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안철수 갈등에 관한 해법에 동의하지 않는다.
연개소문이 죽은 고구려를 기억하라
애초에 대당강경책 일변도는 문제가 있었다. 당나라와의 전투에서 심각한 기력 소진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차례 백만 대군과 싸워서 승리한 것만을 기억하지만 당태종의 실패 이 후 당고종은 해마다 10만씩 꾸준한 침략을 시도하였고 동원능력이 10만 이하에 달하는 고구려의 국력은 해마다 고갈되었다. 그래도 연개소문은 고구려를 지켰다.
연개소문 사후 어떻게 되었던가. 큰 아들 연남생과 둘째 아들 연남건 간의 치열한 권력 다툼이 벌어졌고 결국 연남생이 당나라로 망명하고 만다. 드라마 대조영을 보면 혼자 도망간 것처럼 묘사가 되지만 기록에 따르면 연남생이 당나라에 귀의할 때 10만여 호가 넘어갔다는 기록이 나온다. 즉, 국내성 쪽 귀족 상당수와 수십만의 사람들이 당나라에 귀의했다는 말이다. 이 나라가 어찌 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가.
무슨 큰 일이라도 난 분위기이다. 모양새로 보면 큰 일이긴 하다. 구당모임이 문재인 대표의 사퇴를 촉구했다. 원내대표가 당무를 거부하고, 주승용 의원이 최고의원에서 사퇴를 했단다. 안철수 의원이 탈당을 한단다. 김한길 전 대표가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단다.
그래서? 흥분하지 말고, 보수 언론의 흔들기에 휘둘리지 말고 냉정히 상황을 살펴보자.
구당모임이 조용하고, 원내대표나 최고의원들이 사분사분하다. 안철수 의원이 탈당을 하지 않는다. 김한길, 박지원 의원이 협력적이다.
그러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심한 착시 현상에 빠져있다. 한 그릇에 모여 있으면 그것이 결집이고, 그것이 곧 통합일까? 주류, 비주류, 친노, 비노, 호남 세력 등등이 모여 있으면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가? 그랬던 적이 언제 있던가?
김한길? 어느 한때 대단한 재기를 발휘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전략을 복기해보라. 열린우리당이 하릴없이 내리막길로 떠내려가고 있을 때 그는 어떤 전략을 펼쳤던가. 당에서 탈당을 하고, 과거 민주당 의원들을 끌어들이고, 새누리당의 유력 주자인 손학규 전경기지사를 스카웃해오지 않았던가. 결과는 어땠는가. 정동영 대통령 후보는 몇 표를 받았던가. 이것이 전략의 비참한 현실이다.
함께 모여있거나, 지금의 이 이질적인 사람들이 정말로 하나가 되어 같은 목소리를 내면 야권은 총선에서 승리하고, 대선에서 승리할까? 순진한 발상 아닌가. 작금의 상황은 정치 공학적 계산이 무의미하다. 문재인을 몰아내고 안철수가 대표가 되면 바뀐다? 안철수-김한길 대표가 고작 몇 달을 갔던가.
문재인을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천정배까지 끌어들이고 정세균, 박지원 등이 참여하는 계파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면 선거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할까? 그것도 아니면 새누리당에 가 있는 고건 전총리나 한화갑 등을 모셔오고, 김민석 전의원도 영입하는 등 아주 싹싹 긁어모으면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만약 이렇게 되면 정의당 등의 진보 계열은 결코 연대하지 않을 것이다. 정의당 등과 합당을 해도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이런 식의 조합은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명철하기로 소문난,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조국 교수마저도 물리적 결합론을 주장한다. 그래, 조국 교수 뜻대로 절충안을 받아들였다고 치자. 그 모습을 보고 누가 통합이라고 받아들이겠으며 문제가 눈꼽 만큼이라도 해결되겠느냔 말이다.
안철수가 대표가 되어야 할 ‘이유’를 제발 보여달라
대안은 문재인이다. 나갈 사람 나가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언제부터인지 아무 컨텐츠도 없는 정당이 되어버렸다. 문재인에서 안철수로 바꾸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보다 실용적이고 중도적인 노선이 총선 승리에서 유리하다는 것인가? 4.19와 6월 항쟁의 가치를 포기하는 것이 야당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인가. 사실 안철수에겐 그 정도의 이미지도 남겨져 있지 않다.
김한길? 광진구 국회의원이라는 것 말고 그에게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단 말인가. 박지원? 김대중 대통령을 도와 남북정상회담에서 큰 일을 하던 문화관광부장관 당시의 그 유능함을 사람들은 얼마나 기억을 할까. 주승용? 정말 그는 전라도를 대표하는 인물인가. 세력을 운운하지만 동네를 돌아다녀 봐라. 누가 그들을 영수로 인정해주는가.
대표를 바꾸어야 한다면 바꿀 이유를 제시하라. 그냥 막연하게 문재인이 기득권에 안주하고 있고, 야당은 싸울 능력이 없고, 혁신은 혁신이 아니다 식의 추상적인 말만 나열하지 말라. 야당의 구조를 바꾸면 무엇이 어떻게 바뀌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을, 그 설계도를,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란 말이다.
안철수로 바꾸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막을 수 있는가? 구당모임이 집권하면 노동개혁을 멈출 수 있는가? 손학규가 돌아오면 누리과정 예산 문제가 해결이 되는가? 박지원이나 정세균이 당권을 쥐면 비정규직 문제에서 확실한 변화가 생기는가? 천정배는? 정동영은? 국민들이 느끼는 구체적인 필요에 이 이름 석자들은 대체 무엇과 관련을 맺고 있단 말인가. 그것이 결합되지 않는 한 이 천박하고 추잡한 싸움을 계속 보아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국방전문가 김종대를 기억하라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우리는 왜 안철수에 열광했던가. 영혼이 있는 승부, 깨끗한 기업인, V3 무료 백신.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명확하다. 그런데 정치인 안철수 그리고 기타 등등에겐 아무 것도 없다. 하찮은 문재인만큼도 없다. 그러니 진중권도 나서서 반발하고 많은 사람들이 차라리 떠나라고 하는 거 아닌가. DJ와 YS의 갈등? 비교할 걸 비교하라.
문재인 대표에게 할 말도 명확하다. 유약하느니, 결단이 느리느니 그런 건 의미가 없다. 강단 있는 전두환이 결국 노태우에게 무릎 꿇지 않았던가. 김영삼도, 김대중도 노태우 앞에서 무력하지 않았던가. 노무현이라는 환상, 강골에 대한 기대는 관성적인 이미지일 뿐 하등 신경 쓸 내용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문재인을 통해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이다. 수년 전 대선 당시 청와대를 광화문에 옮기겠다는 즉흥적인 공약만큼 문 대표가 표방했던 소득주도성장론이나 통일경제론은 여전히 아득하다. 여러 이슈에 대해 ‘반대한다’는 것 외에 구체적인 대안이 들려오지 않는다. 문재인을 지지하면 정말로 소득주도성장, 즉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가 이루어지는가? 문재인을 지지하면 정말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 되어 통일경제가 이루어지는가? 이런 것들로 국민들 사이에 인정이 된다면 상황은 급변할 수 있다. 상대는 안철수가 아니라 박근혜다. 안철수를 의식할수록 혼란만 늘어날 것이고, 박근혜를 의식할 때 전선은 보다 명확해지고 할 수 있는 것 또한 분명해질 것이다.
또한 자세히 돌아보라. 별다른 당권도 없지만 유능한 의원들 쎄고 쎘다. 도종환 의원은 국정화 문제를 두고 뚝심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은수미 의원은 노동문제에 관해서 언제나 강경하며 유능하다. 김광진 의원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국방문제에서 탁월함을 보이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결코 자원이 없지 않고, 당대표의 리더십은 언제나 독점적일 필요가 없다.
김영삼의 ‘머리를 빌린다’는 말이 우스운가? 결국 김영삼은 김대중을 이겼다. 정의당이 천정배 신당과 동급은 아니지 않는가. 김영삼이 김종필을 선택했듯 연합정부론은 그럴싸한 희망일 수 있다. 대표로서 만들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많고 그것들은 혼란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묵묵히 노력하는 진짜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가능하다. 문재인이 이것을 못 본다면 다른 누구라도 덥석 물어야 하지 않겠는가.
탈당을 하고, 분당이 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총선에서 지건, 대선에서 지건 그 또한 본질적으로 의미가 없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얼마나 혹독했고 인류역사가 얼마나 가혹했던가. 몇 년간 쪼개지고 무너지는 것이 뭐가 그리 대수인가. 문제는 누군가가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진짜 가능성 말이다. 가능성은 결코 전략이나 세력 규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누가 되었든 제발 자중하라. 단지 시끄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