 놓은 자료가 없다면 이때는 풀 스피드를 내야 한다. 이때는 일을 빨리하는 것이 일을 잘하는 것이다. 2번 업무는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고 인사이트가 조화를 이룰 때가 돼서야 미리 준비할 수 있다.
아직 2번 일에 대한 감이 없다면 3번 업무라도 잘해야 한다. 틈틈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윗사람에게 보고해야 한다. ‘기회가 될 때마다’란 1번 일이 일시적으로 바닥을 보이고 소강상태가 되었을 때를 말한다. 1번 일이 없을 때 저런 의견들을 제시하면 의견의 실효성 여부와 상관없이 “정말 일을 알아서 찾아서 하는구나”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일을 주는 대로 받아서 계획 없이 그냥 꾸역꾸역 하게 되면 일복만 넘쳐나고 일 잘한다는 평가를 받기는 힘들어진다. 일을 제대로 구분하고 전략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배분해서 업무를 처리해야 본인의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원문: 전주훈의 brun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