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개인적인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13년간의 회사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30대 중후반의 적지 않은 나이에 왜 스타트업을 시작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참고로 세상을 바꿔야겠다 뭐 그런 큰 야심이 있지도 않고 어렸을 적부터 IT에 비범한 능력을 갖춘 천재도 아닙니다. IT 업종이 좋아서 늦깎이로 처음 이 업계에 발을 들여놓고 서비스 운영, 기획, 사업개발 업무를 해오던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1. 오늘날 스타트업은 망해도 잃을 게 별로 없다
통계적으로 보면 스타트업이 성공할 확률은 1%가 안 된다고 합니다.
If only 37 of the companies that have applied to Y Combinator over the years have succeeded, this is a staggeringly low 0.4% success rate. Put differently, only one in every 200 companies that applies to Y Combinator will succeed.
Y콤비네이터(Y Combinator)에 지원한 회사 중 99.6%가 실패한다고 하니 성공 확률은 매우 낮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우리 팀이 만든 서비스가 성공할 것이라 확신에 차 있지만 통계를 보면 ‘일단 망한다’라고 가정하는 게 더 현실적일지도 모릅니다.
‘망한다’라는 단어는 상당히 두려운 단어입니다. 저희 부모님 세대만 해도 사업을 하다 보면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사업이 망하면 그야말로 집안 전체가 헤어나기 힘든 구렁텅이로 빠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요즘 IT 스타트업이 ‘망한다’라는 의미는 이전에 사업체가 ‘망한다’라는 의미와 상당히 다릅니다. 오늘날 스타트업 환경은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대출이 아닌 투자금으로 충당할 수 있는 환경이 상당히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특히 요즘은 벤처투자 업계에 돈이 넘쳐나고, 오히려 투자할 데가 없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지요.
일반적이진 않지만 ‘킥스타터(Kickstarter)’ 같은 플랫폼을 이용하면 개인들로부터도 사업자금을 충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IT 업종은 과거 어느 때보다 적은 자본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무료 오픈소스 프로그램, 사용량만큼만 돈을 내는 서버 비용, 여러 벤처 지원 기관에서 무료 또는 낮은 비용으로 제공하는 사무실, 정부지원 자금 등) 또한 과거처럼 사업해서 망했다고 해서 인생의 낙오자로 인식되어 재취업이 어렵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스타트업 경력을 장점으로 봐주는 IT 회사가 늘고 있습니다.
결국 오늘날 스타트업이 ‘망한다’라는 개념은 개인 인생이 끝장난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특히 금전적인 측면에서는 본인이 납입한 자본금을 날리고, 여러 기회비용(=1~2년간의 월급, 보너스 등) 정도를 잃는다는 의미입니다.
반대로 실패를 통해 얻는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다음 기회에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스타트업이 망하는 건 절대 마이너스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제가 스타트업을 주저 없이 시작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입니다.
2. 회사생활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다
회사에 다녀보신 분들은 대부분 공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규모가 큰 대기업일수록 인간의 본성을 억누르는 여러 가지 틀들이 우리의 삶을 압박해 옵니다. 그중 몇 개를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 조직생활의 틀
- 승진구조의 틀
- 업무시간과 휴가 일수의 틀
- 할 수 있는 업무 범위의 틀
- 삶의 틀
인간은 원래 자유로운 동물입니다. 자유롭게 사고하고, 사고한 대로 행동하는, 즉 하고 싶은 대로 살아야 더 행복해지는 동물입니다. 하지만 큰 기업, 특히 우리나라의 전통 대기업은 오히려 이런 본성에 반대되는 문화와 습관을 강요합니다. 큰 조직을 유지 운영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조직 내에서 직급과 명령 체계를 만들고, 평가와 승진 제도를 만들고 이 안에서 울고 웃는 작은 사회를 만듭니다. 드라마 〈미생〉을 보면 조직사회가 한 개인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깨알같이 묘사를 잘하고 있습니다.
직장생활을 13년간 하면서 어느 시점부터 이런 틀들이 모두 허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중요한 건 우리 팀이 만들어내는 제품이고 고객이 느끼는 만족도이지 그 외의 것들은 모두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수단이 목적을 잠식해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회사가 커지면 커질수록 말이죠.
IT기술의 발전으로 경쟁 환경이 바뀌면서 이는 회사의 경쟁력에 심각한 걸림돌이 됩니다. 새로운 제품을 만들거나 회사를 운영하는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낮아지고 자금은 넘쳐납니다. 고객이 조금만 실망하거나 제품이 조금만 안 좋아도 경쟁사나 새로운 스타트업들이 더 좋은 제품으로 바로 치고 나오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모바일 시대가 열리면서 경쟁도 국내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세계 모든 스타트업과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야근을 강요하는 상사, 승진에 목매다는 직원, 폭탄주 회식문화, 조직개편으로 제품출시가 늦어지는 상황, 회사 내 정치 같은 것들은 더이상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제품과 고객 만족 그리고 내부고객이라고 할 수 있는 직원 만족 외에는 기존의 모든 틀을 깨야 하고 새로 정립해야 하는 세상이 온 것입니다.
기존의 모든 틀을 모두 깨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스타트업입니다. 조직문화, 일하는 방법,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 휴가제도, 근무시간, 제품을 만들어내는 속도, 사용하는 프로그래밍 언어, 사내 협업툴, 고객의 의견을 수집하는 툴, 심지어 우리가 사용하는 사무용품 하나하나까지 새로 정하고 의사 결정해야 하는 곳.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이 모든 의사결정은 제품과 내·외부 고객에게 최적화할 수밖에 없는 곳입니다.
3.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재미로 인생을 채운다
30대 중후반이 되자 인생의 재미라는 게 세 가지 정도로 줄어듭니다. 아이를 키우는 재미,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재미, 그리고 마지막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재미입니다. 옛날에는 그렇게 좋아했던 여행도 이제 시시해지고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새로 나온 전자제품을 사거나 심지어 갖고 싶었던 자동차를 사도 별 감흥이 없습니다. 이전에는 큰 기쁨과 재미를 주던 놀이들이 반복되면 대부분 다 시들해집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재미,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는 재미는 못해도 향후 10년간은 유지가 될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만들 수 있는 제품의 규모도 점차 커질 수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처음에 온라인 서비스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우주선을 만들고 있으니까요.
뜻이 맞는 사람끼리 작은 사무실에 모여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재미는 마약과 같은 중독성이 있습니다. 혹시라도 이 창조물을 많은 사람들이 써주기까지 한다면 그 재미는 배가 됩니다. 이 재밌는 일을 회사 갔다 와서 혹은 주말에 시간을 겨우겨우 쪼개서 하는 게 아니라 매일 매일 8시간 이상을 할 수 있다면 인생이 그만큼 풍요로워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꼰대 짓 하는 상사도 없고, 일 하다가 쉬고 싶으면 쉬고, 음악 듣고 싶으면 음악 듣고 심지어 더운 여름날에 시원한 맥주도 마시면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연봉 수억 원 받는 회사원이 부럽지 않습니다.
빠져나올 수 없는 매력
이 세 가지 이유가 제가 스타트업을 시작하게 된 동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돼서 아직은 행복한 시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시한 제품이 쫄딱 망하고 자금이 마르기 시작하고 스트레스로 멘붕이 되기 시작하면 아마 이 순진무구한 글을 보면서 헛웃음을 지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때 제 주위 사람들에게 얘기할지 모릅니다.
절대 스타트업 창업할 생각 마라.
하지만 우리 회사의 공동창업자가 창업자에서 회사원 생활을 거쳐 다시 한번 두 번째 창업을 하는 거 보면 분명 스타트업에는 빠져나올 수 없는 매력이 있습니다.
원문: gary의 미디엄