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기사에 언급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정부는 “군의 행위”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통감하고, 한국정부가 만드는 피해자 지원재단에 10억엔을 지원한다.
그 반대급부로 한국정부는
-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이 문제를 결론짓고 더 이상 언급하지 않으며
- 위안부 관련 자료의 영구 보존 및 위안부 피해 관련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는 일을 (한국에는 알리지 않은 채) 포기하고
- 서울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을 철거한다.
이 기사 및 다른 기사들에서 언급된 내용을 추가로 참고한다면,
- 의사결정과정에서 피해 당사자들의 의사를 묻는 과정은 없었으며
- “불가역”이라는 표현은 한국정부에서 먼저 요청했다.
위의 두 사항은 협상 타결 후 외교부 측에서 피해자 모임에 통보한 멘트 및 기타 정황에 비추어 볼 때, 공통적으로 박근혜 대통령 측의 강력한 의지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추정컨대 박근혜 대통령의 의도는 한-미-일 연합에 강력한 장애물로 남아있는 위안부 문제를 최대한 빠르고 확실하게 현안에서 삭제하는 것이었으며, 부분적으로는 이를 위해서, 동시에 정책결정과정에서 시민의 의사를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지 않는 자신의 평소 신념에 따라 피해자들의 의사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경북도민일보의 사설이 언급하는 ‘외교에 일방적인 승리란 없다’는 전제에 원칙적으로는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외교적 현실주의를 빙자하여 국가적 (성)범죄의 처리과정으로부터 피해자의 목소리를 박탈하는 결정을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이번의 결정을 통해 박근혜 정부는 수십 년 전에 가해진 폭력을 사실상 현재형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위안부 피해자에게 가해진 폭력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층위로 정리할 수 있다.
- 2차 대전 기간동안 벌어진 일본정부에 의한 성범죄 및 기타 반인권적 행위
- 2015년 한국정부의 주권 남용에 의한 (피해보상과정에서의) 시민 당사자의 의사결정권 침해
- 2015년 한국정부가 행한 자의적인 판단에 따른 성폭력 피해여성의 권리 침해
나는 한국정부의 결정이라는 단일한 행위를 2항과 3항으로 의식적으로 분리하여 언급한다. 이는 이 결정이 한편으로 정부가 자의적으로 시민의 권리를 침해한 것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성폭력 피해여성의 공적인 발언권을 박탈한다는 점에서 이중의 침해가 행해졌음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요컨대, 박근혜 대통령/정부는 스스로가 시민과 여성/성폭력 피해자의 권리에 어떠한 관심사도 기울이지 않는 정부임을 입증하는 과제를 아주 쉽게 달성했다.
2015년의 마지막을 두 가지 사건이 장식한다. 하나는 소라넷, 다른 하나는 한국정부의 위안부 협상.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는 두 사건으로부터 우리는 공통적으로 한국 시민-여성의 권리가 어떠한 처지에 놓여있는지를 똑똑히 볼 수 있다. 국가가 방치한 곳에는 시민-여성을 섹스토이로 다루는 문화가 있었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선 곳에는 시민-여성의 권리를 박탈하는 단호함이 있었다.
현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극우파들은 이것이 나름 여성의 권리신장을 보여주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유감스럽게도 반인반신의 자손에게는 여성에 대한 고려 따위는 없었는데, 그에게는 한국인들이 애초에 동료 시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왕의 수첩에는 시민권도, 여성주의도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