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남자친구와 동시에 슬럼프의 늪에 빠진 적이 있다. 무엇을 위해 기사를 써야 할지, 그 이유를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대의명분은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알려주고, 기술 트렌드를 알려주는 것”. 그런데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반발심이 먼저 생긴다.
기자로서 회의감이 드는 이유
1. 업체들의 사업 이야기와 정의는 무슨 연관 관계가 있나
다들 업계 최고, 세계 최초의 기술이라고 읊조리지마는 그것은 업체들만의 주장일 뿐이다. 그런 보도자료를 받고 쳐내야 하는 입장에서는 사실 “우리를 홍보 수단으로 보나”라는 의구심도 든다. 한편, 기업의 사업 전략을 하나하나 까기는 힘든 부분도 있다.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에서 자기들 마음대로 사업을 했다가 접는다는데 그것 가지고 뭐라 할 수 있는 명분이 없다.
이를테면 “[집중 취재] 진짜 맛집은 어디에? 광고 일색 네이버의 ‘검색 권력’”이라는 기사에서 네이버가 검색 사업 시장에서의 지위를 남발하고 있다고 주장을 펴더라도 네이버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뿐이고, 품질이나 소비자 만족도는 부수적으로 고려하면 된다. 그러면 여기서 기자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아 뭐 얘네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사업할 수 있지.” vs “아니야, 이건 뭔가 잘못됐어. 잘못됐다는 것을 알려야 해.”
그런데 대다수는 전자를 선택한다. 즉, 기업에서 내보내는 보도자료에서 업체 담당자의 멘트를 따서 약간 보강하는 셈이다. 굳이 딴지를 걸 필요도 없고, 이들이 뭔가의 도약을 위해 새로운 것을 선보인 건 팩트니까. 담당 파트라면 어쩔 수 없이 팔로우업을 해야 하는 것도 이유에 해당한다.
사실 소비자 IT 분야가 아니라면 딴죽을 걸어도 그냥 흠집 내기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 뭐 이건 거의 경제부 쪽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인 듯하다.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언론의 꽃은 사회부와 정치부라고. 실제로 악덕 기업이나 입바른 정치인을 혼내는 건 얼마나 의미가 있는 사회 정의인가!
2. 큰 매체에서 따라 쓰면 허망해
기존에 게재된 이슈 기사와 거의 유사한 리드를 잡고서, 약간 변형하는 형태로 기사를 쓰는 것도 자주 목격된다. 일부 기자들은 다른 기자들이 쓴 기사를 교묘하게 베껴 쓰기도 한다. 한국 언론의 총체적인 문제다. 모 유명 매체조차 교묘하게 서로 베껴 쓰기하고, 똑같은 기사를 제목만 바꿔 나가면서 15분간 한 개씩 발행하는 데 다른 곳은 오죽하랴. [이슈팀]이라는 한정적인 어휘를 붙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은 누가 기사를 썼는지 신경 쓰는 만큼 어디에서 기사를 발행했는지를 눈여겨보는데 정작 윗사람들은 어떻게든 트래픽을 많이 끌어모으면 된다는 식으로 대응한다.
그렇다 보니 기사의 질보다는 양으로 평가를 할 수밖에 없게 됐고, 보도자료 3~4개 처리하면서도 마감 기사를 쳐내야 하는 기자들에게 모든 기사에 힘을 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선택의 문제다. 많은 이들이 이미 고착화된 구조를 바꿀 힘이 없어서 차라리 포기하거나, 아니면 이 바닥을 떠나버린다.
3. 기자라는 자존감의 하락
과거만큼 기자가 존경받는 직업이 아니게 된 것도 한몫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미디어의 고질적인 시스템과는 약간 별개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온라인이라는 공간이 생기게 되면서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대중에 피력할 수 있게 됐으며, 마음만 먹으면 기자가 쓴 기사보다도 더 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이라면, 그리고 그런 글이 더 재미있다면 사람들은 딱딱한 기사보다는 의미 있는 콘텐츠에 더 열광하지 않겠는가.
기사만이 쓸 수 있는 특권적인 콘텐츠의 영역이 무너짐에 따라 무엇을 위해 기사를 써야 하는 건지를 도저히 모르겠다는 게 오늘의 결론이다.
어떻게 기자로 살아가야 하느냐는 고민
어차피 기자 세계에 입문한 것이라면, 어떻게든 전문가가 되어야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오빠는 “잘 모르는데 다른 기자가 그렇게 썼다고 똑같이 쓰면, 독자들에게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줄 수도 있어 너무 걱정된다”고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일부 기자 선배 동료들은 “기자가 다 알고 쓰는 건 아니다. 모르면서도 아는 척 쓰는 것, 그게 기자다”라고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애플 아이폰을 기사로 쓰려면 아이폰의 판매량이나 사용자 이용 패턴에 대해 숙지하는 것도 좋지만, 최소한 아이폰의 보드판을 보면서 분석할 수 있는 수준은 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것도 모르면서” 전문가의 말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앵무새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체험해보지 않고서는 아이폰이나 맥의 진가를 알 수 없는 것처럼, 직접 체험해보고 눈으로 봐야 알 수 있는 기술 메커니즘을 이야기하면서 다 아는 듯이 이야기를 한 방향으로 몰고 갈 수 있단 말인가.
블로거들은 다르다. 자기 생각을 주관적으로 얼마든지 쓸 수 있다. 온라인에 떠돌아다니는 정보를 연결해서 새로운 콘텐츠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 수준의’ 기자가 되려면 블로거들과는 차별화된 점을 내세워야 한다. 그것은 바로 사실에 입각한 객관적인 정보에 곁들인 나만의 시각. 아마도 기사를 쓰면서도 가장 염려한 부분은 나만의 프레임을 갖추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거다. 기자관 자체도 흔들리게 되니까 두려움을 느낀다.
나는 자료 기반으로 글을 쓸 때가 더 많다. 솔직히 시간은 많이 걸린다. 그런데 언젠가는 누군가를 알아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내 이름을 달고 쓰는 기사만큼은 제대로 하려고 노력을 하는 것뿐이다. 기계가 아닌 사람인지라 때로는 실수하고, 때로는 요령을 피울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이렇게 간다.
깊이 있는 통찰력을 갖추는 것, 그리고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 제대로 진단하는 것. 그것이야 말고 궁극적으로 내가 고취해야 하는 가치다. 물론 모든 기자가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건 현장을 누비는 사회부 기자는 그 사람대로 추구해야 할 기자관이 있는 것이고, 나름의 독자적인 비전이 있는 종합지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장 성과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난관을 예상하고는 있다. 누군가로부터 존경을 받는 위치에 오르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온갖 명품으로 자신을 치장해 자신의 우월함을 표시하고는 한다. 자신을 내세울 것이 없어서다. 그래서 유념해야 할 것은, 어떤 기자가 되고 싶은지를 계속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라고 본다.
“나는…정보를 주는 것에 희열을 느끼고, 독자로부터 좋은 피드백을 받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사람”
블로거냐, 기자냐는 직업 타이틀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콘텐츠에 임하느냐, 결국은 바로 그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