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디아나 존스 4>에서 인디아나 존스는 마야의 수정 해골을 둘러싸고 소련의 공산주의자들과 맞서게 됩니다. 일반적인 것과 달리 머리 뒤쪽으로 길게 뻗은 그 기묘한 수정 해골은 도저히 인간의 것으로 보이지가 않지요.
결국 그들은 수정 해골을 갖고 유적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 외계인의 두개골 그 자체였습니다. 수정 해골이 모두 모이게 되자 외계인은 의식을 되찾고, 그들은 곧 자신들의 고향으로 날아갑니다….
흥미롭게도 이 영화가 개봉되고 몇 해 뒤 멕시코의 한 지역에서 이처럼 기묘하게 생긴 모양을 한 해골들이 발견됩니다. (물론 그 전에 이런 해골이 아예 발견되지 않은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대량으로 발견된 건 처음이었지요) 일각에선 ‘외계인의 뼈’라면서 흥분했고, 일부 사람들은 자칭 학자라는 이들의 입을 빌려 ‘이들은 명백하게 인간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지요. (물론 진짜 학자들이 그렇게 말한 일은 없습니다. DNA 검사 결과 이 두개골은 모두 인간의 것이었으니까요)
지금도 ‘마야 외계인’이라고 검색해 보시면 인터넷 여기저기서 이 뼈가 외계인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글을 보게 됩니다. 사실 이 같은 형태로 만들어지는 병이 없는 것 아니지만, 한 자리에서 발견된 뼈 여러 개가 동시에 이 같은 모양을 한다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죠. 저 역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궁금했지만, 답을 알 수 없었지요.
하지만 답은 예상 밖으로 가까운 지점에 있었습니다. 바로 이들은 ‘고대 종교의 희생자’, 아니 그보다는 ‘고대의 극성 부모의 희생자’였던 것이지요.
종교의식에는 매우 다양한 형태가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연기’라는 측면을 뺄 수가 없습니다. 애니미즘이나 샤머니즘 같은 원시 종교로부터 그리스나 노르드족, 또는 마야나 잉카 등에 이르는 고대 종교에 이르기까지(아니 심지어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교 같은 세계 종교까지도) 모든 종교는 인간이 타고나면서 할 수 있는 ‘연기’라는 특성을 통해서 의식화됩니다.
종교 의식을 통해서 인간은 스스로가 신 또는 신의 힘을 받은 무언가라고 인식하고 선언하며, 다른 이도 그렇게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가능하면 신과 같은 모양을 하고자 합니다. 가면이라는 것은 바로 그렇게 해서 생겨나고 다양하게 발전하게 된 것이지요.
이 과정에는 지도층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겠다는 열망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종교 속의 신들은 사실 당대의 지배자들이 ‘신명 사상(신의 뜻을 받았다는 사상)’에 따라서 권력을 쥐었음을 주장하고, 그 자신이 신의 대행자이자 사실상 신 그 자신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지배층은 신의 모습을 닮고자 노력하였고, 이를 위해 가면을 만들거나 의복으로 꾸미고, 문신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꾸밈’의 형태는 지금도 원시 종교가 계승되는 수많은 지역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위와 같은 두개골 형태는… 바로 그 같은 ‘꾸밈’의 극단적인 형태 중 하나입니다. 바로 ‘편두’라는 의식이죠.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아이들의 두상을 좋게 만든다며 엎드려 재우는 일이 있습니다. 이로 인한 돌연사가 문제가 된 적도 있죠. 이는 어린 시절엔 두개골이 아직 완전히 여물지 않아서 변형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편두라는 것은 바로 그 현상의 극단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겠군요.
바로 이런 식으로, 아이의 머리를 강제적으로 눌러서 길게 만드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왜 마야에서는 이 ‘편두’를 한 것일까요?
이렇게 사람의 외모를 변형시키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미(美)적인 이유입니다. 튀어나온 머리는 현대인이 보기엔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마야인들에게는 멋지게 보일 수도 있는 겁니다. 비슷한 예시도 몇 가지 있지요.
중국 소수민족인 카렌족에선 이런 사람을 미인으로 친다지요?
중국에선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이처럼 기형적으로 생긴 전족이 ‘작은 발이 예쁘다’라는 이유로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세계 각지에는 우리가 보기엔 기묘한 모습의 ‘미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미적인 이유라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뜻이죠.
하지만 마야에서는 좀 더 현실적인 이유였던 모양입니다. 바로 ‘신의 모양’을 닮기 위해서 그랬다는 거죠.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신이 저렇게 생겼단 말인가요?
바로, 옥수수입니다.
중앙아시아 최초의 문명인 올멕에서부터 신봉되었고, 마야, 아즈텍에서도 주된 신의 하나로 받아들여졌던 작물. 심지어 신이 사람을 만드는 데 사용했던 재료라 생각되었던 작물. 옥수수는 사실 그들의 문명을 유지하는 원동력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마야의 사람들은 이 작물에 많이 의존했죠.
그뿐이 아닙니다. 마야 신화에 따르면 옥수수의 신은 최고 신 중 하나기도 했죠. 실제로 마야의 왕들은 옥수수를 닮은 복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그들의 삶은 옥수수에 의해 지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옥수수를 신봉하고 옥수수를 닮으려 했던 것도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죠.
그렇다면 당대의 지도층은 모두 옥수수 모양의 머리를 하고 있었을까요? 글쎄요, 현재까지 발견된 마야 문명의 유골 중 그 같은 모양을 한 것이 많지 않은 것을 보면 꼭 그랬던 건 아닌 모양입니다. 사실 그런 머리 모양은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도 많았을 테고요.
그럼 왜 한 지역에서 그런 뼈가 많이 발견된 것일까요? 역시 외계인? 아닙니다. DNA 검사 결과 그들은 모두 인간이었거든요. 그래서 이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는 뭉뚱그려 ‘마야 문명’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이들은 수메르나 그리스처럼 하나의 나라로서 이루어진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각 도시마다 왕이 존재하고 각기 다른 정치 체제를 가진 도시 국가 문명이었죠. 수메르나 그리스에서 각 도시마다 다스리는 수호신들이 따로 있었듯이, 마야에서도 각 도시마다 중요한 신은 따로 있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실제로 각 도시 유적에는 그들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당대의 왕이 중요하다고 인정한- 신들의 모습이 눈에 띕니다)
이건 고대 종교가 가진 특성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고대 종교 속 수호신이라는 것은 사실 각 도시를 다스리는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였으니까요. 같은 신이 두 도시에 등장할 수는 없으니(이건 전쟁의 빌미가 되기에 충분할 겁니다.) 각 도시마다 지도자들은 다른 신의 화신을 주장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옥수수 신을 받는 일부 지역에서만, 그것도 일부 사람들을 대상으로 옥수수 머리를 만드는 일이 행해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 보니 뭔가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했다거나 해서 중단했을지도 모르지요. 실제로 그런 모양의 머리는 아무리 보아도 생활이 편하다고 볼 수 없으며, 지나친 편두 현상은 두뇌에도 피해를 주었을지 모릅니다. 일부 두개골에선 치아의 파손이 목격되었다는 것이 그 같은 문제를 잘 보여줍니다.
황당하게 느껴지겠지만, 전족이나 카렌족이나 여기저기 무수한 인체 변형의 사례 역시 정상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해답이 ‘외계인이 마야 문명을 만들고 어디론가 사라졌다.’라는 추측보다도 훨씬 자연스럽고 이해가 되지 않나요?
PS
옥수수 신을 본떠서 편두를 했다는 이야기는 EBS의 다큐 프라임 <불멸의 마야>에서 보았습니다. 옥수수가 중요한 신이었다는 것, 고대에 편두라는 현상이 세계 각지에서 존재했다는 것, 여기에 원시/고대 종교에는 ‘연기’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떠올리니 납득이 가더군요. 상당히 좋은 다큐멘터리인데 언제고 다시 볼 수 있다면 꼭 보시길 권합니다.
원문 : 표도기의 타임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