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소중하다. 이 절대불변의 가치에 토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생명이라는 다소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단어가 구체적인 무엇으로 바뀔 때 우리는 그것을 더는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미혼모, 10대 임신, 미계획 임신 그리고 그로 인한 모든 사회적, 경제적 비용들.
이러한 사회 문제에 대해 우리가 던지는 시선은 차갑기 그지없다. 모든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며 그들을 손가락질할 뿐이다. 그에 앞서 사회적 차원에서 이들을 위한 예방책을 마련해준다면 어떨까?
현재 미국의 10대 여성 출산율은 1,000명 당 32.1명꼴로 영국의 약 1.5배에 달하는 수치를 기록한다. 영국의 10대 출산율이 서유럽에서 가장 높은 편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미국 내 상황은 단순히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바마 전 대통령 정부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 결과 자신의 임기 중 10대 출산율을 역대 최저치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그중 다른 주가 넘볼 수 없을 정도의 놀라운 성과를 보이며 그 효능을 입증한 곳이 있다. 미국 서부의 콜로라도주 이야기다. 2008년부터 콜로라도주는 콜로라도 가족계획 정책(Colorado Family Planning Initiative)에 따라 3만 명 이상의 개인에게 자궁 내 피임장치를 무료로 제공했다.
손가락 한 마디 남짓한 길이의 이 기구(IUDs, intrauterine devices)는 가장 높은 성공률을 자랑하는 피임 도구 중 하나로 그 실패 확률이 무려 1% 미만이다. 콘돔의 피임 실패 확률이 약 20%, 경구 피임약이 9%인 것과 비교하면 지금까지 인류가 개발한 피임 도구 중 거의 최고의 효과를 내는 것이다.
기구의 작동 원리는 이렇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T자 모양의 IUDs는 정자를 공격해 난자와의 수정을 막는 구리나 호르몬을 포함하고 있다. 병원에서 의사를 통해 간단한 시술을 거쳐 해당 기구를 질 내에 삽입할 수 있으며 한 번 시술 후 호르몬이 담긴 제품의 경우 3년에서 5년, 구리는 최대 10년까지 사용할 수 있다.
물론 IUDs 역시 완벽한 피임 도구라고 할 수는 없다. 그 안에 호르몬을 담고 있는 만큼 경구피임약을 복용했을 때와 같은 가슴 통증, 조울증, 여드름, 두통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으며 자궁에 구멍이 생길 수도 있다. 또 성병 감염 측면에서는 보호를 받을 수 없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가격이 높다는 점이다. 만약 미국 내에서 보험이 없는 여성이라면 IUDs를 이용하는데 약 800달러 정도가 든다. 게다가 의사 진찰료는 별도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 동안 경구피임약을 꾸준히 복용하는 것과 비교한다면 IUDs를 이용하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 훨씬 더 저렴하다. 여기에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이어질 경우 낙태나 이후 양육에 드는 비용과의 차이는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다.
실제로 콜로라도주의 발표에 따르면 피임 도구에 1달러를 사용할 경우 각종 사회 복지 프로그램 등에 드는 비용 7달러를 아끼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2009년부터 2013년 사이 콜로라도 내 10대 임신율은 40%, 낙태율의 경우 42% 감소했으며 이는 산아 정책 분야에서 지금껏 어느 정책도 내지 못한 효과를 낳았다.
현재 미국 내 모든 임신 중 37%는 의도하지 않은 미계획 임신이라고 한다. 미계획 임신은 산모와 아이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가져올 수 있을 뿐 아니라 그에 따른 경제적, 사회적 비용을 일으킨다는 면에서 절대 개인의 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사회 문제이다. 특히 산모가 10대일 경우 임신 중독, 임신성 고혈압, 빈혈 등 임신 합병증이 발생할 확률이 더 높으며 학업을 이어나가거나 사회생활을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 역시 2008년 기준 한 해 미성년자 출산 수는 3,300건으로 그 수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전체 미혼모 중 10대가 차지하는 비율 역시 절반이 넘는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무방비에 가까울 정도로 성에 노출되는 세상, 청소년의 성 경험 나이는 점점 더 낮아지는 추세다. 이는 더 많은 청소년의 임신과 출산, 그로 인한 부모와 아동의 빈곤 문제로 이어질 수 있으며 미혼모 예방 및 지원을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물론 콜로라도주의 적극적인 가족계획 정책이 의도하지 않은 임신을 줄이는 유일하고 가장 완벽한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탕을 나눠 먹으며 금욕을 강조하거나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허울뿐인 성교육만 반복하는 일은 분명한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보다는 성에 대한 실제적인 정보가 담긴 교육과 조치를 할 때 실제적인 효과는 분명 더 큰 영향력을 미치고도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