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echCrunch에 실린 Dylan Eller의 글을 번역한 글입니다.
다양한 시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트리밍이나 다운로드 컨텐츠를 제작하는 아티스트들은 여전히 적은 수익을 받고 있다.
인터넷 시대에서의 음반 제작사, 광고 회사, 영화 제작사, TV 네트워크 등은 기존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 중이다.
광고는 싫어하고 무료 컨텐츠를 이용하려는 사용자의 심리는 불법 다운로드로 이어져 왔다. 엄격한 복제 방지 정책, 광고 기반 무료 스트리밍, 무제한 유료 스트리밍, 광고가 없는 스트리밍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딱히 만족할만한 결과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PPS (Pay Per Stream, 스트림당 사용료 과금)
음악 재생된 횟수에 따라 지급하는 PPS 방식은 저작권자에게 스트리밍의 대가를 지불하는 주요한 방법이다. 한 곡이 재생될 때마다, 아티스트에게 ‘x’라는 양만큼 돈이 지불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x’라는 양이 1센트도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티스트에게 스트림에 대한 보상을 불공정하게 지급한다는 이유로 Spotify는 여러 차례 고발된 바가 있다. 정산 요율 문제에 대한 공개적인 항의의 의미로, 뮤지션 Taylor Swift는 작년 말 Spotify에서 본인의 음원을 모두 제거하기도 했다. Spotify는 투명해 보이는 정산 기준을 웹사이트에 게시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 공정한 방법인 것 같다. 수치를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레이블에 소속된 아티스트 기준으로, Spotify는 스트림당 약 $0.001(미계약 아티스트는 약 $0.007)을 지급한다고 볼 수 있다.
데이터 저널리스트 David McCandless가 작성한 인포그래픽 ‘아티스트는 온라인으로 얼마나 버는가’에 의하면, 한 아티스트가 미국의 최저 임금 $1,260을 받기 위해서 Spotify 스트리밍으로 재생되어야 하는 횟수는 최소 110만 번 정도다.
이 횟수는 아주 많은 양이다. 그리고 다른 음악 서비스의 상황도 크게 낫지는 않다.
McCandless의 자료에 의하면 Google Play가 그나마 요율이 좋은 편인데, 스트림당 $0.007으로, 내 노래가 172,206번 재생되면 최저 임금을 받게 된다. 반면, YouTube는 스트림 당 약 $0.0003을 지불하고, 최저임금까지 약 420만 번의 재생이 필요하다.
Jay-Z가 창업주로 있는 TIDAL의 경우는 좀 낫다.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TIDAL은 스트림당 약 $0.026을 지불한다고 주장한다.
이 요율대로라면 최저 임금까지 약 4만8천 회의 재생이 필요하다. 아티스트가 직접 소유한 최초의 스트리밍 서비스인 데다가, 무료 요금제를 제공하지도 않기 때문에 아티스트에게 더 많이 지불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용자에게는 인기가 없다. 불행하게도, 쓰는 사용자가 없으면 아티스트에게 돌아가는 돈은 당연히 적을 수밖에 없다. 요율이 좋더라도 규모가 적은 것이다.
많은 아티스트가 다양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있고, 스트리밍 수익은 아직 주요 수익원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많은 아티스트들이 스트리밍 수익의 방식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 일각에서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불법 복제를 억제하지 않고, 오히려 부추긴다는 주장도 한다. 하락한 앨범 판매 매출(1999년~2013년 사이에 76억 달러 하락)을 메꾸기에 스트리밍 매출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궁금증이 생긴다. 왜 영화와 TV 스트리밍에서는 이런 논란이 들리지 않을까? Netflix와 Hulu에서 컨텐츠를 제거한다는 미디어 네트워크사들은 왜 보이지 않을까?
더 나은 방법: 라이센스 임대와 제휴
영화와 TV 업계에서는 스트리밍이 어렵게 여겨지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인 스트리밍 업체 Netflix와 Hulu 모두 저작권자에게 좋은 수익을 제공하고 있다. 이것은 호스트(스트리밍)와 크리에이터(저작권자)와의 긴밀한 제휴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Netflix는 사용료를 스트림 당으로 지불하지 않는다. 그리고 복잡한 요율 공식도 없다. 모두에게 똑같은 요율을 적용하지도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원작자의 수익을 챙겨주고 있을까?
그들은 ‘임대 시스템’(leasing system)을 통해 라이센스를 확보한다. Netflix에서 어떤 영화나 시리즈가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는 저작권자로부터 특정 기간의 컨텐츠 사용에 대한 권리를 확보한다. 사용할 저작물의 종류와 기간에 대한 가격은 모든 배급사와의 논의를 통해 정해진다. 기간 동안 저작물이 스트리밍될 횟수를 예측하여 공정한 가격을 결정하게 된다.
컨텐츠를 제공하는 대가에 대해서는 각 배급사가 각자의 발언권이 있으므로, Netflix와 배급사 간의 긴밀한 관계가 생긴다. 이는 음악 스트리밍에서는 없는 분명한 장점을 지니게 된 것이고, 결과적으로 자체 독점 컨텐츠를 제작할 비용을 충당할 수 있게 된 것이다.
Netflix 오리지널 시리즈는 House of Cards, Orange is the New Black, Bojack Horseman 등 인기 컨텐츠를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Arrested Development, Trailer Park Boys와 같은 컨텐츠의 독점 제공 권리를 확보하기도 했다.
Hulu는 Netflix와 조금 다르다. 그들은 TV 방송사 및 영화 제작사와 제휴하며, Fox, NBC, Disney가 거의 동일한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미디어 그룹들이 스트리밍 서비스의 지분을 지니고 있어서, 컨텐츠의 스트리밍 가능 여부 및 가격(소비자가 또는 광고 단가)을 정하는 데에 있어서도 그들이 직접 관여한다.
Hulu는 Spotify와 유사하게 양면 사업 모델(two-sided business model)을 사용한다. Freemium 사용자가 시청한 컨텐츠는 광고주에 의해 지불되고, Premium 사용자는 직접 사용료를 내고 컨텐츠(광고 없는)를 본다. 이 사용료가 컨텐츠 제작자에게 바로 전달된다는 점이 Spotify와의 차이다. Netflix와 마찬가지로 Hulu 역시 자체 독점 컨텐츠를 제작중이다. (Difficult People, The Awesomes, Deadbeat 등)
이러한 결과로 컨텐츠 불법 복제가 억제되는 효과가 있었음은 Variety의 보고서에서 드러난다. 2014년 한 해 동안 토렌트를 통해 유통된 TV 시리즈 상위 10개는 HBO, NBC, AMC, CBS, CW, USA, ABC에서 나온 것들이다. 이들 방송사는 모두 Netflix나 Hulu에 컨텐츠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
스트리밍의 미래
Netflix는 웹사이트를 통해 TV 컨텐츠의 미래와 그들의 역할에 대해 발표한 바가 있다. 일방향 매체로서의 전통적인 TV(linear TV)는 온디맨드 스트리밍으로 교체될 것이며, 소비자가 직접 TV 스케쥴을 제어하려는 욕구가 주된 동력일 것이라고 한다.
광고가 없는 Netflix의 모델 특성상, 보다 많은 유료 구독자를 모으려 할 것이다. Netflix의 유니크한 컨텐츠 임대 방식을 통해, 더 많은 구독자가 생길수록 더 많은 비용이 컨텐츠 제작자에게 돌아갈 것이고, 신규 컨텐츠 제작으로도 사용될 것이다.
Netflix와 Hulu가 TV/영화 업계에서의 자금 흐름을 쥐고 있는 한편, 음악 업계에서는 마치 아티스트와 권리사에게 스트리밍이 거대한 재앙인 것처럼 여기며 패닉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스트리밍이라는 것을 잘못 인식하고 있다. 시작이 잘못되었을 뿐, 다시 돌아가 옳은 방법을 되찾기에도 늦지 않았다. “음악계의 Netflix”, “음악계의 Hulu”가 등장한다면, 음악 업계를 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옮긴이의 한마디
이 글은 TechCrunch에 실린 Dylan Eller의 글을 번역한 것이다.
Netflix의 저작권 임대 방식을 맹목적으로 신뢰하거나, 음악과 비디오 시장의 구조적 차이점에 대한 고려가 없고, 유료 모델은 무조건 선순환된다는 식의 논리 등, 나이브한 생각들이기는 하다. 다만 미국 시장에서의 비디오 스트리밍은 음악에 비해 안정된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는 인상은 부정하기 힘들다.(Netflix와 Hulu라는 양강이 만들어낸 성과)
저작권과 정산 모델 외에도, 제품 디자인, 컨텐츠 딜리버리, 추천 및 개인화 알고리듬 등 비디오 스트리밍에서 배울 점은 분명 많고, 음악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Netflix와 Hulu를 주시해야 함에 동의한다.
Netflix 하는 대로 따라 한다고, 음악계의 Netflix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 하고 싶어도 따라 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게 분명 있다. 어쩌면 저작권과 정산 부분이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말 ‘음악계의 Netflix’(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의 서비스)가 등장한다면, 음악 업계를 조금은 구할 수도 있지 않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