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에서도 나왔듯이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에 취직을 하면 대부분 현장의 중요성을 귀가 닳도록 듣게 된다. 제조업이 주를 이루는 우리나라 대기업의 경우 대부분 매출은 현장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삼성전자는 반도체 공장, 현대차는 자동차 공장, 포스코는 제철소, 그리고 대우건설은 푸르지오 건설현장 등으로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취직이 잘된다고 공대를 선택해 토익과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일단 입사를 하면 대부분 현장으로 발령이 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대부분 평생 대장놀이에서 대장이란 걸 해본 적 없는 모범생들이 관리자라는 미명 하에 대장 노릇을 시작하지만 그 일을 잘 수행하기란 녹록지 않다. 학교 다닐 때 싸움도 쫌 하며 눈빛만으로 상대의 기분을 읽고, 내 수하의 애들을 뺏기지 않게 가오를 잡던 경험이 있다면 좀 낫겠지만, 대부분 선생님의 출제경향, ETS의 기출문제만 열심히 보던 대기업 신입사원들이 대장 노릇을 잘 할리가 만무하다. 반장은 다들 해봤겠지만, 뭐 반장 말 누가 듣나.
하지만 결과적으로 기업은 전자의 능력보다 후자의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고, 조직의 특성상 매뉴얼이 있기에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대충해도 시간은 가기 때문에 별문제가 안될 수도 있지만, 나는 이러한 경우 관리자에게 어떤 요건이 중요한 지에 대해 나열해본다. 경험에 의한 글이므로 조언은 언제나 환영이다.
1. 정확한 업무지시 및 FEEDBACK
말 그대로 관리자는 자기가 직접 일을 하는 자리가 아니다. 오케스트라로 따지면 지휘자의 업무다. 해당분야의 일을 작업자보다 물리적으로 잘 할 수는 없겠지만, 지식은 충분해야 한다. 제일 중요한 건 생산성 관리인데, 현재 생산성을 바탕으로 이 작업자가 언제 일을 마치는지, 이 일을 마치면 어떤 일을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예측을 항상 하고 있어야 한다. 이를 산업에선 자원배분(Allocation of resources)이라고 하는데, 자원배분에 실패했을 때 비용(Cost)이 상승하는 건 필연적이다.
처음 작업을 시키기는 쉽지만, 그 작업이 완료됐을 경우의 피드백은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일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업무지시를 하면 피드백이 바로 날아오고, 이 때 당황하게 된다. 한두 명도 아니고 수십 명이 물어보면, 슬슬 짜증도 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피드백을 마치면 이제 이런 논리가 성립된다.
“네, 이 일은 제 기준엔 충분한 것 같으니 다음엔 저 일을 하세요.”
= “네, 이 일은 이제부터 내가 책임지겠습니다. 다음엔 저 일을 하세요.”
관리자는 결국 책임지는 자리다.
2. 목표의 설정
흔히 생산성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일 목표량을 설정해 놓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목공 아저씨들, 오늘 1층까지 다 설치하면 일찍 집에 가셔도 돼요.” 이러면 대부분의 작업자분들은 점심시간도 줄여가며 일찍 퇴근하고자 기를 쓰고 마무리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이 ‘목표의 설정’이다. 상기 예에서 1층이라는 목표가 전체 프로젝트 계획공정에 부합하는지 여부가 일단 중요하다. 오늘 1층을 마치긴 했지만 전체 프로젝트 관점에서 늦어진다면 저건 잘못된 목표의 설정이다. 목표 설정 전에 큰 그림부터 봐야 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현재 인원으로 1층을 마무리하려면 3일이 필요한데, 오늘 1층을 마치면 일찍 집에 가도 된다는 목표를 설정하면 작업자들은 귓등으로도 안들을 것이다. 목표량 설정 전 현재의 생산성부터 파악해야 한다. 즉, 작업자들이 뭘 하는지 기록을 하며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종합해보면, 현재 생산성을 바탕으로 현실적이며 전체 프로젝트가 허용하는 범위의 목표를 설정해주어야 한다.
3. 신뢰관계
“이 작업 좀 해주세요.”
“RE: 이건 도면에 없는 건데, 이거 하면 돈 안 줄 거잖아.”
이럴 경우가 종종 있다. 산업에서 VO(variation order)라고 하는데, 프로젝트를 몇 년간에 걸쳐 수행하다 보면 계획대로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경우에 “내가 언제 약속 안 지킨 적 있습니까? 전 제가 지시한 업무엔 책임집니다.” 하고 VO에 사인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양치기 소년이 되어 지시한 바를 번복하고, 무슨 일이 잘못되었을 때 작업자 핑계를 댄다면 그 작업자들은 평소 생산성의 반도 안 되는 수준으로 일을 할 것이다. 하지만 신뢰관계가 쌓여, 이 관리자는 일을 한 만큼의 보상은 책임져 주는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면 생산성은 두 배 이상으로 나올 수도 있다.
4. 로열티
한글로 충성심이라고 하면 왠지 유신시대 느낌도 나고 해서 요즘엔 로열티(LOYALTY)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데, 이 부분도 상당히 중요하다. 앞서 언급한 신뢰관계와는 살짝 다른 의미다.
“원가 절감할 수 있는 방안이라면, 어떤 생각이라도 가져오세요.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선 사고 치셔도, 제가 책임집니다.”
이러한 멘트와 행동을 보여줄 수 있는 관리자 밑에 작업자들은 창의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한다. 사실 작업의 혁신은 현장에서 나오게 되는데, 겉만 보는 관리자 입장에서 혁신적인 생각이 나올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이다. 로열티가 있는 조직은 모든 사항을 관리자에게 보고하지만, 부족한 조직은 보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사고는 관리자가 모르는 부분에서 터진다.
5. 벌과 포상
이게 제일 쓰기 망설여지는 부분이긴 하다. 나는 비록 박애주의자(?)이지만 기업에 있어서는 다소 징계에 의한 본보기가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손자병법에 손무가 오나라 왕의 시험으로 궁녀 180명으로 군대를 조직한 예가 있다. 당연히 궁녀들은 시시덕거리며 손무를 조롱하였지만, 손무는 오왕의 애첩의 목을 베어버리며 군기를 한순간에 잡았다.
이처럼 수백 명 혹은 수천 명의 작업자들을 관리하며 일을 하게 되는 경우, 모두 관리자를 잘 따르는 경우는 없다. Never! I’m pretty sure! 이럴 경우 본보기를 통해 기강을 잡는 것이 때로는 불가피하다.
반대의 경우로 포상도 중요한데, 물질적 인센티브 등의 포상도 물론 좋지만 칭찬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 없다. 이는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이론 중 최상위 두 단계인 존경(Esteem)의 욕구와 자아실현(Self-actualization)의 욕구와 맞닿아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인정받고 싶어 한다. 작업자에게 직접 성과에 대해 칭찬하는 것도 좋지만, 다른 매니저, 작업자, 소장이나 공장장에게도 우리 작업자들의 칭찬을 하고 다니면 어떻게든 다시 우리 작업자들의 귀에 들어오게 되어있다. 반대로 욕을 하고 다니면… 이미 그 프로젝트는 망했다고 봐도 된다.
이상으로 관리자에 대한 요건을 생각해봤다. 대기업은 알아서 돈들 많이 벌겠지 하고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오랫동안 시장에서 유지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 기업이 망하지 않더라도 사세가 기울면 직원을 해고해야 하고, 그럼 조만간 망하게 된다. 기업이 망하기 시작하면 사회는 점차 불안해지고… 악순환의 연결고리. 따라서 기업에 소속된 관리자든 개인사업을 하는 관리자든 기업의 이윤과 작업자의 욕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선 끊임없이 고민해봐야 할 어려운 지점이다.
원문: 퀘벤하운 님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