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안으로 게임 밖으로 뛰어나오는 캐릭터들, 게임 IP 확장의 역사
마벨, 디씨코믹스들의 영화들이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이들은 같은 캐릭터를 활용한 콘텐츠를 만화, 게임, 영화, 모두 다른 내용으로 출시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접해야만, 그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전략을 취한다.
주로 OSMU(원 소스 멀티 유즈)라는 말로 이야기하지만, 게임업계에서는 캐릭터 활용한 저작물들을 IP(지적재산권) 활용 사업이라 이야기한다. 지금이야 하나의 콘텐츠를 여러 채널로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각종 콘텐츠들이 어떻게 게임으로 흘러들어오고, 소비되었는지, 그리고 역으로 게임이 어떻게 다른 콘텐츠로 활용되며 그 세계관이 확장됐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먼 옛날: 일단 게임으로 옮기고 보자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게임으로 내놓으면 팔리겠다는 생각이 수십 년 전이라고 없었을리 없다. 1979년 등장한 <슈퍼맨>은 그 원조격이다. 지금 보면 슈퍼맨인지 스파이더맨인지 구분하기 힘든 그래픽… 이 글을 보는 절반 정도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시기이니 그렇거니 하자.
슈퍼맨입니다. 이해해 주세요.
그래도 80년대 중후반 들어와서는 게임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일본에서는 그럭저럭 완성도 있는 게임이 등장했다. MSX의 <불새>나, 패미콤의 <드래곤볼 – 대마왕부활>은 캐릭터를 활용한 게임 중 높은 평가를 얻었다.
90년대 해외: 그래도 좀 게임답게 만들자
91년에는 <심슨가족>도 게임화됐다. 국내 꼬꼬마들에게는 친구들끼리 게임은 안 깨고 서로 두들겨 패는 우정파괴 게임으로 유명했다. 국내에서는 주로 2편이 인기를 끌었던, <엑스맨>도 도스용으로 게임이 등장했다. 당시 한국은 저작권 개념도 없던 불법복제 천국이어서, 올드 게이머라면 다들 이들 게임에 대한 추억이 있으리라.
80년대 부활한 디즈니는 90년대 들어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전세계적으로 히트시킨다. 89년 일요일 아침 우리의 아침 식사와 함께 한 <욕심쟁이 오리 아저씨>를 패미콤용 게임으로 내놓은 디즈니는, 90년대 <라이온킹>과 <알라딘> 등도 게임으로 이식한다. 이들 게임에 대한 평은 모두 좋은 편이었다.
누가 디즈니 아니랄까봐 움직임의 부드러움은 도스 게임 급이 아니다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영화도 게임으로 나왔다. <나홀로 집에> 시리즈나 <터미네이터 2>가 그 대표작이다. 물론 당시 2D 환경상 게임으로 이식이 쉬웠던 만화, 애니메이션과 달리, 영화는 게임에서 그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평을 받았다.
다만 이런 게임들은 이미 흥행한 콘텐츠에 게임이 따라가는 형태였기 때문에, 게임이 영화나 만화에 영향을 주기는 힘들었다. 게임시장 규모가 작을 때라 개발사가 라이센스를 받아 개발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콘텐츠가 확장되기 힘든 것 역시 하나의 원인이다.
90년대 한국: 게임화의 시작
지금이야 게임 매출액이 다른 문화 콘텐츠의 매출액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지만 예전에는 그 반대였다. 주간 IQ점프 같은 만화잡지가 한 주에 30만부씩 팔아치우던 때에 게임은 1년 가까이 제작하여 몇 만장 정도 판매하는 게 한계였다. 그래서 초기에는 시장이 컸던 만화책, 애니메이션, 영화 등이 게임으로 제작되었다. 이는 해외 역시 마찬가지였다.
90년대 게임이 된 국내 만화로는 <마이러브>, <까꿍>, <뱀프 1/2>, <어쩐지 저녁>, <날아라 슈퍼보드>, <머털도사> 등이 있었다. 당시는 국내 게임회사들의 역량이 그리 높지 않아, 주로 단순한 2D 액션 게임으로 제작됐다.
이 중 TV 애니메이션으로 방영한 <날아라 슈퍼보드>와 <머털도사>는 인지도에 힘입어 RPG로 제작되었고 어느 정도 인기를 끌었다. 여기에는 당시 지금도 게임을 좋지 않게 보던 부모님들이 지갑을 열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 있다.
만화뿐 아니라 연예인 역시 게임화의 소스였다. 그 시작은 한국 가요계의 전설, 서태지였다. <컴백태지보이즈>는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를 아쉬워하는 팬들을 대상으로 했으나, 완성도는 그다지라는 평가. 그래도 연예인을 처음 내세운 게임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후에도 이런 시도는 계속됐는데, <나의 신부>와 <보아 인 더 월드>가 대표적이다. 이 중 <나의 신부>는 무려 신혼생활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 엄정화가 직접 노래를 부르고, 직접 홍보에 나섰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보아 인 더 월드>는 최초의 연예인 육성 시뮬레이션이었다.
2000년대: 콘텐츠 상하구도의 역전, 게임이 원작을 앞지르기 시작하다.
국내 최초의 온라인 게임들 역시 기존 콘텐츠를 가져다 쓴 경우가 많았는데, 한국 최초의 상업용 머드게임인 쥬라기 공원의 경우는 게임북 <쥬라기 공원>을,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는 각각 김진의 동명의 만화인 <바람의 나라>와, 신일숙의 동명의 만화인 <리니지>를 무대로 가져왔다. 깊은 세계관을 원했던 개발자들이 만화를 원작으로 온라인 게임 세계로 확장한 것이었다.
<리니지>와 <바람의 나라> 모두 게임이 지나치게 흥행하여 원작들보다 훨씬 힘이 세졌다. 이 중 <리니지>는 너무 인기가 좋다 보니 저작권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을 정도다. <바람의 나라>는 드라마와 뮤지컬이 제작되기도 했다.
IP활용한 게임이 너무 흥행이 되서 원작을 잡아먹은 케이스마저 생겨났다. <어쩐지 저녁>으로 인기몰이를 한 이명진 작가는 자신의 만화 <라그나로크>를 토대로 한 <라그라로크 온라인> 개발에 적극 참여한다. 그리고 만화는 연재중단 후 아무런 답이 없는 상태이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각종 원작의 온라인 게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인기 소설인 <퇴마록>은 일찍부터 IP를 활용하여 <퇴마요새>란 MUD게임으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이어서 온라인 게임으로 제작되었으나 전설적으로 망한 홍보영상만을 내놓은 후, 결국 게임도 오픈베타까지 나오고 서비스 중지되었다.
시작부터 망삘을 제대로 풍겼다
인기 무협 만화인 <열혈강호> 역시 여러 차례 게임화 됐다. 우선 패키지 게임이 나오고, 몇년 후 온라인 게임으로도 제작되었다. 두 작품 다 성과를 냈고, <열혈강호 온라인>의 경우 2탄이 제작되기도 했는데, 아직 완결도 되지 않은 만화의 20년 후를 무대로 하여 만화의 세계관을 확장시켰다. 만화는 지금 연재중인 신지편이 마지막이라고 한다.
유명 판타지 소설 <드래곤 라자> 역시 OSMU를 빼놓을수 없다. 유려한 원화로 인기를 끌었던 <드래곤 라자 온라인>뿐 아니라, 만화책과 라디오 드라마로 확장했다.
콘텐츠들의 이종 교배, 완전히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다.
캡콤은 <엑스맨 VS 스트리트 파이터>로 전혀 다른 영역의 두 콘텐츠를 연결한다. 스트리트 파이터의 등장인물도 발이 늘어나고 장풍을 쓰는 등 정상은 아니지만, 하늘을 날고 레이저를 쏘아대는 엑스맨에 맞춰 초현실적 인물로 강화됐다. 이후 캡콤의 미국화는 계속되며 각종 믹스가 이어지고 있다.
반다이에서는 자사가 가지고 있는 로봇 애니메이션 IP를 활용해서 OSMU 끝판왕 같은 콘텐츠를 만들었는데 바로 슈퍼로봇대전 시리즈다. 너무 많은 판권이 얽혀서 해외출시가 거의 불가능한 이 시리즈는 끝없이 옛날 로봇들을 팔리게 만들고 있다.
슈퍼로봇대전 시리즈의 경우 처음엔 기존에 존재하는 로봇 콘텐츠를 중심으로 제작되었지만 조금씩 오리지널 캐릭터들을 추가하며, 나중엔 오리지널 캐릭터들로만 이루어진 시리즈를 발매하기도 했다. 애니메이션이 게임으로, 또 게임이 애니메이션으로 재확장된 사례다.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도 기존 게임들의 콘텐츠를 모아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낸 게임 중 하나이다. <아랑전설>, <용호의 권> 등의 캐릭터들을 모아 시작한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는 SNK의 핵심 IP 중 하나가 되었다.
<남코 X 캡콤>으로 시작된 <프로젝트 크로스존>은 이제 세가와 닌텐도 캐릭터들까지 몰려들어서 새로운 SRPG 콘텐츠로 게임이 나오기도 했다. 이번에 닌텐도 3DS로 한국어화 돼서 출시될 예정이기도 하다.
콘텐츠가 실제 현실로, 실제 체험하는 콘텐츠의 확장
천조국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요즘 헐리우드는 규모가 다르다. 영화가 나오면 기본적으로 게임이나 테마파크를 깔고 간다. 디즈니의 전통은 물론이고, 해리포터는 오사카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통해 관객들의 지갑을 마구 털어가고 있다.
한국도 이러한 시도를 늘려 나가고 있다. 2001년 엔씨소프트는 게임테마파크 ‘리니지 2001’을 코엑스에서 운영했다. 각종 전시, 판매와 행사가 진행되었던 행사는 기존 게임엑스포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별도의 게임만으로 만들 수 있다는 선례가 됐다.
이 규모는 점점 커져, 인제에는 <서든어택>의 인기맵인 웨어하우스를 테마로 꾸민 테마파크가 들어섰다. 캐릭터 뿐만 아니라 맵 또한 OSMU로 활용될수 있는 예를 보여준다 할 수 있겠다. 그 외에 넥슨도 대규모 테마파크를 제주도에 건설한다 선언한 바 있다.
경계없는 콘텐츠의 확장이 시작되다
이제 온라인 게임이 다른 콘텐츠들을 아바타 등으로 파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 대상도 옛날에는 다른 게임, 애니메이션 등이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꼭 게임이 아니더라도 어떤 콘텐츠든지 게임 안에 등장해도 놀라지 않게 되었다. 게임 콘텐츠 역시 컴퓨터 안에서 밖으로 나와 역시 팝업스토어를 연다거나 영화로 제작하는 등, 게이머들의 지갑을 다양한 방식으로 털고 있다.
2015 지스타에서는 엔씨소프트의 부스가 통째로 MXM으로 꾸며지면서 정말 다양한 콜라보의 시도가 이루어졌다. 하드웨어, 야구단, 카메라, 오로나민C, 운동화 등 캐릭터의 설정에 맞춰 각 제품들을 전시한 것이다. 이렇게 동시에 각 캐릭터들을 여러 가지 물품들과 콜라보를 하는 것이 앞으로 콘텐츠 확장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번에 엔씨소프트는 레진코믹스에 이어 만화 전문 매니지먼트 업체인 재담미디어에 투자를 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게임 콘텐츠를 만화로 확장시킬 수 있는 아군을 얻은 것은 물론, 게임 안으로 끌어들일 만화 콘텐츠 역시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는데, 앞으로 어떤 콘텐츠들이 계속 등장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