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즈음, 스타 워즈의 레아 장군, 캐리 피셔가 몸매를 들먹이며 곱게 늙지 못했다고 하는 비난에 트윗으로 직접 대응한적이 있다. 상처가 되니 왈가왈부를 그만했으면 한다고 솔직하게 얘기했는데, 본인이 쓴 트윗보다도 리트윗한 트윗이 더 인상적이다.
남자가 여자보다 더 멋지게 늙는 게 아니다. 남자는 그냥 늙어도 괜찮다고 [사회적으로] 허락받았을 뿐이다.
실로 그렇다. 예를 들어 중년이라는 표현은 성별에 상관없이 쓰이는 단어지만, 미중년이라는 단어는 유독 주로 남성에게만 사용된다. 여성에겐 미중년에 상응하는 적당한 단어가 없다.
반면 젊은 여성의 매력이나 미모에 대한 표현은 차고 넘친다. 굳이 찾아보지 않더라도 꿀벅지, 베이글 같이 몸매와 관련된 단어들이 떠오른다. 적어도 미중년이라는 단어만 놓고 보면, 사회적으로 남자가 나이 드는 건 그 나잇대의 멋으로서 용인된다고 볼 수 있지만, 나이든 여자는 용인은 커녕 애당초 그 나잇대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단어조차 제대로 된 게 없다는 현실을 깨닫게 된다.
바꿔 말해서, 사회적으로 여성의 미란 젊음과 사실상의 동의어다. 실제 아름다운 중년 여배우들을 미디어에서 묘사하는 단어들을 보면, 중년의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을 묘사하기보다는 대체로 젊었을 때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표현을 많이 쓴다. ‘동안’, ‘꿀피부’, ‘주름 하나 없는’ 같은 단어들이 그렇다.
이런 단어들은 제외하고 보자. 과연 정말로 아름다운 중년 여성을 표현하는 단어가 없을까? 한번 찾아봤다. 그나마 자주 쓰이지 않는 단어로 몇 개 찾아냈는데, 면면을 보면 더 암울하다.
- 중년 미부: 나무위키에 나오는 단어다. 미부(美婦)의 부(婦) 자는 ‘아내 부’다. 살짝 우울함을 느끼게 되는데, 중년의 아름다운 여성은 하나의 주체로서가 아니라 아내로 언급된다는 점 때문에 그렇다.
- 미시: 네이버 용어 해설에 따르면, 미시의 정의는 이렇다 — “우리나라에서는 결혼한 여성으로서 미스의 신선한 감각을 잃지 않은 타입의 사람들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아름다움의 가치가 젊음에 있다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 골드미스: 위키피디아의 정의를 보자 — “30대 이상 50대 미만의 미혼 여성 중 학력이 높고 사회적·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있는 계층을 의미하는 마케팅 용어” 이 표현은 여성의 경제력에 방점이 찍힌 표현이지, 결코 아름다움에 방점이 찍힌 표현이 아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굳이 남성의 미중년에 상응하는 여성용 단어를 찾는 게 아니라, 그대로 미중년이라는 단어를 여성에게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이 여성 또한 나이 든 아름다움 — 나이 들어서도 간직하고 있는 젊었을 때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나이 든 여성에게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움[1] —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사회적으로 여성이 나이 드는 것을 용인할 수 있도록 조금씩 우리의 의식을 개선하는 방법이다.
단어 하나 때문에 PC한 — 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으로 올바른 — 척을 하고 싶진 않다. 그보다는 그냥 이런 것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들의 무의식에 작용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TV의 개그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외모 혹은 여성 비하 개그는 이젠 너무 뚜렷해서 쉽게 거부감을 표시할 수 있지만[2], 이런 미묘한 단어들은 민감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것들에 노출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무의식이 쌓여 하나의 구체적인 의식을 형성한다. 이런 경우라면, 여자가 나이 드는 걸 어느 순간부터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는 얘기다. 할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거기에 거부해야 한다.
- 흔히 미디어에서 소비되는 모성, 즉 국민 엄마 같은 이미지는 결코 아니다. 만약 그런 이미지를 적용하고자 한다면, ’엄마라는 여성이 아니라, 여성인데 엄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 이제 2016년이다. 이런 건 없어질 때가 되지 않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