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사례.
- 어제 모 행사 중간, 담배를 태우러 나왔다가 모금통을 들고 돈을 달라는 노인분을 보게 되었다.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좋은 마음에 가지고 있던 동전 중 얼마를 드렸는데, 왜 오백원짜리 하나는 남기고 주느냐며 다 넣으라고 역정을 냈다. 반말이었다.
- 행사가 끝나고 촬영을 맡았던 여자 PD님이 장비를 1층으로 내리는 걸 거들어드렸는데, 회사 차량을 기다리는 동안 또 다른 노인분이 오셔서는 한겨레 창간과 자신의 인생역정에 대해 시끄럽게 떠들며 훈계를 하기 시작했다.
- 이 양반을 간신히 보내고 난 뒤, 행사를 함께 진행했던 다른 여자 기자분들 두 분과 함께 차에 기자재를 싣는데, 또 다른 노인분이 오셔서는 자신이 서울대 출신이고 한겨레 창간도 도왔는데 요즘 너네는 박근혜나 다름이 없는 놈들이라며 울화를 쏟아냈다.
노인 전반에 대한 혐오로 달려가기 전에, 일단 모든 노인들이 이렇지 않다는 점, 그리고 모든 빈곤 노인들이 이렇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해둬야 한다. 공공장소에서 세상을 향해 울분을 쏟아내며─무작위로 선별된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자신보다 어리고 덩치도 작고 대부분의 경우 여자인─타인에게 다짜고짜 훈계를 하는 이들은, 경험상 대부분 얼큰하게 취한 남자 빈곤 노인이었다.
아마 위에서 뭐라고 하면 곧이곧대로 들어야 했고, 자신 또한 아래를 향해 별 성찰이나 두려움 없이 이야기해도 되는 시대를 살았으리라. 그러다가 노동 인구에서 탈락한 순간, 돈이 없으면 국가도 사회도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을 게다. 억울할 것이다. 자신이 한때 위계로 찍어내리던 이들도 더이상 그를 존중하지 않을 테니. 위계 때문에 존중받았던 사람들은, 그 위계를 잃는 순간 존중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이치이므로.
당연히 불행한 일이다. 실제로 노인 빈곤과 노인 우울증은 심각한 문제다. 자신이 불행한 이유를 진지하게 돌아보고 반성할 건 반성하고 그 성찰의 결과를 고백하며 손을 내밀면 문제는 다소 쉬워질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대체로 상명하복이나 위계질서, 패거리주의를 벗어난 소통방식을 배워본 적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제 삶이 뒤틀려있단 것, 제 삶의 방식이 잘못되었단 걸 이제 와서 인정할 용기도 없다. 그러니 모든 게 꼬이는 거다.
어울려 주는 사람이 없어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싶고, 당장의 생계가 어려워서 돈통을 들고 구걸을 하러 나왔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너무 자존심이 상한다. 그러니 자기가 아쉬운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나이로, 인생 경험으로 상대를 찍어눌러 억지로 존경과 존중을 받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일 터이다.
그러나 이게 될 리 없다. 나이가 많은 건 벼슬이 아니고, 존중할 만한 인생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상대에게 무례하게 굴진 않아도 자연스레 존중을 받는다. 그러니까 이들은 구걸을 하면서도 화를 내고 말벗을 청하면서도 훈계와 욕설 외에 다른 말을 하지 못한다. ‘요즘 젊은 것들’은 예전에 자신이 잘 나가던 시절 제 아랫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존경(이라고 착각할 수 있는 뉘앙스)의 눈빛으로 자기를 경청해주지 않고, 울화는 더욱 쌓이고 악순환은 계속된다.
더 비극적인 것은, 이 노인들은 본인들이 평생에 걸쳐 동의하고 헌신해 온 경제 체제 자체가, 비경제인구에 대한 복지를 극단적으로 축소하는 방향으로 작동해, 결과적으론 노인 복지를 줄이고 도시 임금노동자의 수입을 줄여 노인 부양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자꾸 제3의 상대를 찾아 책임을 전가시킨다. 불효막심한 요즘 것들, 노인을 공경할 줄 모르는 요즘 것들, 나라는 부자가 됐는데 그 부를 중간에서 자꾸 채가서 날 이 지경으로 만든 좌파 빨갱이 프리라이더들…
이런 이들이 모여서 단체로 현실을 도피하며 만든 단체들이 대부분 극단적인 정치단체다. 어버이연합, 고엽제전우회… 물론 김기종의 예로 보듯 이런 종류의 현실도피에는 좌우가 없다. 좌절된 자기 인정 욕구와 노인 우울증을 더 거대한 프로파간다와의 자기동일시를 통해 상상-영웅적으로 극복하려는 이들은 널리고 널렸다.
당연히 국가와 사회가 나서야 하는 문제가 맞다. 그들도 피해자니까. 그런데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일차적인 책임은 한국에서 어른으로 산다는 건 으레 이런 거라고 자기합리화를 하며 본인의 사고방식과, 인간을 대하는 태도가 그 지경으로 망가질 때까지 스스로 방관한 본인에게 있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하면, 개인적 층위에선 별로 동정할 생각도 들지 않는다.
덧:
- 물론, 이러한 특징을 공유하지 않는 노인들에게는 유감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홍대역 2번 출구 댄서 할배 보고 싶다. 요즘은 날이 추워져서 잘 안 나오시는 듯…
- 사실 내가 이렇게 길게 써놓은 내용은 이미 수 년 전 내 가장 친한 친구가 이렇게 요약한 바 있다. “좆이 안 서서 그래.” 인터넷상에 “아재 고추 서요” 드립이 나오기 몇 년 전에 일찌감치 이 요약을 선보인 친구에게 리스펙트.
- 연예계 언저리를 오래 돌아다니며 배운 사실인데, 젊은 여자 연예인에게 모욕적인 악플을 다는 악플러들을 굳이 추적해 잡아보면 ‘철없는 10대들’보다 50대 전후 남성 비율이 훨씬 더 높다. “내가 함부로 해도 되는 대상”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길고양이를 학대하는 이들의 대다수 또한 이 연령대 남성에 몰려있다. 2015년 12월 27일 방영된 SBS <TV 동물농장>을 보라. 자기가 조금 더 평온하게 살고 싶단 이유로 다른 생명을 우습게 학살하는 중년 남자들이 득시글거린다.
원문: 이승한님의 페이스북
커버이미지 출처: 허핑턴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