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폭스바겐의 디젤 게이트로 독일 차 이미지가 많이 망가졌습니다. 어떻게 그 연비와 그 출력을, 질소산화물 배출량도 억제하면서, 그 가격에 내놓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리면서 “외계인 기술을 갈아 넣었다”는 독일 엔지니어링의 신화도 체면을 구겼죠.
그런데 무기 분야에서도 독일이 크게 망신을 당한 일이 2015년에 벌어졌었습니다. 바로 독일연방군의 최신 제식소총인 G36 스캔들이죠.
아시는 분은 아실 수도 있지만, G36은 독일의 총기 명가 H&K에서 내놓은 플라스틱제 소총입니다. <매드 맥스>의 불릿파머께서 그렇게 가열차게 외치시던 Heckler 형제와 Koch 형제의 작품이죠.
작동방식은 유진 스토너 옹이 AR18에서 완성한 숏 스트로크 방식이었고 탄창도 불펍이 아닌 그냥 대부분의 소총과 같은 보수적인 방식이었지만, 소재선택은 엄청나게 급진적이었습니다. 바로 총의 외피 전체를 플라스틱(이라고 하면 연약해 보이지만 고강도 폴리머)으로 만들었다는 점.
노리쇠 총열 그 외 스프링 등은 강철이지만, 나머지는 총 윗몸통에서 아랫몸통, 개머리판, 탄창까지… 심지어 격발장치(해머)조차 도 플라스틱입니다.
플라스틱의 내구성을 고려해 나름 튼튼하게 만드느라 무게도 그닥 가볍지는 않았으나 그 덕분에 모든 부분이 넉넉하게 설계되어 신뢰성은 높았습니다. 그 외에도 상부에 조준을 돕는 광학 조준 기구를 기본으로 장비한다는 점과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 모두가 불편 없이 조작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인체공학적 장점도 있었죠.
일반적인 사격시험에서는 꽤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총기 전문가들도 꽤 좋은 평가를 했죠. 그 결과 이 총은 2차 대전 이후부터 지금까지 독일군이 주구장창 써오던 크고 무겁던 G3 소총을 교체하면서 G36이라는 제식명으로 1995년 독일군에 채택된 후, 20년의 세월 동안 약 18만 정이 군에 보급됩니다.
독일군뿐만 아니라 스페인군에도 제식 채용이 되었고, 미군 특수부대를 비롯한 많은 나라의 특수부대에서도 시험적 혹은 제식으로 채용했습니다. 최근까지도 이 총은 독일 무기 제조기술을 대표하는 물건으로 온갖 영화에도 자주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이 G36이 최근 아주 심각한 문제점을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거죠. 일반적인 조건에서는 별 문제가 없지만, 아프간이나 이라크 같은 열사의 사막에서 좀 많이 사격을 하다 보면 총알이 조준한 곳이 아닌 엉뚱한 곳에 맞는다는 거였습니다.
원인은 아마도 플라스틱. 총 전체를 플라스틱으로 만들고 거기에 총열을 박아넣었다는 것.
아무리 최신기술로 만든 고강도 폴리머라고 해도 플라스틱인지라 열에 약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더운 곳에서 연사하면 그 열과 총열에 가해지는 발사 압력으로 인해 총열의 위치가 조금씩 뒤틀린다는 겁니다.
사실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이 총을 지급받아 전선에 투입된 병사들이 총이 너무 약하다는 불만을 제기했지만 무시되어 왔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2010년에 아프간에서 벌어진 탈레반과의 대규모 교전(거의 3만 발의 실탄을 사격한)에서 독일군이 3명이나 전사했는데 정작 구식 AK소총으로 싸운 탈레반 측의 확인된 피해는 거의 없었다는 결과(겨냥한 곳에 맞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었을 듯)가 공개되면서 결국 희대의 스캔들로 비화합니다.
조사가 시작된 이후, 이전부터 G36 소총의 치명적인 문제점을 HK사와 독일 관련부처에서는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현재 독일군과 국방부에서는 이 사건을 HK의 사기로 간주해 고발했고 독일연방조달청은 지난 24개월 동안 납품받은 G36 4,500정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걸었다고 합니다.
폭스바겐의 디젤 게이트와의 공통점은 여기서도 미국이 관계가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미군은 MK를 대체할 차기 소총으로 HK에서 만든 XM8이라는 모델을 채용할 계획이었습니다. XM8은 모양이 이상하게 바뀐 G36이라고 봐도 될 만큼 거의 같은 소재와 구조로 만들어진 총입니다.
당시 미군은 야심찬 차세대 보병 화기로 지능형유탄발사기와 소총이 결합된 물건을 개발 중이었고, H&K 사는 이 사업의 최종파트너로 선정되어 이 차세대 보병 화기와 함께 일반 보병에게 쥐어줄 통상적인 소총도 자기들이 막 개발했던 G36의 변형 모델(이 물건은 차세대보병 화기에도 사용될 예정이었음)을 모양만 좀 바꿔서 들이밀었습니다.
그런데 미군은 이 총으로 자기네들 특유의 “죽음의 레이스”라 불리는 지속 사격 테스트를 해 본 결과, 이 XM8이 지속 사격을 하면 총의 일부가 녹는다는 사실(G36과 결국 같은 문제)을 발견했고 이를 계기로 이 총의 채용을 취소하고 M4를 주구장창 계속 쓰기로 합니다. (사실 이라크전쟁에 너무 많은 돈을 처발라서 소총 바꿀 돈도 없었고요) 결국 독일 혹은 HK 측의 사기에 미군만 속지 않은 결과가 된 거죠.
어쨌든, 미국은 많은 경우에 멍청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윗대가리들이 제대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원문: 싸이코짱가의 쪽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