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이 스토리에서 어떻게 ‘절정’을 만들지?
게임 스토리텔링, 정확히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가장 큰 매력은 ‘플레이어가 주도적으로 체험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가장 큰 단점도 ‘플레이어가 주도적으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플레이어가 주도적으로 체험하기 때문에,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자칫 ‘완성도 높은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 있어 장애물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발단 부분에서 충격은 매우 약하고, 적의 위협도 어중간하게 느껴지고, 주인공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당위성도 부족해 보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전개에서는 계속 같은 과정이 반복됩니다. ‘게임 플레이’이기 때문에 항상 성공하고요.
스토리를 만들 때에는 ‘주인공이 시련을 겪으면서 때로는 실패하고, 그 실패를 극복해내기 위해 어떻게든 발버둥 치는 과정’이 재미있는 법입니다. 그런데 게임에서는 플레이에 실패할 경우 여지없이 게임 오버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항상 성공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위기감과 재미가 하락하게 되죠.
대개 발단, 전개에서 이끌어 온 이야기들은 절정 부분에서 극적인 충돌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게임 플레이’라는 측면이 장애물로 작용합니다. 보스를 무진장 세게 만들어서 위기감을 심어주고 싶어도, 플레이어가 성 주변을 뺑뺑 돌며 레벨 99까지 올려 버리면 레벨 58의 보스 따위는 한주먹도 안 되거든요.
이처럼 발단, 전개, 절정 부분에서 뭔가 흐릿하게 진행되었다면, 결말 부분에서 여운이 남을 수 없습니다. 여운을 남기겠다고 동영상을 잔뜩 넣어두었다가는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는 동영상 때문에 게이머가 자리를 비우지도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죠.
레벨 디자인 관점에서 보아도 플레이어에게는 정확한 정보가 주어져야 하기 때문에 위기가 위기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뻔한 함정을 던져주면 피해 버리면 그만이니까요. 이처럼 ‘게임 플레이’라는 특성은 기존의 스토리텔링 이론을 완전히 망가뜨리며, 게임의 이야기를 재미없게 만들어 버리고 맙니다.
‘게임’이라는 매체의 특성에 대해서 완벽히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죠. 게임 플레이는 기존의 어떤 스토리텔링 작품에서도 느낄 수 없는 매력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스토리 상 파티원이 빠져 버렸을 때에는 뭔가 아쉬움을 느끼게 되죠. 이로써 파티원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보스의 파라미터 하나만으로도 뭔가 대단하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죠. 게다가 NPC를 찾아다니면서 하나씩 단서를 얻으며 범인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어떤 추리물보다도 흥미롭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제한된 시간 내에 답을 선택해야 하는 과정은 또 어떤가요, 초조한 긴장감을 끌어내기에 안성맞춤이죠. 수많은 플레이어와 함께 레이드를 마치면서 강대한 적에 맞서 힘을 합치는 재미도 줍니다.
애초에 모든 매체의 스토리텔링을 동일하게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영화를 위한 비주얼 스토리텔링이 소설의 텍스트 스토리텔링과 다르고, 만화의 스토리텔링은 애니메이션의 그것과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게임 스토리텔링,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기존의 어떤 스토리텔링과도 동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단 하나뿐입니다. ‘매체’를 통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나아가 주제나 철학이라고 할 만한 것을 전달한다는 점이죠. 하지만 매체가 다른 만큼 각 매체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스토리텔링의 매력을 최대한 높이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조던 매크너와 코지마 히데오는 일찍이 영화 제작자를 꿈꾸었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기법을 끌어와 게임에 도입하며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폭을 넓혔죠.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동시에 ‘게임’이라는 매체의 특성도 제대로 파악하고 활용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슈퍼 마리오>나 <소닉>처럼 대사 한 줄 없이도 세계를 구하는 모험 스토리텔링의 매력을 전해줄 수 있는 것이 게임입니다. 단순히 펭귄이 돌아다니는 레이싱 게임(<남극 탐험>)에 약간의 매력을 더함으로서 <펭귄 왕자의 대모험(<꿈의 대륙>)으로 완성해낼 수 있는 것도 게임입니다.
게임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고 있다면, 아니 게임 기획자 혹은 게임 제작자를 꿈꾸는 이라면 이러한 점에 대해서 잘 생각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소설이나 영화나 만화 등을 제작하던 이들이 그들의 매체를 기준으로 게임 스토리텔링을 재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게임 시나리오 작가는 게임 디자이너이며 동시에 게임 제작자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게임을 많이 해보고 그 특성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게임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우선은 여러 다양한 게임을 해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매체를 접해 보시기 바랍니다. 앞서 말한 코지마 히데오가 대성하게 된 것은 게임을 열심히 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익숙한 소설, 영화 등의 스토리텔링을 능숙하게 접목시킬 방법을 끝없이 연구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설만 쓰다가 게임 스토리텔링을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게임만 하고서 게임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매체로서의 특성은 다르지만, 스토리텔링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매체를 통해서 주제와 철학을 전달하고 재미를 준다’는 점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원문: 표도기의 타임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