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벼운 역사 이야기를 정리해보겠습니다. 짧고 가벼운 내용입니다.
제가 세계 역사에서 파격과 기행으로 전무후무한 리더십의 역사를 남긴 두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일본의 오다 노부나가와 러시아의 표트르(영어는 피터) 대제를 꼽습니다. 두 사람의 리더십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자세하게 설명하도록 하고 오늘은 표트르 대제의 황당한 일화를 정리해보겠습니다.
우선 표트르 대제를 모르시는 분을 위해 간단한 배경을 설명해야겠죠?
그런데 좀 독특하지 않나요? 다른 군주와 달리 대포와 지도를 옆에 끼고 있습니다. 표트르의 취향, 그리고 결국 러시아를 세계 최강국으로 이끈 두 가지를 잘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바로 대포와 바다였습니다. 표트르가 어릴 때에 차르가 되어 추방아닌 추방을 당한 동안에 러시아의 전통과 종교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해볼 수 있었는데요, 이 때 대포와 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권력을 되찾은 후에도 자신을 포병과 선원에 임명해서는 직접 포술과 항해술을 익히는 엄청난 파격을 일삼았습니다.
당시 러시아는 마치 조선시대와 사회분위기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었는데, 세종대왕이 직접 포를 쏘고 배를 몰았다고 생각하면 될 겁니다. 이 양반이 대포와 현대식 육군을 창설한 후에 약소국이었던 러시아가 세계 최강국인 투르크를 상대로 크림반도 원정을 떠납니다.
역사를 잘 아시는 분들은, 아마 “어라? 당시 러시아가 해군이 있었나?” 하실텐데, 강력한 요새도시를 포위하고 투르크의 재침공을 막기 위해 러시아 최초의 함대를 만들었습니다. 최초의 함대라고 해봤자 유럽의 전열선(대포가 수십 문 있는 전함)이 아닌 갤리선(노 젓는)이나 바지선이 전부였습니다만…
국정이 안정되자, 가뜩이나 러시아 전통주의자의 눈에 반 미치광이로 보였던 대제가 순도 120%의 미치광이로 변하게 됩니다. 러시아 최초로 차르가 해외 순방길에 오른 것입니다.
그림 왼쪽의 순방로를 따라 자신이 동경하던 서 유럽 국가를 순방한 것입니다.
그림만 보면 ‘뭐, 표트르 이전에도 러시아가 컸었네’, ‘표트르가 확장한 영토는 없어도 될 정도이네’라고 생각하겠지만, 표트르 이전에는 모스크바 부근을 제외한 나머지 영토는 사실상 중립지역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주변국가의 영향이 강했는데, 표트르 시대에 이런 국경선이 확립된 것입니다.
아조프 원정은 남부 국경을 확립한 것입니다.
그런데 파격의 아이콘인 이 양반이 곱게 갈 리가 없죠. 다혈질의 성격과 달리 의외로 내성적이었고, 자신의 순방 목적이 방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신분을 숨기고 궁전 시종 자격으로 순방길에 오른 것입니다. 대 사절단(Great Embassy)은 각국 정부를 만나 러시아를 알리고 외교협상을 하지만 자신은 하고 싶은대로 놀다가 오겠다는 것입니다. 차르의 자격으로 가면 온갖 불필요한 의전과 회담을 해야 하니까 놀이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황당한 놀이란… 배를 모는 것만으로는 성에 안 차서 당시 해양강국이었던 네덜란드와 영국의 조선소에 가서 인부로 일하면서 배의 비밀을 직접 캐내려고 한 것입니다. 강철의 비밀을 알고 싶었던 ‘바바리안 코난’도 아닌데, 차르가 직접 도끼와 망치를 들고 네덜란드의 최대 조선소 잔담(Zaandam)에 가서 인부로 등록하고 실제로 일을 합니다.
그렇지만 요즘도 통신보안이 제대로 안 되고, 부칸의 외계인 해커가 은행 정보계까지 터는 판인데(정말?) 당시에 이런 비밀이 지켜질 리가 없죠.
더구나 그가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신체 특징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201cm라는 거대한 키와 마비된 왼쪽 얼굴입니다. 왼쪽 얼굴과 상반신 마비/발작은 어릴 때의 충격과 러시아 특유의 폭음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차르가 왔다는 말에 잔담 시민은 물론이고 암스테르담에서도 엄청난 인파가 그를 따라 다닙니다. 너무 많은 사람 때문에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된 표트르는 화가 나서 사람들을 밀쳐댔지만 불손한 네덜란드인들은 더욱 몰려들었고, 결국 표트르가 그중의 한 사람의 머리통을 두들겼습니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화를 내거나 공포에 질릴 줄 알았는데…
“우와! 황제가 자네에게 작위를 내리고 있네! 저런 영광을 받다니….”
배를 좋아하던 그가 요트를 빌려 바다로 나가도 그를 따라서 수천 척의 보트가 몰려들었습니다. 한 우편배달선은 여성들의 독촉에 표트르의 배 옆에 바짝 붙기까지 했습니다. 화가 치민 표트르는 선장의 머리를 향해 빈 병을 연거푸 던졌고 깜짝 놀란 선장이 배를 몰고 달아나는 일도 생겼습니다.
결국, 암스테르담으로 도망친 표트르는 시장의 도움을 받아 동인도회사 전용 부두에서 4주간 일을 하면서 조선술을 배우게 됩니다.
파격, 기행, 호기심, 천재성이 흘러넘치던 그이기 때문에 네덜란드에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배우고 싶어 했습니다. 위로는 오랴네공 빌럼(오렌지공 윌리엄, 네덜란드 출신으로 영국의 명예혁명 후 영국 왕), 아래로는 조선공과 기계공 그리고 온갖 학자들을 만나고 다양한 것을 배웠습니다.
심지어는 해부학까지 배웠는데… 러시아의 신성한 존재 차르가 천한 시체를 만지는 것을 보고 그만 사절단의 귀족 한 명이 말실수를 하고 맙니다. 그러자 표트르는 그에게 시체에 얼굴을 파묻고 근육을 입으로 잘라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차르의 행동에 불평했던 귀족 두 명에게는 사형선고를 내렸지만, 네덜란드 정부의 만류로 네덜란드 식민지 중에 가장 오지인 동남아와 중남미로 추방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창설된 러시아 현대식 함대는 북유럽 최강국인 스웨덴을 누르고 북유럽 해안을 장악하게 됩니다. 그래서 모스크바 강변에 있는 표트르 대제의 동상이 이런 디자인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동방의 미개국가 러시아는 영국, 프랑스와 함께 유럽의 판도를 결정하는 강대국으로 성장합니다. 푸틴을 풍자한 것인지 아니면 찬양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표트르 대제에 빗댄 이런 그림도 등장할 정도입니다.
러시아의 세력이 강해질수록 상대적으로 쇠퇴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던 투르크(터키)는 표트르 대제를 좋게 볼 리가 없죠. 60년 전에 그려진 그림이지만, 표트르를 변태적인 가학성을 가진 인물로 묘사했습니다. 실제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유럽에서는 십자군 원정 당시의 살라딘을 뿔 달린 악마로 묘사했으니까, 피장파장으로 흔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PS. 표트르 대제가 어설픈 해부학을 익힌 후에, 궁전 시종이나 병사가 아픈 내색을 못 했다고 합니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표트르대제가 달려가서 피 뽑고 이 뽑고 돌팔이 치료를 하려고 했는데, 이를 받는 것이 영광인지, 아니면 고문이었을지는 분명하죠?
PS.2 당시 바다는 굉장히 위험했기 때문에 차르가 배를 모는 것을 고사하고 타는 일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표트르도 목숨을 잃을 뻔한 일이 몇 차례 있었는데, 네덜란드에서는 전복된 배 위에 올라앉아 구조된 적도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