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SF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SF는 과학적인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쓰기 어렵다.”라는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과학적 원리로서 말이 안 된다, 는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왜 SF에만 비판이 따라야 할까요?
물론 네이버 지식인 광고에서 ‘스타워즈 레이저검의 원리’ 같은게 나오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비판이 아니라 단지 궁금증의 한 종류일 뿐이었지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어차피 대다수 사람은 SF건 판타지건 별다르게 보지 않습니다.스타워즈에서 칼 들고 싸운다고 해서 판타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우주가 나오고 우주선이 나오고 로봇이 나오고 하니 SF겠구나, 라고 생각하죠.
아바타에서 행성 전체의 의식이 하나로 연결된 설정이 등장합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냥 대다수 사람은 그러려니, 하고 보죠.
물론 과학적인 고찰이니 뭐니 굳이 따지는 사람이나 작품이 있긴 합니다. 대표적으로 <공상비과학대전>이나 <스타트렉의 물리학> 같은 것이죠. 하지만 이는 비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여흥이었습니다.
“방사능으로 고지라가 되는 건 말도 안 돼.”라고 말한다고 해서 “고지라가 재미없어.”라는 말은 아닙니다. 단지 그 내용으로 ‘놀이’를 하고 싶을 뿐이니까요.
고지라가 재미있고 이야기가 그럴 듯하다면 고지라가 방사능에 의해서 그렇게 되건 우주 괴수라서 그렇게 되건, 아니면 세균 병기로 그렇게 되건 별 상관없습니다. (물론 이야기 구조는 많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만)
하지만 일부 분들은 SF를 ‘과학 소설’이라 인식하고 글을 쓸 때 굳이 이런 걸 신경 쓰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아니, 몸담은 장르가 판타지나 무협, 추리라고 해도 별 차이는 없을 겁니다. 설정이 100%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과학적으로 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중요한 건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는가 아닌가입니다. 그 우주선이 하이퍼 스페이스를 통과하건, 알큐비에르 엔진으로 날아가건 하는 게 아닙니다. 그들이 구축한 세계 안에서 이야기가 재미없거나 말이 안 되면 여러 가지 비판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과학적으로 말이 되나, 되지 않나에 대한 지엽적인 비판은 아닐 것입니다. 어차피 SF의 과학은 진짜 과학이 아니라 상상 과학이라는 인식을 모두 공유하고 있으니까요. 반드시 현실 속에서 이루어져야 할 과학이 아니니까요.
19세기에 쓰인 쥘 베른의 소설 <지구에서 달까지>는 사실 과학적으로 말도 안 됩니다. 하지만 글을 읽다 보면 왠지 그럴듯해 보이고 정말로 가능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말이죠.
“그냥 그럴듯해 보인다.”
이게 SF에서 말하는 과학적 상상력이고 가능성입니다.
때로는 <공상비과학대전>처럼 “과학적으로 말이 안 돼.”라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설정에 오류가 있다고 열변을 토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굳이 SF라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단지 그런 딴죽을 걸고 싶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할까? 여기 한 사례가 있습니다. 어느 날, 미국의 유명한 SF 드라마 <스타트렉>과 관련하여 한 사람이 제작진에게 스타트렉의 워프 엔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는 씩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하죠.
“아주 잘 작동합니다. 감사합니다.”
SF 속에서의 과학은 사실 그런 겁니다. 이야기의 진행에 충분할 만큼 잘 작동하기만 하면 문제는 없는 거죠. 이야기가 잘 진행된다면 그 속의 과학이 정확하건 아니 건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반면 이야기가 엉성하다면 설사 과학적인 설정이 아무리 정확해도 재미없는 건 재미없는 겁니다.
그리고 SF의 재미는 과학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과학적 상상’으로 펼쳐낸, 치밀하고 잘 조직된 이야기에서 나오는 거죠.
원문: 표도기의 타임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