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색상과 사진, 타이포그래피로 장식되어 우리에게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시선을 잡아끄는 옥외 광고판. 하지만 광고판은 이제 널리 알린다는 의미의 광고로서만 기능하지 않는다. 광고 그 자체를 넘어 소외계층의 필요를 채우는 무엇으로 변신한 세계 각국의 광고판을 소개한다.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침대는 과학입니다.’
무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침대 광고계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문구 안에서 우리는 아주 단순하고도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과학에까지 비유할 정도로 침대가 중요하다는 점, 그만큼 편안한 잠자리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굳이 과학적 근거를 들이밀지 않아도 고된 육체노동에 시달린 다음 날, 의도치 않게 잠자리가 바뀐 날 우리는 온몸으로 그 차이를 느낀다. 이처럼 전날의 꿀잠은 다음날의 몸 상태를 좌지우지할 만큼 무시하지 못할 영향력을 지니는 요소이다.
만약 매일 매일 고된 육체노동에 시달리고도 피로를 풀어줄 단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어떨까?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분명 그런 이들이 존재한다. 바로 집이 없는, 딱딱한 보도블록 위에서 웅크린 자세로 새우잠을 청해야 하는 노숙인들이다.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 파키스탄에는 주요 도시마다 약 50만 명의 노숙자가 있다. 이들 대부분은 도시 외곽의 노동자로 낮에는 고된 육체노동으로 하루를 보내지만, 밤이면 자신의 몸을 누일 집 한 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딱딱한 길바닥 위에서 이불이나 판자 같은 별다른 도구도 없이 간신히 눈을 붙여야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파키스탄의 매트리스 회사 Moltyfoam은 생각했다. 모든 사람에게 꿀잠을 선사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라면, 배경과 관계없이 누구나 단잠을 잘 수 있어야 한다고.
떨어지는 브랜드 선호도를 끌어올리는 동시에 자신들의 목표를 실현할 수 있도록 그들은 한 가지를 결심했다. 일반적인 광고 제작에 돈을 쓰는 대신 그것을 기능적인 장치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바로 그 자체로 침대가 되는 Billbed를 통해서 말이다.
낮에는 평범한 옥외광고판에 불과한 Billbed는 밤이 되면 가볍게 그 몸을 뒤집어 침대로 변한다. 광고판 안에는 Moltyfoam의 매트리스가 들어있으며 외부는 비바람을 견딜 수 있는 소재로 만들어졌다. Billbed는 파키스탄 전역의 9개 도시에 걸쳐 150개 이상이 설치되었으며 프로젝트 시작 후 약 6개월 만에 그 수는 4만 개를 돌파했다.
기껏해야 20,000불, 한화로 약 2,300만 원의 비용이 든 프로젝트의 성과는 놀라웠다. 짧은 다큐멘터리 영상과 함께 소셜미디어를 통해 흘러간 Billbed의 소식은 연예인과 정치인, 일반 시민 등 수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어냈고 Moltyfoam 은 생활 제품으로 다시 한 번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 이름을 선명하게 새겨넣었다. 결론적으로 Moltyfoam의 매출은 2% 상승했으며 브랜드 선호도는 무려 68% 증가했다.
이토록 효과적인 광고 겸 CSR 전략으로 득을 본 것은 Moltyfoam만이 아니었다. 해당 프로젝트를 기획한 광고 회사 BBDO는 Billbed를 통해 2015 칸 국제 광고제에서 동상을 거머쥠으로써 그 기발함과 탁월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어쩌면 침대는 과학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침대가 가구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하기에 우리는 Billbed를 통해 그 영향력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단순한 사물로서 침대가 아닌 소외계층과 함께 모두를 위한 단잠을 생각할 때, 그것은 오히려 과학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닐 것이다.
원문 : 베네핏 매거진 / 필자 : 이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