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아이즈에 재미있는 글이 올라왔다. 위근우 기자가 라면을 소재로 쓴 맛깔나는 에세이다. 12월 23일에 올라온 글인데, 이 글이 올라오고 5일이 지난 후, 그러니까 28일 오후에 JTBC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아이즈의 글을 베꼈다는 의심이 강하게 드는 카드뉴스가 올라왔다.
이것은 없던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필요했던 명분을 제공하는 것이다. 단순히 유혹하거나 혹은 상대방의 의중을 떠보고 싶은 것이었다면 커피 한 잔, 좀 더 과감하게는 술 한 잔을 청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그 둘에게는 돌이켜봐도 덜 쪽팔릴, 괜찮아 자연스러웠어, 라고 말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필요했다. 과연 여기에 라면보다 더 좋은 명분이 있을 수 있을까.
─위근우 기자의 “‘라면 먹을래요?’라는 마법의 주문” 중에서
─JTBC “라면..먹고 갈래요?” 중에서
아이즈의 글과 JTBC의 카드 뉴스는 몇 가지 면에서 매우 흡사하다. 가장 먼저 라면이라는 소재를 두고 <봄날은 간다>의 “라면 먹을래요?”라는 대사를 인용한다. 세 번째 카드의 “’술 마실래?’보다 가볍고, ‘커피 마실래?’ 보다 묵직한”이라는 문구는, 아이즈의 글에서 커피와 술이라는 라면의 비교 대상을 그대로 빌린 것으로 보인다. 임춘애의 라면과 god의 짜장면에 대한 얘기도 아이즈 글에 언급되는 얘기다. 모 라면 광고라고 JTBC의 카드 뉴스에서 언급됐던 것도, 농심 신라면의 TV 광고라는 것이 아이즈 글에 언급된다.
어떤 언론이 다른 언론사와 비슷한 내용을 기사화하면서 사실상 별 다를 게 없는 내용을 똑같이 써내려가는 (우라까이) 관행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그런 우라까이 관행이, 카드 뉴스라는 원문과는 다른 전달 방식으로 자행되면서 마치 자신들이 오리지널 컨텐츠 제작자인 양 행세하게 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질문을 던지게 한다: 컨텐츠의 전달 방식을 바꾼 게 새로운 컨텐츠를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는가? 답은 명백하다. 당연히 그렇지 않다. 전달 방식을 바꿨다 하더라도 이런 짓이 컨텐츠 도둑질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JTBC 정도 되는 언론사에서 그런 사실을 몰랐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굳이 이 얘길 꺼내는 이유는 JTBC의 도둑질이 이런 일의 유일한 사례가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국내 언론들끼리도 소위 팔릴 것 같은 소재가 있으면, 크레딧을 세탁하고 카드 뉴스로 바꿔 버리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당연히 외신에 올라온 흥미로운 기사도 예외는 아니다. 안타까운 건 옮겨지는 과정에서, 카드 뉴스의 특성상 세부적인 맥락과 전달이 필요한 사실보다는 원래의 뉴스에 약간의 감동 코드가 더해지고, 뉴스에 집중하기보다 페이스북에서 얼마나 더 잘 소비될 수 있는가에 집중한 컨텐츠가 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 이건 소비성에만 집중한 카드 뉴스라는 전달 방식의 한계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소비되느냐는 분명 컨텐츠를 전달할 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소비성에 무게를 둔 나머지 컨텐츠 자체의 품질이 떨어진다면 그건 분명 심각한 문제다. 어떤 내용을 전달하고자 할 때 최적의 전달 방식이 무엇인가는 전달하는 내용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것이지, 소비하기 좋은가에 따라 달려져야 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카드 뉴스를 이용한 컨텐츠 도둑질은 단순한 잘못이 아니라, 안일하고 무책임한 잘못이다.
상대적으로 페이스북에서 소비되기 쉬운 포맷으로 바꾸고 좋아요를 갈구하는 모습은 페이스북 시대 매체들의 슬픈 현실이자, 기존 국내 매체들이 행해온 부적절한 컨텐츠 도둑질의 최신 버전이다. 얼핏 세련되어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은 결코 그렇지 않다. 소설을 마음대로 영화로 만들면, 영화라는 새로운 포맷을 채택했으니 원작자에게 알리지 않아도 될까? 그렇지 않다는 걸 컨텐츠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모를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