ㅍㅍㅅㅅ의 이 글을 읽었다. 탈조선하자는 팁은 실은 팁이라기보다는 헬조선에서 허우적대는 청춘들의 아우성의 반영일 뿐일 것이다. 이걸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진짜로 독일로 탈조선하려는 사람들이 없지야 않겠지만, 대부분은 그저 독일은 학비가 무료래, 정도로 제 신세를 한탄하는 소스로 읽을 터이다. 그렇지만 ‘운 좋게도’ 일찌감치 남한을 떠나 외국을 떠도는 나로서는 이런 류의 글을 볼 때마다 씁쓸하고 불편하다.
물론 신세계가 열릴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았고 밝은 미래가 있다고 믿지도 않았지만, 유학 준비를 하던 당시에는 알량한 영어 조금 할 줄 아는 걸로 누군가 나에게 몇 년의 생활비를 대주면서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 하나에 희망이라면 희망, 기대라면 기대를 걸었더랬다. 결과가 좋아서 지금 이렇게 살고 있고, 솔직히 내 인생 다시 없을 사치를 누리고도 있다고 생각하긴 한다만, 그리고 지금 진지하게 유학 준비를 하는 분들이 고민해야할 문제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자기가 몇 십년을 살던 바닥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떠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모국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차라리 거대한 문제다. 진짜 문제는 아주 사소한 데에서 발생한다. 사는 게 거기서 거기라고는 해도 생활 방식이 내가 수십년 버텨왔던 것과는 디테일한 데서 다르고, 거기서 오는 시행착오는 자격지심을 낳는다. 자격지심은 현존하는 차별들과 결합하여 확대재생산되고, 마음은 점차 위축된다.
친구를 만들어보려고 해도, 서로 구사하는 레퍼런스가 다르다. 영어를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내가 내 또래의 미국애들이 90년대에 무슨 음악을 들었으며 무슨 TV쇼를 봤는지 알게 무언가. 대화는 단절된다. 한국 얘기를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한국인임”을 전시하고 집에 돌아오면 씁쓸함만 남는다.
핸드폰 하나, 은행 계좌 하나를 개설하려고 해도 번거로운 일이 따른다. 끊임없이 증명해야한다: 나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자가 아니며, 언젠가는 본국으로 돌아가 자국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며(즉, 이곳에 불법/장기 체류할 의도가 없으며)… 아니, 실질적으로 말하면, 휴대폰 대금을 떼어먹지 않을 것이며, 전기세 수도세를 밀리지 않을 것이며, 은행 잔고의 미니멈 밸런스를 유지할 경제력을 갖고 있으며, 신라면이 없어도 끼니는 때울 수 있으며, 이상한 냄새가 나는 음식물을 반도로부터 반입하지 않을 것이며, 실내에서는 부루스타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말해봐야 다들 아는 얘기지만, 실은 탈조선해도 어디나 유형이 다를 뿐 문제는 있다. 총기 사고를 생각해보자. 올해만 미국에서 355번의 총기 사고가 있었다. 고등학교 학예회에 버젓이 총기를 허리춤에 차고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 나라다. 건물마다 허리케인, 화재, 등의 재해와 더불어 무장 총격자에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를 적시해서 대비하라고 하는 나라다. 내 나라가 아니니 문제들을 외면할 수 있다고는 해도, 당장에 수업시간에 저 학생들 중 누군가, 강단의 교수가, 혹은 갑자기 난입한 누군가가 총을 난사하는 상상이 결코 상상만일 수는 없는 곳이 여기 미국이다. 탈조선, 탈반도하지만 과연 탈조선, 탈반도 하면 그만인가? 결국 내가 떠나서 살게 되는 그곳에는 또 다른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
물론 지옥은 종류가 다양하고, ‘더 나은 지옥’, ‘나에게 더 맞는 지옥’을 꿈꿔볼 순 있겠다. 그러나 헬에서 노오력하는 것이 충분하지 않은 만큼 탈조선하는 것 역시 능사일 수 없다. 탈조선을 이야기하는 자들의 냉소와 자조를 이해하지만, 그 역시 눈감는 것이 있어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