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라이터가 필요한 회사는 어디일까? 카피라이터라는 직종(Title)으로 한정했을 때는 광고회사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카피라이터가 하는 역할(Role)을 생각한다면,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해야 하는 모든 회사에 필요하다.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곳은 광고뿐만 아니라, SNS나 유튜브, 채팅 앱, 웹페이지를 통해 브랜드가 발신하는 모든 종류의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카피라이터가 하는 일은 무엇일까
브랜드와 제품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소비자의 언어로 전달하는 것이다. 얼핏 쉬워 보이는 이 일이 절대 쉽지 않은 것은 그 둘은 ‘언어’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마케터들이 쓰는 용어와 화법이 있고, 그 업계 사람들끼리만 통하는 단어가 있다. 그것은 소비자가 봤을 땐 매우 강압적이고 전문적이고, 지나치게 상업적이다. 하지만 당사자는 이미 회사의 관점과 완벽하게 동화되어 있기 때문에 회사와 소비자의 언어가 다르다는 사실조차 모르거나,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 내용을 소비자의 언어로 바꾸어 전달하는 것은 카피라이터나, 카피라이터의 역할을 담당하는 직원의 몫이다.
문제는 브랜드와 소비자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한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 내용을 전달하는 도구가 계속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카피라이터에게는 기회가 될지 몰라도, 많은 카피라이터들은 이러한 도구의 발전이 달갑지만은 않다. 가지고 있던 도구의 특권, 즉 전파와 인쇄라는 영향력 있고 일방향적인 미디어는 점점 세분화되고 양방향적인 미디어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 커뮤니케이션의 특징이라고 하면 ‘분화(Segmentation)’와 ‘대화(Conversation)’이다. 그들의 언어는 점점 세분화되고, 브랜드와 인간적으로 대화하기를 원한다.
회사에서의 김대리와 집에서의 아빠가 다른 말을 쓰는 것처럼, 소비자를 어느 채널을 통해서 만나느냐에 따라 소비자의 언어는 달라진다. 육아 커뮤니티와 게임 커뮤니티의 언어는 남녀의 차이라고 보기에는 무리일 만큼 문체와 용어 자체가 다르다. 공개된 SNS인 트위터에는 ‘무릎을 탁 치고 갈’ 만한 해학적인 비꼼의 글들이 인기를 얻고, 반대로 카카오스토리는 따뜻하고 친근한 글과 사진이 더 많은 팔로워를 불러들인다.
따라서 채널별로 다른 언어로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다. 최근에 커뮤니티 매니지먼트의 중요성이 대두하고 있다. 많은 이슈들이 커뮤니티에서부터 시작해서 폭발적으로 퍼지는 경우가 많은데, 커뮤니티 매니지먼트를 해온 회사는 신속히 적절한 대응을 하여 부정적인 이슈를 최소화할 수 있다. 회사에 커뮤니티 팀을 두어 커뮤니티 커뮤니케이션을 관리하는 회사들도 있다. 팀에 소속된 커뮤니티 매니저들은 특정 커뮤니티에서 오래 신뢰를 쌓은 속칭 ‘네임드’로서,
1. 평소엔 커뮤니티 내의 유저들과 관계를 쌓고,
2. 이슈가 생겼을 경우 브랜드를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외국계 회사의 경우 마케팅 전략을 세울 때, 카피라이팅에 더욱 신경을 써야만 한다. 많은 회사들이 검수를 거치지 않은 발 번역, 오해의 소지가 있는 번역으로 의도치 않은 이슈에 휘말린다. 운 좋게 번역가가 카피라이팅의 경험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대부분 그 ‘번역물’은 ‘카피’와는 거리가 멀다. 이해는 되지만 말은 되지 않는, 말은 되지만 매력적이지는 않은 결과물이 나온다.
따라서 카피라이터의 정제 과정을 한 번 더 거쳐야 한다. 아쉬운 사례로는 단연 관광청의 광고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로컬라이징에 주어진 예산이 부족해서인지 카피라이터가 있는 광고회사(없는 광고회사도 있다.)를 쓰지 않고 번역만 맡긴 후 매체에 싣는 관광청의 광고들이 그렇다. 매체비를 일부 줄이더라도 광고회사의 컨설팅을 받았더라면 훨씬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반대로 번역에 그치지 않고, 완전한 한국식 카피로 거듭난 광고들이 있다. 게임회사의 경우 게임의 현지화가 중요한 성공 요인이기 때문에, 게임 내에서 뿐만 아니라 광고에도 더욱 신경을 쓰는 것 같다. 슈퍼셀(Supercell)의 클래시 오브 클랜(COC) 옥외/온라인 광고가 대표적이다.
글로벌 카피라이터 역할을 하면서 가끔씩 맞닥뜨리는 문제들이 있다. 영어 카피가 우리말로 번역될 수 없거나, 반대로 우리말이 영어로 번역될 수 없는 경우이다. 구조적인 문제로 보면 ‘라임’이 맞지 않아 카피의 맛이 살지 않거나, (이 경우 좀 오래됐지만, 메가패스의 “유쾌,상쾌,통쾌”를 생각해보면 된다. 영어로 그대로 번역하면 어떨까?) 의미로 보자면 내용 자체가 로컬에서는 공감을 끌어내기 힘들 때 특히 그렇다.
예를 들자면 모 회사의 미백치약인 ‘I am white’를 미국에서 그대로 쓸 수 있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기에는 ‘난 지금 촉촉해요’ 처럼 ‘난 하얘요’ 정도로 생각하겠지만, 외국인들은 단번에 인종차별 이슈를 떠올린다. 그들에겐 모델이 ‘난 백인이에요’라고 말하는 셈인 것이다. 이런 경우 외국인 카피라이터의 검수를 거치지 않고 그냥 외국에 집행할 경우에 낭패를 볼 수 있다.
본사와 지사와의 관계가 권위적이라면 ‘의역’보다 ‘직역’을 선호할 수도 있다.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전 세계에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결국 현지의 문화적 코드를 무시한 무리한 직역은 소비자들의 외면과 조롱에 직면한다.
해마다 뜨고 지는 미디어 채널에 대한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위기를 예방하고 대응하기 위해서 카피라이터의 역할은 반드시 필요하다. 당신의 회사에는 카피라이터가 있는가?
원문: 이성하님의 미디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