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린 효과: 신세대의 IQ는 언제나 구세대보다 높다
플린효과(Flynn Effect) 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뉴질랜드의 정치학자 제임스 플린이 발견한 현상으로 세대가 반복될수록 지능검사 점수가 높아지는 현상입니다.
플린은 미국 군입대 지원자들의 IQ 검사결과를 분석해 신병들의 평균 IQ가 10년마다 약 3점씩 올라간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1987년 14개국으로 대상을 확대 실시한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얻었습니다. 벨기에,네덜란드,이스라엘에서는 한 세대, 즉 30년 만에 평균 IQ가 20점이 올랐고, 13개국 이상의 개발도상국에서도 5~25점 증가했다는 보고서가 발표된 바 있습니다.
지능은 타고나는가?
원래 플린은 ‘백인과 흑인의 지능점수 간의 차이가 유전적인 필연이다’라고 주장하는 아더 젠센의 저서 <The Bell Curve>를 반박하기 위해서 조사를 하다가 이런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젠센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1차 대전 때 세계최초로 미군이 징집자들을 대상으로 집단지능검사를 실시했을 때, 흑인과 백인 간의 IQ점수는 평균 15점 정도 차이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점수 차이는 최근까지 별로 줄어들지 않고 유지되고 있습니다. 젠센은 이런 결과를 근거로 흑인은 애초부터 머리가 나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젠센은 동시에 이 종 모양 분포의 특성상, 흑인 전체와 백인 전체의 평균지능 차이가 있다고 해도 모든 흑인이 백인보다 지능이 낮다는 뜻은 아님을 부연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플린은 흑인이든 백인이든 모두 세대를 거치면서 지능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젠센의 종 모양 곡선(Bell Curve)이 필연은 아님을 증명했습니다. 만약 흑인이 애초부터 머리가 나쁘게 태어난다면, 시간이 지나고 세대가 바뀌더라도 흑인의 지능점수는 그대로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플린효과는 그렇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현대 흑인의 지능점수 평균은 30년 전 백인들의 평균 지능점수를 넘어섰습니다. 따라서 지능검사 점수의 차이는 유전이 아니라 환경의 문제임이 증명된 것이었습니다.
이는 Uric Neisser 라는 심리학자가 쓴 책 <Rising Curve>의 주된 내용입니다. 그는 위와 같은 근거로 젠센의 Bell Curve를 반박했습니다. (그래서 제목도 Bell Curve에 상응하는 Rising Curve로 정했죠.)
IQ는 지능 그 자체가 아니다
그렇다면 왜 현대인들은 이전세대보다 IQ가 높은 것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우선 IQ검사가 학교 교육에 필요한 능력, 특히 쓰고 읽고 셈하는 능력을 주로 측정한다는 점을 확실히 이해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IQ는 지능 자체가 아니라는 거죠.
원래 IQ 검사는 보통교육의 실시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국민국가는 의무교육과 보통교육 시스템을 필요로 합니다. 보통교육은 국민국가가 탄생하면서 모든 국민들에게 자국민으로서 최소한 공유해야 하는 지식과 가치관을 주입시키기 위한 시스템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모두에게 표준화된 교육을 시키려다 보니, 몇 살짜리를 학교에 끌고 와서 어떤 걸 가르쳐야 할지를 정해야 하는데 아무도 여기에 대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국가에서는 심리학자들을 불러옵니다. 이들에게 몇 살 짜리 아이들이 뭘 할 수 있고 뭘 할 수 없는지, 뭘 가르칠 수 있고 뭔 가르쳐봤자 소용없는지를 조사해서 표준을 만들어 놓으라고 한 거죠. 프랑스의 알프레드 비네가 처음으로 이 임무를 완수합니다.
그가 만든 기준은 처음에는 ‘학업 적성 검사’라고 불렸습니다. 특히, 비네는 최초로 IQ의 산출공식을 내놓습니다. 애가 태어난 이후 지난 시간을 기준으로 신체연령을, 아이에게 비네 학업적성 검사를 시켜봐서 측정한 아이의 지적 능력을 정신연령으로 정한 다음 정신연령을 신체연령으로 나누어 100을 곱하면 지능지수(IQ)가 나온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그의 학업 적성 검사는 IQ검사로 불리게 됩니다. 최초의 IQ검사가 탄생한 겁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IQ는 처음에 만들어질 때부터 아동의 고유한 지능을 측정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런걸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위에서 보셨듯, IQ는 애초부터 지적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검사라기보다는 수학능력시험에 더 가까운 검사입니다. 즉, IQ나 IQ검사는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기능을 난이도 순서대로 배열하고 개인이 어떤 단계에 와 있는지를 구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기능의 순서는 보통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육과정에 그대로 반영됩니다. 따라서 한 아이의 IQ 점수는 그 아이의 학교 성적을 가장 잘 예언할 뿐, 그 아이의 지적 잠재력이나 실제 지적인 능력 자체를 측정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지능검사가 완전히 지적 잠재력과 무관하지는 않습니다. 학교성적도 지적 능력의 결과 중 하나이니까요)
한 아이의 실제 능력은 결국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 얼마나 잘살고 있는지, 성공했는지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데, 여러 연구결과에 의하면 통계적으로 지능과 성공(혹은 연봉이나 직위수준) 간의 상관이 상당히 낮습니다. 연구결과들에 의하면 IQ가 사회적 성공을 예측할 수 있는 정도는 약 20% 내외였습니다. 반면에 IQ와 학교 성적과의 상관은 50% 정도로 상당히 높게 나타납니다.
플린효과의 원인은 인터넷
그렇다면 플린효과는 왜 나타나는 것일까요? 아마도 현대 아이들의 생활 환경에 바로 이 쓰거나 읽거나 셈하는 것과 관련된 과제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농경사회에서 아이들은 뛰고 수영하고 뒹굴면서 놀았습니다. 이때는 읽고 쓰고 셈하기는 학교에 가서나 배우는 아주 드문 활동이었죠.
그러다가 도시화가 되면서 점점 주변에 책이 늘어나고 TV 같은 대중매체를 통한 놀이가 늘어나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크건 작건 쓰고 읽고 셈하는 과제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도시 아이들은 그냥 돌아다니며 놀면서도 저절로 학교에서 가르치려는 능력을 미리 습득하는 것입니다.
최근 들어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인터넷과 컴퓨터게임입니다. 인터넷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예전에 비해서 훨씬 많이 읽고 쓰게 되었습니다. 의식 못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인터넷에서 읽고 쓰기는 오프라인 공간에서 숨 쉬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필수적인 활동입니다. 읽고 쓰는 것을 빼면 인터넷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어집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들은 인터넷을 통해서 제 글을 읽고 계시죠.
KBS의 한 다큐프로그램 <호모 이미지쿠스>에서는 인터넷을 통해서 아이들의 이미지를 다루는 능력이 향상된다고 말했습니다만, 인터넷은 이미지뿐만 아니라 텍스트를 다루는 능력도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터넷 이전 세대들이 얼마나 자주 글을 읽거나 써야 하는 상황에 처했는지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분명히 실감하실 수 있습니다.
인터넷 이전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은 글은 신문일 겁니다. 하지만 그 신문도 하루에 한 번, 길어야 2~30분간 읽고 말았죠. 그런데 요즘 웹서핑을 한다는 건 결국 웹을 돌아다니며 계속 글을 읽어댄다는 뜻입니다. 웹서핑을 하루에 몇 시간씩 하시나요? 적어도 신문 보는 시간보다는 길 겁니다.
글쓰기의 변화는 더 극적입니다. 인터넷 이전에는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회사에서 보고서를 쓰거나 누구에게 편지를 보낼 때를 제외하고는 글을 쓸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전 세대들이 한 달에 한 번이나 쓸까 말까 했던 글을 요즘 세대는 거의 매일 씁니다. 리플을 달고 게시물을 만들어 올리기 위해서죠.
컴퓨터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컴퓨터 게임은 읽기와 함께 셈하기를 요구합니다. 게임을 하기 위해서도 역시 지시문을 읽어야 하고, 결과를 셈해야 하며, 더 잘하려면 게임 사이트에 들어가서 유저 팁 같은 내용을 찾아서 읽어봐야 합니다.
또한 게임을 하려면 민첩해야 하고 제한된 시간 안에 손을 움직여서 문제를 해결하는 일도 잘해야 합니다. 이렇게 환경이 변화한 결과 지능검사 점수가 높아진 것입니다.
플린효과는 똑똑함이 아니라 IQ의 향상을 말한다
결국 플린효과는 이전세대에 비해 새로운 세대가 더 똑똑해지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새로운 세대들이 놀며 자라나는 환경이 학교 환경과 점점 더 비슷해져 왔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학교 교육 시스템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적절히 반영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현대 사회의 각종 시스템에 익숙해진다는 것이 학교 교육 제도 속에서도 잘 지내는 것과 결국 같다는 뜻이니까요.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요? 학교 교육 제도와 거기서 가르치는 내용은 190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이후 지금까지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정해진 교실에 들어앉아서 교재를 펴고 선생님에게서 읽고 쓰고 셈하기를 배웁니다.
따라서 IQ검사의 내용도 별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회는 너무 많이 변하지 않았던가요? 어쩌면 학교 교육 제도나 그것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IQ가 사회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즉, 언제까지나 플린효과가 지속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환경은 계속 진화할 테니까요. 예를 들어, 사이버 공간은 갈수록 신화와 전설, 상상과 이미지가 부각되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오가는 글은 갈수록 짧아지고 그 빈자리를 디카 사진이나 이모티콘, 아바타 같은 이미지들이 채워줍니다. 숫자도 다양한 이미지로 표현되기 때문에 숫자셈을 하기보다는 그냥 이미지를 보면서 직관적으로 느끼면 됩니다. 그래서 사이버 공간의 신세대들은 이성적인 현대인이 아니라 중세시대 사람들의 마음 상태에 더 가까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럼 이런 환경에서 자란 세대의 지능검사 점수는 어떻게 나타날지… 궁금해집니다.
원문 : 싸이코짱가의 쪽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