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세상에 없던 걸 생각하거나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남들이 이미 발견하거나 만들어낸 걸 빨리 학습한다고 천재가 아니다.
기존 이론과 성과를 이해하는 것과, 이에 기반해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학술 활동이다. 전자는 전통적인 학이시습(學而時習; 배우고 익히는 것)이고, 후자는 창조적 연구 활동이다. 즉,
(a) 지식의 습득
(b) 지식의 전달
(c) 지식의 생산
이 셋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각기 다른 활동이다.
현재 변화하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은 (a) 지식의 습득으로 능력을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송유근은 (a) 측면에서 확실히 탁월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지 몰라도, 아직까지 (c)에 있어서는 아무 것도 한게 없다.
이번 논문 표절 사건은 (c)에서 아무 것도 없다는 걸 재확인해 줬다.
미국의 연구중심대학은 (b) 강의를 덜 중시하고, (c) 논문(책) 생산을 가장 중시한다. 서울대 수석이니, 하버드와 여러 아이비리그 대학을 한꺼번에 붙었니 하는 건 모두 (a)에 대한 것이다. 집안이나 동네에서 잔치를 열만한 성과지만, 이건 업적이 아니다.
연구자로써의 성공을 좌우하는 건 (c) 새로운 지식의 생산이다. 가장 큰 문제는 (c)의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해보기 전에는 모른다는 것이다. 또한,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똑같은 책을 읽고 똑같은 말을 들어도 거기서 뭔가 새로운 것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가능하고 어떤 사람은 불가능하다. 지식 습득을 못하는 사람이 지식생산을 하기 어렵지만, 지식 습득을 잘한다고 지식 생산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럼 자신에게 연구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평가하는 좋은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대학원 초기에 리터러쳐 리뷰(문헌 검토)를 할 때, 예전 논문에서 부족한 점을 생각해 볼 것.
(2)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새로운 연구의 구체적인 주제와 가설, 이를 검증할 수 있는 방법론을 생각해 볼 것.
(3) 그리고서 구글링을 할 것.
자신이 생각한 바로 그 방법으로 자신이 생각한 그 가설이 맞다는 논문이 이미 나와 있다면, 실망할 것이 아니라 매우 기뻐할 일이다. 다른 연구자들도 다 똑똑하고 열심히 연구한다. 그 연구자들과 같은 수준의 연구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다는 신호인 것이다.
이 과정을 반복해서 최신 연구까지 섭렵하게 되면,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가설을 생각해서 남들이 연구하지 않은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천재는 획기적인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나머지 대다수의 연구자들은 점진적 기여(incremental contribution)를 한다.
구체적인 가설이 거의 떠오르지도 않거나, 여러가지 가설을 생각했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연구를 남들이 전혀 하지 않았다면, (늘 그런건 아니지만) 이는 자신에게 연구 능력이 없다는 일종의 증거이다. 연구는 나의 길이 아닐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게 대학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내가 매년 반복해서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