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도서관에서 몇몇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게임에 대한 논문을 쓰시는 분과의 인터뷰 자리에서 게임의 좋은 점을 이야기해 보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게임을 죄악시하고 범죄의 추천서처럼 여기며 중독 물질로 분류하려는 일련의 움직임이 있지만, 사실 게임에는 단점 이상으로 장점이 많다는 게 제 의견의 요지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생각하는 게임의 장점을 어느 정도 정리하였기에 여기 간단히 기술합니다.
1. 성취감을 준다
게임은 규칙에 의해서 움직이는 놀이입니다. 그 규칙을 통해서 과제를 극복하였을 때 보상을 받습니다. 여러 가지 보상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과제를 달성했다는 성취감”입니다.
무언가를 이룸으로써 얻게 되는 성취감은 현실 세계에서는 쉽게 얻기 어려운 것이지만, 게임에서는 매우 다양하게 얻을 수 있습니다. 과제가 클수록 그 성취감도 커집니다. 성취감이라는 것은 단순히 여러 번 반복한다고 해서 늘어나는 것이 아니므로 큰 성취감을 얻기 위한 노력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버튼만 눌러서 가볍게 진행하는 일부 게임이나 노력보다는 결제로 통과하게 되는 게임은 만족감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크기가 크건 작건, 성취감을 느끼게 한다는 점은 게임의 무시할 수 없는 이점입니다. 이를 통해 ‘노력하면 뭔가 이룰 수 있다’는 발전적인 메시지를 얻을 수 있지요.
2. 대리 만족을 준다.
게임에 반대하는 일부 사람들이 ‘폭력성 높은 게임을 하면 폭력에 익숙해져서 범죄를 일으킨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근래의 연구에 따르면 폭력성 높은 대중 게임이 발매되었을 때 도리어 범죄율이 감소하는 통계가 등장하곤 합니다. 왜 그럴까요?
제 생각에는, 많은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거나 규율을 깨뜨리고 싶은 내재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는데 게임이 그러한 충동을 해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만 해도 운전하다 다른 차가 엉망으로 달리는 걸 보면 그냥 들이받아 버리고 싶어집니다. 물론 잘 교육받은 성인이니만큼 충동은 잘 억누르고 있지만 스트레스가 쌓이는 건 부정할 수 없지요.
이럴 때 무언가를 부수거나 쓰러뜨리는 형태의 소위 ‘폭력적인’ 게임은 그 같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분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오락실에서 펀치 머신을 때리면서 울분을 표출하고 벽을 치면서 화를 풀듯, 우리는 게임 속에서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하면서 그 같은 분노를 풀어버릴 수 있습니다.
다만 저 역시 저연령층 아이들에게 폭력적인 게임을 보여주고 플레이를 유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연령층 아이들은 현실과 가상현실을 아직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생각이 성숙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청소년만 되더라도 이 같은 구분은 충분히 가능한 만큼, 권장하지는 않을지라도 스스로 하고 싶어 할 때 제약하지 않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본래 무언가를 억누를수록 그에 대한 반발도 커지는 법이며, 특히 청소년기는 제약이 많아 스트레스가 폭발하기 쉽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3. 도전의 기회를 준다.
많은 사람은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이고 좋은 일이지만, 때로는 톱니바퀴가 된 것처럼 의미 없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가끔 무언가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을 갖지만, 실패라는 결과물이 두려워서 쉽게 도전하기 힘듭니다. 특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실패가 곧 몰락을 의미하기 때문에 더욱 도전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게임은 많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실패나 손실에 대한 우려 없이 다양한 상황에 도전할 기회를 주죠. 비행기를 조종하고, 판타지 세계를 모험하고, 우주를 날아다니고, 시장이 되어 도시를 꾸려나가고, 심지어는 마왕이 되어 던전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비록 현실은 아니지만 플레이어에게는 뭔가 다른 걸 해볼 수 있는 도전의 기회가 되는 거죠.
특히 청소년기에 이 같은 도전의 기회를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인간의 청소년기에는 호르몬 분비에 따라 두뇌가 ‘무모한 짓’을 계획하거나 시도하게 한다고 합니다. 무모한 짓에 도전하여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성공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 어떤 것이 맞고 그른지를 느끼게 하는 것이죠. 이는 성년으로 자라났을 때의 생존율을 높여주고, 보다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아 성공할 가능성을 높여줍니다.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대한민국에서 청소년이 뭔가를 해 볼 기회는 거의 없습니다. 도전은 고사하고 천편일률적인 입시 지옥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힘들죠. 그런 청소년들에게 간접적인 체험을 통해 도전하고 뭔가를 배울 기회를 주는 것은 게임의 매우 중요한 이점입니다.
4. 협동성을 느끼게 해 준다.
모든 게임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대부분 게임은 다른 플레이어나 컴퓨터 캐릭터(NPC)와 협력하여 미션을 수행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예시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WOW)>처럼 시스템과 스토리를 여럿이 협력하는 파티에 맞추어 제작한 것은 협력의 기회와 가치를 느끼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WOW에는 많은 직업의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이 캐릭터들은 각기 자신에게 주어진 특기를 활용하여 협력하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런 구성을 통해 플레이어는 자신이 파티나 동료에게 이바지할 수 있으며, 나아가 세상을 구하는 데 몫을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WOW 속에서는 모든 이가 아라곤이나 레골라스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전사나 마법사만이 가치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직업이 가치가 있는 이 세계에서는 여럿이 함께 힘을 모았을 때 큰일을 이룰 수 있음을 느끼고, 그 과정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대한민국처럼 오직 한 가지 가치에 대해서만 줄을 세우는 사회 속에서 WOW와 같은 게임은 다양한 직업과 상황이 모두 가치가 있음을 느끼게 해 줍니다.
5. 인간적인 교류의 폭을 넓힌다.
연구에 따르면 인간적인 교류를 지속함으로써 수명을 늘릴 수 있다고 합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되겠지요. 하지만 바쁜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의 교류는 쉽지 않습니다. 이른바 ‘말할 거리’를 찾기도 쉽지 않고요. 그래서 “드라마를 보지 않으면 말이 안 통한다.”거나 “최근 유행곡 하나 정도는 불러야 한다.” 같은 말을 듣기도 합니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게임은 이런 점에서 교류의 폭을 넓히는 효과를 줍니다. 드라마는 단지 ‘내용’과 ‘느낌’을 공유할 뿐이지만, 게임은 같은 게임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플레이 경험이나 공략 정보를 교환하는 등의 능동적인 교류가 가능합니다. 가끔은 ‘자랑거리’가 되는 만큼 더 열심히 말을 꺼내게 되고요.
이전에 강남 쪽에서 방과 후 지도 교사를 할 때 학생들에게서 여러 가지 게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의외로 강남 쪽 학생들이(적어도 제가 접했던 여러 학생은) 게임을 많이 하는 걸 알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스팀에서 나오는 패키지 게임처럼 좀 특이한 걸 하는 걸 알 수 있었죠. 그들은 제게 게임을 잘한 것을 자랑하고 싶어 했고, 제가 그걸 해 봤다는 것을 알면 저를 더욱 친근하게 느끼며 적극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게임이라는 공통 주제가 없었다면 그만큼 편하게 이야기하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게임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드라마나 영화, 만화 같은 것에 비해서 함께 즐기는 층이 더 넓은 편입니다. 그만큼 교류가 넓어지게 되며 삶이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마비노기> 같은 게임 속에서 모닥불을 피워두고 채팅을 나누는 것도 그 같은 교류의 일종입니다. WOW 같은 게임에서는 아예 목숨을 주고받는 동료로서 함께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교류는 우리의 사회성을 높여줄뿐더러 우리의 수명을 늘리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6. 오랜 기간에 걸친 큰 규모의 사고를 하게 한다.
<심시티>와 <심즈>를 만든 윌 라이트는 “현대 사회의 문제 대부분은 단기적 사고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단편적이고 단기적인 사고는 인간이 가지는 큰 단점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수명은 매우 짧기 때문입니다. 100년도 안 되는 수명 속에서 10년 뒤, 100년 뒤의 상황을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에 반해 게임은, 100년, 1000년, 10000년 이상의 긴 시간을 기준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으며, 한 사람이 아니라 한 마을, 도시, 행성, 심지어는 우주 단위로 무언가를 느끼게 해 줍니다.
도시에 도서관을 하나 세운다고 해서 그 도시가 당장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심시티에서 도서관을 세우고 몇 년이 지나면 성년층의 교육 정도가 높아지고 실업률이 눈에 띄게 감소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점은 통계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통계가 아니라 체험을 통해 직접 느끼게 됨으로써 보다 쉽게 체득할 수 있게 되죠.
실제로 <심시티>는 도시 공학과에서 부교재로 사용하는 일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그것은 곧 심시티가 도시의 크고 작은 역학관계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뜻이 되겠지요. 어떤 정책을 세우거나 시설을 만든 뒤 오랜 시간이 흘렀을 때 시민들에게서 나타나는 변화들을 쉽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역시 윌 라이트가 만든 <스포어>에서는 행성을 무대로 이야기를 꾸며내는데, 이 때 이산화탄소를 주입하면 행성의 기온이 조금씩 높아지고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세계가 위험에 빠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연 교과서에서 배웠던 자연과학보다도 더 즉각적으로 지구과학을 알 수 있게 되지요.
이러한 사실들은 <불편한 진실>같은 다큐멘터리나 <투모로우> 같은 영화만큼이나 강렬하게, 하지만 더 디테일하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더 배우고 고민하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지요.
7. 체험하게 한다.
이 밖에도 게임에는 여러 가지 이점이 있겠지요. 하지만 이 모든 걸 통틀어서 가장 중요한 이점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게임을 영화, 소설, 만화 등 여타 문화 매체와 확실하게 분리하는 특징이기도 한데요, 이 모든 것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게임은 위에서 말한 모든 것을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직접 느끼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으며 도전 의욕이 높아지고 성취감을 높여주며 협동심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바로 옆에 앉은 동료와 함께 거대한 악을 물리치면서 피를 나눈 동지가 되고, 그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나아가 이 경험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교류가 이어지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물론 이런 목적을 위해 출시된 게임들이 있습니다. 흔히들 ‘교육용 게임’이라 부르지만, 실상 게임보다는 공부 쪽에 더 가깝게 설계된 프로그램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교육용 게임은 산수 문제를 풀고, 퀴즈를 맞히며, 퍼즐을 풀어나가면서 성취감을 얻게 하며 그 과정 자체가 재미있다고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지루하기 짝이 없는 숫자 계산이 산수 놀이가 되고, 퀴즈를 풀고자 직접 백과사전을 뒤지고, 퍼즐을 해결하려고 고민하게 됩니다.
이처럼 ‘체험하게 만드는 과정’은 게임의 가장 큰 강점입니다. 그 말은 곧 그 점을 얼마나 잘 구현하여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었는가, 하는 부분이 진정으로 중요하다는 뜻이 되겠지요.
현재 한국의 모바일 게임은 생각을 하면서 체험하는 재미보다는 척추 반사적인 반응에 치우친 것이 많이 보입니다. 교류는 찾아볼 수 없고, 도전이나 성취를 느끼게 하는 것도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자연스레 게임은 시간 때우기가 되고, 정말로 재미를 느껴서 만족하기보다는 항상 갈증을 느끼는 상태로 플레이어를 만들어갑니다. 마치 탄산음료를 마시면 일시적으로 시원하지만 도리어 더 목이 마른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탄산음료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물이나 차나 주스 등 다양한 음료가 있을 때 탄산음료의 톡 쏘는 매력도 즐길 만하겠지요. 하지만 한국의 게임 현황은 이 탄산음료밖에 없는 상태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게임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쉽게 보이게 되죠.
그럼에도 저는, 게임을 막기보다는 게임을 권하는 쪽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게임성이 낮은 게임이라도 게임의 이점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기왕이면 좋은 게임을 찾아서 권하는 쪽이 훨씬 좋겠지만, 눈 앞의 게임에서 장점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제가 만났던 강남의 아이들은 게임을 많이, 다양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강남 아이들은 공부만 한다’는 선입견과는 달리 SF나 판타지 소설도 많이 읽었고, 게임도 다양하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또한 그들이 공부로도 상위권었다는 사실을 굳이 덧붙입니다). 그들은 게임의 장점을 온 몸으로 체험하며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되물었습니다.
“게임은 좋은 거잖아요, 왜 못하게 막는 거죠?”
스팀에서 수 십 개의 게임을 해 봤다는 학생의 말이었죠. 무조건 막기만 하는 것으로는 게임의 장점을 살릴 수 없습니다. 다양한 기회를 주고 그 중에서 좋은 작품을 추천하고 권하며, 나아가서 그들이 장점을 직접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게임을 통해서 삶을 즐겁게 만드는 법일 것입니다.
원문 : 표도기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