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내 반무슬림주의 및 인종차별은 현대판 유대인 박해로 불릴 정도로 그 도가 심각합니다. 편파적 서양 언론은 ‘무슬림=사회 복지 예산을 축내는 사회 부적응자’라는 도식을 만들어냈고, 학계 및 정치계에서도 “무슬림 마녀사냥”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모로코 출신 벨기에 국적의 M.C와 인터뷰를 진행해보았습니다. M.C는 벨기에 최고의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하고, 세일즈 매니저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는 젊은 미남 청년입니다. 그도 청소년기에는 주변 사람들이 무서워서 피하는 소위 ‘껄렁껄렁한 양아치(?)’ 소년이었다고 하네요. 그랬던 그가 어떻게 고액 연봉의 비즈니스맨이 되었을까요?
무슬림 게토에서 잘나가는 비지니스 맨이 되기까지
Q. 벨기에에 4살 때 이민을 왔다고 들었는데, 부모님은 왜 벨기에에 오셨나요?
M. 유럽 경제 붐 당시, 아버지는 고급 인력으로 벨기에에 오셨어요. 대학을 졸업하진 않으셨지만, 단순 육체 노동자는 아니셨어요. 그 이후, 90년대 초반 공산주의가 무너지자, 아버지는 동부 유럽 소비자를 상대로 중고차 판매를 하셨고, 큰 돈은 아니어도, 벨기에 중산층만큼 살 수 있게 되었어요. 아버지는 더 나은 자식들의 미래와 교육을 위해 벨기에에 오셨다고 해요.
Q. 어떻게 어린 나이에 성공한 사업가로 자리매김하실 수 있었나요? 의사나 변호사, 엔지니어가 아닌 이상, 이민자로서 비즈니스 방면에서 성공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특히, 무슬림으로서 회사에 취업하기도 어렵다고 하던데..
M. 제가 물론 예외적인 경우이지만, 유일한 예외는 아닙니다. 제 주변에 무슬림 친구 중, 비즈니스 방면에서 잘 나가는 친구들도 많아요.
저는 벨기에 최고의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했습니다. 벨기에 최고의 대학은 공립대학이었고, 입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있죠. 다만 졸업이 힘든데, 800명이 입학하면 졸업자는 100명도 안 될 정도로 졸업이 어려워요. 공립대학은 등록금이 없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도 없었어요. 미국과 달리 벨기에에서는 돈 많은 멍청한 자제들만 사립대학교에 가요.
이 학교만 졸업하면 취업은 어렵지 않고, 바로 매니저급부터 시작하죠. 많진 않지만 무슬림 동기들이 꽤 있었고, 그들 역시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 다니죠.
Q. 혹시 고등학교 시절은 어땠나요? 대부분 무슬림들은 무슬림들끼리 어울리고, 청소년기에는 유독 사회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신경이 많이 쓰이잖아요
M. 저는 소위 ‘게토’ 학교에 다녔어요. 학생들의 90프로가 모로코 출신이었고, 그들의 부모님들도 중, 저소득층이 많았죠. 하지만 학교는 명성 있는 좋은 학교였고, 선생님들도 굉장히 열정적이고 엄하셨죠. 단지 무슬림 학생들이 많아서 게토 학교로 불렸죠.
저는 게토에서 정말 최고의 사춘기를 보냈어요. 같은 모로코 출신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항상 웃고 즐기고 떠들었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공격적인 반항아였어요.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재미를 위해 학교 물건을 훔치는 등 비행을 일삼았어요. 어느 순간, 저는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한 나쁜 짓은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이 고리를 끊지 못하고, 비행의 늪에 빠진 친구들도 많았어요. 이 친구들은 매사에 공격적인 반항아이자 불량아였어요.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는 수많은 무슬림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매사에 공격적, 반사회적으로 행동하는 실업 청년이라는 딱지를 달고 있으며, M.C에 의하면 실제로 무슬림 청년들이 실제 그렇게 행동하기도 한다고 한다. 벨기에에서는 무슬림 청년들을 무서워하고 기피하는 현상도 존재하는 편이다.
제가 고등학생 때는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겁을 주는 존재인지도 몰랐어요. 하지만 여느 때처럼 버스에 탄 어느 날 갑자기 깨달았죠. 제가 무섭고, 두려운 존재라는 걸… 버스에 타자마자 주위에 앉은 모든 사람이 제가 강도나 되는 것처럼 소지품을 움켜잡고 갑자기 두려움에 떨더라고요.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왜 그럴까 생각했고, 이때부터 저와 제 친구들의 공격적 행동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때 생각했죠. 왜 우리는 공격적, 반사회적일까?
벨기에 사회의 반 무슬림주의와 깊은 연결… 숱한 인종 차별과 조롱
M. 제가 심리학자는 아니지만 저와 주변의 경우를 지켜본 결과, 공격적 성향은 낮은 자신감, 자기애와 결부되어 있어요. 사회는 이미 우리(무슬림)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규정해놓았어요.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든, 우리는 훔치고, 폭력을 일삼는 문제아로 그려지죠. 우리도 신문을 읽고, 주변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는지 다 알아요. 모두가 저희를 색안경을 끼고 삐딱하게 바라보는데 어떻게 청소년기에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겠어요?
어릴 때는 심지어 무슬림 근본자들의 테러리즘과 팔레스타인 사태에 대해서 죄책감과 수치감을 느끼기도 하고, 무력감과 절망감도 느꼈어요.
저는 다행히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환경일 뿐이다’라고 생각하고 저 자신을 바꾸어 나가기 시작했죠. 하지만 주변의 인종 차별과 편견으로 인해 자기 증오의 덫에 빠지는 무슬림 젊은이들이 정말 많아요.
Q. 대학 시절, 주류 백인 벨기에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힘들지 않았나요?
M. 대학 친구들은 대부분 백인 벨기에 친구들이었고, 이런 환경은 처음이었어요. 대학 입학은 저를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인도해주었죠. 저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주었어요.
저는 대학 입학 전까지 제가 이민자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주변에 다 무슬림들이었고, 이민자 대접을 한 번도 안 받아 봤거든요. (벨기에 사람들이 무슬림들을 무서워해서 그런 거일 수도 있어요)고등학교 때까지는 무슬림에 대한 인종 차별이나, 고정 관념을 TV나 언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기만 했죠. 주위에 모두가 무슬림이었고, 언론은 항상 그랬으니, 이런 대접이 당연했고. 크게 문제 삼지 않았던 거죠.
대학에서는 많은 인종 차별을 겪었어요. 친구들은 저를 게토 출신에 ‘껄렁껄렁한 양아치’쯤으로 봤어요. 제가 아무랑 싸움하고 더러운 욕설만 내뱉을 거라고 생각한 거죠.
벨기에 대학에도 미국의 fraternity처럼 동성 학생들끼리 그룹을 지어 여러 활동을 하고, 인맥을 쌓아요. 저도 fraternity에 가입했는데 황당한 신고식을 많이 하거든요. 저는 이때 항상 사회 부적응한 모로코 이민자 역할만 맡았어요. 저소득층 및 사회 하층민을 조롱하고 욕보이는 행동들이었죠.
물론 그 역할을 하면서 기분이 좋진 않았죠. 그래도 전 했어요. 이 친구들이 잘못을 스스로 깨닫도록 말이죠. 제가 좋은 성적을 받고 졸업함으로써, 저는 이 친구들한테 본보기를 보여 주는 거죠.
Q. 어떻게 자기 증오와 비행의 고리를 끊고 최고의 학교까지 졸업하신 거죠? 그러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M. 쉽지는 않았어요. 다행히 저는 악순환에 빠지지 않았어요. 모든 게 순조로웠죠. 최고의 대학에서 졸업도 하고 좋은 직장도 얻었어요. 악순환에 빠진 친구들을 보면 직업 학교에 갔어도 졸업을 하지 못했고, 벨기에 사람보다 더 나은 스펙이었어도 취업을 하지 못했고, 실업 상태에서 자기 및 사회 증오는 더 커져만 갔어요. 경제적 궁핍도 더해지고 자신감도 없어지면서 계속 최악의 상태로 빠져드는 거죠.
특이하든 평범하든 뭘 하든 ‘한 번 무슬림은 영원한 무슬림’
Q. ‘무슬림은 여성 억압적이다’, ‘무슬림들은 사회 복지 예산만 축내는 게으름뱅이다’ 등등 무슬림들은 언론의 마녀사냥에 먹잇감이 되는 것 같아요. 왜 이럴까요? 그리고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세요?
M. 사회는 언제나 희생양이 필요해요. 모든 문제의 원인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려야 하거든요. 더 큰 문제나 근본적인 원인이 뭔지 모르도록 사회는 항상 누군가의 조종을 받고 있어요. 저는 언론을 정말 싫어해요. 그들은 돈을 받고 사주를 받아 사회를 자본가, 정치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선동하기나 하죠.
벨기에 무슬림 인구는 10%도 안 되고, 대부분 가난한 하층민들이에요. 우리가 이렇게 힘이 없는데 금융 문제, 정부 만성 적자 문제 등등의 경제적 문제를 일으킬 수나 있겠어요?
벨기에에서 다이아몬드 사업가들에게 0.1%로 세금율을 내리는 법안을 추진했죠. 그들은 백만장자예요. 아무도 이것에 대해 시위하지는 않죠. 이케아 역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세금 한 푼 내지 않아요. 아무도 이것에 대해 분노하지 않아요. 하지만 가난한 무슬림 가족들이 기껏해야 1,000유로 생활 보조금을 받을 때는 우리가 마치 정부 만성 적자의 가장 큰 원인이라도 되는 양 불편한 시선을 보내죠.
Q. M.C는 자신을 벨기에인이라고 생각하나요? 모로코인이라고 생각하나요?
M. 둘 다예요. 저는 와인은 즐기고. 프랑스어가 모국어인 벨기에인인 동시에, 모로코 가정에서 자난 모로코 인이기도 해요. 하지만 이민자로서 저는 벨기에에서 영원히 모로코인일 거예요. 술도 마시고 벨기에인들도 부러워하는 회사에 다녀도 제 이름이 무슬림 이름이라면 사람들은 저를 무슬림으로 취급할 거예요.
서양 백인들은 남자, 여자, 뚱뚱한 사람, 예쁜 사람, 히피, 은행가, 패셔니스타 등등 가질 수 있는 정체성이 많아요. 하지만 무슬림은 남자건 여자건 예쁘건 멋있건 아이덴티티는 무시되죠. 저희는 그저 무슬림일 뿐인 거예요.
그래도, 벨기에에서 노력하면 수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 삶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원문 : Multi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