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가디언 지에 실린 원문을 번역한 글입니다.
우울증을 겪는 걸 알아차리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에 저는 늘 놀랍니다. 아버지는 조울증을 앓았고 누이는 10년 전 우울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저도 징후를 알아챘어야 했겠지요. 하지만 축 처진 기분에, 늘 피곤하고, 식욕이 없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이 모두 우울증의 징후라고 친구가 저를 설득하기 전까지 저는 우울증을 앓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통계적으로 우리 가운데 약 8%에서 12%는 지난 1년 사이 한 번 정도는 우울증의 시기를 겪습니다. (영국 통계청 자료) 하지만 병원에 가는 사람은 극히 적습니다. 정신 건강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는데도 불구하고,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몇 달 전 제가 그랬듯이 말이죠.
“환자들은 우울증이라는 진단 결과에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라고 임상 정신병리학자 안젤 아담스는 말합니다. “환자는 자신이 우울증이 아니라 그저 피로하고 힘이 없는 것뿐이라고 믿습니다. 너무 과로한 탓이라고 가볍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확히 우울증이라는 확실한 병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중 대다수는 우울증이라는 것이 뭔지를 모릅니다. “사람들은 우울증을 앓으면서도 일상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다는 걸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라고 의사 아담스는 말합니다. “우울증에 걸리면 직장을 관둬야 한다고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많은 우울증 환자가 계속 일을 합니다. 다만 일의 강도나 성과에 큰 차이가 나게 됩니다. 우울증에 걸렸다고 다 자살시도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래 사항은 우울증에 걸렸을 때 나타나는 일반적인 증상입니다. 참고되길 바랍니다.
기분이 가라앉는다
가장 명백한 우울증 신호입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자신감이 낮고 종종 자신이 가치가 없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라고 아담스는 말합니다. “자기가 우울증에 걸렸는데도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향해 더 비판적이 되며 자신을 단죄하려 합니다. 일종의 자기 비난입니다. 타인에 대해서도 짜증을 내게 됩니다.”
기분이 가라앉는 현상은 아침에 특히 더 심해집니다. “이것은 주간 기분변동(diurnal variation)이라고 불리는 현상으로, 오후보다 아침에 더 슬픔을 크게 느끼는 현상을 말합니다”라고 베스 대학교 임상 정신병리학과 폴 살코프스키스 교수는 설명합니다. “이 현상은 종종 조울증을 동반합니다. 오후 2시쯤이 되면 마치 스위치를 켰다 끄는 것처럼 갑자기 기분 전환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흥밋거리나 관심거리가 없어진다
정신병리학자가 흔히 쾌감상실(Anhedonia)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울증의 또 다른 대표적 증상입니다. 남들이 즐거워하는 어떤 일에도 당신은 기쁨을 느끼지 못합니다. “쾌감상실은 아마도 ‘흥미의 실종’으로 번역해도 좋을 것입니다.” 살코프스키스 교수의 설명입니다. “무기력하고 완전히 생기가 없으며, 이 세상이 마치 흑백화면처럼 무미건조해 보이고 형편없어 보입니다.”
이 증상은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 고립되는 이유입니다. 아담스는 말합니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은 자신만의 보호구역을 찾으려 합니다. 타인과 어울리기 싫어합니다. 외출하기도 싫습니다. 집에서 시간 대부분을 보냅니다.”
입맛이 없다
우울증 환자는 종종 과식합니다. 이른바 “위안을 얻기 위한 식사(comfort eating, 감정적 섭식)라고 불리는 현상입니다. 하지만 더 잦은 현상으로 입맛이 없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쾌감상실의 또 다른 사례입니다. 살코프스키스 교수는 “우울증 환자는 먹어야겠다는 의욕을 잃어버리게 됩니다”라고 설명합니다.
성욕이 줄어든다
쾌감상실은 성생활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성욕 감퇴는 전혀 놀랍지 않은 현상입니다”라고 살코프스키스 교수는 말합니다. “만약 모든 게 쓸데없어 보인다면, 아마도 당신의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모든 게 무의미하다면 성생활도 마찬가지로 느껴질 것입니다.” 물론 여기엔 생리학적인 원인도 있습니다. 우울증은 성호르몬 분비량에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잠이 오지 않고 쉽게 피로해진다
우울증 환자가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한다는 사례가 많습니다. 지속적인 피로 때문에 잠을 못 이루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각성효과 때문에 잠을 못 잡니다. 살코프스키스 교수는 “잠이 들기도 어렵지만 더 심각한 것은 너무 일찍 깬다는 점입니다. 새벽 4시만 되면 눈이 떠지면서 다시 잠이 못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통증을 느낀다
우울증은 고통을 더 민감하게 느끼게 만듭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이 생기고 치료를 받아도 아픔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픔은 전적으로 정신적 현상입니다”라고 살코프스키스 교수는 말합니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이 고통과 연결됩니다. 단적인 예로 전쟁터에서 총에 맞아 손가락이 잘려나간 병사들이 쾌락을 느끼며 행복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손가락이 잘려나갔을 때 웃음을 지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것입니다.” 고통은 당신의 정신의학적 상태에 따라 더 민감하게 느낄 수도 있고 둔감하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건망증이 심해진다
우울증에 빠지면 기억 일반화(over-general) 경향이 생기고 지나간 일의 구체적인 정황을 기억하기 어려워집니다.
살코프스키스 교수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직장을 잃고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다고 상상해보십시오. 누군가가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직장을 얻어야 한다.’ 우울증에 걸리지 않은 보통 사람은 이 말을 들으면 ‘이력서를 준비해야겠네. 구직 기관에 등록해야겠다. 연락처를 뒤져서 물어봐야지’ 등의 사고를 하게 됩니다. 즉 좀 더 구체적인 것들을 하도록 기억력이 도와줍니다. 하지만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직장을 새로 구해야지…음…음….’ 일반적인 말을 넘어서 더 구체적인 생각을 못 하게 되는 겁니다. 문제 해결 능력을 떨어뜨립니다.”
우유부단해진다
우울증에 걸리면 정신병리학적 용어로 “증거 요구 증가(elevated evidence requirement)” 증상을 보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어떤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좀 더 확실한 뭔가가 필요하게 되는 겁니다. 직감으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됩니다.
“직감은 결정을 내리는 여러 방법 중 하나로 중요한 수단입니다.” 살코프스키스 박사의 설명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이상형으로 꿈꾸던 남자를 만났는데 그가 갑자기 당신과 결혼하자고 합니다. 이 때 결정을 내리려면 여러가지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지만, 가장 최우선적인 결정 수단은 직감일 것입니다. 우울증 환자는 중요한 결정일수록 결정을 내리는 게 힘들어집니다.”
나아가 우울증을 앓고 있으면 동기부여도 약해집니다. “모든 게 실패로 돌아갈 거라는 걸 알고 있다면, 아무 의미가 없어지겠지요”라고 살코프프시크 교수는 말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위의 증상을 겪고 있으시다면, 지금 병원으로 가서 진찰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원문: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