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가 자랑하는 세계의 불가사의인 피라미드는 엄청난 양의 거대한 돌을 쌓아서 만들었습니다. 그 내부에는 왕가의 무덤이 있다고 하는데, 그곳으로 연결되는 통로에는 곳곳에 아름다운 장식과 그림이 있어 방문객에게 감동을 주죠.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어두운 피라미드 안에서 어떻게 이런 예술품을 남길 수 있었을까요? 횃불같이 불편한 물건은 별 도움이 안 될 텐데. 게다가 어디를 보아도 횃불을 사용한 그을림 같은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피라미드 내부엔 횃불을 켤 만한 공기가 부족합니다. 그들에겐 혹시 다른 도구가 있었던 게 아닐까요?
여기에 한 이미지가 있습니다. 이집트의 한 신전에서 발견된 이 부조는 기묘한 물건을 가진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뭔가에 둘러싸인 뱀 모양의 존재. 사람들이 이를 숭배하듯 주변에 앉아 있습니다. 이 모양이 뭔가를 닮지 않았나요? 바로 그렇습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백열전구.
에디슨이 처음으로 실용화한 그 물건에 가까워 보입니다. 고대 세계에 이미 전지가 있었다고 하는데, 전기를 쓸 수 있었다면 전구를 사용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전구라면 어둡고 산소가 부족한 피라미드 내에서도 불을 밝힐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수천 년 전의 미개하고 무지한 이집트인이 어떻게 이 같은 고등 기술을 쓸 수 있단 말인가요? 그래, 분명히 누군가 가르쳐준 겁니다. 분명히 저 멀리 어딘가에서 온 굉장한 기술을 가진 누군가… 바로 고대에 지구를 찾아온 외계인 우주 조종사!
역사 중심의 다큐멘터리와 주로 역사 소재의 리얼리티쇼를 선보이는 히스토리 채널의 인기 시리즈 중 〈에인션트 에일리언(Ancient Aliens)〉이 있습니다. 고대의 신비한 기술이 외계인에서 비롯되었다는 내용의 이 방송은 ‘고대의 외계인 우주비행사 설’을 내세우는 에리히 폰 다니켄 등 여러 저술가의 주장을 바탕으로 매회 다양한 내용을 선보이는 시리즈로 2009년 시작된 이래 지금도 계속 제작됩니다.
이 시리즈가 인기 있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은 그 내용이 왠지 그럴듯해 보인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왠지 그럴 것 같은 느낌. 게다가 고대의 역사에 대해서 좀 더 다른 방향에서 볼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일 것입니다. 여기서 소개된 여러 이야기 중 2009년에 제작된 0화, 파일럿에서 소개된 ‘고대 이집트의 전구’라는 것도 그처럼 그럴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 내용을 줄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신전 내부는 좁고 불편하다. 라이터를 켜고 들어가면 오래지 않아 꺼지는 것을 볼 때 횃불을 쓰기 좋은 환경이 아니다. 게다가 그을음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횃불을 사용하지 않은 게 틀림없다. 인간은 어둠 속에서 일할 수 없는 만큼 조명이 필요한데, 덴데라 지방에 있는 하토르 신전에서 발견된 부조를 보면 왠지 전구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 모양대로 전구를 만들었더니 정말로 작동한다!
처음 이 내용을 보았을 때 정말로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뭔가 그럴 듯했기 때문이지요. 위의 주장대로, 뭔가 피라미드와 횃불은 연결되지 않아 보였고, 그 부조의 물건은 정말로 전구처럼 보였습니다. 인터넷에서도 ‘고대 이집트 전등’이라고 검색해 보면 이 이야기를 잔뜩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이 이야기가 ‘놀랍다’ ‘신기하다’면서 수긍하지요.
그렇다면 이 내용은 사실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대 이집트의 전구’라는 주장은 그럴듯하긴 해도 사실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여러 가지 억지 주장과 잘못된 추론, 그리고 고대 문명에 대한 무지가 연결되어 만들어진 그럴듯한 이야기일 뿐이지요. 어째서 그런지 ‘고대 이집트 전구설’의 주장을 하나씩 검증하면서 정리해보겠습니다.
1. 산소가 부족해서 횃불을 사용할 수 없다는 주장
〈에인션트 에일리언〉에서 에리히 폰 다니켄은 신전 내부에서 라이터를 켜보이지만, 오래지 않아 꺼집니다. 그러면서 ‘이처럼 산소가 부족하다.’라는 이야기를 하지요. 바로 이것이 이 주장의 첫 번째 내용이며 뭔가 그럴듯한 부분입니다. 잠깐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이윽고 궁금한 점이 생겨납니다.
‘그렇다면 다니켄과 촬영자는 어떻게 숨 쉬고 말하는 걸까?’
불을 사용하려면 산소가 필요하지만,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도 산소는 필요합니다. 불이 사람이 숨을 쉬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산소를 소비하는 건 맞지만 지포 라이터의 불이 꺼질 정도로 산소가 부족하다면 사람이 숨을 쉬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산소가 부족한 느낌’이라고 말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하고 피라미드 내부를 돌아다닙니다.
사실 그건 당연한 일입니다. 피라미드는 완전히 밀폐된 장소가 아니거든요. 피라미드 내부에는 수많은 통기구가 있으며,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더욱 많았습니다. 게다가 여기저기 균열이 있고 구멍이 나 있기 때문에 산소가 부족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공기가 부족해서 라이터 불이 꺼진다.’라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다니켄의 라이터가 불량품이거나 특별한 물건인지도 모르겠지만 라이터 불이 금방 꺼져버리는 환경에서 그들이 평범하게 말하고 살아가는 것, 사람들이 편하게 숨을 쉬고 말을 하는데 횃불을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은 이상합니다. 즉 피라미드 내부에서 불을 쓸 수 없다는 주장은 맞지 않습니다.
2. 그을음이 없으니 불을 쓰지 않았다는 주장
다니켄은 피라미드 내부에 그을음이 없어서 불을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불을 쓴다고 해서 그을음이 생긴다는 주장 자체에 문제가 있습니다. 생각해 보죠. 여러분의 주택에는 그을음이 가득한가요? 주방 천장이 새까만가요? 여러분의 집에서는 가스를 계속 쓰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때마다 집안이 연기로 가득 차나요?
불이 있다고 해서 연기가 생기는 게 아니며, 그을음이 반드시 생기는 법은 없습니다. 일부로 그을음을 내서 까맣게 만들려는 경우가 아니라면 벽이나 천장이 새까맣게 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고대 세계에 조명이라는 것이 횃불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요. 실제로 생긴 모양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이집트 상형 문자 중에 심지(Wick)를 뜻하는 문자()가 있습니다.
이는 이집트에 심지를 사용하는 등불이 있었다는 뜻인데, 피라미드 내에서도 세워진 등불이 발견되곤 하며 무덤이나 가정의 유적 등에서도 접시에 심지를 담은 등불을 찾을 수 있습니다. 등불은 연기도 그을음도 별로 생기지 않습니다. 특히 올리브 기름 같은 식물성 기름이라면 더욱 연기가 적게 생기죠. 피라미드같이 좁은 통로를 다니는데 횃불보다는 등불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 그을음이 없기 때문에 불을 쓰지 않았다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3. 횃불을 쓰지 않았다는 주장
등불을 쓰면 그을음은 생기지 않습니다. 횃불밖에 쓸 게 없다는 것은 이집트의 문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 봅시다. 정말로 횃불을 쓰지 않았을까요? 횃불을 쓰면 그을음이 생기고, 문제가 있는 걸까요?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대한 탐사는 근래에 처음으로 시작된 게 아닙니다. 꽤 오래전부터, 적어도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기 한참 전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고대 세계부터 피라미드에 대한 도굴이 끊이지 않았는데, 실례로 현재 기자의 피라미드에서 사용 중인 통로는 사실 9세기 초반 압바스 왕조의 칼리프 알 마아문이 보물을 찾기 위해 뚫은 통로입니다.
알 마아문의 부하들이 어둠을 뚫고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을 것 같지도, 어둠 속을 손으로 더듬으며 돌아다녔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아마도 횃불이나 등불을 들었겠지요. 피라미드에 대해 이른바 근대적인 탐사가 이루어진 것은 18세기 초의 일이지만 그 전부터 비밀리에 유명한 관광지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거대한 유적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돌아다니는 것을 지옥의 여행처럼 생각했다고 하죠. 물론 공공연한 관광 시설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만…
그들 역시 횃불이나 등불 같은 걸 이용했을 겁니다. 아직 전기 등은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이건 물론 18세기 초에 피라미드를 조사한 유럽의 학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전구를 가지고 피라미드 내부를 돌아다니지만, 그렇다고 횃불이나 등불을 사용할 수 없는 건 아니죠(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피할 뿐입니다). 그들이 횃불을 썼다면 그을음이 남지 않았을까요?
지금이야 문화유산 보호를 생각해서 횃불을 들고 가지 않지만, 과거에는 그걸 무시한 사람도 많았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횃불을 거침없이 사용한 모양이죠. 다니켄은 보지 못한 모양(아니면 무시한 모양)이지만 묘실 천장 등에는 분명히 검은 그을음이 남았습니다. 그것이 이집트 시대의 것은 아닐지 몰라도 “그을음이 없다”는 말도 허구임을 알 수 있습니다.
4. 이집트인이 전구를 사용했다는 주장
앞서 내용을 통해 그들의 주장이 모두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지만 ‘고대 이집트의 전구’라는 주장에는 그보다도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전구가 있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아무것도 없다’는 점입니다. 공기가 없어 불을 쓸 수 없다는 것, 그을음이 없어 불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이 곧 ‘전등을 사용했다.’라는 주장은 되지 않습니다.
불이 없다고 해도 피라미드 내부의 조각 등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사실 피라미드 내부 구조는 지금은 ‘내부’이지만, 처음부터 내부였던 게 아닙니다. 아래서부터 쌓아 올리면서 내부가 된 것이죠. 그림이나 조각이라면 터널 안에 들어가서 하기보다는 밖에서 하는 게 편하나 고대 이집트인은 분명히 밝은 낮에 조각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천장에 뭔가를 그리고 싶어도 만들고 그리기보다는 그려서 끼워 넣는 게 더 편하겠지요. 따라서 전구가 없어도 작업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위의 말이 모두 맞아도 전구를 썼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고대 이집트의 유적에서 지금껏 전구나 전기와 관련된 어떤 것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피라미드 건설 당시 전구가 사용되었다고 한다면(특히 피라미드를 세우는 기간 내내 전구를 썼다고 하면) 굉장한 전력 시설이나 엄청난 양의 전지가 필요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집트 어디에서도 그런 건 발견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피라미드나 왕가의 계곡에서도 기름을 사용하는 석등밖에는 없습니다.
이집트인들이 피라미드 건설에 전구를 사용했다면 실생활에서도 전구를 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서민들은 쓰지 못했다고 해도 왕족이나 귀족은 충분히 쓸 수 있었을 겁니다. 사후 세계를 중시하는 이집트의 특성상 그들의 무덤에는 실생활에 사용한 물건을 남겨 두었을 텐데 이제껏 발견된 그 어떤 무덤에서도 전구나 전지처럼 전기와 관련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이 당시에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입니다.
고대 세계에서 전기와 관련된 유물로 추측되는 것이 발견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바그다드 지역 외곽에서 피라미드보다 한참 뒤인 기원전 250년 정도에 제작한 것으로 추측되는 전지로 보이는 물건이 발견되었죠. 일설에는 전기 도금에 사용했다고 이야기하지만, 발견된 장소와 여러 가지 추측으로 볼 때 일종의 전기 치료에 썼을 가능성이 더 유력한 물건입니다.
참고로 전기뱀장어나 전기메기를 이용한 전기 치료는 고대에 이미 실존했습니다. 바그다드 배터리는 1.1볼트로 위력은 약하지만 직류 전지인 만큼 몇 개만 연결해도 자극 효과는 충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집트에서 그런 게 발견된 일은 없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크리스토퍼 던이라는 저술가는 기자의 대 피라미드가 전력 발전소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피라미드 건물 전체가 석영 성분이 풍부한 화강암으로 되어 있는데, 지구의 저주파 진동을 전기 에너지로 변환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겁니다.
석영이나 수정 같은 압전 물질에 압력을 가하거나 늘이는 기계적인 일그러짐을 이용해서 전기를 만들어 내거나 반대로 전기를 가해서 석영에 기계적인 힘을 발생시키는 압전 효과는 고대의 외계 문명 이론가들이 자주 내세우는 이론입니다. 시계나 스피커, 심지어 전자 라이터 같은 여러 가지 물건에 응용하는데, 일본 등에서는 석영을 많이 함유한 바위에서 파괴 시에 발생하는 압전 효과로 생기는 전기 신호를 포착해서 산사태 예측 등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압전 효과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지만, 이로 인해 발생하는 전기는 대개는 큰 저항을 가진 만큼 전압은 높아도 전력량은 크지 않습니다. 실례로 전기 라이터를 사용해 보면 분명히 전압이 높아서 따끔거리고 불꽃이 튀지만 감전될 정도는 아니거든요. 순수한 석영이 아니라 화강암과 같은 바위에서 발생하는 전력은 더더욱 미약합니다. 실제로 화강암을 사용한 실험 결과 거의 파괴될 정도로 강한 압력에서도 나오는 전기량은 포착하기 힘들었는데, 특히 건조한 상태에서는 수치를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약했다고 합니다.
피라미드가 엄청난 양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지구에서 발생하는 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 미약한 진동 정도로 전구를 밝힐 만한 전력을 생산할 수는 없으며, 하물며 이집트처럼 건조한 곳이라면 더더욱 가능성이 낮습니다. 사실 화강암을 모아둔다고 해서 전기를 만들 수 있다면 화강암 채굴장 같은 곳에는 항상 전기가 넘쳐나야 할 것입니다. 피라미드 모양이 전기를 생산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다른 글에서 설명했듯 그건 뾰족한 장소에 전기가 모이는 현상일 뿐이며 역시 대단한 양이 아닙니다.
압전 효과는 강한 힘을 가했을 때 기계적인 변형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인 만큼 단순한 진동이 아니라 물체가 변형할 만큼 압력을 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구에서 발생하는 저주파 소음은 이러한 효과를 내기에는 너무 미미하며, 제아무리 석영이 많이 포함되었다고 해도 화강암에서 전구를 켤만한 전기를 생산할 만큼은 못됩니다.
‘화강암 자체의 무게 때문에 괜찮지 않냐’고 주장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렇다면 묻고 싶습니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은 전기를 생산하나요? 압전 효과는 역학적 압력을 가함으로써 형태 변화가 발생할 때 생겨나는 것이지 계속 누르고 있다고 해서 전기가 계속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기자 피라미드가 발전소’라는 주장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습니다.
허구의 가설과 현대인의 오만
이집트인이 전구, 아니 전기라도 사용했다는 증거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전구 가설’은 타당한 가설이 될 수 없습니다. 이처럼 ‘고대 이집트의 전구’ 가설이 타당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그럼에도 이 가설은 매력적으로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그랬기 때문입니다. 이 설은 〈스타게이트〉 같은 영화나 드라마, 〈스프리건〉 같은 만화의 소재로도 인기를 끕니다.
“고대인이 이만한 기술을 가졌다니”라며 경이롭게 느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에리히 폰 다니켄을 중심으로 한 ‘고대 외계인 우주 조종사(또는 고대 외계인 문명)’설은 고대인을 향한 경이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을 좀 더 깊이 파고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 세계를 석권하는 고대 유럽인들이 원시적인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사실은 이 말도 사실이 아닙니다. 고대 유럽에도 문명이 있었다는 증거가 많으니까요.) 지금 후진국에 불과한 야만적인 이집트의 고대 원주민이 거대한 피라미드를 만들고 굉장한 문명을 구축했을 리가 있어? 분명히 누군가가 그들을 시켜서 만들게 한 거야.”
고대 이집트인들이 전구를 만들었다고 해도, 그것이 외계인과 연결되어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뭔가 이상한 게 있다면, 더 정확히는 그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게 있다면 제멋대로 외계인과 연결하여 생각하고 추측합니다. 고대의 외계인 문명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사실 고대의 문명에 전혀 관심도 존중도 갖지 않습니다. 단지 자신이 주장하고 싶은 바를 위해 고대 문명을 이용할 뿐입니다.
이집트의 문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최소한 이집트에는 등불이 있었다는 점 정도는 알았을 것입니다. 아니, 피라미드 내부에 등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았겠지요.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눈으로 본(보았다고 생각한) 사실만을 가지고 추측해서 이야기를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고대 이집트인들을 외계인의 노예나 하인 정도로 전락시켰습니다.
이집트의 문명에 조금만 관심을 가졌다면 하토르 신전의 부조가 전구가 아니라는 정도는 쉽게 알았을 것입니다. 심지어 그 부조 주변에는 부조에 대한 설명이 있음에도 그들은 이를 무시하고(또는 자기 마음대로 바꾸어 해석하고) 단지 ‘그 모양이 자신이 아는 전구와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전구라고 확정 지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양의 전구를 만들어 놓고는 ‘이게 고대 이집트의 전구다.’라고 말하죠.
이건 증거가 아니고 과학도 역사도 아닙니다. 전구를 어떤 모양으로 만들건 그 전구는 작동합니다. 전구의 유리가 둥근 모양이 아니라 모아이나 스핑크스 모양이라도 그 안에 필라멘트를 넣고 전기를 흘리면 빛이 납니다. 빛이 나는 건 전구 모양 때문이 아니라 필라멘트에 흐르는 전기로 인해서 열이 발생하고 그 결과 필라멘트가 달아오르기 때문이거든요.
극단적으로 말해서 진공으로 만들지 않아도 빛은 납니다. 전기풍로를 생각해 보세요. 다만 필라멘트가 쉽게 타버리지 않도록 진공으로 만들거나 질소를 채웠을 뿐입니다. 전구의 모양이 부조와 같다고 해서 부조가 전구라는 증거는 되지 않습니다.
하물며 이것이 전구라고 하면 매우 이상한 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유리구라고 주장하는 것 안에 든 물체는 아무리 봐도 음극과 양극이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이게 필라멘트라면 음극과 양극이 없이 구부러진 막대기 모양의 필라멘트라는 말이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그들은 안에다가 뱀 모양의 유리관을 만들어 넣고 다시 그 안에 필라멘트를 넣거나 네온등으로 만들어서 해결합니다. 그래도 이상합니다. 네온등이라고 해도 그 안에 있는 건 뱀 모양이거든요. 잘 보면 눈에다 입까지 있습니다. 그들은 고대 이집트인의 그림을 가능한 그대로 그리려 했고, 이것이 뱀이라는 것을 무시합니다.
처음부터 “이건 전구야, 그러니까 이건 필라멘트여야 해.”라고 정해버리고서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이따금 고대의 외계인 문명론자들은 “과학은 이 경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지만 과학적인 방법을 시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과학적인 방법으로는 그들이 말하는 결론을 따를 수 없기에 무시하는 겁니다. 위의 압전 이론처럼 과학적인 내용을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천장에 또렷하게 보이는 그을음조차 무시하고 산소가 부족해서 불이 꺼진다는 허황한 주장까지 꺼냅니다. 이집트의 문화를 생각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당시 이집트인을 ‘외계인으로부터 기술을 얻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하는 미개인’으로 생각하면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부조의 진실: 세계의 이치가 담긴 신화
‘고대의 이집트 전등’이라는 허황된 이야기는 잊어버리고 원점으로 돌아가 도대체 저 부조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외계인이나 전등이라는 것은 잠시 잊고, 고대 이집트인의 시점에서 이들을 살펴봅시다. ‘덴데라 전등 그림’이 발견된 덴데라 신전군은 덴데라 지역으로부터 2.5km 남동쪽에 떨어져 있습니다.
이 지역은 이집트의 초기부터 사원이나 신전을 위한 장소로 사용되었는데, 하토르 신전은 그중 하나입니다. 기쁨을 뜻하는 하토르 여신을 모시는 신앙은 특히 축제를 자주 여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이곳에서는 특히 새해에 ‘태양의 순환’을 기념하는 축제가 열리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축제 과정에서 사람들은 이곳의 수많은 방을 돌며 태양의 순환을 기념하고 참배합니다. 벽에는 이를 위한 조형이 있는데, 일부 사람들이 ‘두 개의 전등’이라고 부르는 부조 역시 이곳의 벽에 남겨진 내용 중 하나입니다.
뭔가 장치처럼 여겨질지도 모릅니다. 특히 오른쪽의 조형은 더욱 기계처럼 보이죠. 이를 척 보고 ‘전구’라고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집트 문명, 신화를 조금만 알면 그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집트 신화 속에서 세상은 아무것도 없는 바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태초의 바다인 ‘누(바다)’로부터 한 송이 수련이 피어오르고, 그 수련으로부터 이집트 최초의 신인 ‘태양(바다뱀, 아툼)’이 태어났습니다. 갓 태어난 태양은 닫힌 하늘(누트)로부터 보호를 받아 성장하고, 하늘 위로 높이 솟구쳐 서편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서편에 도달한 태양은 누트의 몸으로 돌아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태양은 이 같은 ‘삶과 죽음의 순환'(제드)을 맞이하지만, 다음 날에는 다시금 새로운 삶을 되찾아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됩니다. 그렇게 계속되는 태양의 순환은 이 세상이 계속되는 한 영원히(헤흐) 이어집니다.
하토르 신전의 부조는 바로 위의 신화를 표현한 것입니다. 신성한 이집트 수련()으로부터 태양신 ‘아툼()’이 태어나고 있습니다. 낮에는 ‘라’로 변하는 아툼은 여러 모습으로 불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바다뱀 모습이었습니다. 연꽃으로부터 태어난 바다뱀, 아툼은 아직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늘'(누트, )의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누트는 닫힌 하늘의 모습으로 아툼을 보호합니다.
가장 성스러운 존재인 태양이, 신성한 존재인 하늘의 보호를 받는다는 점에서 이집트인들은 이를 “태고의 신성하고 성스럽고 성스러운 곳()”이라고 불렀습니다(이 모양을 보고 또 ‘전구’라고 대답하는 분이 있나요? 누트신을 나타내는 하늘의 그릇 안에 바다뱀이 든 모양입니다). 이 신성한 순간을 여러 신이 우러러보는데 눈에 띄는 것이 ‘영원’을 상징하는 신 ‘헤흐()’입니다. 그녀는 하늘의 그릇을 소중하게 떠받들며 이 순환이, 영원이 계속될 것을 약속합니다.
여기에서 빠진 설명이 있습니다. 왼쪽의 부조는 헤흐가 받치고 있지만 오른쪽의 부조에는 다른 존재가 있습니다. 마치 받침대나 기계 장치처럼 보이는 물건. 이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위에서 소개한 ‘삶과 죽음’ 즉 제드(Djed, )입니다. 이는 저승의 신 오시리스의 등뼈, 세트에게 살해되어 산산 조각났던 오시리스의 시신을 연결했던 왕실의 기둥을 상징합니다.
그의 죽음을 나타내는 한편 새로운 삶을 이끈 존재로서 ‘삶과 죽음’을 상징하는 오시리스의 등뼈는 삶과 죽음, 그중에서도 죽음 뒤의 삶을 소중하게 여겼던, 이집트의 유적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오시리스의 등뼈가 태양의 탄생 순간을 떠받들고 있다는 것은, 이것이 삶과 죽음을 동시에 나타낸 것이라는 뜻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살펴볼 때 이 부조는 너무도 멋진 신화의 한 장면인 동시에 세상의 이치를 표현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상상해 봅시다. 새해를 기념하는 축제의 한 가운데에서 이 부조를 본 고대 이집트인들은 신성한 수련으로부터 태양이 태어나서 금방이라도 하늘을 열고 바깥으로 나올 듯한 장면에 새해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올랐을 것입니다. 영원을 뜻하는 헤흐 여신의 모습은 이 같은 삶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러한 기대를 더해줍니다. 한쪽에는 죽음을 뜻하기도 하는 오시리스의 등뼈가 하늘을 향해 있습니다.
이를 통해 고대 이집트인은 ‘희망의 순간’이기도 한 태양의 탄생이 삶과 죽음 순환의 일부임을, 태양은 태어나는 것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는 사실에 숙연해지고 지금 현재의 삶이 아무리 좋더라도 결국 죽음이 찾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겁니다. 어쩌면 한숨을 쉬며 태양조차도 피할 수 없는 죽음에 경외감을 느꼈을지도 모르지요…
맺는말
현대인의 눈으로 고대의 삶을 바라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도 모르게 고대인이 아닌 현대인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니까요. ‘고대의 이집트 전구’라는 가설은 바로 그러한 점에서 지극히 현대적인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그만큼 그럴듯하게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수긍하기 전에 한 발짝 더 나아가 살펴보면 이처럼 멋진 발견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고대의 외계인 문명설’이라는 특이한 이야기를 보고 즐거워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또 다른 사실을 만나는 것이지요. 모든 것은 고대인들 역시 우리와 같은 인간임을 생각하고 그들을 이해하려는 자세에서 나온 것, 그리고 궁금한 점을 그냥 넘어가기보다는 조금 더 바라보면서 생각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수많은 고대의 외계인 문명설 중에서도 특히 이 이야기를 소개한 것은, 이것이 저 역시 한때 혹했을 만큼 그럴듯하게 들리는 동시에 고대인을 이해하지 않으려는 현대인의 오만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삶이 있었고 그들의 생각이 있었음을 한 번쯤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 문명의 다채로운 양상을 생각하고 이를 존중하는 것이기에.
원문: 표도기의 타임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