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타계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완벽주의로 악명이 자자합니다. 그의 영화를 보는 것은 정말 멋진 경험이지만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지옥 그 자체였다고 하지요. 그는 어떻게 자신의 모든 작품을 역사에 남는 걸작으로 만든 걸까요? 큐브릭이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낸 5가지 방법을 소개합니다.
1. 원작의 명성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각색한다
큐브릭은 강렬한 이야기가 될 원석이라면 원작이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단편, 장편, 심지어 논픽션도 각색해 자신만의 스타일로 바꾸었습니다.
<샤이닝>은 스티븐 킹의 원작과 전혀 다른 플롯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티븐 킹은 큐브릭의 영화를 끔찍이 싫어했지요.<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아이스 와이드 셧>은 단편을 각색했고, 풍자 코미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원작은 [레드 알러트]라는 진지한 소설이었습니다.
냉전 시대에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같은 과감한 코미디를 만드는 것은 굉장히 무모해 보이는 일이었습니다. 핵전쟁 공포가 최고에 달한 시점에 핵폭탄이 터지는 장면을 보여주다니 다들 경악했지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개봉했던 1964년 비슷한 주제를 진지한 톤으로 다룬 <페일 세이프(Fail Safe)>라는 영화와 곧잘 비교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도 <페일 세이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결국 오래 남는 것은 독창성입니다.
하지만 큐브릭은 자신보다 더 재능이 뛰어나다면 원작자의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1962년 작 <롤리타>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직접 각본을 썼고, 1968년 작 는 아서 클라크와 함께 각본을 썼습니다.
2. 원대한 구상을 한다
큐브릭 영화의 스케일은 유난히 큽니다. 그는 늘 예산을 초과해 투자자를 괴롭혔습니다.
<배리 린든>은 1,100만 달러가 들었는데 이 금액은 1975년에는 엄청난 액수였습니다. <샤이닝>에 등장하는 오버룩 호텔의 거대한 공간감을 표현하기 위해 큐브릭은 장소를 물색한 게 아니라 아예 대형 세트를 지었습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원래 예산은 600만 달러였지만, 큐브릭은 1,050만 달러를 썼습니다. 지름 38피트의 휠 모양 우주선 세트를 만드는 데만 75만 달러를 들였습니다. 이 영화는 ‘인류의 기원’, ‘목성 미션’, ‘목성을 넘어 무한으로’ 등 3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섹션의 테마는 전혀 다르고, 스케일은 어마어마합니다. 하지만 큐브릭은 이를 한 편의 영화로 묶어냈습니다.
마틴 스콜세지는 큐브릭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큐브릭은 전통적 드라마 구조와 타협하지 않았다. 그는 원대한 실험가였다.”
3. 자신과 스태프와 배우들을 혹사시킨다
큐브릭의 완벽주의가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역시 같은 촬영을 계속 반복해야 했던 배우와 스태프들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까다로운 기준을 만족할 때까지 찍고 또 찍었습니다.
<아이스 와이드 셧>은 무려 400일 동안 쉬지 않고 촬영해 기네스북에 올라 있습니다. 이 영화에 톰 크루즈와 시드니 폴락이 등장하는 13분짜리 씬이 있는데요, 이는 무려 3주 동안 촬영한 것입니다.
큐브릭은 배우에게 같은 장면을 다른 방식으로 연기해보도록 요구했습니다.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말콤 맥도웰이 ‘싱잉 인 더 레인’을 부르게 된 것도 이것저것 해보다가 우연히 떠오른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롤리타>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 출연했던 피터 셀러스는 이렇게 술회했습니다.
“한 장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우리는 녹음기가 있는 테이블에 둘러앉아 그 대목에 애드리브를 넣어봅니다. 그러다 보면 완벽한 대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샤이닝>을 찍을 때 큐브릭은 잭 니콜슨에게 각본을 분석해보라고 했습니다. 니콜슨은 테니스 공을 호텔벽에 던지는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이 장면은 의미심장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영화에 등장합니다.
촬영을 여러 번 하는 것이 이들을 단순히 성가시게만 했던 건 아닙니다.<아이즈 와이드 셧>을 찍을 때 톰 크루즈는 궤양이 더 나빠졌지만 큐브릭의 명성을 생각해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샤이닝>의 셜리 듀발은 다릅니다. 그는 큐브릭 때문에 신경쇠약에 걸렸고, 이를 숨기지 않고 다 얘기하고 다녔죠. 나중에 듀발은 이렇게 술회합니다.
“난 그때 그를 정말 미워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가 저에게 ‘제 인생의 역할’을 준 중요한 감독이라고 생각해요.
전 제가 감히 상상하지도 못한 배우가 됐어요.”
배우만 고생한 것이 아닙니다. 스태프도 영화에 나오지 않았다 뿐이지 다른 방식으로 신나게 혹사당했습니다.
<아이드 와이드 셧>은 영국에 세트를 지어 놓고 많은 장면을 촬영했습니다. 큐브릭은 세트에 들어갈 신문걸이 같은 자질구레한 소품들의 사이즈가 정확한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스태프를 뉴욕 맨해튼으로 보내 정확한 수치를 재오도록 했습니다.
4. 뚝심 있게 장애물을 돌파한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를 만들 때 큐브릭은 정부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 민감했던 핵폭탄과 정치인들을 소재로 다루고 있었으니까요.
프로덕션 디자이너 켄 아담은 영화의 세트를 만드는 도중 세트장을 찾아온 한 군인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영화가 얼마나 정확한지 점검하고 있었습니다. 아담은 큐브릭에게 이것을 말했고, 큐브릭은 그에게 이런 메모를 남겼습니다.
“당신이 만드는 것들의 레퍼런스를 일일이 체크해야 할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FBI의 조사를 받게 될 테니까요.”
큐브릭은 초기작 <공포와 욕망>, <킬러의 키스>를 찍을 때 가족과 친구들에게 손을 벌렸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공포와 욕망>에 돈을 대기 위해 생명보험까지 해약해야 했습니다.
큐브릭은 상업영화 데뷔작 <킬링>을 만들 때부터 전문가들과 논쟁에서 지지 않았습니다. <킬링>의 촬영감독은 명성 높았던 루시엔 발라드였는데 큐브릭의 완벽주의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발라드는 큐브릭이 자리를 비운 사이 달리 쇼트 하나를 25밀리 렌즈 대신 50밀리 렌즈를 이용해 찍었습니다. 그 거리만큼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애초 콘티에 그려진 장면과 같은 사이즈의 화면이 나왔죠. 하지만 큐브릭은 루시엔을 바라보며 이렇게 소리 질렀습니다.
“뭐가 똑같아요? 그건 완전히 다른 거예요. 관점이 바뀌잖아요. 25밀리 렌즈로 당장 갈아 끼우던지 아니면 당장 꺼져버려요!”
5. 새로운 기술을 적극 도입한다
제임스 카메론이 <타이타닉>과 <아바타>를 위해 신기술을 발명하기 훨씬 전에 이미 큐브릭은 기술적인 연출에서 혁신가였습니다.
<배리 린든>을 만들 때 큐브릭은 촛불 하나로 영화에 필요한 모든 조명을 밝혔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NASA가 1960년대 달을 촬영할 때 썼던 10개의 렌즈 중 3개를 구입했습니다. 그는 이 렌즈를 카메라에 부착해 원하던 조명을 얻었습니다.
<샤이닝>은 스테디캠을 제대로 이용한 첫 영화로 자주 인용됩니다. 이 영화에서 소년을 따라다니는 카메라 워크는 기존 스테디캠보다 훨씬 낮은 위치에서 촬영된 것입니다. 큐브릭은 이 장면을 찍기 위해 휠체어에 카메라를 매달았습니다.
원문: 양유창의 창작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