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이 많이 사라졌다곤 하지만, 취미가 ‘애니메이션 감상’이라면 여전히 보는 눈빛이 달라지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오해를 만드는 건 오덕후 문화에 대한 선입견(미소녀, 에로게 등)도 있겠지만 특히 중·장년층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것.”이란 편견 탓도 클 듯하다. ‘애니메이션’이란 매체가 콘텐츠의 성격과 메시지를 결정하는 건 아닌데도 말이다.
오히려 매체를 막론하고 언제나 가장 잘 나가는 건 성인물이 아니겠는가. (…) 어쨌든 그래서 준비했다. 그냥 대놓고 19금이라든가, 아니면 성인이 아니고서야 제대로 즐길 수(?) 없는 작품들인데 이런저런 이유로 유난히 성인 지향이란 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모아봤다.
1. 짱구는 못말려(크레용 신짱)
우선 가볍게 시작하자.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아동 애니계의 명작이지만, 원작은 청년 잡지에 연재되던 청년만화다. 연재 초기의 주된 개그 소재 역시 어린 신짱의 방해로 레슬링 놀이(?)를 못하게 된 젊은 부부의 애환 등으로, 상당한 성인 취향이다. 그 외에도 야한 잡지라든가 콘돔 같은 게 직접적으로 등장하기에 분명히 아동용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한동안 19금 딱지가 붙어서 발행되던 때가 있었다. 근래엔 잘 등장하지 않지만, 짱구의 상징과도 같았던 성기를 흔드는(…) 장면이나 엉덩이를 까는 춤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이들에게 보여주기엔 조금 어려운 면이 있다.
동시에 일본 사회와 관련된 풍자와 패러디도 상당했다. 이후 연재처가 바뀌면서 수위가 지속적으로 죽긴 하지만, 여전히 성적인 소재와 사회 풍자가 꾸준히 등장했다.
애니메이션은 처음부터 아동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터라 분위기가 사뭇 다르지만 그래도 원작이 원작인지라 성적인 요소가 완전히 배제된 건 아니다. 이런 저런 내용들로 인해 일본 학부모 협회가 시작부터 지금까지 끈질기게 비판하고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TV 프로그램’을 선정하면 언제나 최상위권에 위치한다.
어린 시절 ‘짱구’의 기억만 갖고 있는 독자라면, 오랜만에 한번 다시 찾아보도록 하자. 예전에 안 보이던 게(?) 보여서 더욱 흐뭇하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2. 집 보는 에비츄
인간관계가 서툰 주인님과 툭하면 초고수위의 섹드립으로 매를 버는 햄스터 에비츄의 일상을 그린 작품. 한국에서는 짤방으로 잘 알려져 있다. 햄토리와 비슷하게 생겨서 햄토리로 오해하는 사람도 꽤 많다.
주인공 에비츄가 원채 귀엽고, 그림체도 동화처럼 아기자기하다 보니 프로필 사진으로도 많이 쓰이지만, 사실 원작을 포함해 대놓고 19금인 작품이다. (…) 이 목록 중에서도 가장 19금에 속하는 작품으로, 각종 섹드립과 금지어가 쏟아지기로서는 최고 수준을 달린다.
3. 쓰리몬(미츠도모에)
세 초딩 쌍둥이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학교 개그물…인데 그 개그의 소재가 대부분 섹드립이다. (…) 분명히 별 거 아닌 대화인데, 세 쌍둥이와 얽히다 보니 착각과 오해를 거듭하여 어느새 이상한 대화처럼 되어버리는 식. 그림체가 워낙 귀엽고 아기자기하다 보니 소리를 끄고 본다면 이런(?) 류인지 알기 어렵다.
완전한 성인 대상은 아닌지라 바로 위 변태 쥐처럼 노골적인 수준은 아니지만(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에비츄가 심각한 것이다.), 그래도 국내에선 19세 이용가 판정을 받았다. 아청법 이후로 국내 정식 발매가 중단되었다고 한다.
4. 학교생활!
희대의 일상 치유 낚시물. 둥글둥글하고 밝은 그림체와 ‘학교생활’이라는 제목 때문에 평밤한 일상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저얼대! 아니다. 1화 마지막 부분에서 시작되는 반전은 알고 봐도 여전히 충격적이다. 입소문과 낚시로 인해 일본 니코동에서 역대 최단기간 200만 조회수를 돌파할 정도이니, 가히 그 파장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나만 당할 순 없지! 등장인물들이 심리적으로 파괴되어가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처절함이 무서울 정도로 잘 묘사되어 있기에 어쩌면 이쪽이야 말로 진정한 19금일 수도 있겠다.
5. 오소마츠상
마츠노 가 여섯 쌍둥이의 일상을 그린 코믹물. 1988년도에 <오소마츠군>의 2작이 나온 후 27년만에 등장한 후속작으로, 아무도 예상 못한 2015년 4분기 최고의 흥행작. 1작은 1962년도부터 연재된 만화를 원작으로 1966년 방영되었다. <육家네 6쌍둥이>라는 제목으로 2작이 국내에 방영되었었다. 굳이 전작을 언급하는 이유는 전작으로 부터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주인공 여섯 쌍둥이의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제목이 오소마츠’상’인 것도 이 때문.
전작도 온갖 다른 만화를 패러디하는 등 범상치 않은 작품이었던 건 분명하지만, 2015년의 신작은 말 그대로 약을 빨았다. 일단 여섯 쌍둥이가 무럭무럭 잘 자라서 ‘니트족’이 되었다는 설정부터가 압권인데, 하는 짓들도 가히 쓰레기짓이다. (…) 온갖 욕설에 섹드립이 난무하는 건 기본이다. <육家네 6쌍둥이>가 2016년 1월 여전히 7세 시청가로 방영되고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다른 작품을 패러디하는 전통도 수위에 맞춰 막장화되어, 결국엔 방송사 사장이 사죄하는 사태까지 낳고 말았으니, 가히 전설로 남을 듯하다.
6. 들장미 소녀 제니(레이디 죠지)
제목만 본다면 <들장미 소녀 캔디> 짝퉁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같은 작가의 작품이다. 1985년 KBS2를 통해 정식으로 방영되었기에 아재 아짐들 중에서는 은근히 본 사람이 많은 작품이기도 하다. 캔디가 순정 만화의 전설이었던 만큼 이 작품 역시 크게 다른 의미로… 전설이 되었다. 학부모 단체의 집단 보이콧으로 인해 중반부를 채 넘기지 못하고 종영되어 버린 것.
많은 경우 학부모 단체의 과잉 해석으로 이런 사건이 발생하지만, 이 작품은 눈 아래 점 찍고 나타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막장성을 자랑한다. 제니의 어린 시절은 여타 순정만화와 같은 스토리가 진행되지만, 성인이 된 이후의 모습은 <왕좌의 게임>을 떠올리게 한다. 스토리 상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고 적절하게 가려지기는 하지만 성관계는 물론이거니와 동성애, 근친, 심지어는 SM까지 등장할 정도… PD가 전편을 다 안 보고 수입했나보다.
애니는 원작에 비해서는 많은 수정이 가해졌지만, 그래도 원작의 위엄이 있는지라 절대로 아동용은 아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따라 원작을 찾아봤다가 TV에 방영되지 않았던 엄청난 전개(!)를 보며 혼란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7. 파닥파닥
제목처럼 수많은 어린이들을 파닥파닥 낚아버린 국산 극장판 애니메이션. 포스터만 봐선 <니모를 찾아서> 류의 동화 같지만 이 작품은 지극히 암울하고 현실적인 작품이다. 거기에 마찬가지로 현실적이면서도 잔인한 연출은 관람에 주의를 요할 정도까진 아니지만 확실히 모르고 보면 충격을 받을 만하다.
한국의 영화 홍보 관행을 지적할 때 자주 등장하는 작품으로, 홍보의 오도를 빼고 작품만 본다면 현대인의 실존적 고통을 묘사한 상당한 수작이다. (물론 포털 영화 평점엔 “나만 낚일 순 없지!”도 꽤 많다.) 아이들의 손을 붙잡고 가서 기겁했다가 나중에 따로 보고선 호평하는 경우도 많았다. 어쨌건 간에 결코 아동용은 아닌 셈.
보너스: 애니 보기의 정석
문학과 영화과 그 나름대로의 역사와 세계를 구축했듯, 애니메이션의 세계도 그만큼 충분히 넓고 깊다. 역사적 맥락과 문화적 탄압으로 인해 한국의 애니메이션 팬덤은 이제 막 2세대를 맞고 있을 뿐이지만, 다행히 한국인의 덕력도 세계 어느 곳에 비해서도 뒤질 수준이 아닌지라 1세대 덕후들이 나름대로 탄탄하게 길을 닦아 놓았다.
여기서 소개할 『애니 보기의 정석: 애니메이션을 보는 오덕후의 바른 자세』 역시 그런 업적 중 하나이다. 『한국판 뉴타입』의 창간 멤버로 애니메이션 DVD 사업에 진출하며 마침내 덕업일치를 이룬 1세대 덕후께서 다른 덕후들의 덕력 증진을 돕고자 90여 편이 넘는 다양한 애니메이션들의 이야기를 꽉꽉 눌러 담았다. 입문자를 위한 추천부터 상급자를 위한 명작선까지 다양한 작품을 다루고 있으니 진정한 덕후를 꿈꾼다면 꼭 한번 찾아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