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k Chimero가 쓴 아주 짧고 얇은 책이다. 최근에는 좀처럼 책을 손에 잡기가 어려워서 방치하고 있다가 지난 중국 출장 때 바짝 읽었다. 아직 읽고 있는 중이지만 공감하는 문장을 몇 문장 떼어 글을 적어보려 한다.
창조적인 프로세스는 본질적으로 자신과 작업물간의 대화라고 할 수 있다. 화가는 이젤에서 떨어져 있을 때 멀리서 작업을 관찰하고 분석한다. 꼼꼼하게 뜯어보고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가며 다음 스트로크를 결정한다. 그리고 나서야 캔버스에 다가가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그 과정을 다시 반복하는 것이다.
p23, <How and Why>
언제나 큰 그림을 봐야 한다는 말을 듣지만 작업을 할 때 한발 떨어져서 전체를 보는 일은 쉽게 생각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모니터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혹은 그림을 디바이스에 넣어서 (모바일 앱이라면) 관찰하는 것도 해당되는 일이겠지만 이 서비스가 다른 서비스와 붙었을 때엔 어떻게 동작하는지, 내가 상정한 하나의 이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 보는 일도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지금 얹어놓은 버튼이 과연 옳은 위치에 있는지 점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걸음 떨어진다는 것은 물리적인 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내가 작업한 사람이라는 입장에서 떨어져서 비평을 받는 것도 해당될 수 있다. 주관적인 작업자의 입장에서 여러 발자국 떨어져서, 내가 작업한 결과물에 대한 비평을 담담하게 수용하고, 건설적으로 작업을 재구성하는 일 말이다. 치열하게 작업하고, 마치 내가 작업한 것이 아닌 양 거리를 두고, 다시 거기서 배운 교훈을 가지고 뛰어든다… 고 받아들이고 싶다.
제약은 큰 프로세스를 조금 더 작고, 이해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오히려 탐색의 여지를 넓혀준다. 그것은 풀에서 수영을 하는 것과 망망대해에 놓여진 것의 차이와 비슷하다.
p45, <Improvisation and Limitations>
창조적인 작업에서 내가 움직일 수 있는 폭을 일부러 제한한다는 것은 처음엔 굉장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명확하게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좁히는 것은 작업에 큰 도움이 된다. 색을 몇 개를 써야 하는지, 패딩은 어떤 종류가 있는지 같은 실질적인 디자인 작업에도 도움이 되지만, 보다 관념적인 단계에서의 제한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앱을 들어 이야기해보자면, 이 앱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일을 하지 않아야 하는지 정의하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나간다. 내가 움직이는 운동장이 명확하게 정의되어있지 않다면 그 생각을 따라다니다 어느새 지쳐버리고 말 것이다. 내가 움직일 곳과 움직이는 곳을 명확하게 그어놓으면 그 안에서의 생각이 깊어질 수 있다. 결국에는 생각의 방법과도 연결되는 이야기인 것 같다.
형식의 변화는 완전히 새로운 문을 열어준다. (중략) 하지만 우리는 종종 늘 하던 대로 셋업을 하며 그 새로운 기회를 무시하곤 한다.
p54, <Form and Magic>
책에서는 프로모션 포스터와 웹 페이지의 차이를 들어 설명한다. 프로모션 포스터는 종이 위에 출력된 정적인 물건이기 때문에, 연주자의 얼굴이나 프로그램, 가격과 공연 장소 등의 정보가 굉장히 잘 정리되어야 한다. 여기에 잘 집중한 결과물은 성공적인 프로모션 포스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원칙을 웹에 그대로 가져가더라도 실패하진 않을 테다.
하지만 웹이라는 재료를 다시 한번 살펴보면, 이 재료로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HTML 오디오로 음악이라는 전혀 새로운 레이어를 얹을 수 있게 되는데, 이건 포스터 디자인의 원칙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마찬가지의 일이 모든 디자인 영역에서 일어난다.
앱이 할 수 있는 일을 모른 채 10년 전 웹 기술로 디자인을 한다면 어떨까? 이건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던 일이고 이 일은 앞으로도 일어나게 될 것이다. 내가 만드는 결과물은 재료와 깊은 연관이 있다. 재료를 먼저 이해하는 일이 없다면 결과물은 이전 시대의 복사판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디자인에서의 문제 해결이 과녁을 맞추는 일이라면) 과녁을 맞추는 일은 일시적인 일일 뿐이다. 그리고 과녁이 움직인다는 것을 문제로 여기기보다는 기꺼이 화살통에서 화살을 하나 더 빼 그 움직이는 과녁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p79, <Content and response>
디자인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문제 해결이기도 하다. 어떠한 문제를 상정하고 거기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하지만, 답이 하나라는 법은 없다. 내가 지금 여기에서 내놓은 답이 다른 모든 곳에서 먹히리라 생각할 수도 없다.
난 예전부터 흔히 말하는 미국의 솔루션을 좋아했고, 마치 그것이 정답인 양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하는 게 ‘맞다’ 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굉장히 오만한 이야기였다.
내가 디자인하는 상황과 내 제품을 쓸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제품을 만들 수 없다. 한국인/중국인들은 왜 덕지덕지 버튼이 붙은 웹 서비스를 좋아할까? 그게 그렇게 주어졌으니까? 아니면 그 뒤에 뭔가 다른 문화적인 배경이 있기 때문에? 텅 빈 검색창만을 보여주는 것이 정답일까 아니면 그들의 원하는 많은 양의 정보를 뿌려주는 것이 맞을까? 어느 결과물을 내더라도 내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꼭 필요한 것 같다.
굉장히 좋은 책이고 계속 들춰보게 될 것 같다. 구입을 원한다면 이 사이트에서 주문할 수 있고, 전문을 여기에서 확인할 수도 있다.
원문 : nothing spec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