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언제나 같은 꿈을 꾼다. 시기와 상관없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권력은 언제나 같은 꿈을 꾼다. ‘권력이 원하는 만큼의 기억’이다.
사람들의 생각을 규정하고 싶어 하고, 그러기 위해 교육과 기억(역사)을 동시에 건드린다. 대규모 편찬 사업을 주도하기도 하고, 학자들을 대거 동원하여 서사시를 쓰게 하기도 한다. 이집트 파라오의 신전에서도, 고대 메소포타미아 도시 국가의 쐬기 문자에서도, 근대 나폴레옹과 비스마르크에 이르러서도 같은 이야기가 반복됐다. 그리고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우리는 그 현장을 목도했다.
권력의 욕망
초월적 지도자이기를 원했던 이승만은 모든 권력의 승패가 갈리던 1948년과 1951년 대한국민당과 자유당을 창당하며 ‘일민주의(一民主義)’를 구체화한다. 하나의 백성(一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휴머니즘, 민족주의, 코스모폴리타니즘, 민족주의가 모두 통합되어야 한다. 무엇으로? ‘단군 사상’이다. 학교에서는 단군을 가르쳐야 하며, 역사가는 단군을 해석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구현하는 주체는 이승만과, 이승만을 둘러싼 권력 그 자체이다.
박정희 정권의 경우에는 단군보다 신라 화백회의의 만장일치 제도를 내세웠다는 약간의 차이가 있겠으나, ‘학도호국단’을 창설했다는 점에서는 두 독재 정권이 참으로 유사하다. 학생회를 없애고 고등학교는 ‘연대-대대’, 대학교는 ‘사단-연대’, 학생회장을 연대장, 학년 대표를 대대장, 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사단장’, 단과대 학생회장을 ‘연대장’으로 부르며 이마저도 ‘임명제’로 운영되는 시스템의 등장.
1794년 프랑스. 총재 정부 시기 만들어진 ‘에콜폴리테크니크’라는 명문 부르주아 학교는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면서 관료제 강화, 군사화, 행정 기구 개편 등의 조치가 이루어지게 된다. 학교 행정을 국방부가 맡게 되고 학교장에 장군이, 행정 직원에 장교가 취임하며 학생들은 대대로 편성된다. 오늘날까지도 당시 하사된 ‘모두 조국, 과학, 영광을 위해’라는 교훈을 사용하며 매년 7월 14일, 즉 혁명 기념일에 행진을 벌인다. 이 밖에도 삼색기, 마리안 상, ‘라 마르세예즈’ 등은 그 자체의 역사성과 본래의 의미를 떠나 ‘프랑스 공화국’의 제도와 질서를 위한 상징물이 된다.
독일의 경우에는 신성로마제국에서 제2제국, 즉 비스마르크 시대로 넘어오는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영국의 경우 광범위한 식민지에 본토의 사립학교와 연계 운영되는 학교 제도를 정착시키는 등 온갖 다양한 일들이 시공간을 막론하고 일어난다.
1945년 해방 이 후 대한민국의 역사는 결코 아름답게 발전하지 못했다. 해방 일주일 전에 소련이 참전했고, 미국과 소련은 자신들의 이해 관계를 조금도 조정하지 못했다. 좌우익은 첨예하게 대립했고 미소의 기대 이상으로 폭력적 갈등을 일삼았다. 친일파는 처단되지 못했고, 농지 개혁과 귀속재산처리는 과정상 너무나 문제가 많았고, 결국 분단이 되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났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와 독일은 너무도 달랐다. 드골과 레지스탕스의 프랑스는 온갖 굴욕을 이기며 결국 미국, 영국과 함께 나치를 몰아냈다. 독일의 경우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즉 기민당, 사민당 모두 나치를 척결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럴 수도 없는 국제 환경, 파시즘의 패배와 미소의 승리가 그들을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하간 많은 세월이 흘렀고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전후 프랑스와 독일은 진보하였고 우리 역시 발전하였다. 1968년 당시 프랑스 전체가 새로운 문화혁명으로 들끓었고, 미국의 엄청난 지원으로 만들어진 독일의 베를린 대학교는 반미운동, 반전운동을 주도한다. 우리도 4.19혁명(1960)을 성공시켰고, 유신체제를 무너뜨렸고, 6월항쟁(1987)을 통해 민주 헌법을 쟁취했다.
하지만 역사적 깊이의 차이인가, 사회적 수준과 질의 문제인가. 여전히 우리 사회는 과거로 돌아가려는 구체적인 힘이 넘실대고 있다.
과거로 돌아가려는 구체적인 움직임
‘친일파 → 한민당 → 자유당’으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기득권 세력의 콤플렉스. ‘공화당 → 민정당 → 민자당 → 신한국당 → 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 시절의 유산과 한국형 민주주의의 수준 낮음. 정치 변동과 상관없이 유지 보존되고 싶었던 기회주의적이고, 타협적이며, 세속적 성공만을 추구하는 집단적인 의지와 레드 콤플렉스. ‘김대중 →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진보 집권의 시대에 대한 충격과 반동.
‘뉴라이트’라는 단어는 결코 정의될 수 없다. 뉴라이트 학파가 없고, 뉴라이트 소속 역사학자나 역사교사, 역사 연구의 성과물이 없어서만이 아니다. 뉴라이트적인 성향, 뉴라이트가 표방하는 태도는 특정 집단이 아닌, 그렇게 바꾸고자 했던 ‘과거 대한민국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완전히 유리되지도, 봉쇄되지도, 처단되지도, 파괴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막강한 권력을 등에 업고 다시 우리 가운데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결코 교과서 문제가 아니다. 만약 교과서 문제였다면 이렇게 집요하게 반복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을까. 교과서 포럼의 ‘대안교과서 파동’,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파동, 문창극 총리 역사 인식 파동, 그리고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파동. 거의 매해 논란이 일어났고 어마어마한 국민적 저항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은 갖은 수를 써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고 있다.
동시에 여러 이야기들이 떠돈다. 대통령 중임제를 다시 하자, 이원집정부제를 하자, 내각제 개헌을 하자… 이왕이면 박근혜 대통령을 중임하게 하자는 글이 하필이면 국정화 고시가 통과된 당일 날 찌라시 형태로 인터넷을 떠돌았던 것은 그저 우연일까. 곧이어 개헌 관련 이야기가 홍문종 의원 등 친박 실세들에 의해 공개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하며 반기문 이름 석자가 함께 둥둥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원집정부제. 대통령과 총리를 분리시키고 대통령은 외치를, 총리는 내치를 하는 형태로 정부를 재구성하자. 그러면 러시아처럼 대통령은 실권 없는 반기문이, 총리는 실권을 가진 박근혜 혹은 친박 세력이 하자는 이야기인가. 내각제 개헌. 정치권에서는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170석에서 200석을 얻을 수 있다는 소리가 나온다. 2/3면 개헌. 불가능하다면? 새정치민주연합 비주류를 끄집어 내면 가능하지 않을까? 실권 없는 대통령 안철수, 실권 있는 친박 총리. 이것저것 온갖 그럴싸한 이야기가 정가를 떠돈다.
동시에 또 다른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5인 이하 인터넷 언론사를 통폐합 시키겠다, 테러방지법을 제정하여 사전에 테러 가능성을 차단하겠다… 고민도 제대로 안 해 본 법안들이 시행령을 통해 국회의 승인도 없이 확정이 되버리거나, 조만간 국회 본회의를 통해 통과될 것이라고 한다.
5인 이하의 인터넷 언론사를 없애겠다는 발상은 전두환 정권 당시 언론 통폐합을 연상시킨다. 황색 저널리즘을 차단하겠다는 명분을 제시했지만 황색 저널리즘은 오히려 대형 언론사나 종편이 주도하지 않는가. 프랑스에 언론 진흥을 위한 법률이 존재하는 것을 제외하곤 어지간한 나라 어디에서도 이런 법을 찾아볼 수가 없다. 물론 1910년 일제가 조선을 병합하며 황성신문, 제국신문 등 조선의 항일민족신문을 모조리 폐간시키고, 가장 격렬하게 저항하던 대한매일신보를 ‘매일신보’로 개칭하여 친일기관지로 만들어버린 일이 있긴 했다.
테러방지법? 대한민국은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있는 나라이다. 형법 또한 완숙한 수준이며 뛰어난 경찰력을 자랑하는 나라이다. 놀라운 채증 기술도 있고, 약식 기소로 수만명의 단순 시위참가자에게 벌금을 매기기도 했던 나라이다. 국가가 해킹 프로그램을 만들고, 카톡 감청도 한다. 테러도 위험하고, 북한도 위험하지만 국가권력의 남용도 위험하다. 1910년 일제는 조선을 병합하면서 즉결처분권을 허락하여 경찰이 최대 3개월까지 조선 민중을 영장 없이 잡아가둘 수 있게 만들고, 다시 태형을 부활시켜 경찰 1인당 하루 80대까지 때릴 수 있게 되돌렸다. 그래서 매해 1만에서 2만명이 경찰한테 맞았다. 통제되지 않는 국가권력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
더구나 왜 이런 것들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같은 시기에 강력한 의지를 갖고 청와대와 정부 여당을 중심으로 추진이 되고 관철이 되는가. 참으로 아찔한 상황이다.
진행중인 한국사 교과서 논쟁
물론 한국사 교과서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국정화 고시 통과는 의미도 없고 문제 해결도 못된다. 오히려 딜레마다. 호언했던 것처럼 명품 교과서를 만들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사회적 논란도 없을테니까. 문제는 그러려면 본인들이 원하는 수준으로 역사를 왜곡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본인들이 마음먹은 바 혹은 대다수 시민들이 예상한대로 교과서가 나오면? 지금보다 훨씬 광범위한 논란과 논쟁이 폭증할 것이다. 대체 이를 어떻게 감당하려 하는가.
논란의 지점은 너무나 명확하다.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의 기초를 닦았고, 박정희 대통령은 산업화를 이룩하였다. 5.16 군사 쿠데타와 유신 체제는 구국을 위한 부득이한 결단이었다. 일제 시대 친일파들은 일반인들의 생각과 다르게 근대화를 준비한 건국세력이었다. 남북 통일이 중요한 게 아니라 북한에 대한 증오심을 강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1948년이 어떻게 1919년과 1945년을 대체할 수 있단 말인가. 1919년은 3.1운동이 있었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해이다.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전 민족이, 전 민중이 거리에 나와 만세를 외쳤던 해. 그로인한 열기로 인해 대한제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건국된 해이다.
어디 이뿐인가. 1919년은 독립운동사의 극적인 해이기도 하다. 이후 모든 일들이 벌어졌다. 만주에서 무장투쟁의 열기가 폭발하며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승리의 깃발이 나부꼈고, 국내에서는 최대 규모의 좌우합작단체 신간회(1927)가 창립되었으며, 3.1운동 이 후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인 광주학생항일운동(1929)이 일어난다. 김원봉의 의열단(1919)과 김구의 한인애국단(1931)이 나석주, 김상옥, 이봉창, 윤봉길을 중심으로 의열투쟁의 성과를 거두었고, 중국 관내에서 다양한 독립운동세력이 결집되었으며 국내에서는 여성운동, 청년운동, 농민운동, 노동운동 등이 일어나며 독립운동사의 최전성기가 도래하였다.
1945년은 어떤가. 1945년은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해이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파시즘 세력이 미국과 소련에 의해 굴복되며 다시 미국과 소련에 의해 세계 지도가 재편되는 시발점이다. 어디 그 뿐인가. 본격적으로 식민지들이 유럽 국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제3세계의 등장과 비슷한 시점에 중화인민공화국 역시 세계 무대에서 독자적인 역량을 펼치게 된다. 역사는 ‘시기’를 거친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시민혁명과 산업혁명. 꼭 고대, 중세, 근대는 아니더라도 역사의 전환기라는 것이 있다. 인위적으로 선을 긋는다고 그어지는 것이 아니다. 1948년은 하등의 근거가 없다.
그 밖에 수많은 주제와 이야기들이 꼼꼼히 검토되어야 하고, 비판되어야 하며, 퇴출되어야 한다. 그저 지금의 교과서를 지켜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역사가 흐르고 학문이 발전하듯 모든 것들은 보다 나은 미래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국정 교과서를 반대하는 것은 결코 반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것이다.
역사는 오직 현재적이다
결국 역사는 현재이다. 우리가 독립운동사를 배우는 이유는 독립운동사의 가치가 현재에도 투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민주주의의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우리의 미래가 더욱 민주적이어야하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나 역사교사는 그런 의미에서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그리고 미래의 파수꾼들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적극적으로 역사를 악용하고, 어떤 이들은 침묵으로 방조하고, 또 어떤 이들은 역사로 엄청난 경제적 이윤을 취하고 있음에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역사를 단지 팔아먹고 살 뿐이다. 하늘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고, 지하에 묻힌 선열들 보기 민망해 땅을 내려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답답해서라도 양심을 드러내야 할 때인데 단 한마디 하지 않는다. 역사를 마냥 과거인양 만들어버리는 그들의 행태는 결국 또 다른 기회주의일 뿐이다.
역사 전쟁은 단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다. 하나하나 모두 물어보고, 대답하고, 가르치며, 변화시켜야만 한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의무다.
※ 이 글은 필자의 신간 『역사전쟁: 권력은 왜 역사를 장악하려 하는가』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뜨거운 감자’인 한국사 핵심 이슈와 교과서 국정화의 문제점을 주요하게 담았다. 유럽과 동아시아, 북한 등 세계의 역사 논쟁을 통해 한국의 역사 논쟁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했다. 또한 대한민국은 1948년에 수립되었다? 이승만의 건국과 박정희의 부국 위주의 역사 서술이 문제인 이유는? 민주화와 시민사회의 역사가 위축되고 있다? 등 한국사의 핵심 쟁점을 담았다.
나아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실증주의 역사학에서 출발하여, 민중사관과 포스트모던 역사학으로 이어지는 한국 역사학계의 자발적이고 역동적인 연구 성과를 소개했다. 끝으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최초 검정통과분)을 비교.분석하면서 역사 왜곡의 현실과 ‘사실이 아닌 비판만 있는’ 뉴라이트 학계의 문제점을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