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의 마흔들, 응팔에 응답하다
공자는 마흔을 ‘불혹(不惑)’이라고 했다. 40대를 불혹이라고 한 것은 인생의 과정에서 자신의 학문이나 신념이 나름대로 확고해지고 다른 것에 미혹되어 흔들리지 않을 시기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오늘날 흔들리지 않는 40대가 몇이나 될까? 철밥통일 것만 같았던 직장에서는 명예퇴직으로 내몰리고, 딱 치킨집을 열만한 퇴직금은 권리금과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내 집 마련의 꿈도 요원해서, 2년마다 이삿짐을 꾸려야 한다. 아이들의 양육비와 학원비는 고사하고, 100세 시대를 맞아 노부모도 부양해야 하고, 국민연금은 과연 수령이나 할 수 있을지 두렵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다.
이러한 우울과 불안을 해결할 방법으로 추억팔이를 선택할 걸까. tvN에서 방영중인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 열풍이 장난 아니다.
얼마 전 <응답하라 1988>의 시청률이 11%를 넘었는데, AGB닐슨의 관계자에 따르면 40대가 드라마의 인기를 견인했다고 한다. <응답하라 1988>이 기존 시리즈와 다른 점은, 과거와 현재의 배역을 각기 다른 배우가 연기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덕선은 이미연이 연기하는데 실제로 이미연은 배역과 같은 1971년생이다. 뿐만 아니라 연출을 맡은 신원호 PD와 극본을 쓴 이우정 작가 또한 마흔 살이 넘었다.
왜 ‘1988년’이고, ‘40’인걸까. 혹시 신원호 PD는 각박한 2015년의 헬조선을 살아가는 40대에게 힘을 내라고 다독이며 노스탤지어를 선사한 것은 아닐까. 차근차근 따져봐야겠다.
1988년의 중고생들은 교복자율화, 두발자율화 등 다른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를 많이 누렸다. 물론 가끔 폭력적인 교사에게 터지기도 하고, 방과 후에 집으로 향하는 골목에서 나이키 운동화를 삥 뜯기기도 했지만. 그 당시 40대인 덕선의 부모세대도 정치적으로는 암흑기를 겪었지만, 저금리·저유가·저환율의 이른바 3低 호황의 혜택을 누렸었다. 먹고 살만은 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금의 40대는 다르다. 아차 하는 순간 지옥행 열차를 타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사회보장은 완전히 물 건너갔다고 보면 된다. 흙수저 물고 태어난 이상 오로지 개인의 힘만으로 악착같이 버텨야 할 뿐이다. 마흔은 불혹은커녕, 후회와 불안, 허무와 막막함이 뒤섞인 혼란한 시기다.
마흔은 단련되어야 한다
그런 오늘날의 40대에게 필요한 건 ‘마음단련’인지도 모른다. 좀처럼 바뀔 기미가 없는 외부의 조건들에 고통스러워 하는 대신,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인생의 길을 재정비하기 위해 점층적으로 자신을 단련하는 것이다.
공자를 비롯해 맹자, 묵자, 순자, 한비자, 관자, 장자, 회남자 등 동양의 선현들은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인 플라톤도 40세에 ‘아카데미아’를 창설해 인간의 내면에 대해 토론하고 탐구했다.
다시 <응답하라 1988>로 돌아와서, 그때의 10대는 <영웅문>을 모르면 간첩이었고, <드래곤볼>에 열광했으며, <황홀한 사춘기>의 주인공의 여정에 밤을 새워 동참했었다. 20대가 돼서는 ‘토익지옥에서 보낸 한철’이었고, 30대에는 켄 블랜차드를 따라 ‘겅호!’를 외쳤었다.
헬조선에서 위기의 40대를 맞이한 지금은 고전과 인문학 책에서 돌파구를 찾아보면 어떨까. 정말 꼰대스러운 말이지만, 절대 흔들리지 않는 ‘마음공부’를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