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준비를 하느라 한국, 미국, 일본, 중국의 부자 랭킹을 살펴봤다. 일전에 여기저기서 본 것은 있지만 내가 직접 좀 자세히 살펴보고 싶어서 그랬다. 세계의 부자 랭킹은 미국의 잡지 포브스가 매년 집계한다.
주로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상장된 주식이나 비상장주식의 가치를 인정받아 부자 랭킹에 드는 경우가 많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각 나라별로 당대에 창업해서 부호가 된 사람(자수성가, Self made)과 부모의 재산을 상속받아서 부호가 된 사람의 비율이었다.
부자 랭킹에 상속자보다 창업자들이 많다면 그 나라의 경제는 보다 역동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새로운 기업이 나와서 계속 기존 강자를 위협하며 성장하고 있다는 얘기니까 말이다. 그래서 대충 살펴보니 아래와 같은 결과가 나왔다. 각국별 포브스 랭킹을 캡처한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나 서경배 회장 같은 분들을 단지 상속자로만 적는 것은 좀 문제가 있긴 하다. 이분들은 상속받은 회사를 본인의 경영능력으로 훨씬 큰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냈기 때문이다. 그런 점은 감안하고 봐주시면 좋겠다. 7위가 스마일게이트 권혁빈 회장, 8위가 넥슨 김정주 회장, 9위가 부영의 이중근 회장이다.
11위에 다음카카오의 김범수 의장이 보인다. 15위에 미래에셋의 박현주 회장이 있고, 17위가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이다.
21위~30위 사이에는 창업자가 1명이다. 아이에스동서의 권혁운 회장이다.
(SPC그룹 허영인 회장은 처음에는 창업자로 분류했다가, 상속자로 바꿨다. 허 회장은 삼립식품의 2세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중견 회사를 물려받아 크게 키운 분들을 그냥 상속자로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일단 상속자로 분류했다.)
대충 봐도 한국은 상속자들의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0위안에 창업자가 7명이고 상속자가 23명이다. 이중 범삼성가가 7명이나 된다는 것도 대단하다.
미국은 어떨까? 한국 1위 이건희 회장이 미국에 가면 29위가 될 정도로 미국엔 엄청난 거부들이 많다. IT 거물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공동 6위인 코크형제는 비상장회사들을 경영하고 있다. 보수주의자로 유명한 사람들이다. 9위, 10위의 월튼 가족은 월마트의 상속자들이다. 하지만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짐 월튼만 월마트 이사회에 들어가 있다. (그는 따로 자신의 은행을 경영한다.) 귀찮아서 10위까지만 봤다. 11위, 14위에 구글의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이 있는데 최근 구글의 주가 폭등을 고려하면 지금은 10위안에 들고도 남는다. 포브스지에 따르면 미국 부자 전체 400위 랭킹의 69% 정도가 자수성가한 창업자라고 한다.
의외로 일본도 창업자들이 많다. 1위는 유니클로 창업자인 야나이 타다시 씨다. 2위는 손정의. 4위는 라쿠텐의 미키타니 히로시. 일본에 생각보다 큰 상속부자들이 적은 것은 재벌이 일찌감치 해체되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3위의 노부타다 사지 씨는 창업한 지 120년이 넘는 산토리의 창업가문 4대다. 10위 안에 한국계가 2명이나 있다는 것도 특기할만하다.
그리고 가만히 미국과 일본의 부자 순위를 살펴보면 상속자로서 순위 상위에 있는 경우 비공개기업의 오너이거나 대주주인 경우가 많다. 공개기업의 경우 대규모투자를 받으면서 일단 창업자의 지분이 희석되고 또 그 재산을 상속받으면서 상속세를 내기 때문일 것이다. 코크형제의 회사들도 비공개기업이며 일본의 산토리도 비공개기업이다.
그럼 이제 중국을 보자. 최근 수십 년간 급속한 산업화를 이룬 중국의 부호는 대부분 자수성가한 창업자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30위까지 살펴보고 좀 놀랐다.
중국 인터넷을 이끄는 BAT, 즉 알리바바, 바이두, 텐센트 삼두마차의 창업자들이 1~3위를 점하고 있다. 샤오미의 창업자 레이준도 8위다.
19위에 가서야 겨우 상속자가 한 명 보인다. 부동산기업을 물려받은 34세의 양휘옌이다.
그리고 나서 30위까지 모두 창업자들이다. 창업자 대 상속자의 비율이 29대 1이다. 믿기지가 않아서 한명 한명 클릭해서 모두 확인해봤다. 모두 Source of Wealth에 Self made라고 표시되어 있다.
이것을 보니 가히 한국은 ‘상속자의 나라’, 중국은 ‘창업자의 나라’라고 할 수 있겠다. 중국의 기업 역사가 일천해서 그렇기도 하다. 수십 년이 또 지나면 중국도 한국처럼 상속자의 나라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 이런 차이가 두 나라의 경제의 역동성에 어떤 차이를 줄지 한번 생각해볼 만하다. 요즘 중국기업들의 의사결정이 빠르고 도전적으로 세계시장에서 활약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2세, 3세가 아니라 기업가정신이 넘치는 창업자들이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대기업에 도전하는 스타트업을 키워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원문: 에스티마의 인터넷이야기 EstimaStory.com
※ 글쓴이 주: 포브스의 부자 순위가 절대적으로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저의 상속자─창업자 분류도 부정확할 수 있습니다. 틀렸다고 생각되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