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예상했던 일이기에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예 충격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환경부가 빈 병 보증금을 올리겠다고 발표했을 때 이미 소줏값 인상은 예고되어 있었습니다. 환경부가 소주 업체들과의 긴밀한 협조와 양해 끝에 빈병보증금 인상을 발표했다면 모르나 무턱대고 올리다 보니 이런 일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은 가격 인하는 ‘2G’이나 가격 인상에 대해서는 ‘광대역 LTE’입니다. 빈병보증금에 따른 부담을 기업이 그대로 떠안을 곳은 없습니다. 당장 소주 업체들은 소줏값을 인상하고 나섰습니다. 그리고 인상 명분으로 총 3가지를 들었습니다.
소주 업체가 말하는 소줏값을 올려야 하는 이유
1. 원재료 가격이 올라쪄!
2. 병 구매 단가가 올라쪄!
3. 물류 운반비와 인건비가 늘어쪄!
하지만 조선비즈의 취재에 따르면 이 인상 명분은 모두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1. 원재료 가격이 올랐다?
일반적인 소주는 희석식입니다.
에탄올 원액(주정) + 물 +각종 첨가물
하지만 주정의 원재료인 쌀과 보리, 겉보리, 현미 가격은 모두 하락했습니다. 오른 원재료는 타피오카가 유일한데 이 타피오카가 재룟값에 주는 영향은 미비합니다.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도수를 생각하면 오히려 소줏값은 내려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소주에서 주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10~12% 정도인데 저도수 소주는 그만큼 주정을 덜 들어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원재룟값이 올라서 소줏값을 올려야 한다? 과연 그럴까요?
2. 병 구매 단가가 올랐다?
소주 업체가 말하는 가장 큰 인상명분입니다. 환경부에서 고시한 빈병보증금과 함께 3년간 빈 병 가격이 10% 인상되어 소줏값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하지만 현재 1위 소주 업체인 하이트진로에 빈 병을 제공하는 업체는 하이트진로 산업주식회사라는 곳입니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자기 계열사에서 빈 병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죠.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서 빈 병을 받고 있는 하이트진로가 빈 병 가격의 인상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소줏값을 올린다? 설득력이 약합니다. 그리고 하이트진로 산업주식회사는 당기순이익이 늘었습니다. (2013년- 3억1650만 원 → 2015년 5억 8400만 원)
3. 물류 운반비와 인건비 등이 늘었다?
거짓입니다. 하이트진로의 운반비는 전년 기간(1월~9월)에 비해서 줄었습니다. (2014년- 445억 원 → 2015년 432억 원)
그리고 운반비와 포장 비용 등이 늘어서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과연 소비자들이 이를 이해해줄까요? 언제나 가격 인상 명분은 말을 붙이기 나름입니다. 현재 소주의 출고가는 다음과 같이 변경되었습니다.
소주 출고가 인상
하이트진로 참이슬 후레쉬와 참이슬 클래식: 961.70원 → 1015.70원(5.5%↑)
맥키스컴퍼니 한라산소주: 963원 → 1016원(5.5%↑)
맥키스컴퍼니 한라산올레: 988원 → 1016원(2.83%↑)
이외에 롯데주류와 무학, 금복주 등의 다른 업체들도 곧 인상할 예정입니다. 보통 소주의 가격은 다음과 같이 구성됩니다.
소주의 가격 구성
소주 출고원가 + 주세(출고원가의 72%) + 교육세(주세의 30%) + 부가가치세(출고원가+주세+교육세의 10%)
출고가 인상으로 인해서 마트에서의 소비자가격은 80~100원이 오르는데 문제는 음식점입니다. 음식점에서는 통상 500원에서 1,000원을 인상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3,000~4,000원에 마시던 소주를 심하면 5,000원을 주고 마셔야 하는 상황입니다. 소주 한잔으로 현실의 애환을 달래던 서민들은 그 즐거움마저도 마음껏 누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보미는 담배도 피우지 않고 소주도 잘 마시지 않습니다. 맥통법으로 크게 분노하던 때와 달리 소줏값 인상은 그 분노 가 덜합니다. 많은 사람은 자신과 관련이 없는 일에는 신경을 아예 안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번 소줏값 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소주를 마시지 않는다고 해서 나랑 상관이 없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죠.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 많은 일들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타인의 삶에 훈수를 두는 오지랖은 없어야 하지만 사회의 변화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오지라퍼가 되어야 합니다. 소줏값 인상은 다른 물가를 들썩이게 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가격 인상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에서 보아야 합니다. 생산자가 큰 명분이 없는 가격인상을 단행해도 소비자가 가만히 보고 있다면 생산자는 소비자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소줏값 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소주를 마시지 않는다고 해서 이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언젠가는 이 일이 자신과 관련이 있는 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옵니다. 이 세상 많은 진리들은 보편적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꾸준히 들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은 곧 우리의 인권이기 때문입니다.
소주 업체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소줏값을 인상하였습니다. 이런저런 인상 명분을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주 업계 1위인 하이트진로의 수익성은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이트진로의 매출(기준 1~9월 / 자료- 조선비즈)
매출- 7071억 원 / 영업이익 931억 원(영업이익률 13.1%)
그리고 10월~12월은 각종 송년회 등으로 매출은 더 가파르게 증가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가격 인상을 단행한 소주 업체들. 과연 이들의 가격 인상 명분은 합당한 것일까요?
원문: 뻔뻔한 지성들의 르네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