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대학에서 맞는 6번째 수강신청을 앞두고 시간표를 수정하고 있었다. 같은 시각 어느 누군가의 시간표는 전공 과목으로 빽빽히 도배가 되었을 수도, 또 다른 누군가의 시간표는 조금은 여유 있는 교양 수업들로 채워져 있을 수도 있다. 상황이 어찌되었건 우리모두가 가장 완벽한 시간표를 완성하기 위해 늦은 시간까지 시간표를 수정하고 또 수정한다.
우리에게 ‘완벽한 시간표’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침잠이 허용되는 ‘아침 빈 칸 형’? 매일 점심시간이 완벽하게 확보된 ‘점심시간 형’? 둘 다 아니라면 금요일이나 월요일을 공강으로 비워둔 주3, 주4일의 ‘홀리데이 형’ 시간표야 말로 완벽한 시간표일까?
사실 답은 뻔하다. 바로 ‘좋은 강의로 채워진 시간표’ 이다.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니는 소수를 제외하면 우리는 모두 매 학기 어마어마한 금액을 학교에 내고 있다. 그 금액이 어떠한 형태(대출금, 부모님 지원, 개인의 알바비 등)이건 간에 우리는 분명 지나치게 많은 돈을 내며 학교에 다니고 있고, 그러한 우리에게는 조금이라도 더 ‘좋은 강의’를 듣기 위해 노력 해야만 할 명백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강의’는 무엇일까
사실 좋은 강의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주관적인 잣대가 적용 될 수 있다. 당장 취업을 위해 학점이 필요한 졸업예정자에게는 수업 난이도에 비해 후하디 후한 학점을 주는 강의이야 말로 좋은 강의가 될 수도 있고, 지나친 전공시험으로 지친 누군가에게는 중간/기말고사가 없다는 이유로 그 강의가 좋은 강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좋은 강의’란 교수의 뛰어난 강의력을 통해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높여주는 강의를 뜻하며, 이 외에도 학생들에 대한 교수의 관심과 애정, 수업을 함께 듣는 타 학우의 의욕, 해당 분야에 대한 개인의 관심도 등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좋은 강의’를 만들어 낸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좋은 강의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한 방안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첫째는 해당 강의에 대한 강의 계획서를 통해 앞으로의 강의 계획과 교수의 성향, 강의 목적 등을 확인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강의계획서가 수강신청 이전에 제대로 업로드 되지 않을 뿐더러 내용의 완성도 또한 높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필자 또한 1학년 시절 이후로는 강의 계획서를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강의계획서에 대해서도 정말 할 말이 많지만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조금 더 면밀히 살펴보도록 하고, 우선 오늘은 좋은 강의 선택을 위한 두번째 방안인 ‘강의 평가’에 대해 집중적으로 언급하고자 한다.
강의 평가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학교 내부적으로 교수진을 평가하기 위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 학기 말 진행하는 설문조사와 학생 커뮤니티를 통해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공유하는 강의평가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대부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강의 평가는 주로 전자에 해당하며 이는 대부분 ‘의무’로 진행된다. 강의 평가를 하지 않으면 성적확인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고, 질문 문항 또한 지나치게 많다 보니 학생들의 성의 있는 강의 평가를 얻기가 쉽지 않다. 결국 ‘한줄로 찍기’ 등의 편법을 활용하는 학생들로 인해 신빙성 있는 데이터 확보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이에 비해 강의 평가의 두번째 종류인 학생 자체 강의평가는 익명성을 기반으로 하며 비교적 매우 투명하게 운영된다. 물론 공식 강의 평가 또한 익명을 기반으로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성적 공시가 되기 전, 학번으로 로그인 후 입력하는 강의 평가가 100% 진실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학생 자체 강의 평가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소위 ‘비공식 강의평가’, ‘익명강의평가’ 등으로 불리우기도 하며 대표적인 사례로는 서울대 SNUEV와 고려대 KLUE 등이 있다.
SNUEV는 특히 ‘천재해커’로 잘 알려진 이두희씨가 개발을 이끈 서비스로도 유명하다. 서울대 메일 계정이 있어야만 가입이 가능한 해당 서비스는 철저히 익명을 기반으로 하며 2015년 8월 초 현재까지 약 43,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약 9만 개에 가까운 강의평을 등록해왔다. 어느덧 SNUEV는 서울대 학생들의 수강신청을 위한 필수품이 되었으며 올해도 많은 학생들의 수강신청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그 외에도 연세대학교 연세춘추 강의평가 게시판, 한양대 위한 강의평가 게시판 등 자체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한 강의평가를 지속해오고 있는 학교도 다수 있으나 강의 평가에 최적화 되지 않은 서비스 탓에 편의성은 조금 떨어지는 편이다. 아직까지 학생 자체 강의 평가가 성공적으로 안착한 학교는 많지 않다.
필자의 조사 결과, 아쉽게도 주요 소수 대학을 제외한 나머지 대학에서는 이렇다 할 자체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기존에도 자체 서비스 제작을 위한 시도가 다수 있었으나 관리자의 졸업, 수익성 부족 등 각각 이유로 인해 여러 학교에서 관련 서비스가 지속되지 못한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이 밖에도 전국 대학 통합 시간표 관리 서비스인 에브리타임 등에서도 익명 강의 평가를 도입하기 위해 분주히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학생들의 참여는 미비한 편이다.
유지가 어려운 강의평가 사이트
강의 평가 사이트는 그 구조의 특성상 지속적인 유지가 매우 어렵다. 추가적인 유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기존의 평가 정보가 확보되어야 하는데, 이는 다음 수강신청을 계획하는 타 학생들에 대한 배려가 우선되지 않을 경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많은 학교 강의 평가 사이트들이 정보 선순환에 성공하지 못한 채 실패하게 되며, 이 때문에 고려대학교 강의 평가 사이트 KLUE 에서는 포인트 제도를 도입하여 메일 인증을 마친 고려대학생들도 특정 개수의 이상의 이전 학기 강의 평가를 완료해야만 열람 권한을 얻을 수 있게 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해외 대학은 어떨까?
필자가 직접 해외 대학을 경험해 본적은 없지만 조사 결과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공식적인 내부 평가 제도가 어느 정도 잘 자리 잡은 듯 했다. 이는 서로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과감하게 할말은 다 하는 문화적인 특성도 무시 할 수 없는 요소로 보인다.
그 밖에도 RATE MYPROFESSOR와 같은 통합 교수 평가 사이트를 통해 미국, 캐나다, 영국 내 140만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1500만개의 평가 글이 지속적으로 공유 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자체 외부 평가 또한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결국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가장 중요
현재 학교에서 실시하는 공식 강의 평가 시스템은 대부분 학생을 위한 것이 아닌 자체 교직원 평가를 위한 경우가 많다. 학교측에서 혁신적인 방안을 내놓지 않는 한 이러한 관행이 크게 바뀔 것으로 기대되지는 않기에 현 상황을 타개 할 수 있는 방안은 결국 학생들의 자발적인 정보 공유가 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반드시 SNUEV나 KLUE 등 완성도 높은 사이트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개설된 가톨릭대학교의 페이스북 페이지 ’가톨릭대학교 비공식 강의평가’처럼 페이스북 페이지나 그룹, 또는 학교 커뮤니티 게시판을 활용한 지속적인 정보 공유와 관리를 통해 얼마든지 강의 평가의 중심이 학생들에게로 돌아올 수 있다.
강의 평가의 중심에 학생이 있을 때, 그제서야 비로소 정보 공개를 통한 강의의 질적 향상을 도모 할 수 있으며 학생의 수업 선택권 보장을 기반으로한 수요자 중심의 수강 신청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글을 끝마치기에 앞서 함께 공유하고 싶은 해외 영상이 하나 있다.
바로 미국 예일대에서 명강의 중 하나로 손꼽히는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오픈 수업의 일부로 강의 첫날 Kagan 교수가 수업과 관련한 전반적인 이야기들을 나누고 마지막으로 이제까지의 강의 평가를 소개하면서 자신과 자신의 수업, 점수 등에 대해 정보를 공부하는 시간을 보내는 영상이다.
원문: five0203 tumbl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