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우리 나라에는 제대로 된 의료 제도가 없고, 모든 남의 나라에는 올바른 의료 제도가 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미국 교포들이 죽을 병에 걸렸다고 우리 나라로 날아와 몇 달치 보험료만 내고 저렴하게 각종 검사와 치료를 받은 다음 유유히 미국에 돌아가 살고, 우리 나라 사람들은 죽을 병에 걸렸다고 돈을 싸들고 믿을 수 있는 미국에 가서 치료를 받는다. 기이한 일이다.
배가 아팠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데다 미국은 멀고 비행기 값은 비싸서 어쩔 수 없이 집 근처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는 맹장염이니 맹장 수술을 받으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병원에 맹장 수술을 한 개를 주문했다. 진통제가 먼저 나왔는데 진통제가 반 앰플뿐이다. 나는 한 사람인데 진통제는 반 앰플. 간호사를 불러 “아프니 진통제 반 앰플 더 주세요.” 했더니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 “진통제는 1인당 반 앰플입니다.”
진통제는 1인당 반 앰플. 대가리 한 개당 반 앰플. 우리 병원 진통제는 너 같은 놈 혈관으로 함부로 들어가 니 통증을 줄여주지 않는단다. 이 합병증으로 뱃가죽을 여닫다 복막염 맞고 패혈증 걸려 중환자실에 떨어질 놈아. 그렇게 환청이 증폭되면서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됐다.
“내가 돈을 더 낼테니 진통제를 더 달라니까요!” “손님, 포괄수가제 때문에 일인당 진통제는 반 앰플입니다. 더 이상 들어가면 병원에 손해가 나고 저는 문책당합니다.” “내 돈을 내가 낸다니까요?” “”돈을 더 내는 것은 불법입니다. 우리 병원이 사법조치 당합니다.” “그 포괄수가젠가 포학한수가젠가 사람이 진통제를 더 맞고 싶다는데 안 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여기가 무슨 배급사회인가. 내가 아우슈비츠에 팔다리가 부러져 끌려가다가 “마지막 소원이 있으니 그건 진통제 한 앰플을 다 맞고 환락을 느끼는 것이오” 라고 애걸하고, 검은 제복을 입은 간수가 “네 마지막 소원을 들어줘 니 팔다리에 깁스를 해 주마. 하지만 진통제는 일인당 반 앰플.” 라고 말하는, 뭐 그런 것인가. 내가 맹장 수술 한 개를 주문하고 “근데 1+1 행사로 제 마누라도 맹장 수술 해주십시요.” 라고 물은 것도 아니고, “맹장 수술 할라고 배를 열은 김에 서비스로 대장암 수술도 해 주십시요.” 라고 물은 것도 아니지 않은가.
진통제는 1인당 반 앰플이라니. 당장 전국의 불법 의약품 야매 배달 서비스를 뒤져 향정신성의약품 관리 기준을 위반하며 진통제 한 박스쯤 구비해서 집 앞 병원에 견출지로 내 이름을 써 붙여 놓고 다음에 허리가 아프면 와서 “내가 킵해놓은 진통제 있지? 그것 좀 가져와. 식염수에 섞어서 혈관주사로 맞을 꺼니까. 진통제는 꼭 한 앰플.” 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어떤 경우는 법이 악마를 만든다.
의료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이 일상인 환자와, 의료서비스를 판매하는 것이 일상인 의료계 종사자들은 항상 부딪힌다. 서로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법으로 이렇게 서로 다툴 수 밖에 없다. 진통제를 주문했고, “진통제를 투여하지 못합니다.”라고 들어도, “저렴한 서비스라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수술 받은 만큼 돈을 내고, 진통제를 더 맞은 만큼 돈을 더 내겠다는데도 “불법입니다.” 라고 듣고 “고맙습니다.” 라고 말해야 한다. 이게 이 이상한 의료 제도가 있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방식이다.
나는 이딴 의료 제도가 있는 곳에서 치료 받지 못할 예정이다. 진통제를 반 앰플 더 주지 않았다는 옹졸한 이유 때문이다. 그 주범이 어딘지 밝힐 수는 없다. ‘보건복지부’,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아니다.
※ 필자 주: 실제로 환자가 아플 경우 의사는 당연히 진통제를 더 투여하므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만, 포괄수가제 대상 환자일 경우 수가의 총합이 정해져 있어서 그만큼 병원이 손해를 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 사실에 기반한 패러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