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경제성장률의 진실” 이라는 글은 몇년째 인터넷에 퍼져서 꾸준히 올라오고 공유되는 글이다. 이 글의 원출처를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데, 출처는 Barry Lee 라는 분의 글(1편 / 2편)이다. 블로거이자 헤비 트위터리안이었는데, 2012년 미국에서 수술 중 사고로 사망했다. 먼저 불행한 사고로 돌아가신 고인의 명복을 빈다.
1. 애초에 그래프가 잘못됐다
이 글은 사람들 사이에서 넓게 퍼졌는데, 원래는 잘못된 그래프가 있었다. Barry Lee 님은 나중에 이 그래프를 삭제했지만, 사람들이 퍼간 내용에는 이 그래프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그래프가 포함된 블로그가 이 포스팅이고, 그 잘못된 그래프가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한동안 공유되었다.
이 그래프의 국제성장률 항목은 국제성장률이 아니라, (국제성장률 + 국내성장률)이다. 당연히 국제성장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 그래프는 아래와 같다. 배리 리 님이 링크해 둔 자료로 그대로 다시 만든 그래프다.
2. 경제정책 효과는 장기적으로 나타난다: 애초에 저 자료는 무엇도 이야기할 수 없다
하지만 저 그래프를 빼면 배리 리 님의 포스팅이 맞느냐, 아니다. 틀렸다. 신뢰성을 장담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신뢰성 제로다. 저 정도의 숫자놀음으로는 경제성장했다는 사실만 파악할 수 있을 뿐,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저 정도의 숫자놀음으로, 절대로 해석될 수 없다.
저 글을 보고 “박정희가 해 놓은 일이 그렇게 인상적인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을 정도로 경제학은 허접한 학문이 아니다. 경제학 박사는 고스톱 쳐서 따는 것이 아니다.
경제성장은 정부당국의 요인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요인들이 상호 영향을 미친다. 국가경제정책 및 산업정책, 국민성 및 교육수준, 국제정치 및 국제경제 동향 등이 상호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 개별 요인들이 경제성장에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치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이 시간은 중앙은행의 금리조정부터 다양한 산업지원정책까지 다양한 경제정책에 따라 각각 다르다. 1년도 안 걸릴 수도 있고,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래서 집권 당시의 경제성장률만 갖고 개별 정부의 경제정책을 평가할 수 없다.
배리 리 님의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숫자로 짜맞춘 것에 불과하며, 저런 식으로 분석하면 전두환이야말로 경제를 살린 대통령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경제성장률을 두고 전두환이야말로 민족의 영도자라는 글도 나돌고 있는데, 이 글 역시 궤변이다. 전두환 시기의 경제성장이 온전히 전두환 때문이 아니며, IMF가 온전히 김영삼 정부의 실책 때문이 아니다.
3. 박정희 정권 경제성장 원동력 두 가지: 수출 중심과 중공업 육성
박정희 정권 시절의 경제성장의 원동력은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요인의 결합이다. 우선 교육을 중시하고 중앙집권 체제에 익숙하며 근면한 국민성이 뒷받침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더해서 박정희 정권의 몇몇 정책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첫번째가 내수가 아닌 수출 중심의 경제를 꾸렸다는 것이고, 두번째가 과감하게 대기업 중심의 경제, 중공업 육성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우선 내수 중심의 경제보다 국제무역 중심의 경제가 성장에 더 유리하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도, 실증적으로도 충분히 경제학 안에서도 인정받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한국처럼 국가가 가진 자원이 별로 없고 사람만 많은 나라에서는 더욱 필수적이다. 또한 국제무역을 위해서는 인프라가 보강되어야 하고 동시에 어느 정도 기업 규모가 커야 한다. 박정희 정권은 이런 부분에 충분한 노력을 기울였고, 중공업까지 밀어붙여서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
이 정책의 중대한 약점은 국제정치경제 정세에 민감하다는 점, 동시에 해외에서 돈을 빌려야 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특히 위 그래프에서 70년대를 보면 한국경제와 국제경제가 유난히 서로 비슷하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오일 쇼크로 국제경제성장이 둔화된 시기에는 한국경제도 여지없이 부진했고, 오일쇼크가 심화된 79-80년에 한국경제 상태가 제일 좋지 않았다.
하지만 국제적인 호황을 맞는 시기에는 급성장한다. 그게 딱 전두환 대통령 시대였다. 전두환 대통령 시대는 박정희 대통령이 온갖 욕을 먹으면서 겨우 마련한 중공업 기반이 국제정세 완화와 함께 성과를 꽃피운 시대다. 전두환 대통령이 무리없이 경제를 운영하긴 했지만, 그렇게 위대한 취급을 받을 인물은 아니다.
4. 공과 과는 냉정하게: 왜곡으로 공을 가린다고 과가 사라지지도 않는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 몇몇 사람들은 79년에 박정희가 죽지 않았으면 경제-정치가 혼란해져서 지금과 같은 추앙을 받지 않았을 거라고 이야기하지만, 반대다. 오히려 81년부터 경제가 풀리면서 경제가 더 성장하여 더 신격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부마 사태로 인해 대량 사상자가 발생하고 정권이 붕괴했으리라는 짐작도 있지만, 남아메리카의 선진국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의 경우 박정희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죽여 놓고도 경제성장에 힘입어 상당한 지지층을 확보한 적도 있다.
또 한가지 숨겨진 이유는 박정희가 20년 가까이 통치했다는 점이다. 5년간 집권한 정부는 위에서 말한 정책시차 때문에 경제정책에 대해 평가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박정희는 20년이나 집권했기 때문에 정부정책에 대해서 다른 핑계를 댈 거리가 없다. 즉 20년이나 해먹으면서 경제를 성장시킨 만큼 박정희 정권이 잘했다고 하지 않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박정희 정권의 경제정책을 무리하게 끌어내리려는 시도가 있지만, 하나같이 악의적 왜곡이 심한 자료들이다. 박정희 정권은 집권 초기2-3년 동안 정책적으로 무지하여 실책들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을 이뤄낸 것은 사실이다.
해외원조가 있었고 박정희 정권이 부패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해외원조 받아도 경제성장 실패한 나라들 많고, 부패한 정권이 경제성장 시키지 못하고 경제를 통째로 말아먹는 나라들도 많다. 박정희 덕분에 고속성장을 했지만 그 결과 현재 경제체제가 불안해졌고 따라서 그런 성장은 잘못된 성장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빈곤과 보릿고개 체험해 보면 그런 말 함부로 못한다.
박정희의 경제 정책이 뛰어남을 인정해도: 그것이 지금은 절대 통할리 없다
교육열과 근면 등 동아시아 문화가 경제성장에 기여한 면도 상당히 높다. 하지만 그것만 갖고서 경제성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북한이라는 반례가 충분하게 보여준다.
동시에 위에서 말한 국제무역,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은 전세계에 걸쳐서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이런 정책을 박정희 정권이 우연히 발견한 것이든 소 뒷걸음질치다가 쥐잡은 것이던 간에, 잘한 것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단 핵심은 과거의 그런 경제정책이 지금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벌은 3세대에 이르면서 세습되면서 창조적 추진력을 잃어버렸고, 경제에 창조력을 불어넣는 일은 국가가 나서서 쥐어짜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시절의 IT붐을 비롯한 신산업을 찾아내는 정책은 필요하지만 건설업과 중동 붐을 일으켜서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발상은 이미 낡고 오래된 것이다.
결론: 우리편 논리에 빠지기보다 더욱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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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싫어서 박정희를 까고 싶으면 박정희를 최대한 논리적으로 정당하게 비판해라. 이상한 논리로 까면 깔수록 한국경제성장은 전두환이 이룩했다. 미국 덕분이다 같은 이상한 결론들이 나오기 쉬우며, 미약한 근거들이 나올수록 박정희는 더 신격화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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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을 비난하는 제일 중요한 논거는 그가 독재자였고 인혁당 사건을 비롯한 사법살인이 있었다는 점이다. 경제성장은 당시 정권과 국민 모두가 노력해서 이루어 낸 결과이고 그 어느쪽의 노력도 폄하되어서는 안된다. 핵심은 현정부의 경제정책 무엇이 옳은가? 하는 논의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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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이 유일하게 잘한 것은 본인이 경제를 잘 모른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를 모르면서 경제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정치가들은 반드시 경제를 망친다. 감정에 앞서지 말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쿨하게 인정하고, 음모론을 배격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존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