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페이스북 디자이너인 Beth Dean이 쓴 「Emotional Intelligence in Design」을 번역한 글이다. 그동안 제품 디자인에 있어 간과되어 왔던 ‘감정’ 혹은 ‘감성’의 존재를 환기시키는 글이다.
아랫글은 완전한 번역본이 아니기 때문에, 상세한 내용을 보시려면 꼭 링크에 방문해 보시길.
사람들의 ‘웹에서의 삶’은 실제 삶과 꽤 괴리되어 있다. Beth가 그걸 처음으로 느낀 건 그녀의 어머니가 사망하고 난 뒤였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매해 어머니의 생신이 다가올 때마다 선물 추천 이메일이 메일함에 들어왔다.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처음에는 고통스러웠다.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장례를 치르러 떠나는 여행에 프로모션 추천을 날려야 한다든가, 사고 후 보험처리를 받을 때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고통스러워지는 사용자를 보면 무언가 빠져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람들은 온라인에 접속해서도 여전히 사람들이다. 감정이 사라지진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수년 동안 우리는 소프트웨어를 중립적인 도구로만 생각해왔다. 하지만 사람들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때 사람을 대하듯 한다. 디자인할 때의 접근 방식도 바뀔 필요가 있다. 마치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이랑 대화할 때의 느낌을 평가하듯, 소프트웨어의 사용 경험도 같은 선상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관계를 핸들링하고 감정을 읽어내는 능력을 감성 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이라고 한다. 그리고 소프트웨어 디자인에는 감성 지능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감성 지능의 5가지 영역
- 자각 능력
- 감성 관리
- 동기
- 공감
- 대인관계
자각 능력
(아직까지는) 소프트웨어는 감정이 없기 때문에, 감성을 자각하기 힘들다. 사람들에게 표현되는 건 결국 디자이너가 설계한 명시적인 무엇이거나, 사용자가 실제 사용하며 느끼는 묵시적인 감정일 것이다.
페이스북 광고 설정을 예로 들면, 설정 메뉴들을 나열하는 것 이전에 의도를 먼저 설명한다. 사람들은 어쩌면 영원히 광고 설정 메뉴를 조작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결정하지 않는 것에서 생기는 경험을 인식하는 것은 힘들다.
결국은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고, 관계에서 감정은 급격히 바뀌기도 한다.
정부가 만든 소프트웨어와 사용자가 상호작용하는 것을 상상해 보자. 마치 젖은 수건을 바닥 위에 그냥 두었거나 쓰레기 버리러 나가는 것을 잊은 것처럼 무신경하게 생긴 일들이 사용자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다. “왜 이게 안 되는 거야!” 라는 사용자의 감정은 진짜다.
감성 관리
소프트웨어가 중립적이라면 모든 상황에서의 논리적 결과물을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가치를 부여할 수는 없다. 그냥 ‘했다’, ‘안 했다’ 정도로만 상황을 이해하면 그 이면에 있는 감정은 무시되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Beth의 친구는 한 사이트에서 연락처를 ‘긁어가는’ 기능을 사용했다. 당연히 자동으로 모두 연결될 줄은 모르고 말이다. 그녀는 친한 사람들 이외에 거의 연락을 안 하던 사람들에게까지 모두 연결되어버렸고 그중에는 그녀가 다시 말을 섞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숫자는 올라갔지만 과연 그 올라간 숫자가 사용자가 사이트로 다시 돌아오는 데 도움을 줄까?
동기
사용자의 동기를 파악하는 데에는 입장을 바꿔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Beth는 한때 살이 굉장히 많이 찐 적이 있다. 그리고 옷을 사러 갔을 때 맞는 사이즈가 하나도 없는 것을 알고 이 세상이 나를 위해 디자인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게가 그녀를 거부하는 것처럼 느꼈고, 그녀의 몸이 다른 사람들의 몸보다 못하다는 인식을 받게 되었다.
다양한 관점을 얻는 데 도움이 되는 건 다양한 배경의 팀원과 일하는 것이다.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제품을 만들면 놓치는 부분이 적어지고, 실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줄 수 있게 된다.
공감
디자이너는 사용자가 아니다. 만드는 의도가 A라고 해도, 사용자는 아예 판이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그건 실제 사용자를 만나서 테스트해보기 전까지는 절대 모른다.
Beth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양아버지는 매년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때 특정 상표의 기프트 카드를 준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좋아했기 때문에 그녀도 좋아할 것이라는 추측으로 준 것이지만 사실 Beth는 그 상표를 좋아하지 않는다.
의도는 선했지만, 받는 사람은 선물한 사람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대인관계
제품의 목소리는 어떠해야 하는가? 사용자와의 관계에서 소프트웨어는 어떤 사람인가? 선생님? 친구? 사용자가 최악의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어떤 것을 선택하면 다른 것을 내려놓게 된다. 어떤 것을 내려놓게 되었는지 아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당신이 어떤 걸 엣지 케이스라고 칭하는 순간 그것이 당신이 친 경계선이 된다. 스트레스 케이스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페이스북에서 한해 돌아보기 기능을 내놓았을 때, “아주 좋은 한 해를 보내셨군요!” 라고 말하며 딸이 사망한 포스트를 포함한 것 같은 게 그 예이다. 무언가를 놓치면 그것으로 인해 누군가는 상처를 받게 된다.
잘 컨트롤된 상황에서 제품은 잘 동작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바깥에 나갔을 때 얻는 결과들에서 우리는 가정에 대한 답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며 답해야 할 질문들을 새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
아직까지 많은 디지털 제품은 무신경하고 사람들은 때로 그걸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
한 연예인이 자신의 구글 검색 결과에서의 프로필 사진이 아버지 장례식에서 찍힌 사진이라고 분노할 때, 몇몇은 “그게 기계가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지 않나” 라고 말했다. 하지만 본인에게는 큰 상처였을 것이고 그건 분명히 고쳐질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고쳐졌다.
헤어진 연인이 친구 추천에 뜬다든가, 남이 올린 혐오 게시물을 “피드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봐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은 아니다. 무신경하게 오는 상품 추천 메시지, 사용자의 화면을 갑자기 가려버리는 광고들은 모두 어떤 인격을 상징한다.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당신은 무례하게 끼어들어 전단지를 주는 사람에게 웃으며 대응하는가?
아직 이 모든 것들은 시작 단계에 있고 대부분의 소프트웨어는 무례하다. 하지만 그게 당연한 일은 아니다.
원문 : nothing spec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