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명은 오랜 기간 동안 유럽 문명보다 앞서 있었다. 유럽은 중국으로부터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인쇄술, 제지술, 나침반, 화약, 운하의 수문을 획득했다.
그렇지만 경제 성장이 먼저 일어나고 다음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난 곳은 유럽이었다. 그리고 대의 정부와 개인의 권리, 다른 근대성의 징표들이 처음 발전한 것도 유럽이었다. 유럽은 뭘 어쨌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을까?
최근 출간된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의 저자 존 허스트는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유럽에서는 권력이 분산되어 있었으며, 고급문화는 여러 요소의 혼합물이었고 세속적 지배에 견고하게 묶여 있지 않았다.”
다시 말해 중국인들은 매우 총명했지만 그들의 총명함은 왕권의 통제를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따라서 중국인들의 혁신은 근본을 뒤흔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어 허스트는 유럽 사회의 개방성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고, 근대 유럽 경제의 활력과 그 지적 생활의 소란은 과학혁명과 기술혁신의 새로운 토대를 창출했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유럽은 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 단일한 권력이 영토 전체를 통제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유럽의 왕은 자신과 경쟁하는 국가들의 네트워크 안에서 움직였다. 이에 반해 중국의 황제는 자신과 동등한 권력을 지닌 그 어떤 경쟁자도 없었고, 바로 이 점이 덫으로 작용해 유럽과 중국의 산업화를 가른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1750년경 중국과 유럽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었는데 중국이 극심한 생태 환경의 위기에 빠졌고, 에너지 비용의 증가로 기존의 생산 형태는 착취적 형태를 띨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석탄이라는 ‘행운’이 없었다면 유럽도 중국과 비슷한 경로를 따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가 유럽 중심의 관점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이 책을 쓴 존 허스트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학자다. 멜버른의 라트로브 대학교에서 4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허스트는 책의 서문에서 학생들이 세계사에 대해서 너무 아는 게 없어서 놀랐다며,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가 유럽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 학생들을 일깨우기 위해 책을 썼다고 밝혔다.
허스트가 도널드 트럼프도 일깨워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그는 작년에 별세했다. 트럼프는 이번 순방에서 수금을 마쳤으면 트위터에 한 줄 올리기보다 이 책을 읽고 아마존에 코멘트를 남겼으면 좋겠다. 킨들 버전으로 8달러밖에 안하니 말이다. 그 코멘트를 보고 아마존 독자들이 불매운동을 벌일까 우려가 되긴 하지만.
유럽 중심의 관점이라고 해서 마냥 비판할 것은 아니다. 기독교도 기사가 사라진 후에도 그 태도는 ‘젠틀맨’으로 계승됐고, 페미니즘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은 논쟁의 여지도 있지만 흥미롭다. 이외에도 키스가 경례의 한 형태였다거나, 라틴어가 유럽에 미친 영향 등은 알아두면 여러모로 쓸 데가 많다.
또한 저자의 40년 내공을 얕잡아 봐서는 안된다. 다음과 같은 유머도 잊지 않으니 말이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량에 대한 불안을 품고 살고 있었다. 사치는 일정하게 잘 먹는 것이었고 살 찐 것은 아름다운 것이었다. 휴일은 잘 먹는 잔칫날이었다. 나는 다른 날에는 절대로 칠면조 고기를 먹지 않는 것으로 잔칫날의 적절한 풍조를 어느 정도 보존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 책은 제목처럼 짧지는 않다. 대신 술술 읽힌다. 중간중간 도표로 요약한 부분도 있어서 책을 읽는게 아니라 세계사 시험 공부를 하는 기분마저 든다.
세계사는 왜 배워야 할까? 저자의 이 한마디를 외우면 나도 유시민처럼 방송에 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세계 역사의 흐름과 맥락을 알지 못하면 급변하는 세계와 현재 우리 삶의 모습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역사마저 오독하는 위험한 실수를 저지르게 될 수도 있다.”
원문: 북클라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