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야마 담화의 한계의 한계는 애초에 뚜렷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사민당(당시에는 일본사회당)의 주도로 아시아 국민기금이 만들어진다. 이게 위안부 배상문제의 첫 삐걱거림이었다.
애초에 무라야마 담화는 ‘법적인 배상문제는 샌프란시스코조약과 한일기본조약 및 청구권 배상에서 이미 끝이 났다’는 걸 전제로 한다. 다만 일본인으로서의 도의적 책임이 아직 남아있다는 논리다.
때문에 정부기금이 아닌 민간기금으로 보상금을 전달한다는 방침이 세워진 것이다. 여기에 와다 하루키 등 일본 내 지식인들이 동참하고, 85억원의 기금이 마련된다. 대상은 한국, 대만, 필리핀 등의 위안부 피해자 284명이었다.
받아도 될 돈을 받지 않은 김영삼 정부
하지만 김영삼 정부는 일본정부의 보상금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정대협 역시 제대로 된 사죄 및 배상금이 아니라며 이를 거부했다. 책임을 지지 않은 일본 정부가 민간 기금 마련에 앞장섰으니, 대외적으로는 마치 일본이 책임을 진 듯한 그림이 그려진다는 이야기다. 실제 일본 정부는 각 부서에 협조를 지시하기도 했다.
대신 김영삼 정부와 정대협은 민간 기업들을 참여로 1인당 4천만원 정도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전달한다. 정확히는 김영삼 정부 때 피해자 생활안정 지원금과 영구임대주택 우선입주권이 주어지고, 김대중 때 정대협의 모금액과 합친 4300만원이 지급된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번 삐걱거림이 발생한다. 위안부 할머니들한테 아시아 기금을 받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게 한 것이다. 허나 7명의 할머니는 일본 측의 아시아여성기금을 받았고, 정부는 이분들에게 한국 정부의 국민기금을 전달하지 않는 병크를 저지른다. 일본 측은 7천만원이 넘었으니, 액수 면에서 훨씬 컸음에도 말이다.
문제는 더욱 커진다. 지만원을 비롯한 우파들이 정대협을 까대는 구실로 이 사건을 지목하고 이용했기 때문이다. 이후 위안부 할머니들이 서로 편이 갈려서 가짜라고 주장하는 희대의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만원 등은 “정대협은 ‘정신대 대책 협의회’의 약자인데, 정신대는 근로정신대를 말하는 거고 위안부는 종군위안부라 성격이 다르니 저 단체 자체가 사이비다”는 박근혜식 문법을 시전한다. (관련 기사)
결국 박근혜 정부는 그때보다 못한 결과를 내놓고 자랑하고 있다
이번에도 아베는 국가예산이 아니라 기금을 통해서 전달하겠다고 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때 받았다면 민간 차원이고, 여전히 국가 차원에서의 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배상도 아닌 주제에 ‘불가역’이라는 조항 때문에 빼도 박도 못하는 꼴이라는 차이가 있다.
현실적으로 보면 이런 문제는 1965년 한일협정에서부터 모든 게 꼬여버렸다. 당시 “최종적으로 해결”이라는 구절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도 지금도 마찬가지로 피해자의 목소리나 의향은 제대로 담기지 않았다. (관련 기사)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무라야마와 아베가 완전히 다른 사고의 기반을 가지고 있다 생각한다. 하지만 무라야마, 하시모토, 코노, 아베 등 과거 위안부/식민지 문제에 대해 언급했던 모든 일본 정치인들은 샌프란시스코 조약 및 기타 협정에 의해 정치적, 외교적, 국가적 책임은 종결되었다라는 공통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미국 역시 같은 견해이기에 문제해결은 더욱 쉽지 않다. 마이크 혼다 의원 같은 경우야 진심이었겠으나, 미국 하원의 결의안 채택과 힐러리 발언은 기본적으로 일본 압박용에 불과하다. 유럽의회의 결의안 채택 역시 마찬가지다. 어차피 강제력이 없는 한 대외용 체면 세우기에 불과하다.
아베와 일본 우익은 짱신났다
일본은 이제 짱돌 하나로 세마리의 새를 얻은 격이 됐다.
- 혐한 우파 세력의 지지: 일본은 한국 돈으로 100억이 안 되는 돈, 이대호 2년 연봉으로 위안부 문제를 마무리지었다. 더군다나 “책임을 통감”이라는 말 하나로 배상 등의 핵심을 피해갔다.
- 천조국의 지원: 미국은 오래 전부터 중국에 부담을 느끼고 한일 양국이 사이좋게 지내기를 원했다. 박근혜가 아베와 악수도 하지 않을 정도로 불쾌감을 표시하고 친중 행보를 펼쳐 눈밖에 났지만, 이제 이조차도 아베의 공으로 해결하게 됐다.
- 대외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가장 (일본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타개한 총리: 무라야마 담화 발표 당시에는 우파, 자민당이 기금 모금에 반대했었다. 하토야마가 아시아기금 모집 당시 각 부서에 협조요청을 하자, 법적 책임이 끝난 걸 왜 정부가 주도하느냐고 비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민당이 리드하는 입장에서 ‘불가역한’ 협상을 마무리지었다.
요약하면, 아베 2차 내각은,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그래봐야 보수인 무라야마 담화를 전면 재검토를 하겠다는 여론을 들고 나와 성공시켰다. 그들에게 한일관계는 외교적으로는 이미 끝난 지 오래이다. 일본 우파에게 있어 해결할 문제는 마무리를 짓는 것이었고, 또 여기서 정권이 비굴한 자세를 보이면 안 되는 것뿐이었다. 이번 협정으로 이는 모두 깔끔하게 해결됐다.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약칭: 위안부피해자법 시행령)과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은 죄다 무용지물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