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화가 난다. 자꾸만 에버노트가 위기라며, 다른 앱으로 한시라도 갈아타야 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국내 기사들에 이골이 날 지경이다. 제대로 취재하고 썼다면 이렇게까지 큰 파장을 몰고 오지도 않았을 텐데 정말 무책임하다고 느껴지기까지 하다. 에버노트 한국 지사도 있고, 홍보를 전담하는 에이전시가 있는데도 취재를 하지 않고 ‘에버노트에 망조가 껴있다’라며 리드부터 날리는 기사들을 보면서 한숨을 퍽퍽 내쉬고 있다.
지난 9월부터 거의 2개월간 에버노트에 관한 심층 취재를 진행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접근했다. 에버노트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페이퍼리스를 꿈꾸는” 에버노트 중급자를 위한 활용 가이드를 쓸 때 에버노트 엠배서더이자 홍스랩 홍순성 소장을 만나 인터뷰를 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다 회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 원래부터 스타트업에 관심이 있기도 했거니와, 전 세계 1억 5,000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한 비상장기업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알고 싶었다.
지난 포스트에서 언급한대로 에버노트에서 지금까지 발행한 포스트를 모두 컴퓨터에 저장하고, 어떤 서비스를 언제 냈고, 언제 종료했는지 모두 기록했다. 업데이트 주기나 사용자 수를 기록하면서 에버노트가 규모를 키워나간 주기도 파악했다. 그때 마침 에버노트가 ‘죽은 유니콘’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던 시기이기도 했고,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와 취재를 바탕으로 위기의 에버노트, 성장하는 에버노트를 작성했다. 에버노트는 여전히 문제가 없다는 것에 힘을 싣고자 에버노트 아태지역 총괄 사장인 트로이 말론을 만나 인터뷰도 진행했다. “에버노트, 초심으로 돌아가 고객과의 소통에 주력할 것” 아태지역 총괄 트로이 말론 기사를 보면 에버노트는 자체적인 로드맵을 따라 순조롭게 발전해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어느 한 기업에 편향된 의견을 내세우는 것은 그릇된 행동일 수는 있다. 그렇지만 회사 내부 사정과는 관계없는 부정적인 기류로 인해 해당 서비스와 제품을 이용하는 사용자들이 불안함을 느끼는 것이라면, 이를 해소해주기 위해서라도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한가지 논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과 분량이 제한돼 있다는 점에서 기사에서는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블로그를 통해 꺼내보고자 한다.
미국과 한국의 해고 방식
크리스 오닐은 지난 30일 블로그를 통해 “핵심에 집중하기 위해 47명 해고라는 어려운 결정을 했다”며, “더 작은 조직, 핵심에 집중한 조직은 성장과 확장을 위한 발판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어 “사용자가 가장 필요로 하는 주요 기능을 위주로 제품을 개선하고 임무를 수행하는 데 방해가 됐던 사업은 철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곁가지 서비스(에버노트 푸드)나 제품의 가치 전달(마케팅)에 치중하기보다는 제품만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해고 직원 가운데 7~80%가 마케팅 인력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에버노트 코리아는 개발이나 고객 지원 인력은 지금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며 계속해서 새로운 인원이 충원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에버노트 채용 페이지를 보면 플랫폼별 개발자나 운영 지원에 관한 채용 공고가 계속 진행 중이다.
또한, 에버노트 코리아는 경영악화로 인해 직원을 해고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사측은 “전세계 에버노트 일간 신규 가입자는 12만 명으로 사용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신규 프리미엄 전환율은 작년 동기 대비 40% 증가했다”며, “신임 CEO가 분산된 자원(인력)을 최대한 모으고 업무 효율성을 높이길 원한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에서는 일반 해고가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점을 본다면 위기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도 업계 중론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수장인 사티아 나델라도 새로 CEO로 부임하자마자 해고를 예고한 바 있으며 잭 도시도 트위터에 대규모 인원 감축을 단행했다. 담당 업무나 회사 재정 상황 등의 조합이 맞지 않는 경우가 주된 이유다.
임정욱 센터장은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도 전반적으로 해고 문화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며, “법적으로 보장된 퇴직금은 없지만, 보통은 다음 직장을 구할 때까지 생활비 명목으로 몇 주 혹은 몇 달 치 돈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사업 전략에 따라 직원을 해고하기도 하고, 다시 뽑는 곳이 바로 실리콘 밸리라는 설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해고’라는 개념이 익숙지 않는 표현이다. 일반 해고를 가능하도록 하는 정책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데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자유로운 해고’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 나라다.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눈치껏 나가라며 책상을 치워버리는가 하면, 11개월만 채용해버리는 편법을 쓰기 때문이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절대다수의 기업이 이렇게까지 치사한 방법을 쓰지는 않는다. 어쨌든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해고’를 받아들이는 문화적인 온도 차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기업공개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선택이 폭이 넓어지고 기업 이미지 제고 및 신용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IPO를 목표로 하는 기업이 많다. 특히 나스닥은 다양한 기준을 내세워 적자기업도 상장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덕에 IT기업들이 주목하는 시장이다. 대표적으로 중국의 바이두가 있다. 바이두는 2005년 적자의 상태로 나스닥시장에 상장했는데 현재 시가총액 60조 원의 기업으로 크게 성장했다.
에버노트도 매출액보다는 성장 가능성을 평가받아 IPO를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 임정욱 센터장은 “트위터나 페이스북도 상장하기 직전까지는 적자를 냈지만, 시장을 파괴할 만한 잠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상장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며, “매출이 당장 크지 않아도 좋다. 앞으로 얼마나 크게 성장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포인트다”고 설명했다.
필 리빈은 제너럴 캐탈리스트(General Catalyst)의 제너럴 파트너로 합류한 상황에서도 제품 개발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밝혔다. 에버노트 집행역 회장 지위를 그대로 유지한 이유다.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IPO까지는 1~2년이 소요될 수 있으며, 더 많은 자금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에버노트는 예측 가능한 비즈니스, 더 나은 경영, IPO를 하는 데 필요한 사람을 고용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필 리빈, 크리스 오닐
일반적으로 CEO가 자리에서 내려오는 이유는 2가지다. 부진한 실적 때문에 이사진과 투자자들로부터 압박을 받았거나, 혹은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좋아 전문 경영인을 데려오는 경우다. 에버노트는 후자에 속한다. 물론 한국에도 이런 사례가 드물지만은 있다. 손오공의 최신규 회장이 대표적이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필 리빈은 그간 대외적으로 자신을 대신할 CEO를 찾고 있다는 뜻을 밝혀왔다.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는 의미다. 필 리빈은 지난 7월 매셔블과의 인터뷰에서 조직 규모가 커갈수록 CEO의 역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자기 생각을 피력하기도 했다.
“조직이 작았을 때는 잘하는 것만 신경 쓰면 됐다. 그러나 중견 회사 급으로 성장하면 모든 것을 잘해야 한다. 얇지만 넓은 책임감을 져야 했다. 이건 내가 에버노트에 합류한 이유가 아니다.”
“모든 스타트업 창립자들이 페이스북 마크 저커버그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CEO가 초창기 스타트업의 규모를 키웠다고 해서 더 큰, 공개된 회사까지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은 아니다.”
필 리빈이 에버노트를 완전히 떠나버리지 않고 집행역 회장을 남은 이유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그는 회사를 운영하기보다는 제품을 만드는 사람으로 남고 싶었던 것 같다. 그것이 회사에도, 팀원들에게도 더 좋다고 생각한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새로 부임한 크리스 오닐은 애플 생태계를 중심으로 구동하던 에버노트의 DNA를 안드로이드와 윈도우로 이식하는 데 많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구글 출신 크리스 오닐이 다양한 플랫폼을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플랫폼에서의 일관된 에버노트 경험을 전달할 것이라는 기대가 모이고 있다. 에버노트 커뮤니티의 한 사용자는 “크리스 오닐이 에버노트에 끼칠 긍정적인 영향력이 기대된다”라며, “에버노트가 어떻게 성장해나갈 것인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에버노트 코리아의 진대연 AE에 따르면, 필 리빈과 크리스 오닐의 DNA는 각각 애플과 구글을 가르킨다. 그는 필 리빈과 스티븐 잡스가 걸어온 길이 비슷하지 않으냐면서, 마치 필이 애플 팬처럼 느껴졌을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로 에버노트가 그동안 iOS와 맥에 새로운 UX/UI 디자인을 입히며 우선적으로 업그레이드 지원해왔던 것은 사실. 그래서 크리스 오닐과 에버노트의 조합은 에버노트에 다양한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기대되기도 한다. 그가 주머니에서 꺼내보인 폰이 구글 넥서스폰이었다는 사실을 미루어볼 때, 앞으로 안드로이드와 윈도우 사용자는 향후 에버노트의 업데이트 버전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뜻밖의 정보
- 에버노트 한국지사에는 현재 인턴을 포함, 4명이 일하고 있다. 대만 직원 2명이 한국 사무실로 합류. 거주지를 옮기면서까지 에버노트에서 반드시 일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나보다.
- “에버노트, 초심으로 돌아가 고객과의 소통에 주력할 것” 아태지역 총괄 트로이 말론 편에서. 필자는 영어를 읽을 수는 있어도, 깊이 있는 프리토킹을 할 능력은 못된다. 만약 영어로 인터뷰를 진행했더라도 기사의 품질을 보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한국말을 구사할 줄 아는 트로이 말론과 즐겁게 한국어로 인터뷰했다. 무려 1시간 반 동안!
- 에버노트와 싸이월드를 비교하는 사용자도 더러 있다. 그러나 정말 치명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싸이월드는 사용자의 기록을 자기네 서버에 보관해 왔다가 삭제 정책을 들이내밀었다. 반면, 에버노트에서 작성된 모든 데이터는 사용자 컴퓨터에 그대로 보관된다. 만약에, 에버노트가 누군가의 소원(!)대로 망해버린다고 하더라도 에버노트에 보관된 데이터를 잃어버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PC를 포맷하지 않는 한, 데이터는 항상 그곳에 있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서버는 단순히 아이패드,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로 동기화하는 데 필요한 장치다.
- 물론 아직 에버노트는 완벽하지 않다. 사실 노트 내부 검색 기능도 불완전하고, 파일을 첨부하는 기능도 뭔가 부족하다. 그렇지만 5년 전 에버노트와 비교해본다면 5년 후의 에버노트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때는 안되는 게 더 많았다.
- 에버노트에도 마크다운 기능이 일부 적용될 것이라고. 올 연말 즈음에 도입될 커먼 에디터의 활약이 모처럼 기대된다.
원문 : 이수경의 brun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