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을 하는 ○○라고 합니다. 코딩이나 프로토타이핑을 배워야 할까요?
종종 이런 질문을 담은 메일이 온다. 최대한 성의를 다해 답장을 쓰려고 하지만 가끔은 나도 답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아니, 오히려 대부분의 답을 모른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애초에 나조차도 매일매일 디자인 문제를 붙잡고 씨름하다가 끝내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찝찝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드는데, 남의 고민에 제대로 된 충고를 해 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늘 비슷한 질문이 오고, 어떻게든 답장을 써주다 보니 이젠 이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했다. 간단한 답을 말하자면 이렇다.
코딩을 하는 것은 훌륭한 디자이너가 되는 것과 큰 관계가 없습니다.
“아니 당신이 코딩·프로토타이핑을 하라며!”라고 발끈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좀 더 긴 대답을 준비했다. 코딩이나 프로토타이핑을 하는 것은 분명 어떤 측면에서는 커다란 도움이 된다. 어떤 도움이 되는지는 여러 글을 통해서 설명한 바 있지만 특히 어도비 리드 디자이너였던 Andrei Herasimchuk의 글이나 디자인 컨퍼런스 FORM에서 논의한 내용이 참고될 듯하다.
요약하면 지금의 소프트웨어 디자인에는 포토샵처럼 정적인 툴이 메울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그걸 메우기 위한 툴을 배우는 것은 어찌 보면 프로세스 측면에서 보았을 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즉 기존의 툴이 지금의 제품을 디자인하기에 부적합하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그게 전부인 것 같다.
툴은 툴일 뿐이다. 툴을 쓰는 것은 디자이너의 스킬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영역이지만 그것이 디자인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포토샵 cs2를 쓰는 사람보다 스케치 최신 버전을 쓰는 사람이 ‘좋은 디자이너’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Framer를 잘 쓴다고 해서 다른 디자이너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나지는 것은 아니다. 디자이너 우대 요건에 흔히 등장하는 html/CSS/JS는 마법의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툴에 경도되어 실질적인 디자인 문제는 무시하는 경우도 종종 봤다. 툴이 주는 편리함과 툴이 제시하는 방향성에 빠져들어 이상한 곳에서 시작해버리는 것이다. 당신이 레이어를 합치는 새로운 방법에 기뻐하기 전에, 새로 나온 프레이머 모듈에 흥분하기 전에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 시대 위대한 디자인 리더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국 디자인은 얼마나 사려 깊게 생각하느냐와 관계가 있다. 버튼의 위치 하나, 거기에 달린 이름, 그리고 내가 설계한 하나의 동선에서 파생되는 다른 동선들, 이것이 더 큰 기기에서는 어떻게 보일지, 더 작은 기기에선 어떻게 보일지, 시각 장애인은 어떻게 사용할지, 이 모든 질문 중 디자인 툴 자체가 답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당신이 반응형 코드를 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다양한 기기에서의 디자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되도록 가능한 것을 한다”는 말이 있다. 바로 실제 코드를 짜기 시작하면 많은 난관에 부딪힌다. 제대로 된 설계도나 지침·원칙이 없다면 난관을 핑계 삼아 이게 더 나은 길일 거라며 돌아가기가 아주 쉬워진다. 그렇게 완성된 제품은 훌륭하지 않을 것이 뻔하다. 아니, 완성이나 될지 모르겠다. 펜과 노트에서 시작해 개발툴까지 가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다시 말하지만 툴은 툴일 뿐이다. 코딩을 못 한다고 해서 가슴에 무엇이 얹힌 채로 살지 않아도 된다. 내가 아는 훌륭한 디자이너 중 코딩할 줄 아는 디자이너의 비율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낮다. 편한 마음으로 살란 이야기도 아니다. 가슴에 무엇이 얹힌 느낌을 받으려면 다른 이유로 먼저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에 가깝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이 디자인 문제에 대해 얼마나 열심히 생각하고 있는지 자문하는 것이다. 코딩은 그다음 문제이다. 나의 프로세스에 코딩이 필요하다면 코딩을 배워야 할 것이고, 아니면 다른 툴을 배우면 된다. 선택지는 많다. 매일매일 해결해야 하는 디자인 문제 중에 코드를 써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의 수가 얼마나 되겠는가?
당신이 코딩을 배우는 시간 때문에, 더 고차원의 고민을 해야 할 시간을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큰 그림에선 손해나 다름이 없다. 디자인은 툴을 써서 하는 일이지만 툴 그 자체는 아니다.
원문: nothing spec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