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통합진보당의 무모한 요구
2010년 지방선거 이후 정치권에선 ‘야권연대=승리공식’이라는 공식이 도출되었다. 이후 야권은 지방선거, 2011년 4월 재보선, 2011년 10월 서울시장 선거까지 내리 3연승을 거두게 된다. 사람들은 2012년 4월 총선에서도 당연히 야권연대가 진행되어 총선에서 압승하리라 기대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야권의 완패였고, 그 후유증은 결국 대선까지 이어졌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완승했으며, 한명숙은 역사의 죄인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왜 그전까지는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진행되던 야권연대가 총선에서는 실패했던 것일까? 이 글에서는 그에 대해 선거공학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2012년 1월 15일, 민주통합당 지도부가 선출되었다. 한명숙이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으며, 2위로 문성근, 3위로 박영선, 4위로 박지원, 5위로 이인영, 6위로 김부겸이 선출되었다. 그런데 이 체제가 출범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1월 17일, 통합진보당의 심상정이 ‘정당 지지율만큼 의석수를 배분하자’는 야권연대 제안을 보내왔다. 당연하게도, 이는 민주당에 매우 불리한 전술이다.
당대표 연설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이런 글을 보내온 데 대해 민주통합당 지도부는 다소 불쾌해했으나, 일단 야권연대보다 먼저 공천절차를 밟기 시작하였다. 어차피 야권연대로 활용 가능한 지역구는 일부로 정해져 있었고, 해당 지역구는 공천을 늦춘 상태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계속 지나고, 민주통합당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거듭하자 이정희 외 통합진보당 지도부는 “통합진보당 지지율이 3%, 민주통합당 지지율이 30%이니 30개 지역구를 달라”는 주장을 내놓는다. 소선거구제하에서 지역구는 비례와 달리 인물의 경쟁력, 당 조직력등이 모두 중요한데 그걸 깡그리 무시한 이야기였다.
여기에 당내 No.2라 할 수 있는 장원섭 사무총장은 한겨레TV의 뉴욕타임스에 출연, 수도권 15석 (승산이 없는 강남은 애초에 제외한 채), 전북 2석, 전남 2석, 광주 2석을 요구하는 등 압박을 가했다. 이에 동참해 파워트위터리안들도 함께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는데, 개중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김진혁 PD의 ‘통합진보당 지지율 10% 올리기 무한RT 운동’ 등. 그러나 지지율은 전혀 변동이 없었다는 것이 함정(…)
통합진보당의 석패율제 비판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논쟁이 있었다. 바로 석패율 논쟁이었다. 석패율 제도는 지역구에서 아깝게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로 당선시키는 제도다. 이는 영남에서 한나라당이, 호남에서 민주당이 독식하다시피 하는 소선거구제에 대한 보완 조치로 등장했다.
그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를 비례대표 명부에도 올릴 수 있는데, 1) 해당 지역에서 해당 정당의 의석수가 일정 비율 이하이고(호남에서의 새누리당, 영남에서의 민주당처럼) 2) 해당 후보의 지지율이 일정 수준 이상이며 3) 해당 후보가 비례대표 당선권에 있을 때 그가 지역구에서 낙선했더라도 지역구 결합 비례대표란 이름으로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참여정부가 지역주의 약화를 위하여 대연정까지 검토했다가 결국 철회했던, 중/대선거구제와 정당명부 비례제와도 맞닿아 있는 제도이다. 또한, 호남과 영남이 여야의 불모지가 되어 좋은 인재는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일당독재라는 비아냥까지 듣는 지역주의의 벽 앞에서, 현실적으로 이를 깨뜨릴 수 있는 제안이기도 했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이를 합의하려 하자, 통합진보당에서는 이 ‘합의’를 ‘야합’으로 규정하고, ‘민누리당’, ‘새누리당 2중대’, ‘민한당’ 등의 용어를 동원해 공격했다. 트위터에서도 석패율제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사실 석패율제 때문에 특정 정당이 의석을 더 얻는다거나 덜 얻는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어차피 비례대표란 각 정당이 얻은 지지율에 따라 의석이 배분되는 것이며, 석패율제로 당선되는 지역구 결합 비례대표 역시 각 정당이 정한 비례대표 명단 안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통진당이 이에 발끈한 건 민주통합당의 영남 공략과 새누리당의 호남 공략이 조금씩 결실을 거두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17대 총선에서 1% 득표에 그친 새누리당 이정현 전 의원(현 정무수석)은 19대 총선에서 광주 서구 을에서 34%의 득표를 거두었다. 심지어 여론조사에서는 통합진보당 오병윤 의원을 앞지르기도 했다. 또 광우병 사태 때 평생 먹을 욕을 다 먹은 정운천 전 장관도 19대 총선에선 완산 을에서 36%로 꽤 높은 득표율을 거두었다. 통합진보당은 영호남의 지역주의를 파고들기는커녕 제3당으로 전락할 상황이었다.
노회찬 의원도 “저녁 먹기 전에 짜장면을 왜 먹느냐”면서 석패율 제도 논의를 양당 야합이라고 공격했다. 반면 당선이 확실한 지역구를 버리고 대구로 내려간 민주당의 중진 김부겸 의원은 “XX, 지역주의 최전선에 한 번도 서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 절박감을 죽어도 모른다. 이렇게 해서라도 지역주의에 구멍을 내야지, 안 그러면 불모지에서는 후보조차 구할 수가 없다”고 외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통합진보당과 진보 진영에서 석패율을 비난하면서 정개특위에서도 여야가 합의를 이루는 데 실패했으며, 결국 지역주의에 맞서 영남과 호남으로 내려간 여야의 의원들은 모두 낙선하고 말았다.
민주당 내부문건으로 보는 통합진보당의 위험성
소위 야권 원로들이 지속해서 야권연대에 대한 압박을 가하는데다, 한미 FTA 프레임과 공천에서의 잡음 등으로 민주통합당의 지지율이 계속 떨어져서 새누리당이 되려 정당지지율을 역전시키는 상황까지 이르자, 결국 2월 17일 민주통합당의 박선숙과 통합진보당의 장원섭을 중심으로 야권연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협상은 난항을 보였고, 결국 1차 중단되고 만다. 이에 대해서 잘 묘사한 문건이 있다.
‘협상 대표 변경’만 봐도 알 수 있듯 죄다 경기동부가 해먹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통합진보당 내 사전적 지역구 조율은 다 완성되었다’는 구절에서도 경기동부가 더 해먹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차후 야권연대에서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는 이정희-관악을 문제도 언급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럼 2차 문건을 보자.
여기서 보면 민주통합당은 낱낱이 통합진보당을 부처님 손바닥 보듯 들여보고 있었다. 민주통합당은 2번의 집권경험이 있고, 국정원, 경찰, 검찰 등 권력 사정기관을 자기 것으로 만든 경력이 있는 당이니 사실 당연한 일이다. 위 문건에 따르면, 어느 한 정파라도 탈당하면 절대 교섭단체(20석)는 못 만들 상황이다. 통합진보당은 선거용 가설정당이라는 말이 돌았었는데, 실제로 교섭단체 때문이라도 이정희의 NL, 유시민의 참여계와 노심조의 진보세력을 묶으려 한 것이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명단은 이런 통합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했다. 아래 명단을 보자.
당시 통합진보당은 당에서 당선될 비례대표를 대략 10명 정도로 계산했다고 알려졌다. 그럼 지역구에서는 10석만 만들어도 20석으로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 더군다나 당선권 중 1~8번(민주노동당이 2004년 총선에서 13% 득표를 올려서 8명까지 된 것을 기준으로 볼 때)에선 외부영입 인사인 박원석을 제외하고 전원 NL 계열 인사였다. 참여당계열은 9, 10번 2명뿐이었기에 여기에 불만을 품은 참여당계는 어떻게든 지역구 공천을 따내기 위해서 협상에 필사적이었고, 결국 이는 아래 서술할 안산 단원갑 사태를 불러오고 만다. 결국, 그나마도 비례대표가 6명밖에 당선되지 못했지만(…)
계속되는 요구의 충돌에 야권연대는 2월 22일 2차 결렬사태를 맞게 되고, 통합진보당 사람들은 민주통합당사로 뛰어가서(…) 촛불시위를 벌이게 된다.
통합진보당의 떼쓰기 어그로 시전과 무너지는 민주당
협상이 파기된 이유는 사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통합진보당 후보의 경쟁력이나 조직력이 민주통합당에 한참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합진보당 지지자들은 한사코 부인했으나(그리고 지금도 부인하겠으나) 결과적으로 민주당이 공천을 양보한 곳을 죄다 빼앗기고 말았으니 할 말이 없다.
통합진보당에서는 강남 제외 수도권 10곳, 호남 6곳, 기타 4곳까지 20곳의 공천을 요구했다. 반면 민주통합당에서는 심상정의 고양덕양갑, 노회찬의 서울 노원병, 천호선의 서울 은평을, 이정희의 서울 관악을, 김미희의 성남 중원, 오병윤의 광주 서구을, 김성진의 인천 남구갑까지 6+1을 주장했다. 통합진보당의 요구를 민주통합당이 받지 않자 결국 협상은 파국에 이르렀고, 이즈음 통합진보당 고위 관계자는 “민주당 수도권 60곳 떨어뜨릴 수 있다”고 발언하며 광역 어그로를 시전하기도 했다.
이에 민주통합당은 내부적으로 돌려본 시뮬레이션 결과, “민주통합당은 최대 120석이 나오지만, 통합진보당은 울산·마산·거제·창원·사천 등을 합쳐 6~7석 정도밖에 안 나온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이 주장은 적중했다. 실제로 통합진보당은 7석의 지역구를 얻었으며, 진보의석이 가끔 나오던 부산, 울산, 경남에선 정작 단 1석도 건지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3월, 야권연대 협상은 지속적 압박에 못이겨 재개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통합진보당 각 계파 간에 치열한 다툼이 일어났다. 이 중 제일 문제가 되었던 지역 중 하나가 도봉 갑이었는데, 민주통합당은 김근태 전 의장의 지역구에 그의 아내 인재근 씨를 전략공천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측에서는 참여당계열의 이백만 전 청와대 수석이 한사코 경선을 요구하였는데, (당연하게도) 민주통합당은 이에 난색을 보였으나 결국은 인재근 씨의 양보로 경선이 치러지게 되었다. 도봉 갑 등의 문제가 해결되며 협상은 3월 10일 극적 타결로 전국적 야권연대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3월 19~20일 사이 경선을 거쳐 최종 후보를 선출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문제는 어김없이 발생하고 만다. 지역별로 살펴보자.
1. 경기도 파주을 : 참여계의 무공천 요구, 뒤늦은 단일화
경기도 파주시는 원래 접경지역이었지만, 운정 신도시 등이 새롭게 개발되며 2010년 지방선거에선 민주당 시장이 뽑혔을 만큼 민주당 계열 성향으로 바뀐 곳이었다. 원래 파주는 1개의 지역구였으나, 인구 증가로 인해 19대 총선부터 파주 갑/파주 을로 분구되었다. 파주갑은 민주통합당의 윤후덕 의원이 지역위원장을 계속했기에 단수공천 받았고, 나이트라인 앵커였던 새누리당의 정성근 후보를 상대로 15% 차이로 압승하였다.
1차협상 문건에서도 알 수 있듯, 지역구가 새로이 나뉜 경우는 합의를 거치기로 되어 있었다. 따라서 새로이 분구된 파주 을 지역 역시 협상의 대상이 되었는데, 참여당계의 강력한 요구로 민주통합당은 이 지역을 무공천 지역으로 정했다. 이에 그동안 파주 을 지역을 다져왔던 박정 후보가 반발하여 탈당하였는데, 되려 박정 후보가 3자대결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에서 앞서나가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에 박정 후보는 지속적으로 단일화를 요구하며 경선을 요구하였으나, 통합진보당의 김영대 후보가 이를 계속 늦추면서 결국 총선 전날에야 경선을 치렀고, 여기서 박정 후보가 승리하며 단일후보가 되었다.
그러나 너무 늦게 단일후보 선출 경선을 한 탓이었을까, 무효표가 속출하여 6,500표나 발생하였다. 박정 후보는 5,000표 차이로 패배. 만일 이 표가 단일후보로서 더 경쟁력 있었던 박정 후보에게 충분히 갔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거기에 단일화가 너무 늦어지며 표가 갈려서 패배할 거라 생각했던 유권자들도 많았던 것인지, 파주 을의 투표율은 전국 평균보다 6%나 낮은 48%에 그쳤다. 결과론적 얘기일 수도 있으나, 가져올 수 있었던 선거구를 날려버린 셈이다.
2. 안산시 단원구 갑 : 부정선거 의혹과 참여당계의 민주당 조롱
천정배 의원이 2011년 10월 서울시장 선거 때 지역구를 놔두고 서울로 올라가면서 안산 단원 갑 지역구는 공석이 되었다. 여기에 당 지도부는 백혜련 검사를 전략공천한다. ‘아현동 마님’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인물로, 사표를 내고 민주통합당에 검찰개혁을 기치로 내걸며 입당한 인물이다. 여기에는 18대 국회의원이었던 김학재 의원이 후배 정치인 양성을 대의로 내걸고 반발하지 않고 순순히 물러난 미담도 있다.
그러나 너무 갑작스럽게 전략공천되어 지역구에 내려간 터라 사무실이나 각종 지역조직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원래 천정배 보좌관이었던 고영인 도의원에게 물려줄 예정으로 알려졌었는데 당 지도부가 전략공천을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야권연대 경선이 치러지며 결국 사달이 나 버렸다.
당시 상대는 참여당계 조성찬이었는데, 처음에는 백혜련 검사가 이긴 것으로 결과가 나왔으나 재검표 후 3표 차이로 조성찬이 이긴 것으로 결과가 뒤바뀌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경선 여론조사에 이용된 일부 전화가 옆 지역인 단원 을 주민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는 의혹이 발생했고, 이에 민주당 측에서는 재경선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은 이를 거부했고, 결국 조성찬이 야권단일후보로 확정된다.
그렇지만 조성찬은 단 한 번도 여론조사에서 이기지 못했다. 안산 단원 갑은 천정배 의원이 15~18대 연속으로 국회의원을 하는 등 민주당 세가 강력했던 곳이었다. 조성찬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시흥시장으로 출마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 안산 단원갑에는 조직도 마땅히 없었던 터라, 결국 시의원까지 하면서 지역표를 다졌던 김명연 19대 의원에게 낙선하고 만다.
이 안산 단원 갑 문제는 아래 설명할 관악 을 문제와 함께 커다란 문제가 되었다. 민주통합당 측에서는 공천 후 재경선을 요구하였으나, 통합진보당 측은 이에 반대하였다. 이 와중에 유시민은 0.3% 차이로 조성찬이 백혜련을 꺾은 것을 두고 ‘고시에서도 0.3점이면 떨어진다’고 발언하는 등 공세를 이어갔다.
경선 표본설계의 문제도 제기되었다. 당시 민주당 백혜련은 전화자동응답(ARS)에서 40.37%, 임의 전화번호 걸기(RDD)에서 59.37%를 얻어 ARS 59.63%, RDD 40.63%를 얻은 참여계 조성찬에게 0.3% 차이로 패배했다. RDD와 ARS의 이런 기묘할 정도로 큰 차이는 관악 을과 인천 남동 갑에서도 발생한 차이다.
여기서 민주통합당 지도부도 어이없는 협상력을 보여주었는데, 익히 알려진 관악 을 문제와 단원 갑 문제 등 2개 이상의 문제가 동시에 걸려있는 이상 적어도 하나는 얻었어야 했는데, 관악 을은 이상규에게 넘겨주고, 단원 갑은 조성찬에게 넘겨주는 짓을 해버렸다. 이 또한 결국, 민주통합당의 철옹성이었던 안산시 단원구 갑이 새누리당에 넘어가는 결과를 냈다.
4. 인천 남동구 갑 : 명백한 부정선거와 야권연대의 눈감기
여기는 참여정부에서 비서관을 지낸 박남춘 현 19대 국회의원과 민주노동당에서 활동하던 신창현이 맞붙었다. 위의 1차문건에서도 보이지만 여기는 단일화 요구를 했다가 최종적으로 경선이 결정되었는데, 이때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는 검찰 기소결과를 참고하도록 하자.
[quote style=”1″]단일화 경선 과정에서 단기전화 대량설치, 착신조직 운용, 허위응답 등 부정한 방법을 동원한 혐의(위계에 의한 업무방해)로 통합진보당 인천남동갑 선거사무장 이모씨(39.여)를 구속하고 당원 11명을 불구속 기소, 명의 대여자 등 7명을 기소유예했다고 21일 밝혔다. 당시 민주통합당에서는 박남춘 후보가, 통합진보당에서는 신창현 후보가 ARS와 전화면접을 통해 단일화 경선을 벌였다. 최종 후보는 박 후보가 됐지만 ARS 대결에서는 신 후보가 앞섰다.
검찰에 따르면 이씨 등은 전화 경선에서 신 후보 지지표를 늘리기 위해 당원과 자원봉사자를 중심으로 이른바 ‘착신조직원’ 21명을 결성했다. 착신조직원들은 여론조사업체가 활용하는 전화번호부 명단을 토대로 경선일 직전 단기전화 110여 대를 개설했다. 이후 자신의 휴대폰에 단기전화 3~11대를 착신시켜 경선 전화가 오면 연령과 성별을 허위로 응답하는 방법으로 중복 투표를 했다. 1인 7표, 1인 5표도 이뤄졌다. 그 결과 신 후보는 ARS 600표 가운데 334표를 얻어 266표에 그친 박 후보를 누를 수 있었다. 검찰 조사 결과 334표 가운데 허위.중복응답 유표투표는 77건에 달했다. 대신 박 후보는 전화면접에서 신 후보를 눌러 총 22표 차로 단일후보가 되었다.[/quote]
여기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단원 갑과 비슷하게 통합진보당은 ARS에서 앞서고, RDD에서는 뒤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쨌든 그럼에도 박남춘 50.86 : 신창현 49.14의 초미세 박빙으로 박남춘 후보가 승리. 그 후 박남춘 후보는 13대 총선 이후로 새누리당의 텃밭이었던 인천 남동구 갑 지역구를 탈환하는 데 성공한다.
5. 서울 관악을 : 사상 최악의 이정희 사태
이 야권연대 부정경선의 피날레를 장식한 것은 서울시 관악을 경선이었다. 당시 여기는 민주통합당 김희철 의원의 지역구였는데, 여기에 이정희가 2010년부터 사무실을 내며 출마를 준비하였다. 일부에서는 “민주당세가 가장 강한 곳에서 ‘알박기’하여 지역구를 따내려 한다”는 비난이 나오기도 했으나, 한때 ‘진보의 아이유’로까지 불렸던 이정희였기에 이러한 비난은 2012년 총선 때까지는 그다지 크게 나오지 않았다. 다만 1차문건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으나 지역구를 옮기라는 압박도 매우 강했다.
그러다가 야권연대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이 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된다. 결국, 지역구 양보 대신 경선을 치르기로 결정되며, 김희철 VS 이정희의 대결이 벌어진다. 경선 당시 김희철은 구청장 2선에 국회의원 초선으로 나름 지역조직력을 갖고 있었으며, 이해찬 의원의 보좌관이었던 정태호까지 경선에서 꺾었기에, 김희철 후보가 당연히 유리하리라는 게 모두의 시각이었다.
그런데 야권연대 경선을 3일 앞두고 관악을에서 작은 사건이 하나 터지게 된다. ‘관악을의 발전을 종북좌파에게 맡길 수 없다!’라는 현수막이 발견된 것. ‘김희철 의원 측이 건 것이 아니냐’ ‘오히려 통진당 측에서 설치하고 네거티브의 소재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등 다양한 논란 속에서 경선이 시작되었다. 전국적인 지명도에서 앞서는 이정희는 트위터 등에서 팬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선거운동을 벌였으나, 경선 직전까지도 5% 정도 지는 것으로 전세를 추측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부정경선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ARS 관련, 나이대를 조작하라는 지시를 한 문자를 보냈다는 사실이 인터넷 커뮤니티 MLBPARK에서 최초로 밝혀지고, 이어 김희철 의원도 이에 대한 증거를 얻고 부정행위를 저지른 이정희 측에 사퇴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정희는 사퇴하지 않겠다며 버티기를 시작하였고, 여기에 몇몇 파워트위터리안들도 동참하여 오히려 김희철에 대해 비난을 퍼부었다.
결국, 이정희는 재경선을 수용했으나, 김희철 의원은 ‘부정행위를 한 자가 무슨 재경선이냐’는 이유로 거부하였다. 여기에 나머지, 통합진보당과의 경선에서 패배한 민주통합당 후보들이 전면적 반발을 일으키면서 야권연대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통합진보당의 심상정과 유시민 역시 김희철을 비난하고, 이정희를 감싸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심상정은 김희철의 사퇴를 요구하였고, 유시민은 김희철의 사퇴를 요구함은 물론 백혜련의 사퇴까지 요구하였다. 사태는 점점 악화일로로 접어들었다.
결국, 이정희는 극심한 반발에 못 이겨 사퇴하게 되나, 민주통합당 지도부는 후보등록 시점까지 김희철 후보에게 공천장을 주지 않았고, 결국 김희철 후보는 탈당한다. 여기서 난데없이 민주통합당 지도부와 통합진보당 지도부는 통합진보당의 이상규를 야권단일후보로 뽑는다. 부정경선을 적발당하고도 후보 자리는 그대로 통합진보당이 가져간 것이다. 이후 이상규는 관악을에서 당선되었으나, 야권연대에는 이미 심각한 상처가 생긴 후였다.
후에 검찰수사로 밝혀진 관악 을 경선부정 내용은 대강 이러하다.
1.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이 전대표가 관악을 선거구 후보로 당선되도록 여론조사를 조작한 혐의로 이씨와 이 전대표의 보좌관 이모씨(37)와 조모씨(38) 등 3명을 구속기소했다.
2. 이씨 등은 지난 3월 야권 후보단일화 경선관리 위원회가 실시한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 여론조사에서 일반전화 190여 대를 설치, 이 전대표를 지지하는 제3자의 휴대전화에 착신 연결한 후 ARS(자동응답전화)에 응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실제 투표권이 없는 지지자가 여론조사에 응하거나 성별이나 나이를 속여 여론을 조작한 것으로 조사됐다.
야권연대의 결말 : 통합진보당의 와해와 민주당의 참패, 그리고 대선…
야권연대는 결국 성사되었으나 수많은 상처가 남았고, 결국 야권연대는 새누리당에 과반수를 내주며 완패했다. 이 야권연대의 결과는 차후의 야권연대에도 큰 장애물이 될 수밖에 없다. 부정경선을 적발당한 통합진보당(과 현 진보정의당)과 다른 정당이 경선을 치를 수 있을지도 의문일 뿐 아니라, 설령 경선에서 패배한다 해도 조작의혹을 거론하며 승복하지 않을 요량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진보 계열의 소수당은 3자 구도에서도 승리할 정도로 높은 지지율을 얻거나, 노회찬, 심상정처럼 경쟁력과 지명도를 갖춘 후보가 극히 적은 지역구에서 무공천 양보를 받는 정도 외에는 지역구 의석을 기대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현 소선거구제 하의 총선에서는 교섭단체는 꿈도 꾸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민주통합당의 야권연대가 선거공학적으로 실패한 이유는 1. ‘큰 형으로서 통크게 양보하라’는 일각의 주장에 따라 너무 많은 지역구를 양보했으며 2. 협상 과정에서 얻어낼 것은 얻어내고 줄 건 주는 협상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해림으로써, 그간 성공했던 야권연대의 공식을 붕괴시켰기 때문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