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후예”나 고구려의 “주몽”처럼 활로서 이름을 날린 인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활은 판타지나 역사의 주역이기보다는 보조자로서 주로 활동하곤 했다. “반지의 제왕”에서 레골라스가 활로서 화려한 장면을 보여주지만, 이 작품의 주역은 스팅을 든 프로도나 안두릴을 든 아라곤이듯, 활은 어디까지나 보조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요.
하지만 인류의 역사 속에서, 그리고 실제의 전쟁 속에서 활은 큰 역할을 하였으며, 역사를 바꾼 중요한 존재로서 위치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창을 쥐고 던질 수 있었기에, 그리고 활을 들고 쏠 수 있었기에 만물의 영장이 되었고, 활이 있었기에 전쟁은 더욱 대규모가 될 수 있었으니까요.
한편 활과 함께 동서양에는 크로스보우(Crossbow), 또는 노(弩, 쇠뇌)라고 불린 병기가 존재했습니다. 활에서부터 발달했지만, 방아쇠라는 장치를 도입함으로써 총으로 연결되는 고리의 역할을 한 무기.
일본에서 석궁(石弓)이라고 잘못 번역된 이래,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게 이야기하는 병기.
활에 비해 널리 활용되지 않았고 작품 속에서도 쉽게 보기 어렵지만, 윌리엄 텔과 같은 전설을 통해서, 그리고 각종 전쟁물에서 접하게 되는 병기.
오늘은 역사와 전설, 그리고 신화 속에서 결코 주역이 되지 못한, 하지만 인류의 역사 속에서는 중요한 병기인 활과 크로스보우(노궁)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크로스보우(십자궁)는 서양의 것. 노는 동양의 것으로 형태 및 운용 방법은 조금 다르지만, 원리는 같고 장단점도 같으므로 함께 소개합니다.)
1. 활(弓)
활은 인류가 사용한 최초의 수렵 병기 중 하나로서 오랜 세월에 걸쳐 원거리 공격용으로 활용된 병기이다. 여느 유인원과 달리 무언가를 던지기에 적합한 인간의 어깨 구조는 일찍부터 투석이나 투창 등으로 멀리 떨어진 적을 공격할 수 있었으며, 가죽이나 나무 껍질로 돌을 던지는 투석기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활이 등장함으로써 인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원거리 전투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원시 민족들은 대나무나 동물의 뿔 등을 휘어 줄을 묶는 단순궁을 만들었으나, 그 후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개량이 이루어졌다.
1) 활의 종류
활의 종류는 크게 단순궁, 강화궁, 합성궁의 세가지로 나뉜다.
(1) 단순궁
단순궁은 대나무나 동물의 뼈를 재료로 시위 만을 묶어 사용한 것으로 현재도 일부 원주민 사이에서 사냥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제작이 쉽지만 탄성이 떨어져 최대 사거리는 200m 내외. 유효 사거리는 몇 십m에 불과하다.
(2) 강화궁
단순궁에 끈을 묶거나 하여 보다 저항력을 높인 것으로서 현재는 원주민 사회에서만 발견된다. 일부 기마 민족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용된 활은 이러한 강화궁이었다. 강화궁은 단순궁에 비해 위력이 강화되어 유효 사거리는 100m에 가깝다. 추가로, 100년 전쟁 당시 영국군이 사용한 장궁은 강화궁의 일종으로서 탄성이 강한 주목(朱木)을 재료로, 120~180cm 정도의 크기로 길이를 늘려 위력을 강화시킴으로서 200m 정도의 유효 사거리와 프랑스군 기사의 갑옷을 뚫을 수 있는 위력을 자랑하였다.
(3) 합성궁
다양한 재료를 붙여서 만든 활로서 활의 최고 진화 형태. 고대에 중앙 아시아의 유목 민족이 만들어냈으며, 작기 때문에 말 위에서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200m 이상의 유효 사거리를 갖는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였다. 고구려로 대표되는 한민족의 국궁은 그 중에서도 최고의 진화를 이룬 것으로서 물소의 뿔을 사용하고 180도 이상을 구부려서 만든 국궁은 유효 사거리(최대 250~300m) 내에서 갑옷을 뚫을 수 있는 위력을 자랑한다.
일본이나 유럽 등지에서도 나무 이외 재료를 붙여서 만든 합성궁은 있었으나, 그 위력은 기마 민족의 합성궁과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고 한다.
2) 활의 장전 방법
활의 장전 방법은 크게 남방식과 북방식으로 나뉜다.
(1) 남방식
주로 지상에서 궁병을 운용한 민족들이 사용한 방식으로 왼손으로 활을 고정시키고, 오른팔을 당겨서 장전하는 방식이다. 이는 몸이 고정된 자세에서 장전, 발사하기 때문에 운용 범위가 좁아 성 방어전이나 밀집 배치된 병사들 사이에서도 비교적 쉽게 쏠 수 있으며, 장전 단계에서 시야와 몸이 계속 목표를 향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 당기는 힘이 약해서 합성궁에는 적합하지 않다.
(2) 북방식
주로 기마 민족이 사용한 방식으로 오른손으로 시위를 잡고, 왼팔을 움직여서 장전하는 방식이다. 이는 단순히 팔의 힘 만이 아니라 어깨의 힘을 동시에 이용하여 보다 강하게 활을 당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팔을 크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지상의 밀집 배치된 궁병이나 장소가 좁은 성 방어전에는 적합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국궁은 매우 강력한 합성궁으로 북방식 궁술을 사용하며, 이는 우리 민족의 일부가 기마 민족의 후예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남방식 궁술에 길이가 긴 강화궁-또는 초기형 합성궁-을 사용하고 있어 기마 민족의 유입이 적었던 것으로 보인다.)
3) 활의 특성
활은 보기와는 달리 제조와 사용에 많은 노력이 필요한 병기이다. 강력한 국궁은 한개를 만드는데 며칠씩 걸리기 마련이며(여기에는 재료를 붙인 아교가 굳는 시간이 포함된다.) 단순궁이라고 해도 명중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이 소요된다.
활은 장시간의 집중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 군자의 무기 ‘라고 칭송되었고, 많은 나라에서 일종의 정신 수련으로서 인정받았다.
전쟁 무기로서의 활은 대량으로 운용될 필요가 있으며, 온도나 습도에 따라 활시위나 활의 상태가 달라지기 때문에 정기적인 점검과 관리가 필요했다(동물의 힘줄이나 내장으로 시위를 만든 활은 날씨의 영향을 적게 받았으나, 실로 시위를 만든 활은 특히 영향을 많이 받았다).
2. 노-크로스보우(弩, Crossbow, 십자궁)
동양의 노와 서양의 크로스보우는 활의 몇가지 단점을 개량하는 과정에서 개발된 병기이다.
노는 기원전 3세기경 전국 시대 초나라에서 처음 만들어졌으며 그 후 한나라, 당나라를 거쳐 오랜 시기에 걸쳐 다양하게 개량되면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활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는 삼국 시대 이전부터 사용되어, 안시성 전투 당시 당태종의 눈을 부상시키는 등 다양한 활약을 하였다. 삼국 시대 당시 우리나라의 노 제조 기술은 매우 뛰어났다고 하지만, 그 후에는 역사적으로 그다지 많이 활용되지 못했다.
서양의 크로스보우는 1066년 하스팅 전투 당시 노르만 병사가 사용하면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리스 시대부터 사용된 노포(Ballista)에서 발전했다는 의견도 있지만, 장전 방식 등이 다르기 때문에 별개의 형태로, 또는 활에서 발전했다고 보는게 타당하다.)
기계식 장전 장치 등으로 발전한 서양의 크로스보우는 화기에 의해서 대체되는 17세기 초까지 공성전과 집단전의 주력 병기로 활용되었으며, 현재도 스포츠나 사냥 도구, 혹은 군 특수부대의 무성 병기로서 활용된다.
고대 시대에 노를 크게 만든 노포(ballista)라는 형태의 병기가 공성용, 또는 집단전용으로 활용되었다. 동양에서는 중국의 전국시대에 상자노라는 병기가 주로 집단전용으로 사용이 시작되었고, 특히 기병과의 전투 등에서 개인용노와 함께 방어 병기로 널리 사용되었다.
서양에서 고대 그리스 시대에 등장한 발리스타는 밧줄을 이용한 비틀림 용수철 구조로 거대한 화살을 강한 위력으로 날릴 수 있었으며, 고대 로마를 시작으로 중세에 이르기까지 공성, 전투 병기로서 널리 이용되었다.
노와 크로스보우가 처음 개발되었을 때는 활과 비슷한 화살을 사용했지만, 이후 노궁(크로스보우)의 화살은 좀더 짧고 굵게 바뀌었다. 또한, 서양에서 활의 화살은 Arrow(애로우)라고 부르지만, 노궁(크로스보우)의 화살은 Bolt(볼트)라고 해서 구분했다.
1) 노와 크로스보우의 원리
노와 크로스보우는 각각 등장 시기나 운용 형태 등에서 조금 차이가 있지만, 완전히 같은 원리로서 개발되었다.
기존의 활이 사람의 손에 의해 시위를 고정하고 장전해야 한다는 단점을 개량하기 위하여 노는 활대(활의 굽은 부분)에 긴 막대를 대고 여기에 노기라는 고정 장치를 단 형태로 구성되었다.
활 줄을 당기는 방식에 따라서 여러가지 체계로서 차이가 있지만, 양손, 발, 또는 기계를 사용하여 줄을 당길 수 있어 보다 강한 힘을 가할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다.(비교적 늦게 개발된 서양에서는 처음부터 기계식의 철노가 사용되었으며, 도르래 외에도 크레인, 지레대 등의 다양한 기계로 활 줄을 당기는 시스템이 개발되었다.)
2) 노와 크로스보우의 발전
처음에 개인 병기로 등장한 노와 크로스보우는 이후 대형화되면서 공성 병기로 활용되는 한편, 재질, 발사 방식 등의 개량을 거쳐 다양하게 정착된다.
서양에서는 특히 궁의 재질을 금속으로 바꾸고, 시위를 당기는 기계를 도입함으로써 그 위력이 향상되었는데, 그로 인해 사람의 힘으로는 당길 수 없는 강력한 크로스보우가 완성되면서 중세 시대 기사들의 몰락을 가져오는데 이바지하였다. 십자군 전쟁 당시 유명했던 사자심왕 리처드도 공성전 중 크로스보우의 화살에 맞은 상처가 덧나서 사망하기도 했다.
동양에서는 주로 중국에서 노의 개량이 이루어졌는데, 특히 전국 시대를 거치며 개량된 노는 손잡이를 당기는 방식으로 화살을 자동으로 장전하며 발사할 수 있는 연사형의 노로서 발전하기에 이른다.(삼국 시대 제갈량이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지만, 그보다 앞선 전국 시대에 탄생했다.)
다만, 재질은 그대로 나무였고, 지레대를 이용한 단순한 장전 장치였기에 그 위력은 서양의 크로스보우에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활에 비하여 위력과 정확도가 우수했기에 주로 공성전의 방어용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한반도에서도 노는 존재했지만, 한반도의 국가들은 주로 궁을 중시하였으며, 노에 기계식 장전 장치를 달거나 하지 않음으로써 체격이 큰 사람만 노를 쓸 수 있다는 제약을 받게 되었다. 때문에 한반도의 국가에서는 노를 주력 병기로 쓰기보다는 주로 공성전에서 방어시의 보조용으로만 주로 사용했다.
3. 석궁(Stonebow)
석궁은 돌로 만든 노가 아니며, 노와 유사한 생김새를 지닌 도구에서 돌을 탄환으로 발사하는 스포츠용 용구이다. 고대의 슬링이나 새총에서 발전한 이 도구는 사거리가 매우 짧고 대인 살상 효과가 낮아(머리에 정통으로 맞지 않으면 큰 피해가 없음) 전쟁 병기로 활용된 일이 없다.(동양권에서는 이와 조금 다른 돌쇠뇌라는 것이 무기로 사용되었다.)
석궁은 주로 서양의 귀족들이 작은 새들의 사냥에 즐겨 사용하였는데, 활이나 크로스보우가 있음에도 석궁을 사용한 이유는 이 도구가 전쟁 병기가 될 수 없다는 점(즉, 살상 효과가 낮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석궁은 크로스보우와 유사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돌을 날리기 위해서 활줄을 두가닥으로 하고, 여기에 돌을 올려놓기 위한 주머니를 장착한 형태로 되어 있다.
석궁의 또 다른 타입으로는 새총에서 발전한 작은 병기가 있으며, 이는 쇠구슬이나 작은 화살 등을 사용하는 무기로서 주로 근거리에서의 요인 암살, 또는 여흥용의 스포츠 등에서 사용된다.(현재도 미제의 팰콘 등이 제작되어 판매되고 있다.)
4. 궁과 노의 특성과 장단점
양 무기의 특성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활은 인간의 힘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병기이기 때문에 노에 비해서 많은 단점을 갖고 있다.
1) 활의 단점과 노의 장점
(1) 힘이 강해야 한다.
활은 개인의 완력을 사용해서 시위를 당기기 때문에 힘이 강하지 않으면 쓸 수 없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아무도 당길 수 없고, 오직 오디세우스만이 당길 수 있었던 활은 그와 같은 사례의 하나이며, 조선의 군사 지침에서도 ‘ 키가 작은 자는 창을 잡고, 키가 큰 자(덩치가 큰 자)는 ‘궁’과 ‘노’를 잡게한다. ‘는 대목으로 이러한 특성을 간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노는 다양한 방식의 기계에 의해서 당길 수 있기 때문에(기계가 아니더라도 양손과 다리를 동시에 사용하여 다리 힘이나 허리힘으로 당길 수 있다.) 심지어 힘이 약한 여성이나 아이들도 사용할 수 있다.
(2) 사거리가 부정확하다.
활은 개인의 완력에 따라 사거리와 위력의 편차가 크기 때문에 군에서 집중 사격을 가할때 불편하다.
노는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을때의 위력은 대개 동일하여 대규모 운용에 도움이 된다.
(3) 지속적인 집중력이 필요하다.
활은 시위를 당기고 조준을 한채로 쏘기 전까지 계속 힘을 주고 집중하고 있어야 한다. 더욱이 시위를 당기는 것 만이 아니라, 이 상태로 조준이 끝날 때까지 힘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금방 지치는 경향이 있다.
노는 일단 장전을 해 두면 시위는 고정되어 있어 오직 표적에만 신경을 쓰면 된다.
(4) 훈련에 시간이 필요하다.
고려 말기 ‘이성계’나 ‘이지란(여진족 출신 고려 장수)’ 등은 궁의 명수로 이름을 드높였지만, 그들이 그만한 명궁이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훈련이 필요했다. 이렇듯 활은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심지어 영국에서는 안식일(일요일)에는 활쏘기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포교령으로 활 사용을 장려했을 정도.
노는 조준 방법 만 익히면 간단히 발사할 수 있어 숙련에 걸리는 시간이 훨씬 절약된다. 또한 사용이 편하여 미리 장전만 해 두면, 한 손으로도 쏠 수 있다는 점은 상당한 매력으로 작용하였다.
(5) 명중율이 낮다.
역사적으로 우수한 명궁이 많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활은 장시간의 숙련을 통해서만 익숙해질 수 있으며 불안정한 상태로 양손에 계속 일정한 힘을 주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평균적인 명중율이 매우 낮다.
노는 고정된 상태로 운용되고 매우 안정된 자세로 조준 사격을 할 수 있어 매우 높은 명중율을 보여준다. 실존 인물을 배경으로 한 희곡 ‘ 빌헬름 텔 ‘은 크로스보우나 노의 이러한 정확성을 소재로 한 간접 사례라 할 수 있다.
(6) 공간 점유도가 높다.
합성궁은 작은 크기로서 말 위에서도 편하게 운용될 수 있지만, 역사상 위력을 떨친 장궁(Longbow)은 그 길이가 사람보다 더 긴 것으로서 상당히 불편한 병기였다. 더욱이 활은 팔을 넓게 펼친 상태로 사용하기 때문에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하고, 이에 따라 자리가 좁은 성이나 요새에서의 방어전에서 매우 불편한 점이 있었다.(북방계의 합성궁은 팔을 넓게 돌리는 방식으로 조준하여 역시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
노는 일단 장전만 하면 고정된 자세로 조준하기 때문에 성 내에서의 방어전 등에서 높은 효율을 보였다. 실제 크로스보우가 등장한 이후 성의 창문은 점차 좁아져서 크로스보우의 끝을 내밀고 사용할 수 있는 십자형의 좁은 창문 아발레스티나(Arbalestina)로 바뀌게 된다.
(7) 위력이 약하다.
활로 몇 명을 꿰뚫는다는 전설 속의 용사들이 존재하지만, 대개의 경우 활은 비교적 가볍고 얇은 화살만을 사용하여 위력이 높지 않다.
반면, 노는 화살의 길이나 굵기, 무게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 더욱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였으며, 철갑을 꿰뚫는 위력으로 봉건제의 핵심인 기사 제도를 무너뜨리는데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였다.(노의 화살을 금속으로 만드는 일도 있었지만, 비용이 비싸서 널리 쓰이지는 않았다.)
(8) 사거리가 짧다.
개인의 완력에 의해 사거리가 결정되는 활은 제 아무리 강력한 합성궁이라 해도 최대 유효 사거리 300m를 넘기기 어렵다.(일반적으로 150~200m)
반면, 노는 보다 강한 힘으로 장전하고 사격할 수 있기 때문에 45도 각도 발사시 유효 사거리가 400m에 가까운 위력을 발휘한다.
(9) 화살의 길이가 길다.
활의 화살 길이는 정확한 조준을 위해서 활대에서 최대로 당긴 활 시위의 거리보다 길어야 한다. 때문에 화살의 길이는 상당히 길고, 특히 대형의 장궁에 있어 화살 길이는 궁병의 활동에 지장을 줄 정도로 길어서 불편한 것이기도 했다.
이와 같이 긴 화살은 바람이나 기상의 영향을 많이 받아 명중율을 떨어뜨리고 날씨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노는 화살을 받쳐주는 받침이 별도로 있어 화살의 길이가 짧아질 수 있기 때문에, 보다 많은 화살을 대량으로 소지할 수 있으며 전투시 화살이 행동에 불편을 덜 주었다. 다만, 짧아진 길이만큼 안정성을 위한 중량이 확보되어야 했기에(또한, 위력이 강한 만큼 부러지기 쉬었기에) 보다 굵어질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금속제 화살을 사용하기도 했다.
2) 활의 장점과 노의 단점
노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는 궁병과 노병의 비율이 3:1. 서양에서도 중세 중기까지는 궁병이 더 많이 사용되곤 했다.(심지어 궁은 화기가 노를 대치한 이후에도 살아남아 근대 초기까지 사용되었다.)
활의 단점이 이렇게 많음에도 노가 사용된 것은, 활에는 노에 없는 장점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1) 장전 시간이 빠르다.
노는 기계로 장전하건 몸으로 장전하건, 장전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평균적으로 분당 1발 이상을 쏘기 어려웠으며, 이정도면 제 아무리 느린 중기병이라도 두번째 사격을 가하기 전에 육박해 올 정도였다.
이는 노가 등장한 이후에도 중기병이 살아남아서 운용된 이유이기도 하다. 노는 중기병의 몰락에 기여를 하긴 했지만, 느린 속도로 인해 결국 결정적인 역할은 하지 못한 것이다.
활은 익숙한 궁수라면 분당 6발 이상을 쏠 수 있었다. 활과 노의 위력 차가 있지만 최대 6 대 1 이상의 연사 속도 차이는 그만한 단점을 극복하기에 충분했다.
(2) 소지가 편하다.
활대 외에 받침이 있어 매우 큰 노와는 달리, 활은 무게가 가볍고 편하여 쉽게 보관할 수 있었다. 중세 전투 시에 크로스보우 병사들은 큰 가죽 주머니에 노를 넣고 등에 짊어지고 다녔는데, 특히 몸체를 이루는 목재의 무게가 상당했기 때문에 매우 불편했다고 한다.(심지어 분해해서 가지고 다녀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반면 궁병들은 가볍게 등에 걸쳐 이동할 수 있어 기동성 면에서 훨씬 우월했다.(활 시위도 오래되면 늘어지기 때문에 장거리 이동시에는 분해하여 다시 조립하는게 일반적이었다.)
(3) 말 위에서 연사가 편하다.
말 위에서의 이동시 사격은 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이지만, 일단 익숙해진 궁병은 말을 달리면서도 사격을 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일단 멈추어 장전을 해야 하며(대부분의 노는 달리면서 장전하기는 매우 곤란하다.) 그 후 조준해서 발사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불편한 것이 사실.
중국에서는 연노라 하여 연속 발사가 가능한 노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신뢰성이 낮고 위력이 떨어져 연노를 사용한 기병은 거의 쓰이지 않았다.
(4) 운용 비용이 낮다.
노는 제작 및 운용에 있어서 상당한 비용이 들어간다. 우선 제작 비용 자체가 활에 비해 높은 편이며, 노기의 정비나 수리를 담당하는 기술자를 별도로 둘 필요가 있다.(보관이 불편하기도 하다.) 또한, 노는 장전이 불편하여 때로는 3인 1조로 활줄을 당겨 고정하고, 화살을 장전하고 발사하는 작업을 해야만 했기 때문에 인원이 많이 필요하다.
활은 제조와 보관이 쉽고 가벼운 정비는 일반 궁병도 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자연 지물을 이용하여 즉석에서 활과 화살을 만들 수 있기에 운용 비용이 매우 낮았다.
(5) 발사 각도 제한이 없다.
받침대 위에 올려두고 사격하는 노와는 달리, 활은 한 손으로 화살을 잡은 상태로 발사하기 때문에 그 발사 각도에 제한이 없었다.
일반적인 노는 화살이 고정되지 않아 발사각도가 45도를 넘어갈 경우 또는 아래로 발사할 경우에 불편한 점이 있었다. 이는 일반적인 전투 시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았으나, 특수한 상황에서의 운용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단점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활의 특성은 판타지 세계의 영웅들이 노가 아닌 활을 사용하는데도 영향을 미쳤다. 즉, 개인의 역량에 크게 좌우되는 활은 개인의 능력이 뛰어날수록 놀라운 위력을 발휘하기에, 영웅들에게 적합한 것.
노는 대규모로 편성된 군대에 적합한 병기이기 때문에 판타지 세계에서의 모험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간혹 전투와 전쟁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 작품들에서는 활보다 노가 주역이 되는 사례가 꽤 많이 등장한다.)
5. 전술적 운용
활과 노는 둘 다 원거리 사격용 병기로서, 멀리 떨어져 있는 적에 대한 공격, 위협 효과로서 사용되었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처음 등장한 이래 거의 모든 재래식의 전장에서 활약을 하였으며, 특히 밀집되어 있는 적의 부대에 대해 최고의 효과를 자랑한다.
1) 사격 단계
활과 노는 숙련도에 따라서 그 명중율이 달라지지만, 복잡한 기후 조건과 상황이 결합되어 있는 전장에서는 적의 병사 개개인을 노리고 발사하는 것이 아니라, 대규모 운용에 의해 이른바 화살비라는 형태로서 일격에 최대한의 효과를 노림으로서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형태로 운용되었다.(판타지 속에 등장하는 영웅들은 특별한 사례로서 예외로 한다.)
때문에, 모든 궁병(노병)은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일제히 사격을 가할 필요가 있었으며, 병사들이 개별적으로 쏘는 사례는 엄격하게 금지되었다.(이는 후일 화승총의 사격 체계에도 도입되어 일제 사격이라는 체계로서 굳어지게 된다.)
(1) 활의 사격
활의 사격은 그 연사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 생명이다. 반면, 장전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궁병들은 교전 개시 전에 한 손에 활, 한 손에 화살을 든 상태로 대기 하고 있을 뿐 장전 상태로 두지 않는다.
- 장전 및 조준 : 이들은 적이 접근할때 내려지는 지휘관의 지시에 따라 화살을 활에 재게 되고 이후 장전->조준 단계로 넘어간다. 조준 단계에서는 특정 목표물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전원이 정면의 특정 지점을 향해 발사하도록 지시받는다.
- 사격 : 궁병은 머스킷총과 같이, 전원이 동시에 발사하는 일제 사격 형태로 진행된다. 이것은 평야전 만이 아니라 요새나 성에서의 방어전에서도 마찬가지로, 지휘 체계가 확고하게 잡혀 있으며 급박한 상황이 아닌한 동일한 패턴으로 진행된다.
- 발사 대기 : 일단 화살을 발사한 궁병은 다음 화살을 화살통에서 꺼내어 대기 상태로 들어간다.(전투 상황에 빠르게 대처하기 위하여 화살통을 쓰지 않고 화살을 발 옆에 꽂아 두는 경우도 있다.) 적이 접근하고 있는 경우에도 난전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지휘관의 지시가 없이 장전 상태로 바로 들어가지 않는다.
(2) 노의 사격
활과는 달리 노는 장전 속도라 느린 반면, 장전 시간을 무한히 길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때문에 노는 교전 이전부터 1발의 화살을 장전한 상태로 대기하게 되며, 지휘관의 지시에 따라 조준, 사격하게 된다.
- 조준 : 가장 원거리의 적을 공격하는 경우, 노 역시 특정 목표가 아닌 대략적인 지점을 겨누도록 하고 있다.(일반적으로는 정면의 중앙에 집중한다.)
- 사격 : 노의 사격은 지휘관의 지시에 따라 일제히 행해진다. 사격을 마친 노병은 지휘관의 지시없이 바로 장전 단계에 돌입하는데 이 과정이 매우 오래 걸리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로 전술적 응용이 행해지곤 했다.
- 대열 사격 : 노는 그 발사 속도가 매우 느리다는 단점이 있어 일반적으로 모든 병사들이 동시에 사격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 3열 정도로 나누어 각 열이 한번씩 발사하는 패턴을 사용했다. 이는 후일 머스킷총의 사격 체계에도 그대로 응용되었으며, 일본의 오다 노부나가는 이 전술을 조총에 도입하여 다케다군의 기병대를 물리치는데 사용하였다.(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는 달리 노부나가가 이 전술을 화기에 최초로 도입한 인물은 아니다.)
대열 사격이라면 발사한 사람이 뒤로 가는 방식을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공간이 많이 필요하며 지면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도리어 지치기 쉽다. 때문에 한 열이 발사하고 앉아서 장전을 하는 동안 다른 열이 일어나서 발사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 조수 사격 : 노의 사격 방식 중의 또 다른 사례는 2명의 조수를 두어 활줄을 당기는 작업과 장전을 각각 맡기는 경우였다. 즉, 노병(사수)은 장전을 할 필요없이 이미 장전된 노를 연속적으로 조준-사격하면 된다.
노를 장전한 상태로 놔둘 수 있다는 점에서 발전한 조수 사격 방식은 훈련을 받지 못한 일반 보병(농부라도 좋음)을 조수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운용을 위해서 1인당 여러 개의 노가 필요하고, 비교적 넓은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대열을 바꾸면서 사격을 가할 필요가 없고 한 사람이 제자리에서 연속 사격을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어 주로 공성전에서의 방어시에 널리 사용되었다.(앞서 소개한 오다 노부나가의 전투에서도 이른바 3단 철포가 아닌, 이 조수 사격 방식을 택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2) 사거리에 따른 사격 형태
활과 노는 총과는 달리 발사 속도가 떨어지고 거리에 제한이 있어 포물선 형태로 곡선 사격을 하는 방식으로 응용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직선 사격에 비해서 곡선 사격 시의 사거리가 훨씬 길며, 대포처럼 45도 각도로 발사할때 가장 먼 거리로 사격할 수 있었다.
최대 사거리와 최저 사거리(직선 사격)의 차이는 지형이나 여러가지 기상 조건에 따라 최대 6대 1 이상의 차이가 있었기에, 적과의 위치를 고려하여 적절한 각도로 발사할 필요가 있었다. 때문에 궁병(노병)들은 지휘관이 지시하는 각도에 따라 정확히 발사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았으며, 전원이 같은 각도로 쏠 수 있도록 대열을 이루어 배치되었다.
사수들은 적이 아닌 화살촉 방향을 보도록 훈련받기 때문에 직사가 아닌 곡사 조준시에는 적을 볼 수 없었으며, 때문에 지휘관이 정확한 타이밍에 발사 명령을 내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였다.
(1) 원거리 사격
궁병(노병)의 최초 사격은 -적의 접근 속도와 화살이 날아가는 시간을 고려하여- 적이 최대 사거리 근처에 도착했을때 시작된다. 이때의 사격 각도는 45도로 중세 서양의 전투에서 궁병은 적이 200m 떨어졌을때(잉글랜드의 장궁은 250~300m), 노병은 300~400m 떨어졌을때 지휘관의 지시에 따라 일제 사격을 하였다.
(2) 중거리 사격
접근하는 적이 보병이라면, 원거리 사격을 두차례 정도 가할 수 있으나, 그것이 기병이라면 최대 2발 이상은 발사하기 어렵다.(특히 가벼운 갑옷을 입은 경기병과는 최초 일발의 사격 직후 근접 전투가 벌어지는 사례도 있었다.) 중거리 사격의 각도는 적의 위치에 따라 다르나 대개 25~30도. 원거리 사격의 절반 정도 위치에서 일제 사격하였다.
(3) 근거리 사격
적이 가까이에 육박하거나 난전이 벌어졌을때의 상황에서의 전투를 의미한다. 이 경우, 궁병이라 해도 검이나 도끼를 들고 전투를 벌이는 사례가 더 많으나, 난전으로 인해 자신이 직접적인 목표가 되지 않는 경우 활로서 아군의 보병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이때는 직사 공격을 가하며 아군을 쏘지 않도록 적을 정확히 노리고 사격하였다. 원거리, 중거리 사격과는 달리 지휘관이 지시를 내리기보다 병사 개개인의 판단에 따라 사격하는 경우가 많았다.
단, 전술적으로 궁병(노병)의 매복 공격시 최초 일발은 지휘관의 지시에 따라 일제 사격을 가하고 그후 병사의 판단에 따라 연속 사격하는게 일반적이었다.
3) 전술적 혼합 운용
궁병(노병)은 원거리에서 최고의 효율을 발휘하는 병사이지만, 활을 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일반적으로 갑옷을 입지 않거나 얇게 입고, 무기를 착용한다해도 짧은 도끼나 검을 패용하는 것에 그쳤다. 근접전에서의 전투력은 비교적 떨어지는 편이었으며, 기병의 일제 돌격으로 무너지는 사례가 비일비재하였다.
이에 따라 병사와 무기의 체계가 확고하게 고정되고 충실한 훈련이 이루어지게 된 중세 후기에는 궁병을 단일 체계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근접 전투에 대비하기 위하여 창병과 혼합 운용되는 사례가 늘어나게 되었다.
창병과 궁병을 단순히 섞어 두는 것이 아니라, 블럭처럼 진형을 이루어 배치되는 이 전술은 특히 중기병에 대해 강력한 효율을 보임으로서 기사들의 몰락을 가져오고, 중세 봉건 시대의 종막을 가져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단, 여기에서 등장하는 창병은 길이 2m 정도의 짧은 창을 쥔 일반 병사가 아닌, 4~6m 길이의 장창(파이크)을 사용하는 파이크병이 일반적이었다.) 또한 이 전술은 초기의 머스킷 총에도 응용되어 중세 말기의 가장 보편적인 전술로서 정착되었다.
6. 결론
활과 노에 대한 정리를 통해서 환상 세계의 전쟁과 모험에서도 널리 사용되는 무기의 특성들을 소개해 보았다.
이렇듯 활과 노는 각기 독특한 특성을 가진 원거리 병기로서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는 전장의 주역으로서 서로를 보완하며 활용되었다.
이는 결국 어떤 것이건 만능 병기는 존재치 않으며 모든 무기들이 서로를 보완하며 운용될때 장점을 발휘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실례라 할 것이다.
원문: 표도기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